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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의지, 시대의 요구 - <그대가 조국> 이후, 다시 찾아온 <다시 만날, 조국>의 의미
이우빈 2025-05-13

<다시 만날, 조국>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정치인’으로 명확히 정의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다. 2022년 개봉했던 전편 격의 작품 <그대가 조국>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그대가 조국>은 2019년 조국 전 대표의 법무부 장관 취임 전후로 불거졌던 각종 사건을 해부하는 프로파일링 영화에 가까웠다. 조국 전 대표보다는 그 근방에서 사건에 연루됐던 관계자를 취재하며 ‘조국 사태’라는 일련의 사건을 다면적으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만날, 조국>도 조국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에 취임한 뒤 35일여간의 법무부 장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조국 본인과 그의 가족에게 뻗쳤던 온갖 폭격의 역사를 제시하며 시작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은 1부에 불과하다. 이후의 여정은 다르다. <그대가 조국>이 위기를 통과해온 한 인물의 초상에서 그쳤다면, <다시 만날, 조국>은 더 과격하다. 위기를 통과한 그는 더 투쟁적으로 정치에 몸담고, ‘공적 분노’를 말한다.

조국 전 대표가 스스로 밝혔듯 <다시 만날, 조국>은 ‘의지’의 영화다. 그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이라는 공직자 시절에 겪었던 풍파가 하나의 ‘운명’적 사건이었다면, 그러한 운명을 어떻게 자신의 의지로 헤쳐나갔는지가 <다시 만날, 조국>의 중심 주제다. 그 의지가 발현된 가장 뚜렷했던 방식은 2024년 2월 조국혁신당 창당이라는 파격적 선택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당의 설립은 공직자 시절, 그리고 학계에 있을 때, 또는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섣불리 전면화하지 않던 조국의 완전한 변신이었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시선이다.정치인으로 변신한 조국, 그리고 조국혁신당은 그 캐치프레이즈부터 단호했다. ‘검찰 독재 조기 종식’, ‘3년은 너무 길다’ 등의 메시지를 내세우며 윤석열 정권과 정면으로 싸웠다. 작중 조국 전 대표는 “작지만 빠르고 강한 정당”을 만들어 윤석열 정부의 오점들을 공론화하는 일에 힘썼고, 거대 야당 민주당과 파벌 싸움을 벌이기보단 ‘협력적 경쟁 관계, 경쟁적 협력 관계’를 형성하며 공공의 적과 맞섰다. 이러한 조국혁신당의 강인함은 조국이라는 사람의 변화로도 상징된다. 작중 주변인의 말처럼 ‘고고한 선비’ 같았던 조국 전 대표가 강한 제스처, 단언하는 말투, 우렁찬 목소리로 “윤석열 당신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라고 외치는 모습은 조국에 대한 지지자들의 열의를 점화하는 부싯돌이었다. 영화는 이 불씨가 지난 4월 윤석열 파면으로 이어졌다는 시계열의 연결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정치적 화두가 어떻게 적중했는지를 포착한다.

정치인과 사람 사이에서

전술했듯 <다시 만날, 조국>은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난 조국 전 대표의 변화를 중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다만 진정한 정치인인 동시에,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그의 모습 역시 자주 등장한다. 인터뷰이로 나선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학교 교수는 수감 당시 남편에게 “당신이 무너지면 안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당신이 무너지면 나는 당신을 맨 먼저 탓할 것이다”라는 맥락의 말을 전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겪었던 일련의 비화, 아버지 조국이 자녀들과 나눈 대화 등이 영화에 제시된다. 또한 어느 인터뷰이는 재판에 나선 조국 전 대표의 모습이 “민정수석을 지낸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한 가장의 아버지로서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진술한다. 요컨대 영화는 정치인 역시 하나의 ‘인’(人)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지하며 조국을 초월적인 영웅으로 추대하기보다 의지로 일어서는 한명의 인간으로 비추려 한다.

그는 인간적으로 분노하고, 때로 농담도 건넨다. 수감 이틀 전 진행됐다는 <다시 만날, 조국>의 인터뷰 신에서 조국 전 대표는 진중한 표정으로 과거의 정치 행보를 복기하던 중 “내가 며칠 뒤면 수감되는데 즐겁게만 할 수 있겠어? 이만큼 하면 됐잖아”라는 농을 던진다. 또한 그간의 사건을 거치며 마음의 분노가 쌓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라 고백한다. 대신 그러한 분노를 공적인 차원으로 전환시켜 정치적 대의를 이룰 것이라 말한다. 즉 정치적 상징으로서 작동하는 ‘조국’이 아닌 정치인 ‘조국’의 사람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다시 만날, 조국>의 마지막 챕터 제목은 ‘네체시타’(시대의 요구)다. 현재 한국 사회는 다양한 방면에서 아프고 힘든 경험을 겪었고 이에 많은 요구를 표출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정치인이란 무릇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 목소리를 내는 직업인이어야 할 것이다. 다만 조국 전 대표는 현재 수감 중으로,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정치 행보를 펼치기에는 뚜렷한 제약이 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날, 조국>은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 직전이라는 이 중요한 시기에 조국의 이름을 내건 영화로 개봉된다. 그렇다면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영화 자체가 시대의 요구라는 의미일까? 지지자를 다시금 규합하고, 대선에 조국 전 대표의 영향력을 최대한 작용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순 없다. 그 목적이 무엇일지라도 영화를 해석하는 주인공은 결국 관객이다. 만약 <다시 만날, 조국>이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영화를 직접 보고 자기만의 의미를 찾는 관객의 역할 덕분일 것이다. 어쩌면 시대의 요구란 다른 말로 관객의 요구일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선택이 중요해진 지금, <다시 만날, 조국>은 자신의 정치적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경로가 될 것이다.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하든가 하지 말든가 시도 따위는 없다) 대다수가 말리던 창당을 결심할 당시 나의 마음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포르투나’(운명)를 꺾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르투(의지)를 극대화하여 몸을 던져야 한다.”-2024년 총선을 앞둔 조국 전 대표의 페이스북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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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엣나인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