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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 2 필사정진“연기에 필이 꽂힌 이후”, 유해진은 한눈을 판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뒤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 했던 그는 두 차례 미역국을 먹었는데도 꿈을 꺾지 않았다. 결국 의상학을 전공한 그는 그때의 선택이 “아버지의 강권 때문”이라면서도, “염색만은 무대의상 작업에 도움이 되는 수업이라 완벽하게 배웠다”. 한때 고등학교 친구의 누나가 운영하는 무용학원에 다녔던 것도 언젠가 무대 위에서 풍부한 표현을 내놓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학원이 꼭대기층에 있어 물 사정이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물 길어올리고 청소도 하면서 곁눈질해가며 배웠죠. 근데 지금은 그 몸이 다 굳었어요.”까까머리 열다섯살 때 본 추송웅의 <우리들의 광대>의 환영이 어른거려 대학 시절에도 청주의 극단 청년극장에서 살다시피 한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1995년 당시 서울예대 연극과에 편입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모색을 시작한다. 이때 만난 송혜숙 교수는 그에겐 어머니 같은 존재. 허기진 배
<간철 리철진><주유소 습격사건><라이터를 켜라>의 유해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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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뉴요커는 어떻게 최고의 코미디 프랜차이즈 <맨 인 블랙> 감독이 되었는가애정이 넘치는 눈길로 남편이 묻는다. “여보, 불행하오?” 만족스런 미소를 흘리며 아내가 대답한다.“오, 물론이죠.” 물구나무 선 세상의 즐거움! 금실 좋은 아담스 부부 고메즈와 모티샤의 대화는 배리 소넨필드의 첫 감독작품 <아담스 패밀리>가발휘한 매력의 열쇠다. 이따금 “과연, 사람일까?” 싶은 괴짜 이웃이 실은 외계인이라는 <맨 인 블랙>의 폭로는 또 어떤가. 배리 소넨필드감독의 세계에서는 검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악당이 아니다. 뒤집어진 세상의 질서를 관객에게 매끄럽게 설득하는 배리 소넨필드 감독의 천연덕스러움뒤에는 데이트 한번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던 소심한 소년의 믿기 힘든 할리우드 성공기가 있다.편집자제 1 장 - 어린 시절 기억, 지워다오 제발농담꾼의 운명을 예고하기라도 하듯 배리 소넨필드는 1953년 만우절에 뉴욕 유대계 가정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본인 회상
배리 소넨필드 스토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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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코언 형제와 함께 차차차!배리 소넨필드는 코언 형제의 촬영감독이라는 직함으로 1984년 처음 영화팬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시작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카메라를 갖고 있으면 스스로 카메라맨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뉴욕대 필름 스쿨을 졸업한 소넨필드는 그런 발상으로 친구와 돈을 합쳐 16mm 카메라를 샀다. 확실히 무리한 지출이었다. 소넨필드의 친구는 어느 포르노영화 제작자로부터 9일 동안 카메라를 빌려주고 촬영까지 맡아주면 카메라값의 1/4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다는 달콤한 제의를 받아왔고 소넨필드는 응했다. 그렇게 9일 동안 찍어낸 9편의 장편 포르노영화가 소넨필드의 첫 경험이었다. 약 13년 뒤 <부기 나이트>라는 영화가 빛을 보았을 때 소넨필드는 세상에서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영화의 선수를 빼앗긴 점을 개탄했다. 소넨필드가 살색보다 다양한 색상을 렌즈에 담은 정식 데뷔작을 낼 기회는 뜻밖에도 얼떨결에 초대받은 질식할 만큼 우아한 파티에서 찾아
배리 소넨필드 스토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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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 사랑하는 내 마누라, 내 자신감의 원천<블러드 심플> <아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으로 스타일을 인정받은 배리 소넨필드는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영화의 촬영감독을 거쳐 <아담스 패밀리>로 유망주 감독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1996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의한 <맨 인 블랙>을 위트와 개성까지 겸비한 희귀한 여름 액션영화로 만들어내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찾는 ‘A급 감독 클럽’에 가입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사다리를 무사히 타고 오르는 데 성공한 배리 소넨필드가 난생처음 삶의 자신감을 얻은 순간은 뭇 사람의 짐작과 달리 <맨 인 블랙>이 2억5천만달러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우며 <쥬라기 공원2>를 추월한 1997년 여름이 아니라 아내 수잔이 프로포즈를 받은 1989년의 어느 날이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가 나와 결혼해주기로 했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괜찮은 면이
배리 소넨필드 스토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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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이 지났다. 여기는 압구정, 필름있수다 사무실이다. 장진 감독은 장항준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
“하… 이 자식… 입봉 감독이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벌써 3번째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중견’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로 이제 갓 데뷔한 신인 감독이 약속시간인 1시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기가 막힌(척한)다. “어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답답한 나머지 전화를 걸어본다. “오는 중이라네요. 조금만 더 기다리자구요.” 40분이 지났다. 다시 전화를 건다. “어허! 이눔이… 이제 아예 전화를 꺼놨네.”
하는 수 없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몇분쯤 지나니 마른 몸의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연신 꾸벅꾸벅 인사를 헤대던 그는 뜬금없이 어제 선물받았다며 선글라스를 꺼내든다. “진아, 사람들이 나한테 안 어울린대… 바꿀까?” 갑자기 ‘절친한 친구’로 변신한 중견 감독은 언제 기다림에 지쳤냐는 듯 “한번 써봐라”며 신나게 거든다.
장진 · 장항준의 고삐풀린 수다 140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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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3 Round
“어… 평은 나쁘지 않아, 아직 쌈마이라고는 안해”
장항준 차승원씨가 <광복절 특사> 하잖아. 주변에서 뭐라고 했는데, 잘하는 것만 하면 되죠, 그러더라고. 넓게 보다 깊게 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더라구. 차승원씨 태도는 휼륭해. 원래 차승원 설정이 결혼한 사람이 아니었거든. 그냥 조폭이었잖아. 그런데 하루는 조폭도 애아빠일 수 있지 않느냐 그러더라구. 결국 단순한 깡패로 보이지 않는 이유도 휴머니티를 차승원쪽에서 몰아간 것도 그 설정 때문이었어. 양철곤에게 가정이 있다는 설정이 만들어지면서 봉구 모친과 만나는 장면 같은 것도 만들어졌지. 좀더 서민적인 느낌 찾으려고 동네도 물색했어. 뒤에는 아파트, 앞에는 달동네가 있는.
장진 그거 어두워서 안 보여.
장항준 알어. 그걸 찍으려고 나갔는데 김성복 촬영기사가 이거 찍어도 다 빼게 돼 있어요, 그러더라구.
장진 김성복 기사는 너한테는 천군만마야.
장항준 그분이 연극배우였다구. 감정을 잘 알어. 컷하
장진 · 장항준의 고삐풀린 수다 140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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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5 Round
난 집채만한 데스크탑, 넌 날렵한 노트북
장항준 너는 모르겠지만 참, 내, 이런 일도 있었다. 줄줄 나오네. 시나리오 쓰려고 수유리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에 들어갔거든. 데스크톱 낑낑 안고 프론트에 가서 “저 영화…”하는데 프론트 언니가 반가운 목소리로 “어머! 장진 감독님이죠?” 하는 거야. 허참! 여기서도 장진을 찾나, 그러더니 저 맨 끝쯤에서 “아 여기 이름있네요. 장항준씨…” 하더라고. 그래서 장진이 방은 몇호예요? 물었더니 미치겠네 내 옆방이야. 그래서 내가 니방 찾아갔었잖아.(이런 이야기를 할 때 장항준 감독은 보통 일어나서 일인극 수준으로 허공에 팔을 휘휘 저으며 대사를 치고받는다)
장진 그랬냐? 나는 옷 다 벗고 목욕하려고 물 받아놓고 발 딱 담그려는데 초인종 울려서 놀랐잖어.
장항준 나는 초인종 눌러도 소식이 없기에 이 자식 시나리오 쓴다고 들어와서 혹시 여자랑 있나 했다니까. 초인종 누르고 니가 나오는 시간을 계산해볼 때 딱 여자숨기고
장진 · 장항준의 고삐풀린 수다 140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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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의 특기는 `구라`다. 그걸로 지금껏 먹고, 입고 살아왔다. `구라`를 품지 않으면 하루를못 견딜 정도다. 그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해 겨울, 서울역 뒤편 촬영현장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여전히유쾌한 만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세팅을 하자마자 철수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는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아시바를 뜯어 나르는 스탭들을특유의 유머로 독려하는 정말 이상한 감독이다. 그런 낙천성이 없었다면, 메가폰을 쥐기까지의 시련을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구라`는 그에겐세상과 맞서는 일종의 `보약`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촬영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겪고 난 뒤, 말수가 지나치게 줄었다. 그 스스로 자신의인생, 최대의 `위기`라고만 했다. 다른 말은 없었다. 얼마 지나자 그와 연락할 수 있는 휴대폰조차 끊겼다. 그런 일이 있은 뒤 4개월이 지났고,그는 `시끌벅적한` 영화 한편을 세상에 내놓기에 앞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눈물나는`제작일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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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라는 게 이런 엿 같은 일도 해야 하는 거구나>> 2001년 8월2일시나리오는 결국 조연 캐릭터를 좀더 살리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다음 단계는 캐스팅. 번번이 낙오했던 관문이었다. 관수 형은 차승원부터 찍었다. 안면이 있다는 것이 유일한 무기였다. 그런데 그가 흔쾌히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다.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늘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제 영화의 쌍두마차인 봉구 역만 결정하면 큰 산을 넘는 거다. 가장 먼저 해효 형의 주름진 얼굴이 떠오른다. 이튿날, 곧장 전화부터 했다. “형, 이번에 같이 한번 안 해볼래요.” “좋아, 장항준! 한다. 난 너랑 무조건 한다.” 아직 시나리오를 보지도 못한 형은 쉽게 응낙했다. <은실이> 촬영장에 놀러갔을 때 만나 이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던 해효 형과 촬영장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난다는 건 나한테는 더없는 기쁨이었다.>> 2001년 8월14일“돈을 벌긴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눈물나는`제작일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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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분량만큼은 <스타워즈>?>> 2002년 5월21일비상이다! 사운드가 빠져 있는 편집본이긴 하지만 다들 너무 지루하다는 반응이다. 기대를 많이 하셨던 강우석 감독님도 와서 보신 뒤 빨리 보충촬영 준비하라고만 하고선 자리를 뜬다. 다들 침울한 분위기다. 소스를 집에 들고 와서 비디오로 다시 보지만, 여전히 재미가 없다. 그런데 내 옆에서 본 마누라 은희만 재밌다고 한다. 은희가 날 많이 사랑하긴 하나보다. 뭐가 문제일까. 정우하고 머리를 맞댄 뒤, 관수 형과 일정을 조정한다. 대강 꼽아도 적어도 7회 촬영이 필요하다. 어쨋든 이 엄청나고 참혹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제발 잘돼야 할 텐데.>> 2002년 5월28일보충촬영 분량이 꽤 많다. 승우 선배가 화장실에서 쫄따구들한테 표를 뺏고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도 너무 코믹하게 그려진 것 같아 진지하고 다급한 버전으로 재촬영했다. 기관실에서의 격투장면은 물론이고, 좀더 사실적인 리액션 장면을 끼워넣기 위해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눈물나는`제작일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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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Nana, 1926년, 120분, 흑백 / 출연 카트린 에슬링, 베르너 크라우스르누아르 자신이자기 영화들 가운데에서 최초로 논의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 <나나>는 저명한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르누아르가이 영화를 만들면서 특히 영향받은 것은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어리석은 부인들>(1921)이었다고 한다. 한 극장의 간판 여배우와 그녀를둘러싼 상류사회 남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나나 역을 맡은 것은 당시 르누아르의 부인이었던 카트린 에슬링이고, <칼리가리박사의 밀실>(1920)에서 칼리가리 박사를 연기한 베르너 크라우스가 무파 백작 역을 맡았다. 노엘 버치는 이 영화를 특히 높이 평가한 비평가였는데,여기서 그는 오프 스크린의 구조적 사용을 지적해냈다.<암캐> La Chienne, 1931년, 100분, 흑백 / 출연 미셸 시몽, 자니 마레즈혼자서 그림 그리는 것을
장 르누아르 회고전 상영작 17편 프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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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규칙> La R gle du jeu, 1939년, 112분, 흑백서로 엇갈린 욕망의 그물망 안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 <게임의 규칙>은 장 르누아르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며 세계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를 꼽을 때에도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걸작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에는 흥행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좋은 평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르누아르는 “나는 <게임의 규칙>의 실패에 너무도 괴로워한 나머지, 영화를 포기하든지 프랑스를 떠나든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까지 이야기했다. 나중에 영화는 재개봉되면서 정당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다수의 인물들로 짜여진 이 소우주에는 코미디와 비극, 멜로드라마와 사회적 리얼리즘 등의 요소들과 함께 섞여 있다. 이 영화가 거둔 성과에 대해 리처드 라우드는 이렇게까지 말한 바 있다. “만약 프랑스가 내일 파괴돼 이 영화만 남는다면, 이 나라 국민들은
장 르누아르 회고전 상영작 17편 프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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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거장 감독 장 르누아르의 회고전이 부산(7월20일부터 8월4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과 서울(8월9일부터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무성영화 시대의 걸작 <나나>(1926)에서부터 <탈주한 하사>(1962)까지 르누아르의 대표작 17편을만나보자.편집자장 르누아르와의 인터뷰를 담은 한 소책자에 서문을 쓴 니콜라스 프랭거키스라는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르누아르를 만나게 되기 전에 어떤 식으로 그의 이름과 마주하게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풋내기 배우였던 시절 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미술관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을 보곤 했는데 그곳 로비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인들의 이름이 적힌 카드들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 카드들 밑에는 해당 인물들이 개인적으로 뽑은 가장 위대한 영화 10편의 제목이 쓰여 있었다. 프랭거키스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카드, 오슨 웰스의 카드, 그리고 엘리아 카잔의 카드 등을 훑어보면
회고전 계기로 본 거장 장 르누아르의 작품 세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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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션에서 리얼리스트로<암캐>(1931), <익사 직전에 구조된 부뒤>(1932), <토니>(1934), <랑주씨의 범죄>(1936), <거대한 환상>(1937), <인간야수>(1938), <게임의 규칙> 등 세계영화사에 남을 걸작들을 연이어 내놓은 르누아르의 놀랄 만한 30년대는 분명 (시적) 리얼리즘에의 지향이 창작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던 시기였다. 사운드의 도입과 함께 앞선 시기의 ‘테크니션’ 르누아르가 ‘리얼리스트’ 르누아르로 이월했던 것인데, 이 두 얼굴의 르누아르 사이에 사운드라는 새로운 요소가 놓여 있다는 것이 분명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직접 한 말을 들음으로써든 아니면 <암캐> 같은 영화를 봄으로써든 우리가 짐작하게 되는 것은, 영화의 사운드가 르누아르로 하여금 무언가 일종의 ‘(재)발견’을 하게끔 촉진작용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아마 말하는 영화를 통해 르누
회고전 계기로 본 거장 장 르누아르의 작품 세계(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