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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 나는 무릎을 쳤다
1. <스타워즈>(1977)
특수효과 총감독을 맡은 존 딕스트라는 기존 영화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들을 여러 장면에서 시도했는데, 특히나 모션 컨트롤 카메라를 활용한 마지막 우주전투 시퀀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역동감을 선사한다. <스타워즈> 이전의 영화들이 특수효과 장면에서 정지된 화면이나 단선적인 카메라워킹만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하자면 가히 혁명적인 시도였고, 이 작품을 위해 연구된 우주선의 동선과 카메라 무브먼트는 이후의 SF영화에 교과서가 됐다.
2. <제다이의 귀환>(1983)
<스타워즈>는 한편만 언급하고 싶었지만 빼먹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어서 하나 더. <스타워즈>의 골수팬들조차도 시리즈 중 가장 떨어지는 작품으로 꼽는 <제다이의 귀환>은 기술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게 황당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다름 아니라 다스베이더가 루크를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는 동안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6] - ILM 최고의 CG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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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없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다”
히피 같은 스타일에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인터뷰장으로 들어온 존 버튼은 각국 기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던 중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폴란드전은 대단했다”, “미국과의 경기는 어떨 것 같으냐”는 등 월드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하는 전혀 ‘미국인답지 않은’ 미국인이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예술교육과 컴퓨터그래픽 석사과정을 이수한 그는 1990년 <터미네이터2>의 CG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ILM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마스크> <쥬라기 공원> 등의 CG 오퍼레이션 매니저를 거쳐 <미이라> <미이라2>의 시각효과 슈퍼바이저로 굵직굵직한 ILM의 작업들을 도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맨 인 블랙2>에서는 시각효과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전편보다 훨씬 많아진 외계괴물들과 싸우느라 일년을 꼬박 지새웠다는 그는 “다음 작업에 대한 대답은 바로 휴가!”라며 너스레를 떨었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5] - 존 버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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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특수효과업계는 생존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현재 미국 내에서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3D 인력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1500∼2천여명의 인력을 거느린 매머드급 3D 제작사들이 1차, 2차에 나누어 많은 인력을 방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외로 많은 대형 작품들이 빠져 나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실제 <반지의 제왕>의 경우 제작이 대부분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로 디즈니에서 일하던 실력있는 3D 제작진들이 비행기를 탔으며, 그 밖에도 많은 인재들이 자리를 털고 새 일터로 향하고 있다. ILM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600명의 인력들을 1차 방출한 뒤 얼마 전 또 700명을 방출했고, 조지 루카스도 자리를 옮겨 독립적인 R&D(Research&Development)회사를 구상중이라는 설이 있어 여러모로 변화를 겪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현상을 동반하는데, 한 가지는 실력있는 소수의 정예들이 뭉쳐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4] - 미국 특수효과업계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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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D2부터 자자 뱅크스까지,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타 군단
컴퓨터 관련 정보 및 수리에 능한 R2-D2, 은하계 수많은 종족의 언어와 문화를 훤히 꿰고 있는 영민한 가이드 C-3PO 등 각양각색의 드로이드, 키는 작지만 제다이들의 마스터이자 우주의 현자인 요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 등장하는 수다쟁이 건간족 자자 뱅크스까지 <스타워즈>는 다양한 특수효과를 거쳐 탄생한 무수한 캐릭터들의 전장이기도 하다. 뒤에서 사람(나중에 디지털 작업으로 화면에서 지워진다)이 조종하는 R2-D2와 C-3PO, 폼 라텍스에서 좀더 가볍고 부드러운 실리콘으로 업그레이드된 요다 등 일종의 인형들부터 원격 조종이 가능한 애니메트로닉스 가면을 뒤집어쓴 네이모디안, 배우 레이 파크를 뿔과 컬러로 특수 분장시킨 다스 몰, 완전히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자자와 배틀 드로이드 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운 상상력의 산물들이 개성의 경합을 벌인다.
<용과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3] - ILM의 피조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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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CG와 전통 효과의 놀라운 조합
“ILM에 빚지지 않은 특수효과회사는 거의 없을 정도다. ILM은 시각효과에 필요한 포맷을 거의 마련했고 소프트웨어의 결정을 주도했다”는 모팩 장성호 실장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노하우의 축적이 필요한 전통적 특수효과가 퇴보하고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특수효과가 발달하면서 ILM의 뒤를 잇는 후발주자들의 추월은 훨씬 용의해졌을 뿐 아니라 그 속도도 위협적이 되었다. ILM과 <터미네이터2> 작업을 함께했던 제임스 카메론이 설립한 디지털도메인, <글래디에이터>로 2001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토니 스콧과 리들리 스콧이 만든 영국의 밀필름과 다음해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반지의 제왕>의 뉴질랜드의 WETA디지털 등이 만들어내는 영상은 기술적으로 비교해볼 때 ILM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ILM의 ‘가장 파워풀한 디지털하우스’로서의 입지가 흔들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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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공장을 지나, 영화여 훨훨 날아라
이상한 여름이 찾아왔다. 1관에서는 은하계를 가로지르며 추락과 급상승을 오가는 우주선들이 아찔한 추격전을 벌이고 2관에서는 집채만한 외계인이 지하철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팔이 1천개쯤 달린 외계인이 검은 옷의 사나이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며 3관에서는 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완벽한 시스템이 마련된 근미래의 사실적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맨 인 블랙2>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선사하는 이 예사롭지 않은 여름풍경을 만든 진짜 주인공은 그러나, 조지 루카스도, 윌 스미스도, 스티븐 스필버그도 아니다.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의 세계가 관객의 눈앞에 펼쳐지기까지, 이 일련의 작품들은 특수효과를 담당한 ILM(Industrial Light+Magic)이라는 마법사의 손을 통해 세상과 조우할수 있었다. 1975년, <스타워즈> 시리즈를 구상하던 조지 루카스의 야심 아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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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 8인방의 출사표, 그들의 첫 영화 미리보기영화의 역사는 늘 새로운 물결로 다음 장을 열어젖힌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할리우드의 아메리칸뉴시네마, 영국의 앵그리영맨, 독일의 뉴저먼시네마, 일본의 쇼치쿠누벨바그…. 영화사의 어떤 대목을 펼치던 주류의 흐름을 바꿔놓은 신인들의 데뷔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연 90년대 중반 이후 급물살을 탄 한국영화의 변화엔 어떤 이름이 붙을 것인가? 그 흐름은 올해도 변함없다. 낯선 영화를 들고 우리 곁을 찾아올 새로운 감독들, 그들을 미리 만나보는 자리는 언제나 조금 흥분된다.<씨네21>이 미리 만난 8명의 신인감독은 이미 촬영을 했거나 곧 크랭크인할 영화의 연출자들이다.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입봉을 눈앞에 둔 그들의 출사표, 거기엔 장강의 앞물결을 밀고 앞으로 나가려는 패기가 깃들어 있다. 신은경·정준호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이병헌·이미연 주연의 멜로드라마 <중독>, 한석
신인감독 8인 (1) - <이중간첩>의 김현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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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턱선이 조금만 더 단정했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어떻게 생겼냐고?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이발소에 걸린 가족사진의 아버지를 기억하는지. 김명민-장진영, 배다른 남매의 아버지로 모든 비극의 출발이 되는 이 개망나니 같은 인간은 사진으로만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 얼굴의 주인공이 박영훈이다. 원래 그의 꿈은 배우였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연기전공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선배 학생들의 단편영화들에 출연했다. 화면을 보니 정면은 그런대로 볼 만했지만, 측면이 너무 안 좋았다. “이 얼굴로는 한계가 있겠다, 게다가 나는 발음까지 샌다.” 3학년 때 연기에서 연출로 바꿨다. 그때도 영화감독을 꿈꾸진 않았다.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것도 연극이다. 영화는, “가정사정이 썩 넉넉한 것도 아닌” 그에게 돈이 많이 들었다.취직시험을 조금만 더 잘 봤어도 그는 감독이 되지 않았을 거다. 방송사 PD 시험을 봤다. 1년 동안 공부했는데, 떨어졌다. 서울텔레콤에
신인감독 8인 (2) - <중독>의 박영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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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모지은 감독은 대학교 3학년 처음으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배추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사는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마음을 열게 되는, 단순하지만 힘들었던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는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뭔가 다른 공부를 해야할 것 같아”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영화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연극 대신 영화를 선택했다. 치열할 것도 없는 그 과정을 들어보면 이 여자, 너무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나 스물여덟 어린 나이에 촬영현장을 휘어잡은 모지은 감독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고민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곧바로 뛰어드는 편을 택하는 저돌적인 젊은이다. “영화를 만들어야지 생각하니까, 바로 감독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따라오더라구요.” 그 이후로는 딴 길로 새지 않고 영화만 했다.그의 늦은 결정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것만은 아니다. 모지은 감독 역시 영화감독들이 흔히 거친 어린 시절을 고만고만하
신인감독 8인 (3)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모지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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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벽과 기둥은, 그가 품은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세상에 전해주기에는 너무 무뚝뚝했다. 그것이 연세대 건축공학과 졸업반 시절 대한민국 건축대전에 입선하고 설계사무소에 취직해 건축가의 길을 걷던 김성호(32) 감독이 익숙한 건물들의 거리를 떠나 영화라는 이방으로 용감하게 유턴한 사연이다. 표현매체로서 건축이 지닌 운신의 한계를 카메라로 뛰어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는 16mm 워크숍으로 간단한 자가 적성검사를 치른 다음 1996년 무작정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2001년까지 뉴욕시립대와 뉴스쿨대학원에서 영화와 비디오, 컴퓨터애니메이션 제작을 공부했다.국내 독립단편영화제를 비롯해 영국, 미국의 여러 단편영화제에 초대받은 <아이 더 아이>(I the Eye), <케첩 스토리> 등 김성호 감독의 짧은 필름들은 뮤직비디오에서 클레이메이션에 이르는 다채로운 팔레트를 자랑하지만, 그 화사한 표면 아래에는 시간을 공간화하고 관객의 지각(知覺)을 현혹하는
신인감독 8인 (4) -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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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이건 뭐지?” 손목시계 디자인회사를 다니다 그만둔 지 3개월. 제멋대로 빈둥거리며 살았던 백수생활이 이제 슬슬 지겨워질만 하던 때였다. 마침, 신문에 난 영상원 1기 모집 광고는 김은숙(33)의 녹슨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무작정 연출을 지망한 그는 시를 주고 콘티를 짜는 등 당시로서는 독특했던 시험문제를 대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험이 다 있군” 하며 퍼즐 풀 듯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다. 정작 합격증을 받아들게 된 사정은 자신도 모르겠다고.입학 당시엔 찾아볼 수 없던 연출욕이 급작스레 타오른 건, 영상원에서 <일요일> <거울> 등의 단편을 만들면서부터. 졸업 뒤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던 이재용 감독을 곧장 찾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순애보>의 스크립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이재용 감독은 꼼꼼한 그에게 덥석 각색을 맡겼다. 결과가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정작 촬영에 들어갔을 때는 쿠
신인감독 8인 (5) - <빙우>의 김은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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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감독이 된 까닭은김종현 어린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만화광이었다. 극장에선 <로보트 태권V>에 열광했고, TV에선 <마징가Z>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미친 정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심했다. 이게 싹수였다. 명동의 외국서적 파는 곳을 두리번거리며 ‘로봇 백과사전’처럼 비싼 책을 사모으는 남다른 짓을 했다. 그는 이 책들을 통해 마징가Z나 그레이트 마징가 같은 캐릭터가 일본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불현듯 애국심이 불끈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한국만화는 한국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그는 결심했다, 만화영화 감독이 되겠고. 그래서 스케치북이나 공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미래를 준비했다.그런데 6학년 때 ‘미성년자 관람불가’ 표지판을 뚫고 극장에서 본 <엑스칼리버>는 그의 삶에 새로운 동기를 불어넣었다. 그때야 ‘아, 칼싸움이 어찌 저리 멋있단 말인가’라고 감탄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 즈음부터 만화의 세계를 넘어 신화적인 세계를 동경하기
신인감독 8인 (6) - <동정없는 세상>의 김종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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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그림을 그리는 것, 사진 찍는 것,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이혜영 감독은 “세상만물에 관심은 넘쳐나지만 뭐 하나 꼬집어 잘하는 게 없었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종합예술’ 하는 게 맞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 만들기는 그 많은 것을 녹여낼 수 있는 일이다. 다행스럽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온 것이고.” 정지우, 김용균 감독 등과 한양대 연극영화과 동기였던 이혜영 감독은 졸업 직후엔 영화기획실에 들어갔다. “기획실 일은 내부작업이 많았는데 역시 나는 바깥에 나가야 되는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결국 학교선배였던(당시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었던) 김상진 감독에게 부탁해서 <투캅스>의 스크립터로 처음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너에게 나를 보낸다>부터 <나쁜 영화>까지 장선우 감독의 조감독으로 감독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밟아나갔다.그는 왜 <첫눈>을 연출하는가지난
신인감독 8인 (7) - <첫눈>의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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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감독이 되었나군대에서 병장이 꿰어차는 ‘TV채널 선택권’ 덕분에 어느 날 병장 김태균은 텔레비전에서 단편영화 한편을 보게 된다. 무릇 군인이라면 채널을 고정시키곤 하는 쇼·오락프로가 아닌 EBS의 단편영화극장이 그날 병장 김태균이 선택한 프로그램. 거기서는 마침 스스로를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 남자에 관한 장준환 감독의 단편 이 나오고 있었고, 그 영화를 보면서 김태균은 내무반 TV 앞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발견했다.입대 전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그당시 문화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를 위한 한 소통방식으로서 영화가 적합하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에 “저런 단편은 나도 만들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보태져서 제대 뒤 김태균은 <씨네21>에 난 광고를 보고 한겨레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를 들어갔다. 복학생이 별거 다한다는 얘기까지 들으며 학교에 영화제작동아리도 만들었고, <이방인의 꿈> <줄서기> 등 단편을 만들었다. 상업
신인감독 8인 (8) - <크랙>의 김태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