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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들처럼, 배역대로 살아보기이은주, 은실이 관찰한 ‘구슬장사의 하루’출근: 오후 4∼5시 사이영업: 오후 5시∼새벽까지저녁식사시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장사를 대신 맡아줄 사람이 없으므로 물건이 보이는 가까운 음식점에서 먹는다. 식사 도중 손님이 오는 게 보이면 달려갔다 다시 들어와 식사함.자리차지: rule(법칙)이 있기 때문에 아무나 장사할 수 없다. but 자릿세는 내지 않음. 먼저 차지하면 임자.가격조사: (모두 수공예품) 빗 → 큰 거 5천원, 작은 거 4천원, 실핀 1천원… 밍크왁구(밍크털 달린 삔) 4천원.총장사비용: 100만원(100만원이면 장사도구 마련해서 장사할 수 있다)잠자는 시간: 아침 내내 → 낮잠을 잔다영업하지 않는 경우: 비가 올 때 →but 심하게 오지 않고 부슬부슬 내릴 경우 파라솔 치고 파는 경우가 많다.영업기간: 1주일 내내 → 하루라도 빠지면 손해이므로 (쉬는 날이 거의 없다)수입: 한달평균 150만원, 하루평균 장사 잘될 때 → 1
스무살, 길 떠나는 나이, 난 삶이 두렵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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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고개를 넘어가는 다섯 아이들의 세밀한 감정과 소소한 재미들을 스킬처럼 촘촘히 박아넣은 <고양이를 부탁해>는 어느 하나 빠지면 심심해져버리고 마는 한 그릇의 잘 배합된 요리다. 배우로 탤런트로 패션모델로 CF모델로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분양되어온 서먹하고 낯선 고양이들,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 이들이 태희로 혜주로 지영이로 비류로 온조로 빚어지기까지, 큰언니 같은 정재은 감독은 아이들의 웃음과 한숨이 뿌려질 인천을 함께 걸으며 각기 다른 그 공간의 느낌을 담아오게 만들었고, 이미 세상의 것이 되어버린 비디오 속 인물들을 슬쩍 훔쳐보게도 해주었으며, 각 인물의 전사(前史)를 상상하게 하고, 신마다 내레이션을 쓰면서 자신의 배역을 이해하고, 친구의 내레이션을 대신 써내려감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아이들은 하룻밤 빚어낸 뽀얀 인형이 아니라, 20년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그 작은 가슴 안에 희로애락을
스무살, 길 떠나는 나이, 난 삶이 두렵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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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화의 캐릭터들은 상당히 독특하다. 이른바 말하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다. 아멜리에는 물론이고, 도미니크 피뇽이나 화가 등 거의 모든 인물들이 그렇다.사람은 아주 연약하면서도 동시에 몬스터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알고보면 내면의 ‘괴물성’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영화 속 캐릭터로 추상화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내가 할리우드에 가서 <에이리언4>를 찍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 영화 속의 괴물, 그리고 내 영화들 속에서 등장하는 괴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사람들이 가진 이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내가 그들을 통해 특별히 사회를 비판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왜, 트뤼포가 그러지 않았나? ‘내게 말할 것은 없다. 다만 많은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I have nothing to say, I have a lot of story)<아멜리에>에는 다양한 매체의 반복되는 재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비정상이라고? 우리 안에 괴물이 살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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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카트슨 사람들>에서 <에이리언4>까지, 판타지의 미궁을 지어내던 장 피에르 주네가 이번에는 좀더 따뜻하고 행복해진 영화를 들고 찾아왔다. 지난 부천영화제에 폐막작으로 선보인 <아멜리에>에선 그동안 주네의 영화들이 보여주던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도시와 기괴한 인물들이 모두 지워져 있었다. 대신 현실을 기적으로 바꿔내는 아름다운 여인 아멜리에와 낭만적이고 동화적으로 가공된 도시 파리가 등장했다. 영화와 함께 부천을 방문했던 장 피에르 주네는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에이리언4> 이후 파리로 돌아가 처음 만든 이 신작에 각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기억과 사랑을 토로하는 영화이며, 현실 속에 숨어 있는 판타지를 발견하는 영화, 그리고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라며.<아멜리에>는 당신의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밝아졌다. 어떻게 구상했나.<에이리언4>를 찍느라 몇달간 LA에 머물러야 했다. 할리우드의 작업은 흥미롭기는
“비정상이라고? 우리 안에 괴물이 살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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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그러나 현실에 없는전혀 다른 뭔가를 시도해야 하는, 절박하다면 절박한 계기도 있었다. 55년 로안에서 태어난 주네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전화가설공으로 일할 당시 슈퍼8mm 카메라를 장만해 독학으로 영화를 익혔고, 광고와 뮤직비디오와 단편영화를 찍으며 장편 영화로 옮아 왔다. 그에겐 무명시절부터 동고동락해 온 파트너 마르크 카로가 있었고, 카투니스트와 애니메이터로 활약한 전문 디자이너였던 카로는 주네의 영화세계, 특히 시각적인 측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 카로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이후 결별했고, 조력자인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쥐와도 <에이리언4>이후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주네는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파트너인 카로가 혐오해 마지않던 향수, 복고 등의 센티멘털리즘으로 내달림으로써, 비로소 ‘사적인’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아멜리에>에서 그의 노스탤지어는 제2의 고향 파리였고, 따라서 시대성과 공간성을 완벽하게 표백
디스토피아의 다리 건너 행복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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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주네의 영화세계를 함께 일군 친구들은 더러는 그 곁을 떠나고 더러는 그 곁에 남았다. ‘주네와 카로’표 영화의 한쪽 날개였던 마르크 카로와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이후 헤어졌고, 그들이 만든 이미지를 생생하게 육화해낸 촬영 감독 다리우스 콘쥐는 <에일리언4> 이후 할리우드에 매어있다. 이들의 ‘우호적인 결별’은 그러나,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뜻이 맞는 작품에서 언제고 다시 만나자는 다짐을 해 두었다니까. 주네는 마르크 카로와 74년 앙시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났다. 각기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던 그들은 쉽게 의기투합했고, <탈출> <회전목마> <최후의 참호> 등의 단편을 함께 만들었다. 카투니스트와 애니메이터 경력이 있는 카로는 처음부터 둘의 합작 영화에서 미술을 담당했다. <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서 번득인 만화적 상상력과 어둡고 기괴한 이미지는 카로의 영향.
함께 꾼 백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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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주네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미지로 천연덕스럽게 풀어낸다. 인육을 파는 푸줏간 사람도, 남의 꿈을 훔치는 과학자도, 외계인의 DNA를 가진 여전사도, 그의 미장센에서 생명을 얻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여기’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쓴소리에도 눈 하나 꿈쩍 않을 만큼 고집불통이다. “나는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게 좋다. 그것도 과도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의 영상으로. 영화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다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내 영화를 좋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진 않다. 그건 교황에게 콘돔을 쓰라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까, 알아서들 하라는 얘기다. 열광하거나, 혐오하거나.이미지의 힘이 세다주네의 이름을 알린 출세작 <델리카트슨 사람들>은 영상은 꽤나 충격이었다. 어둡고 습한 화면은 푸줏간과 지하터널을 맴돌았고, 가뜩이나 기괴한 캐릭터들은 회전목마를
디스토피아의 다리 건너 행복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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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옥엽> <첨밀밀> <아이니아이워> 등을 통해 감성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려온 홍콩의 진가신 감독은 허진호 감독과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가 허 감독을 알게 된 것은 1999년 비행기 안에서 를 보면서였다.몇 개월 뒤 그는 한국을 찾아 허진호 감독을 만나 차기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영화사 어플로즈 픽처스를 통해 이 영화에 투자를 결정했고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배급을 약속받았다. 투자자인 그가 <봄날은 간다>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편파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감성의 감독이자 아시아영화계의 동료로서 이 영화에 대한 ‘가슴으로부터 쓰는’ 감상문을 보내왔기에 여기에 싣게 됐다. 편집자나는 영화평론가가 아니며, 영화평론가가 될 만큼 분석적이지도 않다. <봄날은 간다>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느꼈던 부담은 시나리오를 쓸 때의 그것과 비슷한 것이
상우는 `내 친구 허진호`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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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게 말했다. “우리 한달만 떨어져 있어 보자.” 헤어짐에 유효기간을 두고 소멸되어가는 사랑을 지켜볼 수 있는 쪽은 언제나 덜 사랑하는 사람쪽이다. “난 너랑 못 헤어져. 난 헤어지는 거 생각해본 적 없어.”허진호는 사랑이 올 때는 대숲소리, 잔물소리, 인경소리를 택하더니 사랑이 몰려나갈 때는 파도소리를 택한다.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의 부서짐. <봄날은 간다>는 그렇게 공간으로 만남을 이야기하고 시간의 공기로 빈자리를 채우며, 계절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건 자연의 섭리처럼 막을 수도 채울 수도 없다는 것. 그는 이번에는 사진 대신 소리를 잡으려 부질없는 손짓을 허공에 휘젓는다. 그때마다 허진호라는 지휘자의 손짓에 갈피갈피 묻어둔 빛바랜 기억의 음표들이 공기중을 떠돌다 사그라진다.어쩌면 소리를 채집하는 남자와 소리를 흘려버리는 여자는 애초에 각기 다른 궤도에서 돌다 스치는 별의 운명 외에는, 허락된 사랑이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마룻장의 미장센, 허전하고 윤기 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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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왜 안 일어나지? 엔딩 자막이 올라간 뒤 내가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옆사람에게 귀엣말로 속삭인 첫말이다. 우리는 그러고도 잠시 한동안 더 앉아 있어야 했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가만히 앉아 있는 관객 사이를 나는 볼일 다 봤어요, 하며 턱턱 걸어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이 올 것 같은 겨울날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의 그 정적이 영화가 끝난 스크린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흘러다니고 있었다.그뒤 며칠, 혼자 있을 때, 계단을 오를 때, 현관문을 딸 때, 거실에서 내 작업실로 걸어올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고 혹은 꽃이 피면 함께 웃고 꽃이 지면 함께 울던- 이라고 습관처럼 허밍을 넣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정적과 입 안에서 맴도는 쓸쓸하기도 하고 감미롭기도 한 허밍.허진호의 영화 속엔 제목에서부터 시간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가 그렇고 <봄날은 간다&g
봄날은 지금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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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子에게 少年은 부담스럽다아직도 십센티는 더 클 것 같은 소년 유지태와 이제는 사랑을 조롱할 수도 있을 만큼 농익을 대로 농익은 여자 이영애가 커플이 돼서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는 게, 처음부터 나는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둘은 헤어졌다. 다행… 이다.한때는 상우처럼, 지금은 은수처럼.이제는 기억도 아련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때,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영화 속의 상우 같았었다. 그처럼 유머를 모르고, 눈치 없고, 맹목적이고, 답답했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 하나, 눈오는 날 추리닝에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그의 집 창문 앞에서 오기를 부리며 떨고 있던 내 모습. 그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은수처럼 표독(?)했었다. 꽁꽁 언 발을 번연히 보면서도 그는 끝끝내 제 방으로 나를 이끌지 않았다. 이별에 대한 선전포고를 이미 했으니 그뒤의 감정수습은 모두 내 몫이라는 투였다. 당시엔 그 상황이 너무도 서러워 코끝이 빨개
둘이 헤어졌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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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짧은 만남과 사랑, 그리고 길고 아프기만 한 헤어짐의 과정을 담은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는 순수하게 텍스트에 몰입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영화 속의 상우와 은수가 서로 보듬다가도 싸우고 상처받아 혼자마음을 곱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어느새 자신의 모습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상우 또는 은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그 순간 영화 속 주인공들의 마음속에서 이는 대밭의 ‘솨-서-’하는 소리는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자리잡는다. “영화를 본 건지 내 이야기를 본 건지 모르겠다”는 관객들의 이야기는 <봄날은 간다>의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봄날은 간다>는 분석의 영화라기보다는 공감의 영화이며, 극중 은수가 강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콧소리로 아련한 멜로디를 자꾸만 흥얼거리게 하는, 매우 ‘감염성’이 강한 영화다. 달콤한 판타지도, 극적인 로맨스도, 눈물샘을 쥐어짜는 자극도 없이 사랑이야기
그때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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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대수>를 만든 이천우와 장지욱, 두 감독은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선후배 사이, 이천우(27)씨는 현재 디지털콘텐츠를 제작하는 디지랩의 PD이고, 장지욱(26)씨는 영상원에서 촬영을 전공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한대수>의 시작은, 절반은 우연이었다.지난해 내한한 스매싱 펌킨즈의 공연리뷰를 보려고 인터넷을 서핑하던 장지욱씨는 우연히 한대수의 홈페이지(www.hahndaesoo.co.kr)를 발견했고, 마침 고민중이던 영화과 졸업작으로 한대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을 중단하다시피했던 한대수지만, 아버지가 팬이라서 듣고 자란 음악에 그 역시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빠를 찍는 것처럼, 단순하게 담아보고 싶다"는 애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홈페이지에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설마 답장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뜻밖에 한대수씨는 만나서 얘기하자는 빠른 답변을 보내왔고, 맘대로
“아빠를 찍는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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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점프컷: 사랑, 그 목마름2000년 8월, 김포공항. 전 부인 김명신과 함께 현 부인 옥사나를 마중나온 한대수. 옥사나와 한대수가 키스로 인사하고, 김명신과 옥사나가 서로를 친근하게 얼싸안는다.(<다큐멘터리 한대수> 중에서) 고생스런 뉴욕 생활을 함께 버텨 준 동반자는, 그의 첫 부인 김명신씨였다.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개방적인 성격과 전위적인 취향을 가진 김명신씨는,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던 한국에서 그의 개성을 이해한 드문 사람이었다. “원래 좀 차분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없어. 조용한 사람은 내가 이상하니까 별로 안 좋아하고, 독특하고 강한 사람들이 날 좋아하더라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동거로 시작해 뉴욕의 고달픈 생활까지 20여년을 함께한 아내지만, 잠깐 다른 사람을 맘에 둔 그에게 받은 상처로 결국 사이가 벌어지고 만다. 이혼, 사랑을 잃은 상실감으로 <무한대>와 <기억상실>을 채우며 허우적대던 무렵, 지
“나는 아직 목마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