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끝나갈 무렵, 정파무림은 축제분위기였다. 하계대전을 통해 크게 위축된 사파세력은 길에서라도 정파무인을 피하고 싶었다. 조폭파의 마이무타 내공에다 삼마이검객의 천변만화하는 검술에 기가 질린데다 하계대전 막바지에는 희극대법과 신파장을 결합한 엽기기공으로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저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면 중원의 오지를 넘나들며 무공을 익혔다는, 우노방 승재공의 무사검진이 어이없이 깨져나간 사건이었다. 승재공은 착잡했다. 무사검진만큼은 믿었는데, 아무도 무사검진의 내공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일은 후회해도 소용없다. 승재공은 추계대전의 대승을 확신했다. ‘이번 가을엔 무림대회에서 체면을 세울 수 있을 게야. 내겐 애정기공의 귀재 진호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 승재공은 진호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폭파 검술, 희극대법, 신파장 같은 것에 질릴 때도 됐지. 애정기공으로 삼갑자 내공의 매운 맛을 보여주마.’ 승재공은 그렇게 다짐했지만 삼갑자 내공의 소유자인 그도 몰랐
제3장 추계대전- 조폭여걸, 사자후로 무림을 뒤흔들다
-
무림의 봄은 짧았다. 어느덧 해는 길어지고 무림인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머잖아 사파무림의 총공세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아닌게 아니라 하계무림대회에 나서는 사파무림의 진용은 화려했다. 신기현묘한 그들의 역용술, 둔갑술은 정파무림 고수들도 찬탄해 마지않은 것이었다. 하계대전이 사파의 독무대에서 벗어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천부적인 무공을 타고난 소년 비천무가 그들과 맞서싸우다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사건을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체 사파 고수들의 엄청난 공력에 맞설 묘수는 없는 것인가?“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형님. 기필코 하계대전에 나가 정파무림의 기개를 만천하에 알리고 오겠습니다.” 우석세가의 밀실에서 흘러나오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지난해 추계대전에 나가 희극대법을 응용한 주유검법으로 큰 공을 세웠던 우석세가의 기린아 상진이 아닌가. 우석공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야. 아무래도 내공이 깊지 않아. 사파무림의 고수들에 비하면
제2장 하계대전- 삼마이검객, 신라월야지곡을 부르다
-
겨우내 정파무림이 선보인 무공은 보잘것없었다. 하등 새로울 것 없는 신파장을 날리며 사파무림의 공세에 입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조폭파가 등장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조폭파, 그들은 수년 전부터 가오대형(假悟大兄) 민수를 장문인으로 모시며 무림지존의 자리를 넘봤다. 시리(侍鯉)대법을 앞세운 제규객과 공동경비검을 휘두르는 명필쌍협에 패퇴하며 한동안 중원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조폭파. 그러나 내력있는 이들은 그때부터 눈치챘다. 조폭파가 언젠가 무시무시한 혈겁을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을. 겨울이 끝나갈 무렵, 춘계무림대회를 앞둔 조폭파 진영은 술렁였다. 가오대형 민수가 우화등선한 이래 조폭파의 미래를 짊어진 인재로 추앙받던 두 검객이 내공수련을 마치고 돌아와 그동안 갈고 닦은 무공을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둘의 눈빛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공에 문외한인 자들의 눈에도 두 검객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연기본색(演技本色) 오성과 미남오파(美男娛波)
제1장 춘계대전 - 조폭파, 마이무타를 완성하다
-
組暴天下 武林傳設(조폭천하 무림전설) 一打五皮 三鼓兩迫(일타오피 삼고양박)序(서)충무림.흔히 사람들이 무림이라 부르는 곳.지난 10여년간 사파의 위세에 눌려 있던 이곳에 때아닌 활기가 돌고 있다. 정파무공 의무시연제(서역말로는 스크린쿼터라 한다)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며 변방에 머물렀던 정파 세력이 올해 중원의 절반을 회복하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과연 정파무림의 권토중래는 놀라운 것이었다. 근래 들어 몇몇 고수들이 상당한 무공 수준을 보여줬지만 아무도 정파의 실지회복이 이토록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다.“아,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어디선가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한탄이 새어나오는 곳은 정파무림 최대의 조직이라는 우석세가가 아닌가. 정파무림이 전에 없던 영광을 누리는 마당에 정파무림의 본산에서 왜 이런 비탄의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밀실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그들은 전음입밀(傳音入密)의 수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강한 내공이다. 오로지 상대방에게만 들리는
組暴派 武林制覇記 (조폭파 무림제패기)
-
-
제1회 광주영상축제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지만, 장 르누아르, 미조구치 겐지, 장 뤽 고다르, 장 비고 등의 상영작들이 시네필들에게는 즐거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손님으로 영화제를 찾은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미국의 영화학자이자 언론인 리처드 포튼, 그리고 폴리티컬 시네마 등 일부 프로그램을 담당한 한국의 영화평론가 임재철, 세 사람이 만나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시네필의 과거를 공유한 덕분이다. 영화적 유산에 대한 재평가와 누벨바그와 같은 실험에 거름이 된 영화문화의 흐름과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에 대한 사적인 체험과 취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4시간이 넘도록 그칠 줄 몰랐다.페드로 코스타(이하 코스타) 이 영화제는 내게 아주 기묘한 인상이었다. 처음에 난 임재철이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를 보내준 걸 보자마자 이 사람도 나만큼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뭘 꿈꾸면서 이런 프로그래밍을 했지? 나이브한 사람 아닌가 하고. 이런
페드로 코스타, 리처드 포튼, 임재철, 세 시네필의 난담
-
당신의 영화는 일본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유럽적인 것처럼 보인다. 유럽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외국에 나가면 오히려 차이밍량이나 허우샤오시엔 같은 아시아 감독과 비교되는 편이다. 롱테이크로 찍기 때문인 것 같다. 영향에 대해서라면…. 대학 때 조감독 하던 시기가 지나고 난 뒤에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본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통해서 내 영화의 세계가 훨씬 더 많이 열리긴 했다. 누벨바그 영화들을 보면서 내 영화세계가 형성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듀오>와 를 보면 정상적인 투숏이 적은 편이다. 보통의 투숏은 숏-리버스숏으로 구성되게 마련인데, 당신의 영화는 한 사람의 표정만 보여주고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보여준다든가, 아니면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보여준다든가 하는 식이다.말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하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할 때 리버스숏을 쓰는 것은 아주 습관적인 것이다. 이건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하나의 습관적인 제도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
스와 노부히로 인터뷰
-
스와 노부히로의 영화 <듀오>와 <M/Other>의 크레디트를 유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듀오>의 두 남녀 주연배우들의 이름은 다이얼로그에, 그리고 <M/Other>의 주연배우들의 이름은 스토리에 올라 있는 것처럼, 바로 이 영화들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스토리 구성에 긴밀히 관여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스와의 첫 두 영화는 배우들의 영화에의 능동적 참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 영화들은 영화의 전모를 보여줄 수 있는 미리 짜여진 설계도로서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대신 스와는 배우들에게 대략적인 상황만을 미리 알려준 뒤 그들로 하여금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능동성과 즉흥성을 발휘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불안정한 하나의 과정이 펼쳐지게 되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카메라로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기록한 것이 곧 스와의 영화이다. 영화
<듀오>와 로 광주 찾은 일본영화의 새 희망 스와 노부히로
-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매우 관능적인 환상여행으로서, 데이비드 린치가 <블루 벨벳> 이후, 아니 어쩌면 <이레이저 헤드> 이래 내놓은 가장 강렬한 영화일지 모른다.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여러 가지들, 즉 자유롭게 떠다니는 협박의 분위기, 영혼들의 요령부득의 이주, 도발적으로 툭툭 잘려나간 채 꿰매진 플롯 등이 여기서는 멋지게 되살아나 있다.이 영화의 제목을 제공하기도 한 바로 그 거리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일어난 급작스런 한밤중 교통사고로 시작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완벽하게 말이 된다(물론 아주 비이성적인 뜻에서 말이다). 린치의 기이한 누아르풍은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끊임없이 사람을 놀라게 한다. 서툰 암살 시도가 진공청소기와 화재경보기라는 엉뚱한 두 희생자를 추가로 낳을 때나, 혹은 분홍과 옥색의 급작스런 폭발과 함께 코니 스티븐스의 <내가 너를 사랑하는 열여섯 가지 이유>(
짐 호버먼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읽기
-
우리가 자크 라캉에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감히 데이비드 린치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서 흔히 부모들은 앉아서 TV를 보거나 음식을 차리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무기력한 생물학적 부모들이 아이들을 방치하는 사이 아이들은 흑발의 요부에게 이끌리고 정원에서 잘린 귀를 줍는다.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오이디푸스 궤적에 대한 완벽한 대리경험을 시켜준다. 흔히 그의 영화에서 무자비한 악당들은 주인공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아름다운 여인을 강제로 소유한 일종의 대리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블루 벨벳>의 악당 사이코는 끊임없이 ‘이제 어둠이야’라는 말을 되뇌인다. 그곳에서 제프리가 벽장 안에 갇혀 무기력하게 도로시의 정사를 훔쳐보는 대목은 마치 부모의 정사장면을 처음 보는 어떤 원경험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로스트 하이웨이>의 정비공 피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와 금발의 요부 앨리스는 사막 한가운데의 집에서 성적 결합을 시도하는데 남는 것은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정신분석학적 해석
-
데이비드 린치의 최근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마지막은 스페인어로 사일런스를 의미하는 ‘실렌지오’로 끝을 맺는다. 침묵. 붉은 커튼 밑에서 ‘밴드도 없다. 오케스트라도 없다’며 립싱크로 크라잉을 애절하게 부르는 여가수. 그리고 영화 <블루 벨벳>에서 여장한 남자가수가 부르는 또다른 립싱크 노래 <인 드림스>의 강렬함. 허공에 맴도는 가짜 립싱크처럼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세상에서 인간의 욕망은 끝없는 공허의 늪을 헤매는 백조의 연가 같은 것이다. 동시에 그 블랙홀의 끝은 인간의 가장 깊은 무의식의 진피에 슬며시 다다른다. 그러므로 린치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10층짜리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것. 극장문을 나서면 그뿐이겠지만, 그 전에는 누구든 일단 현실과 논리라는 망루에서 한번은 아찔한 추락을 감내해야 한다. <이레이저 헤드>나 <로스트 하이웨이>에서처럼 머리가 댕강 잘리거나 그도 아니면 아예 반쯔음은 미쳐 실성하여 세상을 떠돌
<멀홀랜드 드라이브>, 악몽의 린치 타운
-
아직도 먼 남도 유랑길 2001년 11월7일 날씨 맑음.
양수리에서 촬영이 끝나고 다음주에는 선암사에서 유랑을 떠나는 장승업을 찍는다. 나는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아마도 어쩌면 겨울촬영 유랑길에 다시 오게 될 것이다). 이 일기가 너무 길다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이 촬영장면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내가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의 정말 일부만을 소개한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전문적인 것들은 일부러 지나쳤다. 영화평에서 여러분들이 읽은 대부분의 그럴듯한 말들이 현장에 관한 창작의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영화의 지식에 대해서 돌이켜보아야 한다. 사실 영화의 메커니즘은 구체적인 과정을 잘 모르면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 정확하게는 옆에 서 있어도 모른다. 영화 현장에 관한 영화기자들의 기사가 대부분 유사한 것은 그들이 영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카이에 뒤 시네마> 364호에서 ‘촬영현장 특집’호를 내면서 책임편집을 한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10]
-
엑스트라도 똑같은 세상의 중심! 2001년 11월1일 날씨 맑음.
다시 양수리 세트장으로 들어왔다. 이날은 낮에 준비를 거쳐서 밤 촬영이 이어졌다.
장면 #123 기생집 일지춘
(김옥균, 개화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장승업과 인사를 한다)
김병문 (나가면서) “아니, 오원 아닌가?” (김옥균을 돌아보며) 오원 장승업이라는 화가입니다. (승업에게) 인사드리게, 수구파들이 이름 석자만 들어도 오금을 못 펴는 고균 김옥균 선생일세.”
김옥균 “정신없이 살다보니 오원 그림 하나 감상할 여가가 없었구먼. 마음 편한 세상이 오면 그림 한점 부탁드리겠소.”
이 장면은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 그리고 안성기 선배의 세션을 보는 것 같았다. 우선 이 일지춘이라는 기생집의 맨 왼편에 있는 정원에 김옥균을 둘러싸고 대화가 벌어지고, 그 옆의 기생집은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방문을 통해 세개의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방문 프레임은 세개로 쪼개져 있지만, 공간은 이어져 있었기 때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9]
-
정일성 촬영감독 인터뷰 2001년 10월18일. 날씨 맑음.
<춘향뎐>에서 소리를 찍으셨고, 이번에는 멈춰 있는 그림을 움직이게 하실 참이십니다. 매번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면서도 부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임 감독님이 이 작품을 제안하셨을 때 가졌던 생각이 있으실 텐데요.
정말 굉장히 부담이 갔어요.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때로 움직여야 하고, 살아 있지는 않지만 그 안에 자연이 살아 있고,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사람의 숨소리를 담아야 했으니까요. 한국화에는 영화적 단점이 있어요. 가로가 너무 길든지, 아니면 반대로 세로가 너무 길어서 필요없는 여백이 너무 많이 생긴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감동이 없어요. <취화선> 때문에 화가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림과 동시에 그 과정을 담으면서 그 색채와 앵글이 나와야 한다는 게 엄청난 압박으로 왔어요. 한 4천자 정도를 필름 테스트했어요. 암울한 색채로 담기 위해 브리치 바이 패스(이 효과는 데이비드 핀처의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8]
-
영화 스탭들이 영화에 붙길 기다려 2001년 10월16일 오전. 날씨 맑음.
오늘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모두 동원되는 날이었다. 엑스트라들이 많이 동원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연출부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이미 분장팀과 합류하고 있었다. 엑스트라들이 많은 날은 연출부들이 분장을 하고 엑스트라들 안으로 섞여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의 동선을 그 안에서 일일이 지시해줘야 한다. 당신이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엑스트라들의 움직임 안에서 그들의 움직임이 그룹지어져 있음과 함께 그들을 이끌고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그 사람이 연출부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다. 이날 촬영은 이미 45회 촬영이었는데, 장면은 장승업이 마흔한살이 되던 1882년 초여름 양반집을 나와 시장거리로 나서면서 떡을 훔치는 거지를 보고 회상에 잠기는 이 영화의 두 번째 장면이었다.
장면 # 2 서울 거리(초여름), 41살
화창한 날씨와 대조를 이루어 황량한 풍경, 포졸들이 각지에서 모여든 처참한 유민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