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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곤 감독은 단편 시절부터 영화제와 인연이 깊었지만, 첫 장편 <꽃섬>으로도 국내외 영화제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올 베니스영화제 현재의 영화 부문에 진출하며 주목을 받은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뉴커런츠 본상인 최우수 아시아작가상을 비롯, 국제영화평론가협회(FIPRESCI)상과 PSB 관객상 등 3개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올 뉴커런츠 작품들은 유난히 우수하다. 뉴커런츠에 진출한 올해의 신인들은 분명 아시아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는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소개에 수긍할 만큼 쟁쟁한 작품들이 겨룬 터라, <꽃섬>의 수상이 갖는 의미는 크다. 뉴커런츠 심사위원단은 “현대화되어가는 아시아 사회에서의 여성의 강인함에 대해 모험적이고 다층적인 탐구를 행한 점”을 높게 평가, <꽃섬>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세 여성의 내면세계를 탁월한 연출력과 훌륭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이 FIPRESCI 심사위원단의 선정 이유. &
한국영화, 상복 터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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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4일 사흘간의 빡빡한 일정을 마친 제4회 부산프로모션플랜(이하 PPP)은 ‘외화내빈’이라는 말을 무색케 할 만큼, 규모가 커지고 화려해졌는데도 내실도 한결 탄탄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의 아시아영화 붐을 입증이라도 하듯 유럽과 할리우드 메이저 투자, 배급사까지 참여하는 등 전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PPP가 명실공히 아시아영화를 대표하는 세계적 프리마켓으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이날 오후 7시 열린 시상식에서는 한국 김기덕 감독의 <활>과 대만 린청셩 감독의 <달은 다시 떠오른다>가 부산상을 공동으로 수상해 각각 1만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은 일본 소니사가 후반작업을 지원하는 KF-MAP상까지 받아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최근 갑자기 여러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설레긴 한다. 해외 투자, 제작자가 내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KTB상은 홍콩 대니 팡의 <낫씽
이제, 아시아영화의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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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고양이를 부탁해> 등의 영화는, 걸작은 아니며 각자의 결함이 있긴 해도, 한결같이 개성과 재능이 넘치는 신인감독들의 작품이다.”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New Currents Award) 심사위원이었던 영화평론가 피터 반 뷰렌의 이야기는 올해 부산영화제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이번 영화제의 가장 큰 화두는 다름아닌 한국영화였다. 한국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한해 동안 아시아영화의 경향을 한눈에 보여준다는 이 영화제의 성격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놀라운 발전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영화의 대약진이야말로 올해 아시아영화의 흐름 중 가장 두드러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결 부문에서 <꽃섬> 등 한국영화가 상을 ‘싹쓸이’한 것도 결국 이같은 관심의 결과물이었다.제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1월17일 타이영화 <수리요타이> 상영을 마지막으로 9일 동안의 벅찬 일정을 마쳤다. “이제 부산영화제는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
PIFF 발견!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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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의 김명준 대표는 영화제를 앞두고 특송업체인 페덱스(Fedex)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해외초청작들 중 몇몇 작품이 아직 국내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어쩌나…. 이러다 작품 수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닐까’ 김 대표는 다급한 마음에 몇번 전화를 돌렸지만 그곳 사정을 더 들었을 뿐 마냥 기다리는 것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게 노동자들에게 더 중한 일이니 할 수 없지요”
노동자들의 든든한 메아리로 자리매김한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올해로 다섯돌을 맞아 11월20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열린다. 규모는 작지만 노동운동과 미디어운동의 적극적인 결합을 모색하겠다는 뜻만은 오롯하다. 영상기기 업체인 바코 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디지털 프로젝터 6R로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상경 파업투쟁을 그린 <투쟁이 끝났다고 말하지 마라!>를 개막작으로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한국노동자, 비정규직
참평등 그 길로, 전진 또 전진, 서울국제노동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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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적의 영화를, 그것도 아직 따끈따끈한 온기가 남아 있을 때 보는 일은 우리에게 여전히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지난해 10월 첫 번째 영화제를 열어, 매진에 가까운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던 유럽영화축제 메가필름 페스티벌(주최 메가박스, 주관 미로비전)이 오는 11월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삼성동 코엑스 몰에 자리한 메가박스 3개관에서, 2회 행사를 개최한다.게스트나 부대행사 없이 상영 중심으로 진행되는 메가필름 페스티벌 2001이 올해 소개할 영화는 모두 31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독일, 덴마크 등 10여개국의 국적을 단 이 작품들은 심야상영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포함한 4개 부문으로 나뉘어 관객과 만난다. 2001년 들어 세계 각국에서 자국영화의 점유율이 약진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자국 흥행기록을 갱신한 유럽 대박영화들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부문은 ‘핫 브레이커스’. 실제로 미국에서 행해진 감옥 심리실험을 소재로 한 독일의 흥행작 <엑스페리먼
반갑다, 유럽영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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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을 동반한 헌팅-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2000. 11.12) 혜나와 유진 그리고 새로 알게 된 고등학교 1학년인 영화 찍는 소녀 유소라와 함께 남해를 거쳐 3박4일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유소라는 중학교 때 이미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라는 단편을 만들었던 소녀였다. 내가 생각한 혜나와는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그녀는 혼자서 카메라에 일기를 쓰는 재미있는 삶을 사는 친구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카메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소라의 행동들을 가지고 왔으면 했다. 내가 자랐던 것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기적에 관한 상상을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찍을 수 있는 마법의 카메라가 있다면…. 예를 들자면 귀신이나 슬픔이나 사랑이나 기쁨이나 거짓말이나 하는 것들이 어떤 형체로서 카메라에 담긴다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비밀에 대한 해답들을 찾는 길잡이가 될
상처받은 영혼들, 세상 끝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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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단편 <소풍>의 칸영화제 수상이 젊은 감독 송일곤을 일찍부터 주목할 대상으로 점찍게 만들었지만 장편데뷔작이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아주 쉽게 데뷔할 수 있는 환경을 그는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2년여 매달리던 <칼>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뒤로 하고 그는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배우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꽃섬>이 보여주는 송일곤 감독의 엄격하고 견고한 미학이 치열한 고민과 오랜 기다림의 산물이라는 것은 영화를 보면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감독이 남긴 이 기록은 그 과정을 짐작게 하는 또다른 증거이며 슬픔과 불행을 잊게 해준다는 미지의 공간, 꽃섬으로 가는 길잡이다. 편집자주시나리오 쓰기- 떠도는 이미지를 따라(2001. 10.)예전부터 로드무비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그것은 단편 <플러쉬>로부터 배운 디지털카메라의 매혹적인 부분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몇개의 큰 이미지들을 따라 시나리오를 쓰
상처받은 영혼들, 세상 끝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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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섭렵
-<악야>는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옥화>와 유사한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사회물이지. 일제시대에는 <임자없는 나룻배> 같은 영화가 있었지만 해방 뒤 작품으로는 처음이었을 거야. 원작은 이런 거야. 어떤 작가가 술먹고 가다가 지프차에 치었는데, 자기가 과외하던 여학생이 나중에 보니 양갈보고. <백민>이라는 소설잡지가 해방 뒤에 있었어. 33인의 신예작가들 단편모음이 거기서 나왔는데, 거기 실려 있었거든. 줄거리가 없잖아. 그래서 나는 그때 사회상을 다 집어넣었지. 타협을 안 했어. 오히려 <지옥화>에선 타협을 했지만. 오락성을 겸하고 여자가 주인공이 아니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악야>는 최 여사(영화배우 겸 부인 최은희 여사 지칭) 만나기 전인데, 나중에 들어보니 최 여사는 <악야>를 보고 혹평했다더구만. 35mm 아니면 영화가 아닌 줄 알던 때인데다 <새로운 맹서>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50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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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영화 못 찍게 했으면 내 발로 북한 갔을 거야”
지난 11월5일, 안정숙 <씨네21> 편집장과 영화평론가 김소희씨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리는 회고전에 앞서 신상옥 감독을 만났다. 1949년 데뷔작 <악야>로 시작해 국내 유일의 메이저영화사 신필림을 거쳐 검열로 고통받고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거장에게, 잊혀진 반세기 한국영화사의 진상을 들어본다. 편집자
-회고록 집필은 마치셨는지요. 언제 출간하십니까.
=직접 쓰다보니 자화자찬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아서 쓰기 싫어졌어. 다른 사람에게 집필을 의뢰했는데 내년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릴 무렵에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부산영화제에서도 회고전이 드디어 열리게 되었네요.
=부산영화제쪽에 ‘김정일이 와도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해서 성사된 것이야. 그동안 회고전을 하면 밤낮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만 틀거든. 내가 60년대에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50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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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영화사 제1호 신필림 흥망사
1960년대 충무로의 패왕으로 군림했던 신필림의 등장은 한국영화 중흥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로맨스 빠빠>(1960)는 그 서곡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김승호, 최은희, 김진규, 도금봉, 남궁원, 엄앵란 등 당시 내로라 하는 스타들을 총동원, 흥행에 성공하면서 신필림의 전신이랄 수 있는 ‘신상옥 푸로덕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신상옥 감독은 1952년 <악야>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작사를 차린 뒤, 1급 배우 최은희와 함께 15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해 제작자로서의 능력은 검증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로맨스 빠빠>가 제작자 신상옥의 이름을 부각시켰다면, 1961년 <성춘향>은 신필림이 메이저 제작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해 1월28일 개봉, 서울에서만 4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탄탄한 제작사로서의 물적 기반을 갖추게 됐기 때문. 같은 해 9월, 일정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50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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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은 거대한 미궁이다. 지난 50년간 한국영화가 걸어온 길을 추적하기 위해 굴려놓은 실타래는 언제나 신상옥이라는 존재 앞에서 뒤엉키곤했다. 고유의 스타일을 모색한 작가이자 장르를 넘나드는 장인이며 국내 유일의 메이저 영화사를 만든 제작자였던 그는, 아직도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는 거장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를 `시대의 욕망을 연출한 한국영화의 거인`이라 일컬으며 회고전을 기획했다. <지옥화> <연산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다정불심> <내시> <이조여인잔혹사> <천년호> <소금> <증발> 등 9편을 소개하는 이번 회고전은 감독 신상옥에 대한 궁금증에 답하는 것임과 동시에 잊혀진 한국영화 전성시대를 복원하는 시도이다. <씨네21>은 이번 회고전에 앞서 신상옥 갘독을 만났고 그의 영화세계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제 그의 필름과 육성의 도움을 받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5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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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선>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몇시간 앞둔 11월9일 1시, 부산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기자, 평론가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프린트는 이미 완성돼 있었지만 영화제 쪽의 요청으로 개막일까지 시사를 미룬 것. 이날 시사회는 개막작 상영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도 객석은 가득 찼고 외국 기자들과 피에르 리시앙 등 해외영화제 관계자들도 눈에 띠었다. 아마도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날을 보내고 있을 배창호 감독을 현장에서 만났다.부산영화제 예매 개시 직후에 매진돼 화제가 됐다. 감회가 새로울 텐데.기분 좋지만, 좀 우려가 된다. ‘재미’만을 추구한 영화는 아닌데, 관객이 그것만 기대하는 건 아닐까 해서. 미스터리스릴러라는 장르적 운반수단을 통해서 조금 진지한 얘기를 전달하고자 했다.영화의 어떤 요인이 관객의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하나.마케팅적인 요소겠지. 스타가 나왔다는 것, 그리고 볼거리가 화려하다는 것이 부각됐으니까.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종합문제를 푸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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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화 선언과 함께 돌아온 배창호의 영화, 부산이 선택한 개막작. 두 요인이 상승효과를 내며 <흑수선>에 관한 기대와 호기심을 발효시켜왔다. “이건 <박하사탕>이 아니다. 감독이 거듭 밝혔듯 관객과 교감을 염두에 둔 영화다.” 첫 대면을 앞둔 이들에게 영화제 관계자들이 마지막으로 강조했듯이 스릴러와 멜로드라마와 전쟁 액션에 혈연을 댄 복합장르영화 <흑수선>은 배창호적 개성을 품이 넓은 대중성 속에 용해하려는 시도였다. 반응과 평가의 스펙트럼도 그만큼 넓었다.“배창호 감독의 역량이 결집된 영화다. 예술성도 있고, 재미도 있다. 사랑도 곁들인 배창호 스타일이다. 아주 좋다. 안 그랬으면 개막작으로 선정했겠나.”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극찬이다. 한국전쟁기를 드라마의 발원지로 삼겠다는 결단을 도와준 영화로 배 감독이 거명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제작자 이은 감독은 “굉장히 열심히, 고생해서 찍은 것이 화면에 보여서 좋았다”고 감상
찬사에서 비난까지, 100인 10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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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이 시네마서비스와 손잡고 대작영화 <흑수선>을 만든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에게 일종의 설렘을 불러일으켰었다. 90년대부터 급격한 세대 단절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80년대 한국영화 중흥의 기수였던 감독과 오늘날 영화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조직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 의미있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한동안 주류 영화계와 적조한 관계에 있었음에도 최근작 <정>을 통해 무뎌지기는커녕 한결 농익은 연출력의 묘미와 함께 독립영화 정신에 가까운 근성마저 보여주었던 감독이, 풍부한 물적 조건과 시스템까지 얻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라는 홍보 문구나 부산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초청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반영한다.<흑수선>이 첫 뚜껑을 연 부산 현장의 반응은 상당히 미묘하다. 그것은 ‘배창호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는 말로 요약됨직하다. 배창호적인 것의 실체를 이해하
카오스의 꽃이 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