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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질적 차이웃음의 질에 대해 감히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저건 내가 보기에도 수준이 떨어져 그러는데 관객이 웃으면 죄스럽다. 좀 낮은 웃음 같고. 비록 몇명 안 웃어도 내가 생각했던 코드 그대로 관객이 반응하면 내가 생각해도 저런 호흡으로는 웃기는 사람이 아마 없었어, 저걸 보고 웃는 사람은 아마 스크린에서 처음 저런 웃음을 맛볼걸, 이런 생각이 든다. 질이 높다라기보다 뭔가 새로운 것에 끌린다. 그렇지만 어떤 웃음이 저질이다, 너무 말초적이다 하는 건 개인적으로 좀 그렇다. 그 코미디를 보고 웃는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되니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는데, “저질에 웃는 저 저질 어쩌고” 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장진이 본 <플란다스의 개>무시 못할 힘이 느껴진다. 세 보인다. 동선이 복잡한데도 컷들을 어쩌면 그렇게 매끄럽게 이었는지. 공포스러운 장면이나 약동적인 장면이나 어느 한 장면도 눈길을 놓지 않게 만들었다. 병실에서 할머니가 침을
“새로운 것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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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 "얌전해지기"봉 감독님은 <간첩 리철진>도 그렇지만, 항상 삭막하고 장르적인 직업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상태로 망가지고 흐트러지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요. 제목도 그래요. 킬러들의 ‘액션’이나 킬러들의 ‘배신’이 아니라 킬러들의 ‘수다’잖아요. 아줌마들의 수다가 아니라. 제목에서부터 충돌이 되는 것 같은데. 일부러 그런 쪽으로 더 밀어붙인 것 아니에요?장 어떻게 보면 제목이 좀 연극적일 수도 있어요. 처음에 이 제목을 지었다가 사람들이 연극적이지 않냐 그래서 <킬러들의 여름>으로 바꿨어요. 근데 갑자기 강우석 감독이 니네 미친 것 아니냐. 킬러들의 수다 얼마나 좋냐고. 다른 사람이 만들면 안 어울리는데 장진이 만들면 <킬러들의 수다>로 가야 된다고. 뭐뭐답지 않은 건 늘 재미있어요. ‘답지 않다’라는 건, 예를 들어 쟤는 회사 경리 같지가 않아, 는 별로 재미가 없잖아요. 근데 좀 특정한 직업 대단히 프로페셔널함을 요구하는 직업들
“웃다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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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디테일이 살아 있는 코미디는 처음 봤어요.” “질문할 거 생각하며 거리를 두고 보려 했는데 금방 몰입이 돼서 정신없이 웃다 나왔어요.” 두 감독은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특별한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지만 장진과 봉준호는 ‘나를 알아주는 그대’를 한눈에 알아본 듯했다.<킬러들의 수다>와 <플란다스의 개>에 어떤 공통점이 있었는지 떠올리면 두 감독의 친화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상한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는 두 영화는 낯설고 신선한 웃음을 보여준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공포와 긴장감이 폭소로 돌변하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 보일러 김의 장광설을 기억하는지? <킬러들의 수다>에서 원빈의 감동적인 연설에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는 녀석들은 어쩐지 <플란다스의 개>의 보일러 김과 내통한 듯 보인다.참을 수 없는 진지함에서 폭소를 불러오고, 엉뚱한 소동에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그들은
“웃다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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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에 달하는 마틴 스코시즈의 신작 다큐멘터리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뉴욕영화제의 특별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테러의 여파로 <뉴욕의 갱들>이 2002년으로 개봉 연기된 상황에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스코시즈를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뻔했다. 한편 스코시즈는 영화제 기간 중, 필름 보존 운동에 끼친 공을 인정받아 국제필름아카이브협회가 수여하는 평생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이민사회에서 나고 자란 뉴요커로서의 개인적인 영화 체험을 풀어놓은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영화사에 한획을 그은 이탈리아 영화 전통에 대한 스코시즈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수많은 이탈리아영화들을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었나.내가 다섯살이던 1948년 무렵부터 로셀리니나 데 시카 등의 필름들을 볼 수 있었다. 금요일 밤이면, 리틀 이탈리아의 우리집 거실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조그마한 16인치 흑백TV로 이탈리아영화들을 보던 기억이 난다. 로셀
“네오 리얼리즘 영화에 바치는 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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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영화제는 세계영화제들의 결산 보고서다. 칸, 베니스, 베를린을 거쳐 긴 영화제 순례를 마친 올해의 영화들, 마지막 승자들은 뉴욕에 그 여장을 푼다. 뉴욕에는 칸의 밤을 밝히던 스타들과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도 없고, 내심 살까말까를 고민하는 배급사들의 곤두선 눈길도 없다. 이미 수많은 뒷이야기와 영광과 배급사를 덤으로 달고 뉴욕에 도착한 ‘최고 중의 최고의 영화’들을 기다리는 건 붉은 카펫과 이브닝 드레스가 아니라, 까다롭기로 이름난 뉴요커들과 평론가들의 날카로운 펜촉이다.누벨바그에서 누벨바그로 올해 뉴욕영화제는 누벨바그로 문을 열고 누벨바그로 문을 닫았다. 개막작인 자크 리베트의 신작 <알게 되리라>가 인생과 사랑, 예술이 얽히고 설킨 한편의 희극을 사뭇 경쾌하게 선사하면서 영화제의 막을 올렸다면, 폐막작인 장 뤽 고다르의 <사랑의 찬가>는 과거와 현재, 영화사와 자신의 영화 작업에 대한 성찰로 누벨바그를 사랑해온 뉴욕영화제 관객을 만족시켰다. 60년대
“저런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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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신스케상을 수상한 멜리사 리의 <소신>은 고국의 문 밖을 서성이다 돌아간 작품. 여러 번 한국의 영화제 문을 두드렸었다. 야마가타는 감독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감각과 작품성에 주목했다. 멜리사 리는 시드니에 있는 공과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오스트리아 필름TV라디오학교(AFTRS)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현재 새로운 필름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소신>과 <사랑에 대한 실화>를 만들게 된 배경은.<소신>의 경우, 처음부터 우리 가족에 관해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이웃에 사는 피터 현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호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촬영을 하다보니 우리 어머니가 재미있어서 방향이 바뀌었다.자신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소신>은 천번 정도 봤다. 그 영화를 보면 지금도 힘들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실화>도 원래는
“생존하는 자의 강인함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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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막을 내린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필름페스티벌은 올해 한국 여성다큐멘터리감독들에게 충실한 가을걷이 자리였다. 모두 여섯명의 감독이 참가해 4명이 수상하거나 특별언급되는 쾌거를 이루었다.호주로 이민간 멜리사 리(이규정) 감독의 <소신>과 <사랑에 관한 실화>가 ‘아시아천파만파’ 부문에서 대상격인 오가와 신스케상을, 황윤 감독의 <작별>이 장려상을 받았고, 김소영 감독의 <하늘색 고향>이 스페셜멘션을 받았다. 계운경 감독의 <팬지와 담쟁이>에는 넷팩상 스페셜멘션이 돌아갔다. 오가와 신스케상 수상은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이후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다. 멜리사 리 감독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주제를 독자적인 접근을 통해 유쾌하게 다룬 <소신>과 미국에서 만난 아시아 남성(한국계와 일본계)과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재구성한 <사랑에 관한 실화>라는 대조적인 두 작품을 통해 뛰어난 작가성을
한국 여성다큐멘터리, 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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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열(43) 대표는 1989년에 세경영화사에서 <걸어서 하늘까지> <그대 안의 블루>를 제작했고, 94년에 순필름을 차려 <개같은 날의 오후> <본투킬> 등을 내놓았다. 가장 최근 작품은 98년에 현진영화사 이름으로 내놓은 <기막힌 사내들>로, 이번 <조폭 마누라>로 3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추석연휴에 가장 바쁜 제작자였을 것 같다.어제도 새벽까지 집에 안 들어가고 극장 주위를 헤맸다. (웃음)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난다.예상한 결과인가.3년 동안 헤매다가 만든 영화인데 자신감이 있었겠나. 본전이 목표였고, 처음에는 전국관객 60만∼70만명 정도 들면 되겠다 싶었다. 촬영횟수가 늘면서 제작비가 더 들어 중간에 기대수치를 전국 100만명으로 올려잡은 게 전부다.봄날은 간다>의 우세를 점친 이들이 많은데.봐라. 현진영화사 대 싸이더스, 신은경, 박상면 대 유지태, 이영애, 이순열 대 차승재, 조진규 대 허진호. 게
“돈 번 만큼 욕도 많이 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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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가 갔어요. 완전히 갔어요. 같은 날 개봉한 <조폭 마누라> 에 참패나 다름없는 스코어로 밀리고 있어요.” “그거 보세요. 평론가들이 아무리 거품을 물고 흥분한들 말짱 헛일이라니까요. 이런 판국에선 극찬이나 혹평이나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도박판에서 구경꾼이 훈수를 두다가 뺨맞는 꼴이에요.” 연휴 마지막날 밤에 동업자와 통화를 마친 뒤 허망함과 막막함에 몸을 떨었다. 때는 바야흐로 영화 글쟁이들의 퇴출시대로 접어들고 있구나.<봄날은 간다>와 <조폭 마누라>의 대결이 처음부터 흥미를 부풀린 까닭은, 두 작품이 워낙 색깔이 다른데다 스크린 수도 엇비슷하게 확보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팽팽한 접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어. ‘뒈지게 웃기는 칼부림’이라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무죄지. 그렇다고 ‘뒈지게 웃긴’ 이들에게 죄가 있다는 뜻이 아니야.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세태에 죄를 물어야겠어.
무조건 웃기면 그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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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홈런이 터져나올 때가 있다. 홈 플레이트를 밟는 입장에서야 이유 따질 것 없이 기쁜 일이지만, 상대 팀은 갑자기 뺨을 한대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을 느낄 터. 지난 10여년 동안 제작된 한국영화 830여편 중 흥행 순위 ‘베스트 50’에 랭크된 영화들 역시 모두가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은 ‘홈런타자’였던 것은 아니다. 이중에는 개봉 전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외면당한 영화들이 상당수 끼어 있다. 그래서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모른다”는 게 흥행에 관한 제1경구로 남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1997년 정통 멜로영화의 부활을 알린 <편지>는 ‘대박’의 기운을 예감하지 못한 경우다. 같은 해 개봉한 <접속>이 통신을 매개로 한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신선한 설정, 신인감독답지 않은 꼼꼼하고 세련된 연출 등으로 평단으로부터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어낸 데 비해 <편지>는 낡은 신파 멜로영화의 공식을 답습해 한국영화를 후퇴시켰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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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트 무비’의 정착?하지만 이런 견해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측면이 있다. <봄날은 간다>를 배급한 시네마서비스 관계자는 <조폭 마누라>의 흥행은 예견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폭 마누라>가 추석특수를 최대로 누린 예라고 설명한다. “대대로 추석에는 액션코미디가 흥행했다. 추석에는 1년에 영화 1편도 잘 안 보는 관객이 극장에 나온다. 그들이 쉽게 선택하는 영화는 액션영화나 코미디이고 올해는 <조폭 마누라>와 같은 장르에서 경쟁할 영화가 없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멜 깁슨의 액션영화 한편만 있었더라도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런 견해는 올 추석 외화들의 부진을 보면 수긍이 간다.성룡의 <러시아워2>는 1주 앞서 개봉, 추석연휴 6일간 서울 15만1천, 전국 33만2900명을 동원했다. 이는 <조폭 마누라> <봄날은 간다>에 이은 3위의 기록. 성룡의 영화가 한국시장에서 고정관객을 갖고 있지만 늘
엽기적 흥행, 게임의 규칙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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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극장가에서 본 풍경 하나, 깻잎머리 소녀 둘이 극장 앞 광고판을 보며 무슨 영화를 볼까 고르고 있다. <조폭 마누라> 포스터를 본 소녀가 말한다. “야, 이거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만든 영화같애.” 옆에 있던 친구 왈 “그래, 그럼 재미있겠다. 이거 보자.” 풍경 둘, 최근 몇년간 매진사례가 별로 없던 스카라극장에서 <조폭 마누라>는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10월3일 3, 4, 5회 매진이 나왔다. 오랜만에 극장에 나온 40대 부부는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순 없다”며 “입석이라도 보겠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관객에게 오뎅을 팔던 아줌마의 말씀, “정말 명절 분위기 나네. 스카라극장 앞에서 이렇게 장사 잘되긴 처음이야.”<조폭 마누라>, 최단기간 전국 100만 동원기록올 추석 화제의 중심은 단연 <조폭 마누라>였다. 이 영화는 개봉 5일 만인 10월2일 전국 100만명을 돌파, <친구>와 <엽기적인 그녀&
엽기적 흥행, 게임의 규칙을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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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의 숨은 연기자를 꼽으라면 당연히 다섯 아이들의 손을 거쳐 성장해나가는 고양이 ‘티티’다. 새로운 주인에게 옮겨질 때마다 그 조그만 생명이 보여준 아쉬움 가득 찬 눈망울과 떨어져지기 싫어하는 발동작, 장례식장의 우울한 지영의 얼굴을 근심스런 눈길로 올려다보던 표정까지…. 티티는 온전히 일인분의 연기자의 몫을 해냈다. 그러나 하나의 티티를 연기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고양이만 12마리. 결국 티티로 명명된 4마리의 고양이들이 스크린을 어슬렁거리기까지 ‘줄무늬 고양이를 구하라’는 미션을 받은 스탭들의 심정은 충무로 하늘에 뿌려댄 ‘찌라시’만큼이나 절박한 것이었다. 편집자크랭크인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의 스트레스는 거의 극에 다달았다. 누군가가 웃으면서 “고양이는 캐스팅 했어?”라고 묻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얼굴에 줄이라도 긋고 고양이로 출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11월 초 제작부 지영 언니와 처음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을 땐 우리가 원하는 꼭닮은 줄무늬 아
고양이 좀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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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 더듬는 지난 시간들오늘, 우리의 사소한 행동 하나도 늘 과거의 어떤 지점과 닿아 있게 마련이다.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면 대사의 뉘앙스나 동작의 디테일은 아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죠.” 무너져가는 집과 가난의 무게에 눌려 있을지라도 친구에게 꾼 돈으로 콩나물 대신 새 휴대폰을 사고, 균열이 이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떡볶이를 떠올리고, 앓는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집 다락방에서 남몰래 머리색을 고치는 아이들. 그저 나쁜 애, 착한 애, 멍청한 애, 우울한 애로 판단할 수 없는, 한 면만 가진 종이인형이 아닌 다면체의 복합적 인간들이 숨쉬는 공간. ‘이 아이, 이 시나리오에 나타나기 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배우들이 유추해낸 자신들의 전사(前史)는 단순히 지문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묘한 감정의 흐름까지 포착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렇게 태희가 멍하니 만두를 씹어 삼킬 때, 카메라의 움직임도 그 흔한 음악 없이도 울컥
스무살, 길 떠나는 나이, 난 삶이 두렵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