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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국제시장<정글쥬스> 촬영현장“촬영보다는 뒷정리보는 게 더 중요해요.”“가시나들이 저리 미치니, 영화배우 안 할 사람 누가 있노!” 귀를 찢는 듯한 괴성과 함께 장혁의 스타크래프트를 쫓아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파도처럼 빠져나간 공간은 단추가게, 털실가게 등이 밀집한 국제시장. 두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공간도 모자랄 만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국제시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글쥬스>는 이정표씨 담당구역이다. “낮 신인데 벌써 불 들어온 간판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먹자골목으로 이동한 촬영팀 중 한 사람이 ‘오늘 촬영 쫑’이라는 표시의 큰 엑스자를 온몸으로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이정표씨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뭐 특별한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를 막을 일도 없지만 그는 촬영 뒤, 그곳이 원상태 그대로 아무 일 없이 정리되는 것을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절저한 사후관리 덕에 “다음에 와서 다시 찍어
“오이소, 안 되는 기 없십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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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서울에서 찍었다면 어땠을까?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아니라 장재근과 치타의 대결이었다면, 영도다리가 성수대교였다면, 자갈치가 노량진이었다면, 용두산이 남산타워였다면, 비오는 영등포 뒷골목에 쓰레기차가 뒤집어지고 펄떡이던 쓰레기들이 사방으로 날리던 날, 죽어가던 동수는 이렇게 말하겠지. “어우 야, 그만해…. 나 많이 찔렸잖아.”영화는 결국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은 공간이다. <리베라 메>부터 <친구> <엽기적인 그녀> <나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정글쥬스> <내추럴시티>, 일본영화 <KT>까지. 이미 개봉되었거나 준비중이거나 촬영중인 많은 영화들이 부산이라는 공간을 촬영장소로 선택하는 배후에는 이들, 부산영상위원회(Busan Film Commission, 이하 부산영상위) 사람들이 있다. 회색의 웅장한 부산시청 의회쪽 건물. 서류봉투를
“오이소, 안 되는 기 없십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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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개봉하는 날. 드디어 개봉일이 왔다. 큰일났군.“안 끼던 반지는 왜 끼고 그래?” 아내가 묻는다. ‘좀 어른스럽게 보이려구 그런다, 왜?’ 속으로 대답해 본다. 거울을 보며 웃음을 지어본다. 거울 속에서 얼굴이 어색하게 웃다 일그러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루 먼저 개봉한 메가박스의 관객 수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니지. 정식 개봉일은 오늘인데, 뭐.’ 이리저리 변명거리를 찾다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둔다.주상영관인 서울극장. 어라? 매표소 앞에서 웬 사내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나비> 보세요, <나비>. 올해 가장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빨리들 오세요.” 누구지? “배급사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옆에 서 있던 김??(이름채워주세요) 이사(제작실장)가 가르쳐 준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린다는 표정. 돌아보니 <나비> 제작팀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익숙한 얼굴들.<나비>는 유난히 제목 때문에 말이
아직 못 본 사람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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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끝내려고 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나비>는 기억상실을 원하는 여인과 생명을 걸고 출산을 감행하려는 어린 처녀,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헤매는 남자의 동행기다. 서로 다른 결핍과 소망을 지녔지만, 세사람은 결국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나비>는 <이방인>으로 데뷔한 문승욱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며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받은 수작이다. 실패한 데뷔작의 상처를 딛고 <나비>의 주인공들처럼 멀고 추운 길을 돌아 힘겹게 두번째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문 감독은 쓰라림과 외로움, 때로 섬광처럼 찾아든 기쁨의 기억들을 제작기에 담았다. 편집자근 1년여 동안 난 어떤 한 분위기 속에 갇혀 있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폭우, 폭우에 쓸려내려가는 자재도구들, 사람들의 아우성, 누런 흙탕물, 쉼없이 돌아가는 물펌프의 기계음.1999년 서울의 여름은 카뮈의 <페스트>라는 소설 속에
디지털의 날개로 희망을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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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가 그렇게 좋진 않은데.=좋아진 거다. 처음 CGV가 들어섰을 때만 해도 주변에는 철공소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지하철 2호선이 다니고, 대형상가가 들어서는 등 A급 지역으로 분류됐다.CGV의 영향이라는 말인가.무관하지는 않다고 본다. 개관하고서 2주 동안은 주말관객이 6천∼8천명 정도였다. CGV서면은 연간 관객동원 기대치가 200만명이었을 정도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그 이후 주말관객이 매주 1천명 단위로 오르더라. 지금은 주말에 최소 1만2천명 정도 유지하는데, 올해 성수기엔 하루 관객이 1만6천명을 기록한 날도 있었다. 목표선 200만명은 이미 지난 여름에 넘어섰다. 서면 도심권의 유동인구뿐 아니라 문현동 등지의 가족 단위 관람객이 찾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롯데가 오픈했고, 메가박스가 곧 들어온다. 경쟁이 치열할 텐데.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롯데가 개관했을 땐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서인지 일부 관객의 리턴 현상이 있긴 했다. 하지만 박스오피스
“내년엔 해운대에 24시간 상영관 오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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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로 압도할 것인가. ‘입지’로 방어할 것인가. ‘마케팅’으로 승부할 것인가.멀티플렉스 업체들이 지난해부터 전국적인 영토확장에 나서면서, 지방 극장가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메가박스의 10월27일 개관으로 CGV, 롯데 등 3대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부산에서 벌이는 최초 결전은 올해 하반기 전국 극장가의 가장 큰 이슈다. 이들 3개 업체가 들어서는 곳은 부산의 새로운 영화중심으로 떠오른 서면 일대로,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멀티플렉스의 싸움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부산이 ‘풍부한 어장’이라는 점도 이들 업체들의 경쟁을 부추긴다. 부산은 1999년 27개이던 스크린 수가 지난해에는 45개로 늘었고, 관객 수 역시 22%의 증가세를 보였다. 연간 1인당 평균 관람횟수도 1년 사이에 다른 지역과 비슷하던 1.6회에서 1.9회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는데, 상승곡선은 올해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부산 중심 극장가, 서면에서 남포동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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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부터 10위까지가 빠졌군.” 올 여름, 주말흥행순위표 원고를 검토하던 <씨네21>의 한 편집기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 걸렸다. 안 그래도 마감도 늦는 녀석이 실수까지 한단 말이지.” 한바탕 혼내줄 요량으로 불러세웠는데, 돌아온 대답은 “개봉작이 그게 전부예요.” “어…, 그래. 그랬어?” 성수기에, 그것도 멀티플렉스가 등장해서 서울에만 스크린 수가 200개가 넘는다는데, 상영작이 고작 7편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이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멀티플렉스가 등장한 이후에 가속화한 ‘경향’이다. 스크린 수가 많아졌으면 배급사는 소규모 영화라도 걸 수 있고, 관객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어야,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7월14일 극장가에 걸린 영화는 <슈렉> <신라의 달밤> <툼레이더> <미이라2> <스워드피쉬> <진주만> <친구> 등 7편에 불과했다. 멀티플렉스로부터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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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질주인가. 해를 거듭하면서, 극장가를 잠식한 거대 멀티플렉스들의 기세가 드높다. 지난 10월3일, 멀티플렉스 업체인 CGV는 7개 지역, 68개 스크린에서 관객 수 1천만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8년 4월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CGV강변11을 시작으로 전국 체인망 건설에 나선 지 불과 3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멀티플렉스의 위용을 한껏 과시했던 메가박스 역시 승승장구의 분위기를 잇고 있다. 올해에만 이미 관객 수 400만명을 돌파한 메가박스는 연말 매출액이 지난해의 2배에 달하는 4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자체 파악하고 있다. 일대 유동인구의 특성을 감안, 24시간 상영을 내세웠던 중구의 MMC 역시 영화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지난 8월 2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고전했던 초기와 달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개관 당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강남의 센트럴6 역시 백화점 등 대형상가 입점과 동시에 근처 유동인구까지 흡수, 평일에도 40% 이상의 높은 좌
멀티플렉스 춘추전국시대 누가 살아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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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빈
정두홍은 기능적인 액션과 드라마의 흐름을 타고 가는 액션 모두를 연구해왔기 때문에 좋은 무술감독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예전에 태권도 도장을 직접 운영한 적 있으니 운동이라면 크게 빠지는 건 아닌데, 정 감독 액션의 특징은 빠르기와 정확성이다. 같은 난이도의 액션을 구사해도 속도감이 따라주지 않으면, 시각적으로 처리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는 몸을 쓰는 것이 매우 정확하다. 예를 들어 발차기를 해도 발과 몸의 각도나 위치를 잘 잡아 미적인 균형감을 만들어낸다. 또 이같은 액션을 스스로 소화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 감독은 더욱 발전적인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액션이 한국영화의 흥행장르로 자리매김한 배경에는 정 감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지운
<반칙왕>의 주무대는 레슬링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액션을 펼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마지막 대결에서 아수라장이 돼버리는 장면처럼, 화려한 액션보다는 한국적인 액션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무술감독 정두홍의 독한 영화인생 [5] - 감독 3인이 말하는 정두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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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수
<게임의 법칙>을 촬영할 때 엄청 싸웠다. 나이트클럽을 빌려 액션장면을 찍는데, 주인쪽은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었다. 약속한 오후 5시까지 끝내주지 못하면 자칫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빨리 촬영을 하려고 하는데, 정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액션장면을 꼭 찍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약속도 있고, 액션이 그 정도로 중요한 것도 아니며, 기간이 늘어나면 제작비도 늘어난다고 했더니 바락바락 대들더라. 그래서 1시간30분 동안 다퉜다. 결국 내가 졌다. 그 장면을 찍고 나가는데 어깨가 떡 벌어진 주인 양반들의 눈빛이 어찌나 무섭던지…. <본투킬>에서도 정 감독이 대역 연기를 했는데, 내가 OK를 냈는데도 한번만 더 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굉장히 길고 힘이 많이 가는 테이크였기 때문에 점점 힘이 달렸고 그러다 보니 계속 NG가 났다. 11번 만에 결국 끝내더라.
김성수
<런어웨이>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함께 작업해왔다
무술감독 정두홍의 독한 영화인생 [4] - 감독 3인과 정두홍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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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개농장, 철도창고장면
기존 액션의 톤을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 그 이전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물고 뜯는 식의 실제적인 싸움만을 묘사했다면, 여기에서는 개인의 역량이 극한으로 발휘되는 테크닉적인 액션을 많이 사용했다. 당연히 힘도 많이 들어갔다. 직접 스턴트를 했는데, 젊은 시절이었음에도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았다. 스턴트를 이어주는 최민수 선배의 연기와 눈빛도 이 장면을 살려줬다.
<태양은 없다> 권투장면
초당 120프레임에 달하는 고속촬영을 하면 액션 연기가 세밀하게 보여 거짓 액션은 잘 통하지 않게 된다. 때문에 실제 펀치를 날려야만 했다. 정우성이 상대 선수의 주먹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선 내가 직접 때렸다. 실제와 같이 펀치를 날렸더니 정우성이 정말 나가떨어지더라. 그런데 우성이가 나중에 권투선수에게서 정말 실감나는 장면이었다고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반칙왕> 레슬링장면
너무 어려웠다. 레슬링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
무술감독 정두홍의 독한 영화인생 [3] - 정두홍이 아끼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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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과 편집을 이해하는 액션
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두홍이 정립한 액션론이 있다면 액션은 절대 드라마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 “영화를 된장찌개라 한다면, 액션은 절대 된장이 될 수 없고, 대신 고추나 양파의 역할을 해야 한다.” 화려한 액션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면 분명 아름답긴 하겠지만, 영화는 액션만으로 끌고갈 수는 없다. 게다가 액션을 화려한 기술 위주로 생각하다보면 배우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안 되는 액션을 억지로 시키다보면 연기가 잘 안 되니까 자꾸만 다시 촬영해야 하고, 결국 배우가 지쳐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감정 표현까지 할 수 없게 된다. 대신 액션을 약하게 하더라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게 되면 성과가 나온다.” 그의 액션에 대해 일부에서는 ‘잔인하다’는 지적을 한다. 그 역시 그 점을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독한 본인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아니겠냐며.
정두홍은 액션영화의 지평을 넓혔을 뿐 아니라, 무술감독이라는 스탭의
무술감독 정두홍의 독한 영화인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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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 아냐, 미친놈.” 데뷔작 <런 어웨이>를 만들고 있던 1995년의 어느날, 김성수 감독은 난감한 상황을 맞아 혼잣말을 뇌까렸다. 무술감독이자 스턴트 연기자인 한 스탭이 자동차에 부딪혀 나가떨어지는 연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감독인 자신은 한마디도 못한 채 뒷짐만 져야 한다니. 그 무술감독이라는 작자는 그날 다른 영화를 찍다 사고를 내 쇄골이 바스라지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치료도 받지 않은 채 현장으로 달려와 ‘약속은 약속’이라며 자동차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몸 상태가 나쁜 탓에 잠시 동작을 멈칫한 것을 놓고 김 감독이 “잠깐 멈춰섰군”이라고 한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이 말에 발끈한 무술감독은 이를 앙다문 채 “감독님, 한번 더 하겠슴다”라더니 자동차를 향해 몸을 날려댔다. 그리곤 자신의 연기가 맘에 안 든다며 “한번 더 하겠슴다”를 연발하며 몸을 거듭 던지는 그에게 김 감독이 할말은 없었다. 결국 다섯 번째 머리를 땅바닥에 박은 그가 그제서야 마음에 드는
무술감독 정두홍의 독한 영화인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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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에도 질적 차이가 있는가?예전에 <미스터 맘마> 만들면서 있었던 일이다. 애 기저귀를 최민수가 갈아서 던지면 옆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남자 얼굴에 똥과 함께 퍼덕 묻는 신이 있었다. 당시 제작실장이던 차승재 대표가 강우석 감독에게 이건 좀 저질 아닌가요, 그랬더니 자기는 이 장면 꼭 넣고 싶다고. 나중에 개봉해서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웃는지 안 웃는지 내기를 걸었다더라. 근데 극장에서 사람들이 그 장면이 나오니까 뒤집어지더라고. 그래서 좀 씁쓸했고 사람들이 왜 그럴까 고민했다는데, 관객은 스스로도 그게 저질이란 걸 알고, 또 그것대로 즐기는 것 같다. 패럴리 형제 영화를 보러 갈 때와 우디 앨런 영화를 보러 갈 때 자세가 다른 것이라고나 할까. 웃음에 대해 질을 너무 따지거나 맥락이나 의미를 따지고 들면 오히려 정작 웃을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지 않을까. 결국 수준이 높고 낮은 문제라기보다 다름의 문제인 것 같다.봉준호가 본 <킬러들의 수다>웃음들이 편안하고
“저질? 관객은 다 알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