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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과 <수취인불명> 김기덕 감독. 언뜻 별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감독은, 사실 꽤 많은 고리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을 좇다보면, 야간업소를 전전하는 30대의 삼류밴드와 기지촌을 배회하는 혼혈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니까. 소박한 리얼리즘과 회화적인 이미지라는 화술은 달랐다해도, 이들이 그려내는 그림은 늘 소외된 인간군상의 초상으로 닮아 있는 것이다. 또한 주류의 틈새를 비집고 카메라를 들이댄 이들의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나 스타시스템과 같은 주류 영화의 공식에서도 같이 한발 비껴나 있다. 작더라도 제 목소리가 담긴 영화, 시장의 질서에 쉽게 갇히기보다는 그들만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 만들기의 자세가, 이들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개봉이 다가온 10월 네쨋주의 첫날, 성북동의 한 고풍스런 한옥 찻집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아껴둔 이야기로 2번째 영화
“현실적인 여건? 길은 만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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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럽고 예민한 난니 모레티는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배급, 상영까지 혼자서 해내는 1인제작 시스템으로도 이름 높다.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영화계가 할리우드영화 개방문제로 흥분해 있을 때, 모레티는 아예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1인제작 시스템을 구축했다. 1987년 친구인 제작자 안젤로 바르바갈로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의 이름을 따 사케르필름을 차려 제작자를 겸하기 시작했다.1991년에는 로마의 관광명소 트라스테베레에 360석 규모의 영화관 ‘누오보 사케르’를 개관했다(그는 영화와 관련있는 사업체는 모두 사케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화관 안에는 조그마한 서점, 음료수를 파는 바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영화를 더빙하는데, 이 영화관에선 1주일에 한번 자막을 삽입, 원어상영을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누오보 사케르에선 할리우드영화를 전혀 상영하지 않는다.1996년엔 배급업에도 진출한다. 첫 대상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 업>이
초콜릿 케이크를 든 독불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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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운 신동 76년 장편데뷔작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발표하기 전 그도 영화수업을 받기 위해 수많은 감독들에게 조감독 자리를 부탁했지만 거절당했고, 로마의 국립영화제작학교인 첸트로스페리멘탈레에 입학하려 했지만 대학학위가 없어 이도 불가능했다. 영화광 출신 감독들이 그렇듯 모레티도 결국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감독수업을 한 게 전부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자신의 슈퍼8컬러 카메라로 연기와 촬영실습을 했고, 바로 그 과정을 영화로 찍었는데 이게 데뷔작이 됐다. ‘작품 속 작품’ 혹은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모레티가 즐겨 사용하는 복합구조는 데뷔작에서부터 발견된다.그는 60년대 이탈리아 작가감독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영화에 빠지기 시작했다. 파졸리니, 베르톨루치, 마르코 페레리, 마르코 벨로키오 등 이탈리아 감독들과 브뉘엘, 베리만 등을 특히 좋아했으며, 앤디 워홀의 영화에도 심취했었다고 말한다. 무성영화 중에서는 에이젠슈테인과 버스터 키튼의 작품을 즐
“싸움은 이제 그만 난 철학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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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을 처음 본 날 나는 약간 당황했다. 먼저 ‘삐딱이’ 난니 모레티 감독이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정서를 고전적인 구조 속에 간단하게 풀어낸 솜씨에 놀랐고, 동시에 왜 그가 자기 특유의 스타일과 거리가 먼 미학적 변신을 했을까 하는 의문에 뾰족한 즉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가족의 고통-고통의 정화라는 보기에 따라서는 진부할 수 있는 고전적 이야기 구조와 눈물을 자극하는 배우들의 열연 등 할리우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매끄러운 영화가 <아들의 방>이다. 물론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그런데 모레티는 공식화된 이야기 구조를 부수는 실험정신, 당대의 사회문제를 물어뜯는 리얼리스트적 행보로 자신의 경력을 쌓은 감독이다. 영화형식에 대한 쉼없는 도전과 사회를 비판하는 불 같은 정열은 모레티 코미디의 큰 매력이다. 따라서 <아들의 방>은 모레티 특유의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에겐 실망을 줄 수도
“싸움은 이제 그만 난 철학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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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기본적인 착상은 어떤 장소에서 비롯됐다. 그 장소는 이를테면 스튜디오54(반문화의 표상이던 뉴욕의 나이트클럽) 같은 곳이다. 그곳엔 싸구려 대중문화에 중독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젊은 연인이었고 규칙을 깬다.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당신의 꿈속에 존재하는 나이트클럽이 물랑루즈인 것이다. 물랑루즈는 돈 많은 자, 권력을 가진 자와 젊은이와 미녀와 무일푼인 자가 한데 어울리는 곳이었다. 물랑루즈는 밥 딜런이나 에미넴에 비견될 만한 그들 시대의 록스타들, 전위적이고 흥미로운 예술가들의 세계였다.오페라를 연출해본 것이 이번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줬나.난 늘 뮤지컬과 음악을 사랑했다. 난 어디라고 말해도 아무도 모르는 정말 작은 촌동네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주유소와 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석유를 대주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잠시 극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오페라를 보
“이야기는 얇게 음악은 풍성하게, 그것이 뮤지컬의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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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관객에게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이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을 꼽을 것이다. 한때 명절의 특선영화나 주말의 영화 프로그램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을 만큼 익숙한 영화다. 그외 <사운드 오브 뮤직>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연출한 또 하나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나 <왕과 나>(1956) <남태평양>(1958) <마이 페어 레이디>(1964) 같은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위에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20세기폭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파라마운트, 혹은 워너브러더스 등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전후 할리우드 뮤지컬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MGM, 혹은 제작자 아서 프리드가 이끌었던 이른바 ‘프리드 사단’의 뮤지컬들이다. 프레드 아스테어, 진저 로저스, 진 켈리 등의 뮤지컬 스타들과 빈센트 미넬리, 스탠리
헐리우드 고전의 토양 위에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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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휘장 뒤의 영화 고전기 할리우드로부터 <물랑루즈>로 이어지는 백스테이지 뮤지컬의 이상은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로 요약된다. 사랑을 찬양하고 쇼를 숭배하는 이 모토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자 염원이며 기도다. 우리가 기억하는 뮤지컬의 어떤 대목을 떠올리건 거기에는 낭만적인 구애의 시퀀스가 들어 있다.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진 켈리는 비를 맞으며 춤추고 뉴욕의 로미오를 만난 내털리 우드는 <Tonight>를 노래한다. 비극을 향해 치닫는 이야기지만 <물랑루즈> 역시 사랑의 신화를 갈구한다. 이완 맥그리거가 엘튼 존의 <Your Song>을 부르면서 시작되는 두개의 구애 시퀀스는 천상의 로맨스처럼 보인다. 바즈 루어만에게 음악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연인들의 어깨에 날개가 솟구쳐 구름 저편으로 날게 하는 마술이며 초능력이다. 영화는 마지막 대목에서 다시 한번 그런 믿음을 확인한
춤추고 노래하라 환락의 제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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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락의 소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압생트 향과 분내가 진동하는 세기말의 물랭루주. 그 입구에 선 흥행사 바즈 루어만(39) 감독은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재킷은 이리 주십시오. 자, 들어와서 저희와 같이 놀아보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돌아가시겠습니까? <물랑루즈>의 프로포즈는 화끈하다. 방문을 여는 순간 코앞에서 샴페인이 터질 때 기분이 이럴까. ‘막’이 오르자마자 카메라는 디지털로 재현된 1899년 몽마르트르 골목을 로켓의 스피드로 저공 비행하고, 순진한 젊은이의 모험담이 주단을 굴리듯 펼쳐진다. 꽃술 같은 캉캉 스커트가 그리는 야한 색채의 소용돌이에 넋을 잃는 것도 한순간, 미처 숨을 고르기도 전에 무일푼의 시인과 아름다운 매춘부는 <사관과 신사>의 주제가부터 엘튼 존의 <Your Song>까지 망라한 ‘연가(戀歌) 메들리’에 젖어,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이 내려다보는 지붕 위에서 전설 같은 사랑에 빠진다. <물랑루즈>는 처음 20분 동
춤추고 노래하라 환락의 제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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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류승완, 배우 류승범을 말하다.
류승범은 기이한 배우다. 아직도 길거리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청춘영화 시나리오가 나오면 업계에선 회자된다. 이상하지 않나. 어쨌든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는 단계인 것 같은데 대신 함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작품마다 항상 가능성을 남겨놓는, 보여주는 그런 배우였으면 좋겠다. 그게 모든 것을 소진하는 배우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요즘 가끔 집에서 승범일 보면 연기에 부담을 느끼는 때도 있는 것 같다. 1년 전에 같이 작업할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시나리오에 밑줄 긋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가장 릴렉스한 연기는 고도로 치밀한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승범이 말에 동의하지만, 다른 삶의 체험들에 항상 자신을 열어두었으면 좋겠다. 그게 나중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니까. 언젠가 승범이나 나나 한번쯤은 처절한 실패를 맛볼 텐데, 굴복하지 않고 넘어서려면 그런 훈련을 해둬야 한다. 물론 아직 시간은 많고,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
순발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다.
류승완, 류승범 형제의 `버라이어티 토크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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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영화 보기, 더 행복한 영화 수다
범 | 형은 내가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하기 전부터 나한텐 이미 감독이었잖아. 보여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자그만 방에서 빛이 안 들어오게 커튼을 치고, 벽에 스크린을 만들어서 영화도 봤지. 형이 찍어온 영화들. 소리가 굉장히 멋있었어.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느낌이 참 묘해. 방이 깜깜해지고, 집이 극장이 되는 듯한…. 영화 자체보다는 그런 상황들이 재밌었던 거지만. 그래도 극장 가는 건 별로 안 좋아했는데, 형이랑 성룡 영화는 많이 본 것 같아.
완 | 성룡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봤으니까. 성룡 영화는 정말 좋아. 특히 80년대 성룡 영화들. 요즘의 성룡은 연세가 많이 드셔서…. (웃음) 열심히는 하시는데…. <엑시덴탈 스파이> 볼 때는 정말 영화 그만 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더라구. 그래도 최근작 중에서 나은 <러시아워2> 보면서 아, 그래 저 맛이야 하는 생각이 들
류승완, 류승범 형제의 `버라이어티 토크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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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난항이었다. 단편 4부작을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낸 16mm 저예산 독립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극장에 개봉시키는 `사건`을 일으키며 지난해 각종 영화상에 오르내렸던 감독 류승완과 배우 류승범. 이들 류 브러더스가 지난 1년 동안 벌인 영화기행에 관한 `쾌도난담`을 목격하리란 즐거움에 자못 들뜨기까지 했지만, 둘의 신작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장으로 향하는 8인승 차 안에서 우선 형제의 예상치 못한 `협공`부터 막아내야 했다."우리도 다른 형제들이랑 다를 게 없다니까요.""형제라 뭐 다르지 않냐고 많이 질문하는데, 꼭 외계인이 된 것 같아요."쉽게 속내을 드러내지 않는 형제들과 쉬이 수다스러워지지 않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1시간은 잠깐, 이버에는 자청한 길고 긴 인내력 테스트를 견뎌야 했다. 톱밥 날리는 인천의 한 공단지역에 도착하자마자 다수 수다를 꾀했다가 작전 변경, 밤샘 활영이 지나고 1시간을 더 내주겠다는 약속을 얻어낸 결과였다.수은주가 뚝
류승완, 류승범 형제의 `버라이어티 토크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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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부산영상위가 가장 큰 힘을 쏟고 있는 일은 11월11일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2001 부산국제필름커미션박람회’(BIFCOM 2001). 전세계 주요 도시의 필름커미션과 스튜디오가 참가해 로케이션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이 자리는 부산영화제 기간에 맞춰 부산 남포동 인터몰 미라지오(옛 새부산예식장) 등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세계필름커미션연합(AFCI) 소속 10개국 27개 필름커미션 또는 스튜디오에서 참여한다. 한국의 부산, 전주영상위원회를 비롯해 필름커미션을 준비중인 대전시, 부천시, 중국의 베이징제편창, 상하이제편창, 일본의 일본필름커미션연맹, 오사카필름카운슬, 미국의 미시시피 필름오피스, 호주 영화진흥위원회, 영국의 런던필름커미션, 타이의 타이필름파운데이션 등이 그들.아시아 영화기구의 현황과 교류방안과 국내 필름커미션의 활성화와 상호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컨퍼런스와 필름커미션 업무의 기능과 사례, 한중 합작영화 제작, 동서양 영화
다음 목표는 아시아 네트워크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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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영(29) 기획팀장.부산영상위원회의 연간 사업과 행사 기획, 출판 등이 주업무. 영상원을 졸업한 뒤 1달간 실직상태로 지내다가 ‘바닷가에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꼬임에 넘어가 부산으로 내려와 현재까지 근무중. 현재 ‘2001 부산국제필름커미션’ 기획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행사 이후 장기간 실종될 예정.김현석(28) 로케이션 팀장.<리베라 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추럴시티> 등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맡고 있음. 부산문화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부산영상위원회 멤버 중 가장 먼저 입사하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헌팅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몽땅 반납하기도 하였음. 탁월한 친화력으로 접근이 어려운 경찰, 공공기관과의 접촉을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 특기임. 조주현(29) 로케이션 팀장.<광시곡> <공중화장실> 등 지원. 동아대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청운의 꿈을 품고 있다
그들의 하루는 4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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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국제시장<정글쥬스> 촬영현장“촬영보다는 뒷정리보는 게 더 중요해요.”“가시나들이 저리 미치니, 영화배우 안 할 사람 누가 있노!” 귀를 찢는 듯한 괴성과 함께 장혁의 스타크래프트를 쫓아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파도처럼 빠져나간 공간은 단추가게, 털실가게 등이 밀집한 국제시장. 두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공간도 모자랄 만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국제시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글쥬스>는 이정표씨 담당구역이다. “낮 신인데 벌써 불 들어온 간판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먹자골목으로 이동한 촬영팀 중 한 사람이 ‘오늘 촬영 쫑’이라는 표시의 큰 엑스자를 온몸으로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이정표씨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뭐 특별한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를 막을 일도 없지만 그는 촬영 뒤, 그곳이 원상태 그대로 아무 일 없이 정리되는 것을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절저한 사후관리 덕에 “다음에 와서 다시 찍어
“오이소, 안 되는 기 없십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