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에 나오는 중·고등학교 단체관람. 그 시절 단체관람의 레퍼토리에 가장 빈번하게 들어갔던 영화는, 시리즈와 함께 성룡의 쿵후영화였다. <사형도수>나 <취권> <소권괴초> 같은. 낡은 극장 1, 2층을 가득 메운 까까머리의 학생들에게 시리즈는 대단한 이상향이었다. 마침 로저 무어가 수영복으로 몸매를 과시하는 대규모 본드걸을 이끌고 나오던, 에이즈의 위협이 전혀 없던 시기였다. 섹시한 본드걸이 등장하면 환호성을 지르고, 제임스 본드가 그녀를 안으면 침이 꼴깍 넘어가고, 그것도 수백명이 한꺼번에.하지만 성룡의 영화는 이상했다. 왕우의 <유성호접검>처럼 기상천외한 액션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성룡에게 이소룡 같은 카리스마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지기 전이었으니, 공명정대한 ‘무협’에 싫증났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유치해 보이는 성룡의 영화는 당대의 남학생들은 물론, 남녀노소 가릴 것 없
난 당신이 좋다, 그 `순수한 육체`의 향연이 (1)
-
“사운드도 안 들어가고 색보정도 안 된 미완성 상태에서 <꽃섬>을 봤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송일곤 감독이 작가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고 곧바로 영화제에 초청할 것을 결심했다. 데뷔작으로는 드물 만큼 진지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세명의 여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용감했다. 또 송 감독은 아주 개인적인 시각과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깊이가 있다. 감독이 스토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세 여자에게 현재의 사회에 대해 말하게 한다. 아주 좋고 용감한 영화다.”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9월5일(현지시각) 오전 <꽃섬> 제작사 ‘씨앤필름’ 주선으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accomplished’, ‘good’, ‘brave’, ‘auteur’, ‘artist’ 등 호의적인 수사를 연발했다. 자기가 초청한 영화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게 관례일 수 있지만, 평론가 출신으로 이탈리아 안의 여러 영화제를 이끌었던 바르베라
“견고한 구성의 용감한 데뷔작”
-
1945년, 2차대전은 끝났지만 전쟁에 나갔던 그레이스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영국 저지섬 숲 속의 빅토리아풍 대저택에서 두 자녀와, 사회와 격리된 외딴 섬에서와 같은 삶을 산다. 어린 남매는 빛에 노출되면 바로 탈을 일으키는 특이한 병에 걸려, 집안은 온통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촛불로 조명을 한다. 엄격한 그레이스는 행여 빛이 들어올까봐 방마다 자물쇠를 잠그고, 아이들에게는 독실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친다. 수도원을 연상케 하는 이 집에 밀즈 부인(피오눌라 플래니건)이 가정부로 들어오고,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잠궈놓았던 문이 열려 있는 일이 잦아진다. 딸아이는 집안에 다른 꼬마 아이가 살고 있으며, 수시로 그 아이를 본다고 말한다.급기야 이 고택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첩이 발견되고 남편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돌아가더니 어느날 아침 집안의 커튼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다. 그뒤의 섬뜩한 반전은 이 가정이 전
어둠의 아이들이 빛을 맞을때
-
살인의 낙인>의 리메이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리메이크에 대한 아이디어는 프로듀서가 냈다. 기획과 진행은 주로 프로듀서가 알아서 했다.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꿈의 이미지가 아주 독특하다. 어떤 의미인가.난 잘 모르겠다. 관객이 더 잘 알지 않겠나.컬러의 사용이 매우 독창적이다. 컬러의 선택이나 변화가 내러티브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사실 별로 의미심장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트릭을 쓰는 일인데, 컬러는 그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긴 하다.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이 다 여성이다. 왜 여성 캐릭터로 설정했나.남자 캐릭터들로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연극무대 같은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건 무슨 의미인가.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본 기자단 폭소) 나는 어떤 답도 갖고 있지 않다. 서양 킬러가 등장하는 장면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일종의 코미디적인 요소다. 일본 전통극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일본 전통
“꿈의 이미지? 관객이 더 잘 알걸”
-
-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가. 코미디인가 뮤지컬인가.‘뮤지컬 드라마틱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꼭 하나의 장르나 스타일로 규정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정치도 마찬가진데, 한 사람의 성향을 꼭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어떻게 착안한 영화인가.내 인생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간 접했던 수많은 영화와 연극과 음악과 문학작품들이 조금씩 다 녹아 있다. 영화는 어쩌다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나 자신과 관객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또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늘 살펴본다. 그건 정치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거나 뭔가 거창한 데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늘 사랑하고 싶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 그래서 사랑하자, 행복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정치인들을 풍자해서 웃음을 자아내려는 노력도
“개척은 즐거워”
-
영화제의 절반 이상이 흘러가도록 베니스에는 입성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동정 이외에는 특별한 이슈나 화제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면, 이번 베니스영화제가 거장들의 컴백무대를 제공했다는 사실. 올 베니스영화제는 동서양의 현대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명의 ‘마에스트로’에게 특별한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이집트의 유세프 샤인, 그리고 포르투갈의 마뇰 드 올리베이라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신작을 들고 베니스를 찾아왔고, 족히 3세대와 5개 대륙을 아우를 법한 너른 관객 앞에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재미있는 아이러니는 중견 또는 신진감독들이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작품들을 내놓는 반면, 평균 연령 75살이 넘는 이들의 신작은 도전과 실험의 의욕과 에너지로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우러르며 비결을 묻는 후배들 앞에서도 이들은 폼을 잡지 않았다. 셋 중 막내뻘인 일흔넷의 유세프 샤인은 작품 속 대사를 통해 이렇게 둘러댔다. “일흔 넘은
거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젊어질 뿐이다
-
이탈리아의 저명한 문화평론가 비토리오 지가르디는 베니스영화제 개막식 초청에 응하는 대신 언론과 마주앉았다. 그리고 초대장을 보낸 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의 가슴에 비수를 날렸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죽어간다. 아르테(arte)가 죽어가고 있다.” 비난의 요지는 영화제를 포함한 베니스 비엔날레가 덩치 불리기에만 급급해 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상업화돼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외양은 많이 화려해졌다. 메인 행사장인 리도섬에서 공식상영이 끝나면 베니스 시내와 메스트레, 마르게라 등 주변 지역 극장에서 릴레이 상영을 하는 식으로 판을 크게 벌였고, 영화제 주요 행사장의 수와 규모를 늘렸으며 그중 카지노 건물은 영화제쪽이 직접 매입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3년 동안 많은 변화의 노력이 있었고, 그만큼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개막식에서 바르베라가 볼멘 소리로 이런 자화자찬을 한 것은 지가르디를 겨냥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타인들>
예술이여 아직 살아 있는가, 별은 빛나건만
-
누군가는 김성수 감독을 두고 인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말한다. <비트>에서 <무사>까지 감독 김성수의 분신이 된 배우가 꽃미남 정우성인데다 촬영 김형구, 조명 이강산, 무술 정두홍, 특수효과 정도안, 특수분장 신재호 등 국내 최고의 스탭들이 그를 위해 시간을 비워두기 때문이다. <무사>의 경우엔 중국인들까지 가세했다.할리우드도 탐내는 배우 장쯔이를 캐스팅한데다 프로듀서 장샤, 미술감독 훠팅샤오, 도구 담당 리밍산, 의상 담당 황바우롱 등 중국의 A급 스탭이 <무사> 팀에 합류했다.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김성수 영화의 어떤 매력이 그들을 움직인 것이지만 김성수 감독은 틈만 나면 그들의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실제로 김성수 스타일을 이들 스탭의 기여도와 떼어놓고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하다.고전적인 스펙터클영화로서 <무사>가 보여준 기술적 진일보는 감독과 스탭의 의기투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여기엔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고
전인미답의 장관을 꿈꾸다
-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70mm 필름으로 본 사람들은 끝없는 사막의 풍광을 보여주는 광활한 화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압도적인 자연과 무수한 인물을 담고자 하는 영화가 사이즈가 큰 화면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무사> 역시 가로·세로비가 일반 영화보다 크다. 흔히 비스타비전 사이즈라 불리는 일반영화의 가로·세로비는 1.85 대 1인 반면 시네마스코프 사이즈인 <무사>는 2.35:1. 일반영화보다 화면 좌우측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신라의 달밤>도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영화들. <무사>에서 넓은 화면의 효과가 드러나는 건 사막, 숲, 토성 등 넓게 펼쳐진 공간을 찍을 때나 등장인물이 많을 때이다. 전투장면에서도 말과 사람이 뒤엉켜 있는 혼란상을 강조하고 있다.<무사>는 촬영현장에 늘 카메라 3대가 있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대규모 전투장면을 찍을 때 3대의 카메라가 각
감동의 너비는 2.35:1
-
김형구 촬영감독은 국내에서 시대극을 찍는 어려움을 잘 안다. <이재수의 난>이나 <아름다운 시절>을 찍으면서 그는 시간을 거스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아름다운 시절>을 찍을 때는 곳곳에 보이는 전봇대가 말썽이었다. 50년대라는 시대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 전봇대를 피하느라 때로는 전봇대를 파서 옮기는 수고도 해야 했다. <이재수의 난>은 더 심했다. 흠집을 낼 수 없는 문화재인 제주의 성곽에서 전투하는 장면을 찍자니 속이 타지 않을 수 없었다. 토성전투장면을 찍을 때 싱청의 <무사> 촬영장을 찾은 박광수 감독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박광수 감독은 중국 미술팀이 만든 토성에 감탄했다. 만약 미술팀이 토성을 지을 수 있었다면 <이재수의 난>의 화면이 달랐을 거라는 아쉬움이다. 시간을 역행할 틈이 없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아직 과거를 품은 땅이 많다. 거기에 중국 미술팀의 노하우가 덧붙여져 14세기의 풍광을 재
시간을 잊은 사막 위, 14세기를 재현하다
-
화살이 목줄기를 관통하고 날선 창이 지나가면 사람의 목이 굴러떨어진다. <무사>는 공포영화가 아니지만 스크린을 피로 적시는 고어영화다. 실제로 ‘고어’라는 말의 어원에는 ‘응고된 피, 전쟁터에서 흘린 피’라는 의미가 있다. 김성수 감독은 이처럼 잔혹하고 끔찍한 이미지로 관객의 감정을 자극한다. 수세기 전 전장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에서 영향받은 것이지만 요즘 관객에겐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킨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총알이 관통하고 사지가 부서지는 현장을 생중계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무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숨김없이 보여준다.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생함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특수효과, 특수분장, 컴퓨터그래픽이다. 신체 일부가 잘리고 몸에서 피가 솟구치는 장면들은 세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만든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여솔(정우성)이
피비린내나는 `가짜`만들기
-
홍콩의 와이어액션이나 할리우드의 컴퓨터그래픽에 범접할 노하우가 없다는 판단 아래 김성수 감독은 <무사>를 사실적 액션 위주로 찍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글래디에이터>를 본 제작진은 절망했다. <글래디에이터>의 초반 전투장면은 <무사>가 시도하려던 액션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안은 없었다. 제작진은 당시 고려 무사들이 그랬음직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했다. <무사>의 전투장면은 미리 합을 짜고 시늉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서울액션스쿨의 스턴트맨들에게 “의식도 잃어버려라. 오직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싸워라”라고 주문했다. 정두홍 무술팀의 10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사> 현장을 지켰고 마지막 토성 전투 때는 서울에 남았던 7명까지 중국에 들어와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이 보여준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스턴트는 중국 무술팀을 놀라게 만
감혹한 싸움에 몸을 던지다
-
“말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찍으라고 권하고 싶네요.” 김성수 감독은 <무사>의 경험이 준 교훈이 뭐냐는 질문에 악동 같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물론 진담은 아니다. 말이 말을 안 들어서 힘들었다는 걸 역설적으로 표현한 얘기. <무사> 제작진은 촬영 시작부터 끝까지 5개월간 50마리의 말을 데리고 다녔다. 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지만 현장에서 말은 여간 골치아픈 존재가 아니었다. NG가 나면 처음 찍었던 자리로 되돌리는 데만 몇십분이 걸렸고 “액션”이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형구 촬영감독도 뭐가 힘들었냐는 질문에 “말이 말을 안 들어서”라고 답한다. 이렇게 다루기 힘든 말은 <무사>의 스케일을 실제보다 커보이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조민환 프로듀서는 “영화에서 말 한 마리가 쓰러지는 효과는 엑스트라 배우 10명이 등장하는 것보다 강력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몽고기병의 위풍당당하고 용맹한 모습을
“말을 쓰러뜨려라!”
-
두 번째 장편으로 놀라운 성공을 이룬 놀란은 메이저의 눈에 들어 5천만달러짜리 영화 <불면증> 감독으로 기용됐다. 현재 후반작업에 매달려 있어 눈코 뜰 새 없는 그는 <씨네21>의 서면 인터뷰 요청에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도 꽤 꼼꼼한 답변을 보내왔다.<메멘토>는 처음엔 11개 극장에 걸렸다가 나중엔 500개 이상으로 확대됐고, 미국에서만 2천만달러의 극장 수입을 올렸다. 비평가들도 절찬했다. 이런 성공을 혹시 짐작이라도 했는가.이 영화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을지는 꿈에도 상상 못했다. 처음 영화를 끝냈을 때 할리우드에서는 이 영화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어서 특히 즐겁다. 아마 기존의 영화들과 많이 다른 점이 성공의 요인이 아닐까 한다. 관객도 수동적인 영화보기에 질려 있었다고 믿는다. 난 사람들이 <메멘토>를 보고 한번에 이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두번, 세번 보고 생각
“레너드가 되어 직접 경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