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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Hola)! 지난 1월8일 내한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첫인사는 상냥했지만, 한눈에도 그는 이렇게 터무니없이 거창한 여행보다 마드리드의 아파트에서 직소퍼즐을 맞추고 키보드를 뚱땅거리는 일을 스무배쯤 좋아할 청년으로 보였다. 깁스를 푼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발목을 끌고 열여섯 시간을 여행해온 아메나바르 감독과 마주 앉은 곳은, 밤 9시의 검게 얼어붙은 충무로가 내려다보이는 극장 꼭대기의 카페. 마치 두개의 세계를 동시에 보고 있는 듯 오묘한 비대칭을 이룬 그의 눈을 보며 귀를 기울이는 동안, 바로 옆 상영관에서는 400여명의 관객이 그의 영화 <디 아더스>에 즐겁게 희롱당하며 한숨을 흘리고 있었다.
- 자, 편안히 앉으셨나요? 아무래도 이것부터 물어야겠습니다. 당신은 세편의 장편을 통해 매번 관객의 기대를 한쪽으로 몰고가다 뒤집어엎었습니다. 당신에겐 분명 플롯으로 그물을 치는 취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선적인 서사는 도무지 성에 안 차는 건가요.
이번
<디 아더스> 들고 내한한 아메나바르 인터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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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이야기>의 이성강 감독과 <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은, 같은 길을 다르게 걸어가는 동행들이다.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를 거쳐 무리하지 않은 제작비로 푸근한 파스텔조 2D 느낌의 컴퓨터애니메이션을 마무리한 이성강 감독과 200여편의 CF를 찍은 경력에 바탕해 실사와 미니어처, 셀과 3D를 넘나드는 대작 규모의 SF애니메이션을 준비중인 김문생 감독. 시장 규모가 적고 관객층이 두텁지 못해 쉽지 않은 장편 애니메이션 창작의 길에서, 이들은 각각 성장의 기억과 환상을 품은 일상의 동화와, 황량한 미래의 디스토피아에서 희망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다룬 SF라는 다른 걸음으로 창작의 꿈을 꾸준히 다져왔다.소재만큼이나 출신도 스타일도 제작규모도 다르지만, 오랫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연서를 쓰며 행복한 만남을 그리는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먼저 완성된 <마리이야기> 개봉을 앞두고, 두 감독이 만났다. 느리고 나직
<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 <마리이야기>이성강 감독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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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 중요김 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려서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니까 가끔 소외감도 느껴요. 애니메이터들은 대부분 애니메이터 출신의 감독을 원하거든요. 애니메이션 파트나 업계에서 다들 날 이방인으로 보고 있는 거죠. 내 생각을 전달할 때 그림으로 그려보일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할 때도 있지만, 꼭 그림을 그려야만 애니메이션 연출을 할 수 있다고 생각진 않는데…. 이 감독은 그림 그리죠?이 많이 그리긴 하지만, 저도 뭐, 수정할 때나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그려보이는 거죠.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해 봤고요. 연출이 가능하다는 건, 사람들과 같이 얘기를 쉽게 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리테이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선 내가 잘 아는 방식으로 가야 되겠다 싶었죠.그게 기존 애니메이션 프로덕션과는 겹치는 부분이 별로 없었어요. 내가 했던 경험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람들을 끌어오면서 그게 어느 정도 잘됐기 때문
<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 <마리이야기>이성강 감독을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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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스펜스영화에서 음악을 가장 능숙히 구사하는 감독이라는 평을 듣는데요. 영화음악가로서 영화를 반주하는 원칙이 있나요.
전제는 효율성의 추구입니다. <디 아더스>에는 고전적이고 너무 두드러지지 않는, 유령영화로서는 매우 인간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 이 영화에 어울리는 음악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플루트, 첼로 같은 독주 악기를 택했습니다. 첼로는 인간의 음성과 비슷하니까요. 메인 타이틀은 자장가풍이고, 최근 스릴러에서 과용되고 있는 피아노는 제외했습니다. 대신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하프와 하프시코드를 믹스해 색다른 느낌을 시도했어요. 음악 작업의 스트레스가 크지만, 남에게 맡기면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잔소리꾼 감독이 될 것 같아 직접 내 영화의 음악을 작곡합니다. 다른 감독의 영화로는 <마리 포사> <Nobody Knows Anybody>의 스코어를 만들었습니다.
- <디 아더스>는 <식스 센스> 같은 영화와 비교하면 매우 유
<디 아더스> 들고 내한한 아메나바르 인터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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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김기덕 영화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김기덕 감독의 7번째 영화 <나쁜 남자>에 대한 엇갈린 반응이 뜻하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에 관해선 여전히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수취인불명>과 달리 <나쁜 남자>에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거세되어 있다. 남한사회의 역사와 개인의 운명을 포개놓은 전작에서 벗어나 <나쁜 남자>는 <악어>에서 <섬>까지 이어진 폭력과 사랑과 성적 에너지의 묘한 결합을 주시한다. 어찌 보면 그간 김기덕 영화에 등장한 남녀관계의 원초적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찬반논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비판이든 지지이든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어떤 거울을 들이미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상이 맺힌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씨네21>은 두 가지 상반된 상을 보여주는 거울로서 유운성씨와 주유신씨의 글을 싣는다. 서로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면 한발 더 가까이 진실에
나는 왜 김기덕을 지지하는가 /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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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김기덕은 다루기 쉬운 동물이다. 그의 영화에 격렬한 비난을 쏟아붓는 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얼마간 호의를 내비치는 이들까지도 그를 마치 동물처럼 다룬다. 이런 경우에 찬사와 비난은 결국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 된다. <수취인불명>과 <나쁜 남자>에 대해 얼마간의 만족감을 내비치면서도 거기에서 이른바 ‘길들여진’ 야수성을 지적하며 김기덕 고유의 색깔이 엷어져가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 절반의 찬사가 아닌 우회적인 비난일 뿐이다. 차라리 의연히 분석가를 자처하며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이들이야말로 좀더 그를 잘 대접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듯싶다. 동물에게는 무의식이 없다고 말한 게 누구였을까?그러니까 아무도 김기덕에게서 무언가 배우려 들지 않는다. 그는 감싸주고, 경멸하고, 지켜보고, 비난하고, 분석할 대상은 될지언정 결코 말을 경청할 만한 인간은 못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영화를 만든 지금에 와서도 그의 전언은 여전히 ‘수취인불명’이
내가 김기덕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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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영화라는 시각장치와 대중매체는 성별관계를 둘러싼 억압과 무의식의 기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작동하는가를 가장 두르러지게 가시화시키는 영역 중 하나이다. 영화 속에서 사랑과 섹스를 포함하여 여남간의 관계를 둘러싼 모티브들은 불안, 거부, 왜곡과 같은 여러 가지 ‘증후들’을 펼쳐보임으로써 우리 사회의 성적심리상에 존재하는 심층적인 ‘난점들’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다.킬러, 디아스포라, 엽기녀, 조폭, 총을 든 여성, 여성 버디 등 요즈음 한국영화의 여성에 대한 재현은 센세이셔널한 소재적 확장을 보여주고 있고, 그들에게는 종종 상당한 공간적 가동성과 물리적 위협력, 자율적인 관계성이 허용되기도 한다. 반면 <친구>에서 시작된 ‘조폭영화’의 행진은 마초적인 남성성과 남성 연대에 대한 찬미, 성공과 패배라는 신화에의 몰두, 공격적인 액션과 정서들의 난무를 통해서 완강하게 ‘남성적 서사’를 펼쳐보인다.이러한 두 가지 경향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성별관계 및 역
내가 김기덕을 비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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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하고도 신사동에 웬 공장이람. ‘Motion Factory’, 즉 ‘움직임의 공장’이라는 이곳에선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소음 대신 쉴새없이 짤깍거리는 마우스 소리만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노동으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곳을 공장이라고 부른다면, 이곳도 분명 공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생산품이 이름 그대로 움직임, 그것도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진 움직임, 즉 컴퓨터그래픽 영상이라는 것이 다른 공장과의 차이라면 차이겠지만.
그냥 줄여서 ‘모팩’(mofac studio)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곳을 불철주야로 지키며 17명의 직원과 2명의 프리랜서로 이뤄진 ‘생산라인’을 관리하는 인물은 설립자이자 ‘공장장’이기도 한 장성호씨다. “직원 모두가 힘을 합쳐 일하는 것이니 내 이름이 앞에 나가는 것은 이상하다”며 ‘사장’ 대신 ‘실장’이라는 직함을 명함에 새겨놓고 있지만, 1999년 창립한 이래 짧은 기간 동안 모팩을 영화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컴퓨터그래픽 업체
한국 최고의 CG맨 장성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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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국영화의 CG가 할리우드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이냐,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의 답은 지금 상황으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술수준의 차이가 엄청나다. 때문에 우리가 현재 확보하고 있는 능력이라는 한계 안에서 그동안 활용되지 않은 것을 활용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수준이다. 기술적 발전을 위해선 결국 영화계가 CG분야의 연구· 개발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받침이 있어야 하드웨어, 고가의 소프트웨어 등 인프라도 확충할 것이며, 할리우드처럼 한편의 영화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단계에 오를 것이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해선 안된다. 한편의 영화에서 CG에 대한 예산은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 물론 여기에는 CG계의 책임도 있다. 초창기에 활동했던 선배들이 안 되는 것도 무조건 된다고 하고, 적은 돈으로도 일을 진행하다가 추가비용을 요구하곤 했으니 불신의 장벽이 쌓인 것은
한국 최고의 CG맨 장성호 [2] - 한국영화 CG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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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의 난>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시작부분 까마귀가 하늘을 돌고 돌아 솟대 위로 내려앉는 장면 중 일부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애초 편집본에선 까마귀가 앉는 장면을 넣지 않았다. 나중에 박광수 감독은 이 장면을 다시 넣기로 결정했는데, 불행히도 네거필름이 사라져버렸다. 재촬영을 하려 해도 이미 원본을 찍었던 때와 계절이 달라져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아비드 편집기에 남아 있는 소스 화면을 보고 내가 CG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뒷배경부터 솟대, 까마귀까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3D 애니메이션인 셈이다. 기자 시사회 때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듣곤 절로 어깨가 으쓱했다.
<해피엔드>
근조등이 아파트의 벽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장면도 쉽지 않았다. 촬영 당시 HMI로 야간조명을 했는데, 나중에 현상을 해보니 깜박거리는 플리커가 생겼다. 재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그 아파트 주민들이 반대해 이마저 실패했다. 결국 CG를 동원
한국 최고의 CG맨 장성호 [3] - 남들은 잘 모르는 나의 CG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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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다들 <공공의 적>이 끝내주게 잘 찍혔다는 소문 들으셨을 겁니다. 그거 다 강우석 감독이 낸 소문이니까 지금부터 믿지 마십시오.” 강우석 감독의 신작 <공공의 적>이 첫 시사회를 가진 지난해 12월28일, 무대인사에 나선 씨네2000 대표 이춘연씨는 그간 영화계에 떠돌던 소문의 진상을 밝히는 폭탄선언(?)을 했다. 아닌게아니라 <공공의 적>이 잘 나왔다는 소문은 영화촬영이 끝나기 전부터 흘러나왔다. 누가 편집실에서 봤는데 너무 재미있다, 무진장 웃긴다, 완성도도 높다 등등. 그 모든 말들이 강 감독이 일부러 퍼트린 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제로 <공공의 적> 촬영현장에서 만난 강 감독은 “이번 영화는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농담조로 던진 얘기였지만 영화계를 떠도는 이런저런 말을 종합해볼 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정말 뭔가 대단한 물건이 나오나보다 싶은.
시사회 반응을 종합해보면 &l
`과욕`의 승부사 강우석 연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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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연표
연출
2002년 <공공의 적>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 제7화
1996년 <투캅스2>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3년 <투캅스>
1992년 <미스터 맘마>
19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1991년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1991년 <열아홉 절망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
1990년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8년 <달콤한 신부들>
제작·투자·배급
2001년 <킬러들의 수다>
2001년 <봄날은 간다>
2001년 <세이 예스>
2001년 <엽기적인 그녀>
2001년 <신라의 달밤>
2001년 <썸머타임>
`과욕`의 승부사 강우석 연구 [2] - 강우석 감독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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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해학, 녹슬지 않았다
90년대 한국영화가 관객을 되찾기 위해 택한 무기는 무엇보다 웃음이었다. 그 웃음의 대표선수가 강 감독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93년작 <투캅스>는 99년 <쉬리>와 <주유소 습격사건>이 나오기 전까지 <서편제>에 이어 한국영화 역대흥행 2위를 지켰다. 96년 <투캅스2>까지 절정의 코미디 감각을 보여줬던 그가 형사액션물의 구도를 가진 <공공의 적>에 불어넣은 생명력도 유머와 해학이다. 경찰서를 드나드는 볼썽사납고 험악한 사내들의 모습에서 강 감독은 웃지 않고 버틸 수 없는 아이러니한 순간을 포착한다. <미스터 맘마>나 <마누라 죽이기>에서 보여준 과장의 정도는 조금 심하다 싶지만 <공공의 적>에서 선보이는 코믹함은 품위를 잃지 않는다. 강 감독의 장기인 뛰어난 편집감각을 느낄 수 있는 코미디 장면이 적지 않다.
<공공의 적>의 주
`과욕`의 승부사 강우석 연구 [3] - 새 영화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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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지난 채 수북이 쌓여 있는 연하장. 전화기 근처 덕지덕지 붙어 있는 노란 포스트잇. 대니얼 디포의 문고판 <로빈슨 크루소>. 10여년간 제작·감독했던 영화의 포스터 패널들이 사방으로 에워싼 채 촬영현장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음이 분명한 사무실. “아이고, 이렇게 긴 인터뷰는 처음이네, 목이 다 쉬겠다.” 자고 나니 몇십억 벌었더라는 소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는 회사의 회장 사무실치고는 검소한 공간에서 커다란 생수통 하나를 앞에 두고, 시네마서비스 회장이자 <공공의 적>으로 감독이란 칭호를 다시 찾은 강우석 감독과 나눈 인터뷰는 210분간의 긴 마라톤이었다. 경제지가 아니라 오랜만에 영화지와의 만남이라는 즐거운 비명을 신호탄으로 시작해 신작 <공공의 적>에 대한 이야기와 충무로 부동의 파워1위를 고수하기 위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반환점을 돌아, 항간에 떠돌았던 소문과 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락내리락, 그렇게 결승점에 도달하고 보니 어느
`과욕`의 승부사 강우석 연구 [4] - 인터뷰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