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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키드 류승완, 오우삼 형님을 만나 한 수 배우다(3)
2002-07-11

형님! 그 빛나는 연출력을 전수해주십시오

형님! 연출력을 전수해 주십시오

류승완

지금부터는 독자고 <씨네21>이고 다 떠나서 질문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 후배로서 감독님의 연출력을

훔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잡으려고…. (웃음)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다보면 배우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물론

영어를 잘하시지만, 연기는 아주 작은 차이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잖아요.

오우삼

그리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중국 출신이든 미국 출신이든, 배우는 같은 감정과 비슷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니까요.

미국 배우들은 오히려 대하기 쉬운 편이라고 할 수 있죠.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 많이 만나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거든요.

대부분의 할리우드 감독들은 배우들이 대사를 수정하거나 아이디어를 내는 걸 싫어하지만, 난 달라요. 나는 배우들을 알고, 그들의 테크닉과

연기, 느낌을 압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하나의 장면이 배우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도록 디자인하는 거죠. 정말 그들을 사랑하니까 가능한

일이에요. 톰 크루즈도 그걸 알아요. 그가 한 친구에게 “존은 나를 가장 잘생기게 보이도록 찍는다”고 말했대요. <미션 임파서블>을

보고 “와, 정말 샤프한데”라고 외쳤다는 거예요. (웃음) 나는 톰의 눈을 아주 좋아하고 그 장점을 살려서 촬영했죠. 본능을 믿는

겁니다.

류승완

그 정도 스타와 함께 일하면 참 힘들 줄 알았거든요.

오우삼

배우들이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신경쓰기 때문에, 그들은 날 좋아합니다. (웃음) 일을 할 때 중요한 점 몇 가지가 있어요.

가족처럼 일하며 신뢰를 쌓을 것, 유머 감각을 잃지 말 것, 감독이라고 해서 배우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 것. 그리고 자신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는 첫 번째 테이크와 두 번째 테이크가 최고의 테이크라고 믿습니다. <윈드토커>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도 거의 첫 번째 테이크였어요. 어떤 배우들은 나한테 와서 “존, 스튜디오가 나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는데… 30번도

더 찍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도 해요. (웃음) 하지만 난 같은 장면을 다섯번 이상 찍으면 연기가 기계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들 날 ‘원 테이크 존’이라고 부르죠. (웃음)

류승완

첫 번째와 두 번째 테이크의 연기가 중요하다는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카메라의 동선이나 특수효과가 잘 들어맞지 않아 여러

번 되풀이해 찍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럼 배우도 많이 지치는데, 그럴 땐 어떻게 설득하시는지.

오우삼

음… 한번도 배우들을 그렇게 피곤하게 만든 적이 없는데요.

류승완

(약간 당황하며 어색한듯)하하…

오우삼

나는 전체적인 구도와 카메라 앵글, 동선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어요. 편집도 머릿속으로 동시에 진행하죠. 그러니까 롱테이크를

좋아하면서도 여러 번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돼요. 그건 드라마에서도 통하는 법칙입니다.

할리우드 감독들은 대부분 배우 전부가 들어가는 마스터숏을 찍고 나서 각각의 개별 숏과 클로즈업을 또 찍어요. 나중에 누구의 클로즈업이

들어갈지 모르니까. 인물의 감정을 읽을 수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할리우드에서는 특히 시간을 아끼는 게 중요합니다.

배우를 너무 늦게까지 붙들어놓으면 다음날 안 나오니까. (웃음) 할리우드 배우들은 계약서에 적힌 만큼만 노동을 합니다. 하루 노동시간을

초과하면, 초과한 만큼을 다음날 노동시간에서 제외해요.

류승완

와, 촬영하다보면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되시겠네요. 거기 배우들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해요?

오우삼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12시간 정도? 할리우드는 예산이 풍부하니까 시간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주 영리하고 재빠르게

일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처음 정해진 제작비를 지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 안에 일을 끝내야만 하죠.

할리우드에선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감독과 프로듀서, 영화사가 모여서 각 장면당 촬영 일수를 정하고, 그 내용대로 계약서를 만들어

사인을 합니다. 어떤 장면을 열흘 안에 찍어야 하는데 닷새를 초과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엿새 안에 찍어야 하는 또 다른 장면의

촬영 일수가 하루로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거예요. 물론 비가 오거나 교통사고가 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도 있지만,

그럴 때 영화사는 당신 책임이라는 식이죠. 롱테이크를 선호하는 건 그럴 때 큰 도움이 돼요. 중요한 장면을 먼저 롱테이크로 찍어

놓으면, 예정된 기간 안에 촬영을 끝내지 못해도, 그 긴 필름을 가지고 수단을 부려 편집할 수 있으니까요. <윈드토커>를

찍으면서 그렇게 했어요. 사이판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장면이 있죠? 그건 세트 설치 자체가 2주나 걸리기 때문에 일단 폭파하면 다시

세울 수 없었어요. 한번에 끝내야 했죠. 대신 카메라를 13대 설치했어요. 앵글이 다른 13대의 카메라로 처음부터 끝까지 찍으면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할 수 있는 거였죠. 대신 카메라 담당 스탭들의 인건비가 엄청나게 들어갔어요. (웃음) 하루 더 쓰면 돈이 더

들어가니까, 미안해서라도 하루 안에 다 찍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류승완

홍콩에선 직접 각본을 쓰셨는데 할리우드에선 작가가 쓰는 것 같더군요. 그런 상황이 연출에 영향을 줄 것도 같은데요. 그리고 할리우드영화의

시나리오는 어떤 공정을 거쳐서 나오는 건가요.

오우삼

다른 사람이 시나리오를 쓰기는 하지만, 스토리와 소재가 내 스타일에 맞는 걸 택하니까 그렇게 큰 차이는 없어요. 내가 스토리를

고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 스타일이나 철학을 보태기도 하고요. 할리우드엔 유명하고 능력있는 작가가 많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한 작가가 대사만 잘 쓰거나 액션장면만 잘 구상하거나 컨셉만 잘 잡는 거예요. 그래서 시나리오 한편에 대여섯명의 작가가 붙어야 해요.

게다가 A급 스타들은 자기 대사를 무척 고치고 싶어해요. 배우들은 대사가 많은 걸 좋아하니까 직접 작가를 고용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는 대사보다 액션이 많은 게 좋아서 또 날 위한 작가를 고용하고. 그러다보면 시나리오가 여기저기로 왔다갔다하고 작가가 여덟명이나

붙는 경우도 있어요. 시나리오 쓰는 데만 수백만달러가 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컨셉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어떡하면 할리우드에서 성공합니까?

류승완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아시아 출신 감독은 이안과 감독님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극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차이가 뭘까요?

오우삼

물론 사람들이 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죠. 할리우드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자국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누군가가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스타일도 있어야 할 겁니다. 내 경우엔 <첩혈쌍웅>이 그랬어요.

그 다음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예산을 지키면서 큰 규모의 영화를 만들 능력을 키워야 하고, 흥행에도 성공해야 합니다. A급 배우를

자기 편으로 만들면 제작사는 당연히 따라오는 경우도 있고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어떤 홍콩 감독은 지나치게 홍콩적인 스타일을

고집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홍콩영화를 만들어버리면 지지를 얻을 수 없겠죠. 영화를 만드는 능력 외에 중요한 덕목은 겸손입니다. 할리우드는

크고 복잡한 사회처럼 보여도 매우 폐쇄적인 소규모 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

즉시 소문이 퍼져나가 누구도 함께 일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류승완

마지막으로 저 같은 젊은 후배 연출가들에게 선배로서의 조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우삼

할리우드 진출을 염두에 둔 부탁인가요?

류승완

아니, 그런 건 꿈도 안 꾸는데요. (웃음)

오우삼

(웃음)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시나리오를 쓰면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과 재능, 스타일을 모두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삶을 배워야 합니다. 젊은 감독들은 참신한 비전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진정한 삶은 잘 모르는

경향이 있어요. 겸손하게, 삶을 배우세요.

오우삼 감독은 곧 공항으로 떠나야 하는데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VD 재킷과 류승완 감독의 앳된 얼굴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몇살에 데뷔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류승완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스물일곱살에요. 감독님과 같은 나이에 데뷔하려고 애많이 썼습니다”라고 냉큼 대답했다. 손을 꼭 잡으면서 “내 첫 영화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데, 이건 훌륭한 영화 같군요. 질투가 날 정도예요”라며 한참 어린 후배에게 찬사를 보낸 오우삼 감독은, 잠깐 더 시간을 지체해야 했다. 류승완 감독이 <영웅본색> DVD를 내밀며 사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뮤지컬이라는 꿈을 공유한, 액션영화 키드와 액션영화의 장인. 그가 떠나고 몇 시간이 지난 뒤에도 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오우삼 감독은 “오래 전에만 소중했던 가치를 아직도 지키고 있는” 친절하고 성실한 장인이었다.정리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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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이 가장 좋아하는 오우삼 영화들

그의 영화는 내게 담배를 가르쳤다

영웅본색 英雄本色┃1985┃출연 주윤발, 장국영, 적룡

범죄조직에 소속된 아호와 소마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가까운 친구다. 아호가 조직의 배신으로 감옥에 가자 소마는 홀로 복수에 나서지만, 부상으로 불구가 된 채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아호가 출감한 뒤 함께 복수를 하자고 요구하는 소마. 아호는 한때 누구보다도 빛났던 친구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총을 든다.

>> 류승완 曰 처음엔 총싸움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지 않았다. 칼과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 액션의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동시상영관에서 우연히 보고 그저 영화 전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포스터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첩혈가두 牒血街頭┃1989┃출연 양조위, 장학우, 이자웅

아비와 아영, 아휘는 빈민가에서 자라난 친구들.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에 간 세 친구는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서로를 배신하고 증오하게 된다. 아영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아휘의 머리에 총을 쏘고, 아휘는 머리에 박힌 총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차마 죽지도 못하는 세월을 보낸다. 아비는 이 악연을 끊기 위해 총을 든다.

>> 류승완 曰 반절만 좋아하는 영화. 장학우가 머리에 총을 맞은 뒤부터는 정말 멋있고 가슴 아픈 영화가 된다. 양조위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총을 들이대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홍콩판 오리지널 포스터가 있는데, 이번에 오우삼 감독의 사인을 받지 못해 아쉽다.

종횡사해 縱橫四海┃1990┃출연 주윤발, 장국영, 종초홍

고아로 자라난 아조와 제임스, 홍두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3인조 미술품 도둑으로 활약한다. 그들을 키운 사부가 내린 새로운 명령은 고성에 침입해 ‘하렘의 여시종’을 훔쳐오라는 것. 세 사람은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지만,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받아 아조가 죽고 만다. 한때 아조의 연인이었던 홍두와 결혼한 제임스. 그들 앞에 휠체어에 앉은 아조가 나타난다.

>> 류승완 曰 우리 할머니가 유일하게 좋아하셨던 오우삼 영화. 장국영과 주윤발이 와인잔을 들고 적외선 사이를 통과하는 장면과 휠체어에 탄 주윤발이 종횡무진 총격전을 펼치는 장면은 정말 멋지다.

첩혈속집 堞血續集┃1992┃출연 주윤발, 양조위

본토반환을 눈앞에 둔 홍콩, 과격하지만 정의로운 형사 원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사고뭉치다. 그는 무기밀매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범죄조직의 거래 장소에 뛰어들지만, 상관은 그를 질책할 뿐이다. 원은 포기하지 않고 무기밀매조직 주변을 맴돌며 수사를 계속한다.

>> 류승완 曰 주윤발이 불타는 병원에서 아기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이 최고다. 이 장면은 내게 건축물을 활용한 액션 연출의 묘미를 깨닫게 해줬다.

페이스 오프 Face/Off ┃1997┃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존 트래볼타

FBI 요원 숀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죄자 캐스터를 의식불명 상태로 체포한다. FBI는 캐스터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탄테러를 계획했다는 사실을 알고, 숀과 캐스터의 얼굴을 바꿔쳐 정보를 캐내기로 한다. 그러나 캐스터가 깨어나면서 서로의 얼굴을 가진 두 남자는 혼란스러운 전투로 치닫게 된다.

>> 류승완 曰 오우삼의 홍콩 시절 정서가 그대로 배어나와 좋아하게 됐다. 특히 니콜라스 케이지가 총격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아이의 귀에 헤드폰을 씌우는, 내가 ‘오버 더 레인보우’ 장면이라고 부르는 대목은 그의 체취가 우러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