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쨋날 저녁 10시 | 초량동 산복도로, 준석집 옥상 “니가 돈들고 가출해가내한테 찾아오믄 "와∼ 상택아 잘했다. 인자 우리같이 건달해가 인생 개판치자" 그랄 줄 알았나?”“그기 아이고….”“내가 우리집이 제일 좇같다고 생각할 때가 언젠지 아나? 우리 엄마 입원하고내가 중학교 때 한번 가출하고 돌아오니까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던 새끼들 중에서 한놈이라도 내를 뭐라고 하는 놈이 없는기라, 씨바, 그때한놈이라도 내를 패주기라고 했으믄 혹시 모르겠는데…. 상택아! 인제 니는 니처럼 살아라, 나는 내처럼 사께….”부산 버스기사들은 전국 어디를 가도 버스를 몰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유독 달팽이모양으로 산을 타고 지어진 집들이 많아서인지부산의 버스는 마치 곡예하듯 산복도로를 올라간다. 여장을 풀고 간단한 저녁을 마치고 찾아간 준석집 옥상 역시 몇 바퀴의 원을 돌아야 닿을수 있는 초량동의 산꼭대기에 있었다. 덕분에 잠잘 채비를 하던 부산시내는 한눈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몇몇의 높은 증권회사의
`친구` 따라 부산간다 - 첫쨋날
-
◆<친구>의 도시 부산, 곽경택 감독과 함께 한 2박3일간의 추억 순례기항구는 떠돌이들의 정거장이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채운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두 고향이 달랐다. “느그아부지 뭐하시노” 물을라치면 모두 하는 일도 달랐다. 어떤 아이의 아버지는 러시아로, 일본으로 배 타고 떠나 반년에 한번씩 생선독이 올라부어오른 손에 돈뭉치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고, 어떤 아이의 어머니는 벽돌색 ‘다라이’에 비린내 풍기는 생선들을 담고 녹아내릴 듯 아픈 삭신을새벽시장 앞 약국에서 산 한 움큼의 진통제로 달래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기도 했다. 유난히 ‘이모’가 많은 친구의 어머니는 몸을 팔았고,유난히 ‘삼촌’이 많은 친구의 아버지는 깡패였다.1950년대 말, 사진작가 최민식의 망막에 잡힌 부산의 아이들. 시장통 한구석에서 국숫발을 끌어올리던 벌거숭이 여자아이나 산동네 중턱으로오르는 리어카를 밀어올리던 사내아이, 힘없이 늘어진 어미의 젖을 힘차게 빨고 있는 갓난아이. 세월은 이들을 부모로 만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러셀 크로와 톰 행크스의 유머감각‘배드 보이 vs 굿 가이’의 구도로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경쟁한 러셀 크로와 톰 행크스는 유머감각에서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꿈을 위한 레퀴엠>에서 엘렌 버스틴이 20년 더 늙고 30파운드를 불렸어도 러셀은 그녀에게 구애했을 것”이라는 사회자 스티브 마틴의농담 직후 카메라에 잡힌 크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반면 톰 행크스는 “러셀 크로 납치기도범에 대한 FBI 수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톰, 그러면 안 돼죠!”라는 마틴의 꾸지람에 정말 부끄러운 듯 시무룩하게 고개를 푹 숙여, 올 시상식 최고의 유쾌한 장면을 연출했다.제니퍼 로페즈와 비욕의 드레스오트 쿠티르 디자이너들의 캣 워크 노릇을 단단히 하는 오스카 시상식의 붉은 양탄자에서 올해 가장 눈길을 끈 여배우는 시상자로 나선제니퍼 로페즈와 주제가상 후보 비욕. 제니퍼 로페즈는 상반신의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드레스로 시선을 휘어잡았으나 사려깊은(?)중계카메라는 그녀의 노출을
2001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스냅 숏들
-
‘오스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아카데미상은 영화인들의 일종의 디너파티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 화기애애한 디너파티 뒤에는 1920년대 급성장한할리우드의 대중적 영향력에 견제 움직임을 보였던 정치권과 교육계, 교회에 대항해 영화인들이 이익과 자율성을 보호하고 자기혁신의 발판을 마련하려는‘공격적 수비’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1929년 할리우드 루스벨트호텔에서 열린 첫 시상식에는 250명의 할리우드 ‘엘리트’들이 10달러씩의회비를 내고 참석해 15개 부문의 상을 수여했고 수상 결과는 미리 각 신문사에 보도자료로 배포됐다. 이 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자이듬해 라디오가 중계에 나섰고, 지금과 같은 극장식 쇼 포맷의 행사는 1943년에 처음 꼴을 갖추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오늘날처럼 주목도높은 쇼 엔터테인먼트로 만든 TV 중계가 시작된 것은 1953년. 가 중계한 그 해 행사에서 초대 사회는 밥 호프가 맡았다. 15개부문으로 출발한 시상 부문은 영화 테크놀로지의 영역이 분화됨에 따라
아카데미 영화상의 역사
-
-
작품상<글래디에이터>감독상스티븐 소더버그(<트래픽>)여우주연상줄리아 로버츠(<에린 브로코비치>)남우주연상러셀 크로(<글래디에이터>)여우조연상마샤 게이 하든(<폴록>)남우조연상베니치오 델 토로(<트래픽>)오리지널 각본상카메론 크로(<올모스트 페이머스>)각색상스티븐 개그헌(<트래픽>)촬영상피터 파우(<와호장룡>)시각효과상존 넬슨, 로브 하비 외(<글래디에이터>)편집상스티븐 미리온(<트래픽>)음향상스콧 밀란, 밥 비머 외(<글래디에이터>)음향편집상존 존슨(<`u-571`>)미술상팀 입(<와호장룡>)의상상잰티 예이츠(<글래디에이터>)분장상릭 베이커, 게일 라이언(<그린치>)외국어영화상<와호장룡>단편영화상<키에로 세르>(플로리안갈렌버거 감독)단편애니메이션상<아버지와 딸>(마이클 두독 드 비트
아카데미 수상작 및 수상자 명단
-
The 73rdAnnual Academy Awards◆ 3월25일 열린 제73회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은 <글래디에이터>에 돌아가“혹시 아카데미 회원들이 보름달이 뜬 베벌리힐스 언덕에 몰래 모여 이마를 맞대고 사전 회합이라도 가진 게 아닐까?”어느 해보다 치열하고 기발했던 스튜디오들의 홍보 전장을 통과해 지난 3월25일(현지시각) 저녁 LA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스티브 마틴의 사회로커튼을 연 2001년 아카데미 영화상은 그런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슬며시 발동할 정도로 주요 후보작에 트로피를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12개 부문의최다 후보 지명을 받은 드림웍스의 <글래디에이터>와 외국어영화 사상 최고 기록인 10개 부문 노미네이션을 따낸 동방의 센세이션 <와호장룡>,5개 부문 후보로 오른 <트래픽>, 세 영화는 25일 저녁 내내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처럼 말머리를 다툰 끝에 <글래디에이터>가 작품상을 위시한5개, <와호장룡>이
2001 아카데미 영화상
-
식에서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영화화한 대작 <오! 인천>이 5개부문 후보에 올라 최악의 작품, 최악의 각본, 최악의 남우주연, 최악의 감독상 등 4개부문을 수상했다.보 데릭이 시종일관 관능미를 뽐낸 영화 <볼레로>도 5회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이 영화는 9개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여우주연상을 비롯해 6개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보 데릭과 감독 존 데릭 부부는 91년 11회 때 <유령은 할 수 없어>로 또다시 나란히상을 받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15회 시상식에서는 <컬러 오브 나이트>가 10개부문의 후보로 오르고도 작품상 하나만 수상하는 아쉬운(?) 기록도 세워졌다.이해부터 신설된 최악의 리메이크 또는 속편상은 로렌스 캐스단 감독, 케빈 코스트너의 <와이어트 어프>가, 최악의 커플상은 <뱀파이어와의인터뷰>의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스페셜리스트>의 샤론 스톤과 실베스터 스탤론이
골든 래즈베리상의 역사
-
골든 래즈베리상과 골든 래즈베리 재단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우선 난 영화를 많이 보는데, 좋은 영화를 아주 좋아하고 엉망인 영화를 싫어한다. 사실 좋은 영화를 만나기란 힘든 일이다. 또 하나는내가 아주 이상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란 것이다. 이런 시상식, 즉 ‘최악’에 대해 상을 준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겐 농담으로 여겨질만하니까.왜 이름을 ‘골든 래즈베리’(Golden Raspberry)라고 지었나. 사전적 의미로 ‘나무딸기’란 뜻 외에 속어로 경멸과 조소를담은 야유라는 뜻이 있던데.영어로 ‘래즈베리’란 단어는 뭔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입술을 떨면서 ‘푸르르’ 하고 내는 소리를 말한다. 그리고 골든 래즈베리상의별칭인 ‘래지’는 누군가를 비웃다, 놀리다, 무안을 준다는 뜻의 동사 ‘래즈’(razz)에서 왔다. 또 미국의 대부분 상의 이름을 안다면눈치챘겠지만, 에미상, 토니상, 그래미상 등 대부분 ‘이’음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Razz+ie로 만들었다. 아마 미국사람들은
“코폴라 딸? 우리 때문에 연기 관뒀다지, 아마”
-
◆최악의 영화 선정하는 골든 래즈베리 영화제, 어느덧 21회 맞아LA의 도로시 챈들러 파비온에서 제5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던 1981년 3월31일, 샌타모니카틴셀타운이라는 곳의 한 가정집에서는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조촐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인 존 윌슨과 그의 동료들은어설프기 그지없는 시상대와 가짜 마이크가 설치된 거실에서 오스카 시상식 중계방송을 보며 자기들만의 영화제를 열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지금은연례행사로 널리 알려진 ‘최악의 영화상’ 골든 래즈베리상의 시작이었다. 줄여서 래지상(Razzie Awards)으로도 불리는 이 상은 그시작이야 어쨌든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선 최고의 영화나 배우, 스탭한테 상을 수여하는 여타 상과는 달리 최악의 작품 및 영화인을 대상으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고수해왔다. 물론 이 영화상 시상식을 TV로 중계하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매년 오스카상 시상식 전날 발표하는 래
골든 래즈베리상
-
1990.1.22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대회. 이에 정부,무노동 무임금 등을 골자로 한 단체교섭 공동지침 마련.“저는 지금 16mm 극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하였다는 영화법위반 죄명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적용된 법 조항이 그 입법취지와는 상관없이 일반적이고 사회통념적인 법상식에 어긋난 것이고 현행 영화법을 구시대적으로해석하여 영화창작 혹은 그 예술행위를 국가기관에서 독점적,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에 따른 결과라면 문제는 심각합니다.”-93.4.24 당시 <파업전야>를 상영해 공연법 위반으로 기소, 피고였던 이용배감독이 대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중에서.“제작하면서 상영계획을 짰고, 그대로 일반에 공개한 최초의 영화였다. 현장 관객을 설정하고 만든 작품이니만큼, 압수수색이 들어온 뒤에도 전국단위의 공동투쟁이 가능했던 것이다. 좋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장윤현 감독이 떠나고나서 예전의 영광에 붕 떠 있었던 것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파업전야>외
-
1987년 6월10일 경찰, 민주당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최의 ‘박종철군고문치사 조작·은폐 규난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봉쇄, 전국 18개 도시 가두시위.“대학영화에 첫 시련이 닥쳤다. 86년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부활하는 산하>의 상영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에일제 검거령이 내려졌다.… 수사기관은 이 영화 제작의 배후로 서울영상집단(서영집)을 지목,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서영집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사실이 드러나자 서영집이 제작한 <파랑새>에 대해 영화법 심의 조항을 문제삼아 홍기선, 이효인을 구속했다. 그러나 <파랑새> 사건은 ‘뜻밖에도’대학영화패의 연합체 결성의 계기로 작용했다.… 87년 5월 경희대 그림자놀이, 고려대 돌빛, 상명여대 얼레 등 13개 대학영화패가 모여 대학영화연합(대영연)을결성한다.… 대영연 결성 취지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검은 먹구름의 실체인 미국문화를 과감히 걷어찰 민족영화의 창달”을 선언하고 있다.… 대영연은87년 1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인재를위하여>외
-
1983, 서울시, 국내건설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도시재개발 계획 추진.“1988년 가을. <상계동 올림픽>을 보았다. 신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삶의 공간을 박탈당한상계동 주민들의 모습이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카메라는 가진 자들만의 것이 아니구나. 조그마한 희망을 움켜쥐기 위해 셔터를 누르고, 프레임가득 세상을 안을 수 있는 거구나. 영화를 생산하는 사람들 그 한켠에 세상과 정면승부를 펼치며 현재를 통해 미래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구나.아! 깨달음을 얻었다.”<씨네21> 152호 내 인생의 영화(변영주) 중에서“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80년대는 찍기만 했지. 운동의 보조수단으로서 역할을 했고. (그때)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하지만 (90년대가 오고) 사회가 변했다고 해도, 늦게 철든 사람들은 이런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80년대 중심에 있지않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버틸 힘이 남았던 거지. 좌절의 정도도 약했을 테니까. 단편영화들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상계동올림픽>외
-
1980.5.17 정부 비상계엄 전국 확대, 계엄포고 10호 발표“서로가 타인이었던 자들이 영화라는 낯선 형식의 틀 안에서 문화원을 찾아다니며 원했던 영화를 봤고,중국집과 다방을 옮겨다니며 영화이론 서적도 뒤적거려봤으며 또한 지금은 사라진 아르바이트 덕분으로 세명 정도가 8mm 카메라를 구입하여 몇편의습작을 통해 작품제작에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애착을 설익은 막걸리 몇잔으로 토해내기도 했다.”-80.11.7∼8일 서울대학교 26동 대형강의실에서 열린 얄라셩의 첫 번째 영화마당자료집중에서“영화는 일종의 도피 비슷한 것이었어. 그래서 영화과로 가게 됐고. 개인 작업을 하다 제1회 작은영화제에서 얄라셩 같은 곳도 있구나, 처음알았지. 배타적인 감정들도 있었어. 운동 차원에서 접근하는, 순수하지 못한(웃음) 이들이었으니까. 그래도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영화를만들어보자는 생각들이었던 것 같애. 누구에게나 그런 강박증 같은 게 있었어. 그때는. 물론 다들 테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판놀이 아리랑>외
-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3월30일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려그들이 온다. “모순이 곧 희망”이던 시절, 역사적 환부를 들추라는 시대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도덕률로 받아들인 독립영화들이온다.3월30일부터 3일 동안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은 값진 행사다. 몇몇 작품이 간헐적으로 상영된적은 있었지만, 이번 회고전처럼 80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독립영화의 대명사격인 영화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적은 없었다. ‘매혹의 기억’이라는부제를 단 이번 상영회에서 보여질 영화는 총 16편. 80년 장길수 감독의 <강의 남쪽>을 시작으로 서울영화집단의 <판놀이 아리랑> <그여름>, 푸른영상의 <상계동 올림픽>,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이다. 여기에 90년대 이후 나온 실험영화들이 추가된다.아트선재센터와 함께 행사를 준비중인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조영각 사무국장은 “모든 것이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