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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를 보는 김인식,서동진의 두 시선(2)
2002-10-18

편견에 침을 뱉어라!

김인식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죠. 동성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세상에 던질 때 꼭 섹스여야 했냐는 등의. 저는 가장 다이렉트한 것을 택했어요. 가족에서 차별받고 직장, 사회에서 차별받고 뭐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원색적이고 직접적인 데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파워와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섹스신을 처음에 넣어 문제제기한 거죠. 또 하나가 있다면,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겁니다. 관객에게 ‘내 영화 장난 아닙니다, 정신 차리고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거죠.

서동진

그러면 일주라는 여성 캐릭터에 관한 건데요. 게이영화에서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게 애정의 삼각관계입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서로 원치 않는 관계에 관여하게 되었을 때, 한 여성이 등장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중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관객은 이 관계를 해석해주는 유력한 목소리를 그녀를 통해 듣게 됩니다. 감독들은 대개 이 삼각관계에서 여성의 언어를 통해서 동성애와 이성애의 편견에 관한 어떤 진술을 여성에게 떠넘기는 것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제가 ‘이건 게이 버전의 <삼포가는 길>이라는 느낌’이라고 얘기했던 거거든요.

김인식

일주가 처음엔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신이 끝날 때까지도 전형적인 캐릭터로 머무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일주가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일주가 잡는데도 대식이 떠나가니까, 일주는 대식에게 가장 소중한 석원을 뺏어버리잖아요. 저는 인간의 양면성에 초점을 맞춘 거예요. 사실 동진씨가 얘기하는 것과 달리, 일주는 갈등을 조장하려 노력하고 있지, 해결하려 하지 않아요. 게다가 삼각관계는 게이영화에만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도발3 - 왜 삼각관계인가?

서동진

그러니까 삼각관계가 게이영화의 전유물이라는 게 아니라, 이 삼각관계 속에서 서로 갈등하는 두 주체인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남성 사이에서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이 삼각관계에서 여성이 이 두 남자와 무관한 한 주체의 입장을 차지하면서, 은연중에 감독은 이 두 관계를 해석할 수 있는 편안한 위치를 맞게 된다는 거죠. 관객은 그 여성의 위치에서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이를테면 일주처럼 성정체성을 떠나 사랑할 수 있다, 성정체성은 우리가 나누는 진정한 사랑에서는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문제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감독 자신의 어떤 입장을, 관객이 이 영화를 보는 데 있어 편안한 어떤 위치를 제공해주는 게 아니냐는 거죠.

김인식

제가 생각했던 일주의 역할은 다른 것이었어요. 대식과 석원간의 그것과는 다른 강력한 형태의 소통의 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일주 역시 거부당하잖아요. 절망하는 거고. 일주의 소통불가능에 힘을 받아가지고 결국 둘만이 남게 되는 거잖아요. 비단 일주만이 아니에요. 서울역 앞 조씨나 트럭 운전사 민석도 마찬가지죠. 이들이 2시간 동안 이 극을 끌고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에너지원이라 생각했어요. 또 이들 캐릭터를 통해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임팩트를 주려는 것도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대식과 카페 종업원이 화장실에서 섹스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섹스가 끝난 뒤 종업원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오잖아요. 오케이 사인을 내고 카메라를 접는 순간, 아차 했어요. 아, 이렇게 나오는 게 아니다. 정말 당당히 나와야 하는데. 동성애자들의 섹스 자체를 프라이드를 갖고 그려보고 싶었는데 아쉬웠어요. 그 부분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하고….

서동진

그런데 지금 대화를 나누면서 불협화음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동성애자 영화에 관한 영화를 할 때마다 저는 영화평론가로서 얘기한다기보다는, 일종의 동성애 원주민 대표로 나와서(웃음) 이 영화가 충분히 사실을 재현하고 있느냐는 판별을 내려야 하는 심판관의 위치를 강제적으로 떠맡게 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이 영화가 동성애자를 명예훼손하는지 아닌지에 관해서 따지는 책임을 갖고 나오든가. 감독들은 언제나 피의자 위치에 있고 저는 언제나 검사 위치가 돼서, ‘당신 우리를 이렇게 모욕해도 돼’라며 항변하는 유사법정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요.

김인식

잠깐만요. 내가 동진씨에게 그걸 설명하는 게 아니고, 지금 이 지면에서 관객을 향해 그런 오해들이 없었으면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솔직히 이 대담을 안 하고 싶었어요. 동진씨 말대로 피의자 입장에서 뭔가를 계속 설명해야 한다면, 동진씨도 원치 않을 거라 생각했었고. 영화 이야기만 죽 했으면 했어요.

도발4 - 왜 시멘트 공장인가 왜 채석장인가

서동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영화 이야기를 계속 하죠.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시멘트 공장이나 냉동창고, 채석장 같은 주로 남성 육체 노동자가 모여 있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런 곳은 남자들이 전유하고 독점하고 있는 공간, 즉 동성 유대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를 다루는 영화가 동성애자의 유폐된 삶의 공간, 말 그대로 성애화된 공간을 보여주는 대신 이런 동성 유대적 공간에 위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인식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제 의도는 사실 좀 그런 것과는 무관해요. 왜 기존 영화 속 게이는 여성화되고, 희화화되고, 비하되고, 함부로 욕해도 되는 대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잖아요. 저는 그래서 정반대의 캐릭터로 마초를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게이 코드가 들어가 있지만, 대단히 남성적이고 땀 냄새 확확 나는 힘있는 영화를 찍자,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서동진

그런데 문제는 이 동성 유대적인 공간은 섹스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만 유지된다는 것이죠. 석원과 대식의 관계에서처럼 동성 유대적인 관계는 섹스가 끼어들 때 산산이 무너져버리죠. 성정체성에 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선 충분히 맺을 수 있었던 관계가 이후 성정체성의 차이로 불가능해진다는, 이런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이 영화가 동성애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앞서 말한 동성 유대적인 기능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어떤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기제는 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적 진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자면 <로드무비>는 우리 사회의 동성 유대적 관계들을 성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