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로드무비>를 보는 김인식,서동진의 두 시선(1)
2002-10-18

편견에 침을 뱉어라!

두 남자의 서글픈 사랑 이야기 <로드무비>는 작품적 성취에 관한 논의를 별도로 하더라도, 그 용기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한 영화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질시가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동성애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동성간 성행위를 적나라한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만만치 않은 의미를 획득한다.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숫자에 비해 사회적 논의가 턱없이 빈약한 한국사회에서 이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활발하고 진지한 대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일정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동성애 담론에 상당한 영향을 발휘했고, 전주영화제와 퀴어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뛰었던, 그리고 현재도 뛰고 있는 영화평론가 서동진씨가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을 만났다.편집자

서동진

감독님, 오랜만이네요.

김인식

그렇군요. 3년 정도 됐나요.(그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던 김인식 감독은 서동진을 찾아가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서동진

사실 이 영화를 올해 전주영화제 때 상영하려 했는데 싸이더스와 조율이 잘 안 돼서 못 했어요.

김인식

저는 잘 모르지만, 회사 입장에선 개봉 전에 노출되는 데 신중했나 보네요.

서동진

밴쿠버영화제 프로그래머인 토니 레인즈가 <로드무비>를 굉장히 잘 봤다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김인식

토니 레인즈는 전주영화제로 한국에 왔을 때 이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로 보고, 8월에 서울에서 만났어요. 내 영화를 좋게 본 분이니까 나는 고마워요. 이 영화를 세상에 끄집어내준 셈이기도 하고.

도발1 - 왜 직설적으로 동성애를 강조하나

서동진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금까지 한국에선 동성애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표현하는 영화들도 동성애와 무관한 것처럼 은폐하려고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로드무비>는 굉장히 직접적으로 동성애자 영화라고 강조하는 편인데, 그런 전략을 특별히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김인식

3년 전 제가 시놉시스를 들고가 동진씨에게 자문을 구했잖아요. 그때 동진씨가 내게 한 말이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도울 게 없을 것 같다. 이건 퀴어무비가 아니다.’ 사실 제가 퀴어무비를 본격적으로 추구했다면 그런 시나리오를 쓰진 않았을 것 같아요. 게이 커뮤니티에 직접 들어가서 밑바닥 이야기를 하지. <로드무비>가 취하고 있는 형태는 그 공동체에서 벗어나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를 만나고 하면서 소통문제를 얘기하는 거죠. 한 발짝 비켜서 있는 거예요. 저는 언론매체에서 이 영화가 동성애영화라고 하는데 거부감은 없지만, 본격적인 동성애영화에 편입될 수 있나 하는 의문도 들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얘기였거든요.

서동진

대개의 게이 레즈비언 영화가 국내에서 알려질 때, 일종의 알리바이 같은 게 있어요. 이건 동성애영화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 이야기라는 거죠. 이를테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당신은 영화 속 그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사랑을 발견할 것이다’는 식으로. 사랑을 하는 주체가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간에 사랑 그 자체는 숭고하다는 얘긴데, 의문이 드는 것은 <로드무비>에서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주체가 갖고 있는 특성을 삭제하려 한다면, 그러니까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주인공의 동성애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울 수 있다면, 왜 굳이 동성애자를 끌어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김인식

그동안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써오면서 제겐 일관된 주제가 있어요. 그건 인간과 인간의 소통문제거든요. 그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거기에는 큰 절벽이 있는 거잖아요. 그 절벽은 한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애가 클수록 극복하면 성취감이 큰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자와 동성애 코드를 끌어들였고,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일정부분이나마 소통이라는 문제를 획득했다고 생각해요.

도발2 - 왜 첫 장면이 섹스인가

서동진

감독님이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 두 사람간의 관계와 소통을 화면 내에서 조직하고 있는 시선이라는 게 영 안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과도하게 시점 숏을 억제한 건 아닐까 하는 것이거든요. 가장 첫 장면인 애널섹스신부터 석원이 대식의 사랑을 수락하는 종반의 염전신까지 카메라가 시점이라기보다는 외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거든요.

김인식

그건 연출 스타일과 관련된 문제 같아요. 제 영화에선 상황들이 툭툭 주어지고 배우들의 디테일이 많지 않아요. 지적하셨다시피 시선교환도 거의 없고. 일단 내 스타일 자체는 상황을 구축하고 그게 모여서 큰 드라마투르기로 가는 것이고요. 저는 디테일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내가 신경을 많이 쓴 것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비주얼 측면이었어요.

서동진

그런 대상과의 거리두기는 전 긍정적이라고 봤어요.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인습적인 편견을 넘어 사랑을 하는 두 주체로 받아들이도록 관객에게 강요하는 작품보다는, 우리 자체가 갖고 있는 인습적인 장벽 내에서 그 관계를 일정한 거리 속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 그런 것이라면 영화적 장치가 된다고 생각해요.

김인식

저는 <로드무비>를 찍으면서 최대한 내 주관을 빼려 했어요. 대단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동성애나 이성애라는 코드에 함몰되지 않고,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찍으려 노력했었어요.

서동진

영화 초반부터 굉장히 공격적으로 성행위 장면을 보여주면서 도발로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우리 사회가 그토록 외면하려 했던 동성애가 한점의 섹스에 불과했을까 하는 인상을 받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