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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 디자인> 김민수 지음/ 그린비 펴냄
9·11 발생 8일 뒤, 뉴욕 <데일리 뉴스>와 함께 밀턴 글레이저의 포스터 수백만부가 배포되었다. 글레이저가 자신의 1975년판 원형을 재해석해 9·11 테러 되새김용 캠페인으로 유포한 이 포스터는 곧 지하철 벽면과 우체통 등 공공장소와 시설물 곳곳에 붙여져 포스터로서 공공성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I ♥ NY MORE THAN EVER’, 즉 ‘어느 때보다 더 뉴욕을 사랑한다’는 문구 때문만이 아니라 맨해튼에서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던 위치에 해당하는 하트 안에 혈흔을 그려넣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처난 심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치유를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그곳의 상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필로 디자인>은 글레이저와 같은 여러 디자이너들의 사례를 통해 자본과 기술이 알파와 오메가가 되어버린 21세기의 화두로 ‘인간’을 제시한다. 낭만적이거나 복고적인 정서의 발로는 아니다. 디자
살아 숨쉬는 디자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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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번째주> 3월30일(금) MBC 새벽 1시
51이 의미하는 것은? 지정학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의 50개 주에 이은 다른 장소, 영국을 지칭하며 약물에 대입한다면 그것은 일반 환각제보다 51배 강력한 신종 마약을 의미한다. 마약 거래를 둘러싼 소동극을 담은 <51번째주>에서 마약 제조업자 새뮤얼 L. 잭슨을 쫓는 여자 킬러는 에밀리 모티머다. 영국의 저명한 극작가 존 모티머를 아버지로 둔 그녀는 영문학을 전공한 뒤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았다.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나쁜 피> 등 시나리오 각색가로도 활동하던 그녀가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TV드라마 단역으로 출연하면서부터. 이후 꾸준히 브라운관을 두드리던 그녀는 96년 <고스트 앤 다크니스>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휴 그랜트(<노팅힐>), 브루스 윌리스(<키드>)의 ‘그녀’로 등장하던 모티머는 니콜 홀로프세너의 독립영화 <러브리
[앗! 당신] 한 손엔 대본, 한 손엔 펜, 에밀리 모티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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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이 세인의 기억에 각인된 계기는 <드럭스토어 카우보이>(1989)와 <아이다호>(1991)였다. 특히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는 그의 데뷔작처럼 오해되기도 하지만, 그의 실제 장편 데뷔작은 <말라노체>(1985)이다. LA 비평가협회 독립영화상을 수상하며 퀴어영화의 숨은 걸작으로 꽤 명성이 자자했음에도 지금까지 <말라노체>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실질적인 개봉마저도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의 성공 이후 소규모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렇게 제목으로만 전해지던 <말라노체>가 2006년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특별 상영되고 프랑스와 국내까지 정식 개봉하는 등 부활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은, 그 작품 자체보다는 <게리>(2002)와 <엘리펀트>(2003) 그리고 <라스트 데이즈>(2005)로 이어지며 영화 이미지를 끊임없이 혁신해나가는 구
쓸쓸했지만 소중한 기억의 이미지 <말라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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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3월31일(토) 밤 11시
바흐만 고바디의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통해 이미 우리는 쿠르드인들의 고단한 삶을 목격한 바 있다. 술에 취한 노새를 끌고 국경을 넘나드는 소년의 삶에서 희망을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치였다.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뿌리를 상실당한 채 부유하는 쿠르드인의 삶은 일마즈 귀니의 <벽>에서도 잘 드러난다. 터키 태생이자 쿠르드인 부모를 둔 감독은 터키 내의 수용소로 시선을 돌린다. 그 안에는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수감된 쿠르드인들이 있다. 특히 감독은 이들 중에서도 격한 노동과 간수들의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는 이들을 둘러싼 물리적인 벽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편견과 억압의 벽을 형상화하며, 궁극에는 그 벽을 죽음의 벽으로 그린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처럼 이곳에도 희망은 없다. <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망없는 소년들을 위하여,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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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이 죽었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도 희미한 권력의 향내는 어김없이 나게 마련이어서 비탈길 비포장도로를 자전거 타고 가다 미끄러져 죽은 전임 이장 대신 새 이장을 누구로 할 것인지로 마을은 잠시 술렁인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없던 조춘삼(차승원)이 이장이 된다. 유망한 후보자들 그러니까 나이 지긋한 40, 50대 형님들 몇몇이서 머리를 맞대고 자기들 중 한명이 이장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숙덕거리던 그때 옆에 있던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이번에는 좀 젊은 놈을 뽑아”라고 불호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그럴 만한 젊은 놈은 서른일곱 조춘삼뿐이다.
이장 노릇 중 하나가 선거철 벽보 붙이기다. 선거에 출마한 군수 후보들의 포스터를 붙이다가 조춘삼은 거기서 낯익은 얼굴 하나를 본다. 노대규(유해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생, 이라기보다는 어느 모로 보나 나보다 못할 것 같은 녀석. 이 녀석은 초등학교 내내 반장이던 내 밑에서 부반장이나 하던 놈이 아닌
농촌 훈남들의 우정에 관한 영화 <이장과 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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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을 보다 속으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얼마 만에 보는 노골적 백인 우월주의인가’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씨네21>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를 뒤져보니 역시나 활발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입장과 영화에 숨은 이데올로기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고 별 반개부터 별 다섯개까지 영화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으로 갈렸다. 이번호 독자면을 찬반논쟁에 할애한 것은 그래서다. 나로 말하면 영화를 볼 때 정치적 함의에만 매몰되면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300>을 보면서 정치적 의미를 지우고 즐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정치적 의미를 따져보는 흥미를 빼고 <300>을 보라는 건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살만 1파운드를 떼어가라는 <베니스의 상인>식 판결과 다를 바 없다. 나의 뇌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일까? 주변부 아시아인의 콤플렉스나 피해의식이 작동한 것이라고
[편집장이 독자에게] <300>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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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어느 날 서울종합운동장 광장에 느닷없이 대형 천막이 들어섰다. 그리고 노랑과 파랑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이 천막은 요정의 손길이라도 빌린 듯 천천히 솟아올랐다. 이곳의 주인은 캐나다에 뿌리를 둔 세계적인 공연단체 ‘태양의 서커스’. 두바이를 환호하게 만든 데 이어 서울을 방문한 이들은 3월29일 처음으로 한국 손님을 불러모아 정성껏 준비한 공연 <퀴담>을 선보일 예정이다. 탄성은 달궈지지 않았고 감격의 눈물도 채 맺히지 않았지만 어떤 공연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공연의 시작을 고대하는 사람들, 포스터를 훔쳐보며 궁금해한 사람들 혹은 삭막한 도시를 잊고 잠시나마 백일몽에 젖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여기 태양의 서커스와 <퀴담>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서커스에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 난쟁이 혹은 키다리의 등장, 야생성을 잃은 듯한 동물들의 묘기,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는 곡예적인 동작, 지나치게 기교적인 아이들의 춤과 표정까지. 서커스가 지배하는 밤은 정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서커스, 태양의 서커스 <퀴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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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의 미래유보를 한미FTA에서 관철시키겠다." 한미FTA협상과정에서 불거진 스크린쿼터 현행유보논란에 대해 문화관광부가 입장을 표명했다. 27일 오후 1시 30분, 문화관광부 5층 제2회의실에서 열린 영화인대표들과의 면담에서 문화관광부 측은 "3월 23일자 <한겨레>가 보도한 ’스크린쿼터 또 희상카드로 삼나’란 제목의 머릿기사는 사실과 다르며, 문화관광부는 스크린쿼터의 미래유보를 관철시키도록 영화계와 함게 다각도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은 영화인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정지영 영화인대책위 위원장을 비롯해 이준동 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장동찬 영화제작가협회 사무국장, 양윤모 영화평론가협회 전 회장, 신우철 영화인협회 이사장, 양기환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 대변인 등이 참석했으며 문화관광부 측에서는 김명곤 장관이 해외출장중인 관계로 조창희 문화산업국장과 최병구 영상산업팀장을 비롯한 관계자 2명이 함께 했다. 정지영 위원장은 "FTA협상시안이 얼마
문화관광부, "스크린쿼터 현행유보는 사실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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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25주년 기념판> Gandhi(25th Anniversary Edition)
필자는 리처드 애튼버러를 스펙터클에 목매는 감독으로 알았다. 굵직한 영국영화에서 배우로 활약한 그가 데이비드 린의 후기 작품을 동경하는 감독이 된 걸로 생각했다. 그래서 아카데미 8개 부문 수상작인 <간디>를 시대착오적인 구식영화로 대한 게 사실이다. 혹시 필자 같은 사람이 있다면, 25주년 기념판으로 제작된 DVD 음성해설을 꼭 들어봐야 한다. 팔순이 넘은 감독은 3시간이 넘는 음성해설에 종종 힘겨워 보이지만, 그의 느린 목소리가 지난했던 제작과정과 닮았음을 알게 될 즈음엔 아주 편안하게 들린다. 이야기는 그가 뉴스릴로 간디를 처음 본 193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다. 간디를 한낱 구경거리로 취급한 주변 관객과 달리 “저분은 이 시대 최고의 위인이야”라고 일러준 아버지의 말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1960년경, 그는 모티랄 코타리라는 인물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간
[코멘터리] 간디를 향한 열정과 소망과 모험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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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는 1989년 12월24일 밤 9시부터 1990년 12월24일 밤 10시까지 일곱 혹은 여덟명의 친구에게 벌어지는 사랑과 죽음 그리고 죽음과 희망의 이야기다. 1980년대는 너무나 얄팍하고 심심한데다 대중음악과 영화의 걸작 또한 드물어 도무지 기억할 게 없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대의 마지막 지점에서, 레이건과 부시 그리고 에이즈, 마약, 빈곤의 그림자 아래 살았던 뉴욕의 청춘을 회고하는 <렌트>는 1980년대를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서 보헤미안의 삶을 사는 풋내기 예술가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현대판 <라보엠>에 다름 아닌데, <라보엠>의 미미와 반대로 <렌트>의 미미가 죽음에서 살아남는 것에 영화의 주제가 있다. 현실은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아 한줄기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에 영화 작업을 시작해 대중영화 감독으로 살아남은 크리스 콜럼
보물상자에 넣어두고 싶은 영화 안팎의 이야기들 <렌트: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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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유튜브 비디오 어워드 수상자가 현지시각으로 3월26일 월요일 유튜브 비디오 어워드 사이트를 통해서 발표됐다. 지난주 7개 카테고리 별로 10개 후보를 선정한 유투브는 이용자들에게 70편의 후보작들의 선호 순위를 매기게 했고, 투표는 5일간 진행됐다. 수상 부문은 가장 창의적인 영상(Most Creative), 베스트 코미디, 베스트 코멘터리, 베스트 시리즈, 베스트 뮤직비디오, 가장 감동적인 영상(Most Inspirational), 가장 사랑스러운 영상(Most Adorable)의 7부문이며, 인기 투표로 결정된 7편의 영상은 사이트를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
운동기구로만 사용될 것 같은 러닝머신을 안무의 일부로 재치있게 이용한 시카고 밴드 'OK Go'의 <Here It Goes Again> 뮤직비디오는 '가장 창의적인 영상' 부문의 수상자로 뽑혔다. '베스트 시리즈' 부문은 <Ask A Ninja>라는 시리즈를 만든 켄트 니콜스와 더글라스
제1회 유튜브 비디오 어워드 수상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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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3월27일 오후4시30분
장소 시네코아
이 영화
중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자 마츠코(나카타니 미키)는 25년의 세월동안 왜, 어떻게 ‘혐오스럽다’는 수식어를 갖게됐을까. 마츠코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문을 여는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은 마츠코의 조카 쇼(에이타)가 고모의 유품을 챙기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한때는 밝고 명랑한 소녀였지만, 아픈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편애로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마츠코. 그녀는 수학여행에서 벌어진 절도사건의 누명을 쓰고 교사직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가출과 방황, 절도범 제자인 료(이세야 유스케)와의 재회와 동거. 마츠코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인생의 달고 쓴맛을 극단적으로 경험한다. 국내에선 <불량공주 모모코>로 알려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2006년작. 굴곡을 요동치는 한 여자의 일생을 유머와 경쾌한 리듬으로 풀어내는 개성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에이타, 이세야 유스케는 물론 여주
경쾌하게 변주된 한 여인의 잔혹사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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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는 <300>을 본 누군가(네티즌 seam)가 “300인분의 복근과 300개의 삼각팬티를 봤다”고 전하고 있고, 주변의 누군가는 “주연 컴퓨터그래픽, 조연 300명의 인간들”이라고도 말한다. <300>은 휘황찬란한 컴퓨터그래픽과 인간의 구릿빛 근육이 기묘한 동거를 이루는 신화의 장이다. 그중 복근 중의 복근, 조연 중의 주연을 꼽으라면 단연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 결사대 300명의 전사를 데리고 나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그 역을 맡은 제라드 버틀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CG와 육체에 대해서라면 적어도 그가 가장 할 말이 많다.
완성된 영화의 CG 수준이 거의 “예술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는 잠깐 털어놓는다. “(힘들게 촬영한) 그만큼의 대가가 분명 있었던 거죠. 하지만… 운 나쁘게도 촬영하는 내내 나는 지랄같이도 그걸 볼 수가 없었거든요. 녹색의 스크린만 쳐다봐야 했죠”라며 허공을 보고 감정을 잡았을 그 고
숀 코너리를 뒤를 잇는 스코틀랜드의 유망주, <300>의 제라드 버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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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혜와 민지혜. 예명을 가진 연예인은 많다. 그럴싸해 보이는 예명이 의외로 유치한 의미를 갖는 경우도 많다. 연예계에 들어오며 새로 짓는 예명은 작명 시기보다 작품이 쌓인 뒤, 이미지가 형성된 뒤, 의미를 갖는다. 왕지혜란 이름의 여배우 민지혜도 지금은 단막극의 여주인공이나 CF 모델, JTL, 클릭B 뮤직비디오의 여자일 뿐이다. 신인이란 이름이 민망할 정도의 연기 경력을 갖고 있지만, 배우라는 이름은 쑥스러운 정도. <뷰티풀 선데이>에서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여자 수연은 그런 의미에서 민지혜란 이름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고등학교 시절 연예계 데뷔를 준비하며, “왕씨가 너무 센 어감”이란 이유로 성을 바꾼 민지혜는 길거리 캐스팅과 잡지 모델로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연예인, 배우의 꿈을 가지고도 장래희망란에 다른 직업을 적을 정도로 소심했지만, 학교까지 찾아온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의 캐스팅 제의에 선뜻 응하며 용기를 냈
새로운 이름의 새로운 출발, <뷰티풀 선데이>의 민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