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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바람난 여자들에 관한 영화다. 직장 상사와 바람난 방송국 아나운서, 남자친구의 아들과 바람난 여자, 무료한 부부생활 중에 있다가 섹시한 정원사를 보고 자위에 눈을 뜬 여자 등 일탈도 다양한 종류로 그려진다. 영화는 “칠레 기혼 여성의 63%가 불륜 중에 있다”라는 통계 결과를 놓고 대담 토론을 벌이는 TV프로그램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배신하지 말고 좇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아스럽게도 메인 스토리는 주제와 충돌한다. 인기 아나운서 세실리아는 상사와 불륜을 일으킨 대가를 톡톡히 치른 다음 우울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즐길 만한 대중영화의 모양새를 띠었고 고민하며 볼 필요는 없을 듯. 2004년작인 이 영화는 현지 개봉 당시 남미에서 내로라하는 톱 여배우들의 대거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바람난 여자들에 관한 영화 <바람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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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 은호(유진)와 기백(하석진)은 결혼을 하고 싶지만 양가 부모의 허락을 못 받고 있다. 은호의 아버지 지만(임채무)은 보수적인 가부장이고, 기백의 엄마 심말년(김수미)은 남편 없이 억척스럽게 벌어서 자식을 키워온 강남의 땅부자. 두 집안의 경제 수준과 사고방식 차이가 충돌을 빚으면서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연출된다. 젊은이들의 사랑을 부모가 반대하고 나선다는 설정이 <미트 페어런츠>를 연상시키나 영화는 그보다 덜 웃기고 지루하다. 은호-기백의 멜로 라인은 식상하기 이전에 성의가 없다. 안연홍과 윤다훈의 조연 효과도 크지 않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스크린 데뷔를 치른 유진이 아니라 김수미다. 이 영화는 ‘못 말리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캐릭터는 역시 상투적이나 김수미의 ‘진짜 연기’는 무의미한 클로즈업 숏들을 꽉 채우고 간다.
저렴한 한국식 코믹멜로물 <못 말리는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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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11분, 8시23분, 17시13분. 지하철 기관사 만수(김강우)는 한치의 시간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근무 속에 산다. 그는 <샘터>라는 월간지가 새로 나오는 날이면 간식과 함께 그 책을 들고 플랫폼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름 모를 여인의 존재에 조금씩 삶의 활력을 얻어간다. 독문과 강사인 한나(손태영)는 자신의 대학 선배였던 같은 과 교수와 불륜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나의 생일 기념으로 둘은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기대를 품게 했던 새로운 인연과 생일선물은, 보란 듯이 물거품이 된다. 눈이 오는 날, 서로 남남인 만수와 한나는 경의선에 오른다. 두 사람은 예정에 없이 종착역인 임진강 역에 내리게 되고, 집으로 돌아갈 길이 끊긴 탓에 인근 모텔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다.
<경의선>은 너무 무거워서 함부로 쏟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 안에 채우고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다. 감독은 아주 느리고 깊고 세밀하게, 만수와 한나의 한달 전
김강우의 재발견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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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상어>는 판타지의 힘을 빌려 기적을 창조하고, 그 기적의 순간으로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영철(구성환)은 자신이 직접 잡은 백상어를 친구 준구(홍기준)에게 자랑하기 위해 대구로 향한다. 하지만 도박에 빠져 있는 준구는 영철의 전화가 귀찮기만 하다. 준구가 약속을 반복적으로 미루는 동안, 영철은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한 유수(홍승일), 그리고 공원 주변을 하염없이 서성이는 미친 여자 은숙(김미야)과 조우하게 된다. 유수는 가족들이 기별도 없이 이사한 통에 정처없이 떠돌아야 하고, 은숙은 집단 강간을 당한 이후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다. 은숙은 영철이 친구를 위해 가져온 백상어가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를 자신이 사산한 아기의 냄새라고 착각하고, 영철와 유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은숙을 피해 대구의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영철은 그녀에게 썩은 백상어를 건네주고 또다시 준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상어>는
기적의 판타지 <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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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었다. 더 중요한 것은 실컷 울고 나서 뒤늦게 속은 기분이 들거나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했던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될 것 같은 <내일의 기억>은 강력하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최루 드라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최루물로서 감정을 착취하지 않는다. 품위를 갖추면서도 관객의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광고회사 직원인 사에키(와타나베 겐)는 성실한 일처리로 회사의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건망증 증세가 깊어지면서 고민에 빠진다. 아내 에미코(히구치 가나코)의 강권으로 병원에 간 사에키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라는 진단을 받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결국 딸의 결혼식을 치른 뒤 사직하고 본격적인 투병 생활에 들어간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눈물겨운 투병을 다룬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간다. 코믹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벼운 증세에서 시작해 점점 병세가 심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최루 드라마 <내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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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7일 월요일, <ABC>는 현재 세번째 시즌이 방영중인 TV시리즈 <로스트>의 종착역을 발표했다. 호주에서 출발한 미국행 비행기가 수수께끼로 가득한 섬에 추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시즌이 전개됨에 따라 짜임새있게 꾸려가고 있는 <로스트>는 한국배우 김윤진과 한국계 미국배우 대니얼 대 김 등이 출연하면서 국내에서도 방송된 미국 드라마. <ABC>는 앞으로 각 16편으로 구성된 3개 시즌을 더 방영할 예정이며 마지막 에피소드가 될 117편은 2009년과 2010년에 걸쳐서 방영되는 여섯번째 시즌으로 대미를 장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로스트>의 첫 두 시즌은 모두 24편씩 48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는데, 앞으로 만들어질 시즌에 대해서 <ABC>는 같은 분량을 16편씩 세개 시즌으로 나눠서 방영 기간을 연장한 것.
<로스트>에 행보에 대해서는 올해 1월부터 발표가 예상됐는데, 쇼의 제작자 측에서 시리즈의 마
인기 TV 시리즈 <로스트> 딱 3시즌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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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3>가 춘궁기에 허덕이던 극장가의 구세주가 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힘이겠으나 <스파이더맨 3>가 스펙터클만 요란한 영화는 아니다. 2편만큼 훌륭하진 않지만 3편 역시 시리즈 특유의 개성은 살아 있다. 이웃집 소년 같은 피터 파커의 성장담인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각각 주제를 함축하는 대사를 갖고 있다. 평범한 젊은이가 슈퍼히어로가 되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1편은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선언이 나온다. “막강한 힘에는 막대한 책임감이 따른다.” 슈퍼히어로의 사랑과 고난에 관한 이야기인 2편에선 메리 제인의 대사를 들 수 있다. “난 늘 너의 문 앞에 있었어. 누군가 널 구할 때도 있어야 되지 않겠니?” 슈퍼히어로도 외롭고 힘들며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3편도 이런 식으로 규정짓자면 용서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벤 아저씨는 우리가 가슴속에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길 원하진 않았을 게다. 복수
[편집장이 독자에게] <스파이더맨 3>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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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건 이후, 서방세계에서 이슬람과 관련한 국적, 인종, 종교에 대한 이미지는 곧바로 테러를 연상시킨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유색인’ 전체로 확대되어 아시아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무차별 구타 같은 대중의 보복과 그 공포 때문에 거리에 나서지 못할 정도였다. 9·11은 ‘이슬람 남성’에 의해 저질러졌지만, 이들 ‘가해자’의 복합적인 정체성 중 “이슬람”만 강조되었을 뿐 “남성”이라는 성별은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모든 대중매체에서 9·11 사건은 종교적, 정치적 차원에서만 분석되었지, 성별(남성성)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없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테러범들이 무역센터 공격 전날 “내일 미국은 피로 물들 것”이라고 떠들어대면서 술을 퍼마시며 누드 댄서와 춤을 추는 등 서구문화를 즐겼다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이중성”을 비난했다. 그러나 자살 테러나 출정 전야에 ‘술과 여자’로 폭력 수행의 두려움과 긴장을 달래는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는 ‘한국인’인가 ‘남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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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깃_ 이준익 감독의 신작 <즐거운 인생>
취재기간_ 3월6일~4월18일
현장_ 동국대학교, 영화사 아침 감독 방, 충무로, 압구정 헤어숍, 신사동 서울현상소, 홍대 브라운사운드스튜디오, 안산의 실용음악학원 등
취재 중에 만난 사람_ 이준익 감독,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장근석, 고아성, 키노포스트의 김봉수 대표,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 음악감독 이병훈·방준석 등
새끼는 어미를 닮게 마련이다. 그 영화가 그 감독을 빼다박는 게 이준익 감독뿐이랴.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의 마지막 대사는 이 감독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듣는 환청 같았다.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고 가면 그뿐.”
어떨 땐 말투까지 닮았다. “광대가 천출이면 어떻고, 정승이면 뭐할 거야. 배부르게 먹으면 그만이지. 배고파 디지는 줄 알았네.”
<황산벌>에서 처자식부터 죽이고 전장에 나가겠다는 계백(박중훈)의 결기를 향해 아내(김선아)가 비수처럼 찌르던
[이성욱의 현장기행] 이준익의 음악 3부작 2부는 이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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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를 나와 현지에 살고 있는 꽤 먼 친척이 있어 ‘버지니아 총기난사사건’에 관심이 갔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정치계가 그곳 희생자들에게 일동 묵념을 올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 때 단체 묵념을 했다는 소식은 접한 바가 없다. 그들이 미국에서 벌어진 일에는 묵념을 올린다. 버지니아 총기난사사건은 ‘한국인’의 잘못이 아니라 ‘미국사회’의 잘못이고,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가 ‘한국사회’의 잘못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게 이 엉터리 묵념의 유무에 관한 건 아니다. 그건 시사 주간지 기자들이 더 잘 쓸 일이다.
조승희씨가 남긴 영상물 소식을 접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다른 영상 메시지들도 떠올랐다. 중학교 여학생들이 한 여학생을 폭행하고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여러 지역에서 각각 다른 학생들에 의해 빈번하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2004년에 대한민국 평범한 노동자 한 사람이 지구 저편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오픈칼럼] 무서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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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아마드에게.
안녕 아마드. 이렇게 너의 이름을 부르니 조금은 어색하구나. 너는 멀리 이란의 작은 시골에 사는 소년이었고 난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분단된 나라 코리아에 사는 영화감독이고.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하는데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어색하네. 그래도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생각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조금의 이유가 있단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은 사라진 동숭씨네마텍라는 한국의 작은 극장이었어. 그 극장의 작은 영사막 속에 너의 착한 눈빛이 빛나고 있었지. 너는 이란의 가난한 시골에 살고 있는 조그만 아이였지만, 너의 동무를 생각하는 그 착한 마음씨가 나의 가슴을 때리고 심장을 흔들어놓았지.
당시 나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단다. 워낙 늦게 시작한 공부여서인지 후배들의 작품활동에 늘 따라다니면서 조명기를 나르고 전선을 정리하면서 영화를 배웠어. 그렇게 영화는 남들이 잠자는 밤에 환한 조명등을 켜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신나는 일이라
[내 인생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김명준 <우리학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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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스파이더 맨’은 해상도가 낮은 흑백TV 속에 ‘왕거미’였다. <왕거미>를 보고 골목으로 몰려나온 아이들은 온몸에 영화를 흠뻑 뒤집어쓴 채 손바닥을 벌려 벽에 들러붙곤 했다. 찍찍거리는 흑백TV로 보던 저해상의 왕거미가 이제 최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만든 고해상의 ‘스파이더 맨’이 되어 다시 찾아왔다. 곧 개봉될 <스파이더맨 3>는 3천억달러를 들여 컴퓨터그래픽의 정수를 보여줄 예정이란다.
옥토퍼스와 헥사포드
<스파이더 맨2>에서 닥터 옥타비우스는 자신의 몸에 기계로 만든 네개의 다리를 이식한다. 하지만 신체와 기계의 소통을 담당하는 칩에 이상이 생기고, 결국 그는 몸에 붙은 기계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사악한 ‘닥터 옥토퍼스’가 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되돌아온 신체의 양심은 기생충처럼 몸에 들러붙은 기계의 사악함을 떨치기 위해 스스로 몰락을 택한다. 괴물 옥토퍼스는 물에 가라앉으면서 인간 옥타비우스로 되돌아간다.
이 장면을 보며
[진중권의 이매진] 기계에 깃든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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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붙이자면 ‘토끼굴’ 장르에 속하는 영화들이 있다. 좁은 굴 속에 토끼를 몰아넣고 연기를 피워 질식시키는 토끼 사냥식의 이야기를 가진 영화들이다. 토끼 사냥과 토끼굴 영화들의 다른 점은 사냥에서 토끼는 연기에 질식해 굴을 뛰쳐나오는 시나리오지만 영화에서 토끼는 굴의 구석을 점점 더 파고들어가다가 결국 그 안에서 죽는다. 비극적 죽음이라는 점에서 엔딩은 같다.
토끼굴 영화의 대표작이라면 나는 단연 <어둠 속의 댄서>를 꼽겠다. 2000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이 장르 최고의 작품임을 인정받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셀마의 인생은 구석으로 몰리고 몰리고 또 몰린다. 더이상 굴을 파고들어갈 손톱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죽는다. 그것도 사형당한다. 그것도 살인 누명을 쓰고. 밀려오는 연기로 질식하는 와중에 그녀는 마치 순교자처럼 자신의 것을 포기한다. 멀어져가는 눈과 평생 모은 돈과 결국에는 목숨까지.
그리고 7년이 흘러 셀마에 필적할 순교자적 인물이 강림했으니
[냉정과 열정사이] 21세기에 도래한 신파 뉴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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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가족,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심슨가족-더 무비> The Simpsons Movie
감독 데이비드 실버맨 목소리 출연 댄 카스텔라네타, 줄리 카브너, 낸시 카트라이트, 이어들리 스미스, 미니 드라이버, 앨버트 브룩스 수입·배급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개봉예정 8월9일
2003년 <BBC>에서 ‘위대한 미국인’을 뽑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결과는 2위 에이브러햄 링컨, 1위 호머 심슨. 영국인들이 주축으로 뽑은 설문이라 더 흥미로운 결과다. 이를 두고 <심슨가족>의 오랜 시나리오작가 알 진은 “호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인이라면 이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표상”이라며 “호머에게 한표를 던지는 것은 ‘미국 꺼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간에 스프링필드의 노란 가족들이 전세계에 끼친 영향력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결과이리라. 1989년부터 방영된 <심슨가족>은 실제로 폭스의 효자 프
[2007 여름 애니메이션] <심슨가족: 더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