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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성을 잠식한다? 엔젤(세르기 로페즈)은 이상한 수컷이다. 결혼식날 입장을 미뤄가면서 신부의 남성 편력을 따진다. 열명 밑인지 그 위인지, 11명인지 12명인지 분명히 알아야겠다며 물러서지 않는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엄마와 함께 추궁한다. 결혼하고 나서는 관계의 안정과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키우는 아이의 수를 늘려나간다. 하나, 둘, 셋, 넷. 뭐가 그리 불안할까. 그러고는 비서와 바람 피운다. 엔젤의 수상쩍은 바깥생활을 의심한 아내 안나(아이타나 산체스 기욘)가 친구에게 남편 미행을 부탁하는데, 그 둘이 침대 위에서 딱 붙어버렸다.
흥분한 아내의 반격이 시작된다. 결별 선언과 동시에 남편의 남동생이랑 동거를 시작한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인물의 파격적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유랄지 배경을 알기 힘들게 좌충우돌이다. 엔젤은 마초와 담쌓은 인물 같은데 여자의 성에 대해선 마초 종마 같다. 무기제조상인 엔젤의 동생이야말로 마초스러워야 어울릴 듯한데, 유약하고 어수
그의 성은 무조건반사 <해피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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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상처는 악마의 유혹으로 돌변한다? 영화사 화인웍스와 케이블 채널 OCN이 함께 만든 4부작 옴니버스 <이브의 유혹>은 팜므파탈을 공통된 요소로 사용한다. 그중 한편인 <키스>는 이웃집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과거 남편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효진(윤미경)은 권위적인 남편과 다른 느낌의 이웃집 남자 영훈(김경익)과 잠자리를 갖는다. 하지만 영훈의 아내 정임(이자경)이 이를 눈치채고 네 남녀 사이에 숨겨졌던 비밀이 드러난다.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의 남기웅 감독은 효진을 바라보는 영훈, 영훈을 바라보는 효진의 시선을 공포영화의 리듬으로 처리한다. 파국으로 이어질 남녀의 관계가 불안한 분위기 속에 암시된다. 하지만 영화는 90분이라는 다소 짧은 러닝타임에도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긴장감이 없다. 효진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방식도 나태하다. 마지막 한방의 반전을 위해 효진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일
사랑의 상처 악마의 유혹으로 돌변 <이브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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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이 밀집한 지역을 다니다보면 가끔 언제 이렇게 변했지, 싶을 때가 있다. 주로 강북에서 생활하다보니 종로, 신촌, 홍대 앞 등을 자주 들르게 되는데 얼마 전 홍대 앞에 고깃집이 밀집했던 지역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야외에 불판을 내놓고 고기를 굽던 집들이 거의 없어져서다. 삼겹살 집이 없어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이자카야라 불리는 일식 주점들이다. 한집 건너 하나씩 비슷한 메뉴를 파는 이자카야가 빼곡히 들어섰다. 예전에 신촌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돼지갈비로 유명했던 골목이 어느 순간 모조리 닭꼬치집으로 변하더니 몇년 뒤엔 조개구이집으로, 다시 이듬해엔 찜닭집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물론 홍대 앞과 마찬가지로 이자카야가 우세종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을 고집하는 음식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행에 따라 순식간에 바뀌는 식당들을 보노라면 사람들 입맛이 정말 그렇게 바뀌는지 의심스럽다. 지지난해엔 돼지갈비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지난해엔 찜닭만 찾고 올해는 이자카야를 선호하는
[편집장이 독자에게] 여름 극장가 숨은 영화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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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플라이셔는 할리우드의 거룩한 장인 중 한명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리처드 플라이셔는 애니메이션 단편영화를 감독하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1942년에 실사 단편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1946년에 첫 장편 데뷔작을 내놓았고, 초창기에는 <The Clay Pigeon>(1949), <Follow Me Quietly>(1949), <Armored Car Robbery>(1950) 등 주로 필름 누아르 영화들에 장기를 보였다. 플라이셔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주요 고용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월트 디즈니로 건너가 쥘 베른 원작의 <해저 2만리>를 완성하면서부터다. 가장 특수효과를 잘 이해하는 당대의 메이저 감독으로 떠오른 그는 <마이크로 결사대>(1966), <닥터 돌리틀>(1967), 그리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도라! 도라! 도라!>(1970) 등 특수효과를 활용한 당대의 대작들을 연이어
대중영화로 우뚝선 할리우드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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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Fuckin' Runaway
모토하시 게이타/ 일본/ 2007년/ 100분/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판타스틱영화제라고 해서 극단으로 밀어붙인 환각과 망상만이 전부는 아니다. 로드무비 <달려!>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두 남녀가 환상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회복일지다. 분리불안을 앓는 하나는 같은 병원의 소심한 청년을 꼬드겨 탈주를 감행한다. 남자에게 제멋대로 ‘나고양’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하나는 그를 제 하수인처럼 부리고, 순종적인 나고양은 하나의 무리한 요구에 고분고분 따르며 그녀를 돌본다. 나고양의 중고차에 몸을 실은 두 사람은 목적지 없는 도망을 계속하지만, 문제는 정신병원에서 도망쳤어도 정신병에서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 하나는 부두교의 추장, 애꾸눈 마녀, 거대트럭 드라이버에게 쫓가는 환각에 몸부림치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나고양은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비정상이긴 마찬가지인 이 2인조는 함께 포도서리를 하고 별밤 아
규슈의 바람처럼 상쾌한 영화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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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마징가Z>다. 원작을 보면 마징가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존재다. 어떤 의도로 마징가를 탄생시켰는지.
=어린 시절 데쓰카 오사무의 <아톰>이나 <철인28호>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만화가가 되면 꼭 로봇만화를 만들고 싶었다. 만화가가 되고 나서는 지금까지 즐겼던 것과는 다른 색다른 로봇을 탄생시키기로 마음먹었고, 인간이 내부에 탑승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든 것이다. 마징가는 뇌 부분에 인간이 들어가서 조종하는 것이므로 결국 인간이며, 인간이 거대한 힘을 가졌을 때 악마도 신으로도 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케타로보>에서는 주인공 한명이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당신 만화에는 그런 식으로 아웃사이더들이 탑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백귀제국이라거나 아틀란티스 등등 선과 악을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 없는 집단이 종종 등장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에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들을 담은 이유는
기성의 세계를 부수고 아이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세계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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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흑마술> Gong Tau
허먼 여우/ 홍콩/ 2007년/ 97분/ 판타스틱 감독백서: 허먼 여우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로 잘 알려진 홍콩 감독 허먼 여우의 따끈따끈한 신작. 정제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부린 강두술(降頭術)에 의해 갓난아이를 잃은 형사는 자신의 아내 역시 술법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두술사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면 아내의 목숨은 없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아내는 아이의 죽음에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고통스러워하고, 강두술사의 끔찍한 술법은 두 사람의 삶을 공포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아시아 고어의 문을 열어젖혔던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로 전설적인 컬트감독의 지위에 오른 허먼 여우는 대가 같은 솜씨로 홍콩 경찰 장르와 오컬트 장르를 버무린 뒤 양념처럼 고어장면들을 끼얹어낸다. 기가 막힌 중국식 덮밥 요리술이라고나 할까. 관객이 낄낄거릴 만큼 키치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는 고어영화의 마니아마저 눈을
아시아 고어의 끈적끈적한 향연 <중국식 흑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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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고를 빼고는 일본 만화를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일본 만화의 선구자로는 물론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요코야마 미쓰테루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가이 고의 만화는 폭력, 반영웅, 섹스, 분노, 파괴 등 화사한 빛의 세계 반대편에 존재하는 어둠의 세계를 완벽하게 창조해냈다. 나가이 고는 이 세상에서 신성시하는 모든 것을 더럽히고 전복시킨 세계를 드라마틱하게 창조했다. 성인이 된 일본 만화는 안티 테제인 나가이 고의 존재로 인해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나가이 고는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게타 로보>의 작가로서, 로봇 만화의 혁신을 가져온 작가로 평가받는다. 독자적으로 움직이거나 조종기를 통해 움직이던 로봇은 <마징가 Z>에서 조종사가 직접 로봇에 탑승하여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뀐다. 최초의 변신합체 로봇 만화인 <게타 로보&
사회의 위선을 폭파하는 일본 만화의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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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옷을 입고 왔나요?” 7월16일 오전 11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제1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기획 프로그램인 <환상교실 : 아시아영화의 특수분장>의 마지막 강연을 맡은 니시무라 공작소의 니시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첫 인사는 의미심장했다. 참가자들은 운동복과 반바지에 슬리퍼로 무장했고, 몇몇 참가자들은 아예 우비와 비닐로 온몸을 칭칭 싸매기도 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의 효과로 유명한 특수효과 그룹인 터라 참가자들 역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쓸 각오를 했을 듯. “강연 뒤에는 여러분도 직접 실습해볼 거예요. 사람의 몸이 갈라지면서 피가 분출하는 장면입니다. 비닐로 지나치게 싸매면 실습이 어려우니 적당히 하세요. (웃음)”
니시무라 공작소는 몸이 떨어지면서 솟구치는 피, 똑 떨어지는 눈알과 몸을 뚫고 나오는 기계 등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특수분장, 특수조형, 잔혹효과 전문 그룹이다. <노리코의 식탁> <자살클럽> &l
끈쩍한 피에 흠뻑, 특수분장의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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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시, SM 로프마스터>
히로키 류이치/ 일본/ 2007년/ 금지구역
<바쿠시>는 특히 여성에게 불쾌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다큐멘터리다. ‘바쿠시’를 한자로 풀면 ‘縛師’, 즉 묶는 사람이란 뜻이다. 성적인 흥분을 얻기 위해 결박을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전문가를 일본에서는 바쿠시라고 부른다. <바쿠시>는 바쿠시들이 하는 ‘긴바쿠’(결박)란 무엇인지, 묶이는 여성은 누구이고 왜 하는 것인지 등을 물어보는 다큐멘터리다. 여성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바이브레이터>를 만들었던 히로키 류이치가 왜 여성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바쿠시’를 찍게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바쿠시들은 하나같이 그 행위가 ‘커뮤니케이션’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감 없이는 불가능한 행위라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SM이 또 하나의 사랑의 형태일 수도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히로키 류이치는 어떤 해석도 가하지 않고,
성적 흥분을 얻기 위한 결박 <바쿠시, SM 로프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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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on Monday, PiFan was finally visited by plenty of rain. As in the wet stuff that falls from the sky, not the Korean singer (who is in Germany at the moment, working on the Warchowski brothers’ <Speed Racer>).
Actually, it was probably fortunate that we made it through the first four days of the festival with such great weather. Anything held in the middle of Korea’s rainy season (“jangmacheol”) is destined to get drizzle, if not downpours.
Some years, PiFan has received huge amounts
빗속에서 춤을 Dancing in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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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광이라면 반드시 ‘순례’해야 할 곳이 부천에 있다. ‘한국만화박물관’은 김성환의 <고바우영감>을 비롯해 작가 113인의 만화 원화 359점을 소장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만화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은 아무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적이 없었던 한국만화를 1900년대 초기 작품부터 10년 단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이진주의 <오추매의 빵점일기>, 신문수의 <로봇찌빠>, 윤승원의 <맹꽁이 서당>이 만화방에서, 또 신문에서 코 흘리며 보았던 지면의 모습 그대로 관객을 맞는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희귀 만화 1208점도 소장되어 있다. 조항리의 <혜성 같은 소년은 알고 있다>, 박광현의 <최후의 밀사>, 이화춘의 <양돈전> 등 색 바랜 작품들은 한국만화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해당 만화들을 들어본 적이 없는 신세대라도 한 번쯤 흥미롭게 구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추억의 만화 속으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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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Roman
안젤라 베티스/ 미국/ 2006년/ 92분/ 부천 초이스
안젤라 베티스를 아십니까.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열혈 호러영화팬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안젤라 베티스는 러키 매키 감독의 <메이>와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1의 <식걸>을 통해 호러 영화계의 새로운 뮤즈로 칭송받아온 여배우다. 그녀의 첫 연출작인 <로만>은 안젤라 베티스가 매키 감독과 작업하면서 그저 대본이나 열심히 암기한 건 아니라는 멋진 증거다. 러키 매키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주인공 용접공 로만은 이상한 남자다.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직장 사람들에게 왕따당하며, 오직 옆집 사는 귀여운 여인을 흠모하는 것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듯하다. 그의 배배 꼬인 흠모는 여인을 살해한 뒤 신체를 얼음에 재워놓고, 가끔 신체의 일부를 조각조각 잘라서 소풍에 데려가는 기행으로까지 이어진다. 시체애호증 환자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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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가네 난사사건> The Matsugane Postshot Affair
야마시타 노부히로/ 일본/ 2007년/ 112분/ 부천 초이스
<린다 린다 린다>를 연출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 사방에 놓인 순간들을 드문드문 엮어놓는 감성은 여전하지만 입 안이 찝찝할 만큼 기묘한 작품이다. 코타루와 히카루는 닮은 곳 하나없는 쌍둥이 형제다. 영화는 경찰인 코타루의 시선에서 겉보이게는 평온한 마을인 마츠가네의 이면을 바라본다. 코타루에게 마츠가네는 무력한 도시다. 사건은 없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 이발소 주인과 살림을 차린 지 오래고, 닮은 곳 하나 없는 쌍둥이 형제 히카루는 동네의 구박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남녀가 들어오면서, 마츠가네는 온갖 이상한 사건들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매우 정적인 마을 소동극인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주된 정서는 ‘조짐’이다. 주인공 코타루의 말처럼 마츠가네는 “어쩌면 뭔가 일어날지
입 안이 찝찝할 만큼 기묘한 작품 <마츠가네 난사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