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옷을 입고 왔나요?” 7월16일 오전 11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제1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기획 프로그램인 <환상교실 : 아시아영화의 특수분장>의 마지막 강연을 맡은 니시무라 공작소의 니시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첫 인사는 의미심장했다. 참가자들은 운동복과 반바지에 슬리퍼로 무장했고, 몇몇 참가자들은 아예 우비와 비닐로 온몸을 칭칭 싸매기도 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의 효과로 유명한 특수효과 그룹인 터라 참가자들 역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쓸 각오를 했을 듯. “강연 뒤에는 여러분도 직접 실습해볼 거예요. 사람의 몸이 갈라지면서 피가 분출하는 장면입니다. 비닐로 지나치게 싸매면 실습이 어려우니 적당히 하세요. (웃음)”
니시무라 공작소는 몸이 떨어지면서 솟구치는 피, 똑 떨어지는 눈알과 몸을 뚫고 나오는 기계 등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특수분장, 특수조형, 잔혹효과 전문 그룹이다. <노리코의 식탁> <자살클럽> <기묘한 서커스> 등에 참여한 니시무라 감독은 지난해 제작한 영화 <미트 볼 머신>(meat ball machine)의 막간상영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칼로 자신의 팔을 자해하는 여학생, 눈동자를 파고드는 드릴, 피부가 벗겨지는 남자의 얼굴, 괴물의 촉수가 사람의 몸을 파고드는 장면들이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몇몇 여학생의 비명이 들리기도 했다. “인간이 우주인의 숙주가 되어 여러 가지 무기로 변형된다는 이야기”라고 영화를 소개한 니시무라 감독은 “촉수의 박진감 넘치는 움직임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매우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며 다량의 호스를 묶어 한손에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촉수의 격렬한 움직임은 바로 이렇게 연출했습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니시무라는 직접 바닥에 누워가며 영화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리모컨이나 모터를 이용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한 움직임은 손으로 직접 연출합니다. 예산이 워낙 적기 때문에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민한 끝에 개발한 방법이죠. (웃음)” 이어서 니시무라 감독은 사람의 팔이 잘리면서 피가 분출하는 장면을 직접 시연했다. 니시무라 공작소의 유일한 여자 스탭이라는 나코시 사야코가 실제 모형팔을 자신의 몸에 장착하자, 다른 스탭들은 분주한 움직임으로 호스를 연결했다. 니시무라 감독이 막대기로 팔을 자르는 시늉을 하자 사야코는 영화보다 더 리얼한 비명을 질렀고, 잘린 팔에서 퍼져 나온 물은 학생들의 몸을 적셨다.
점심을 먹은 뒤 시작한 실전 수업에서는 니시무라 공작소의 또 다른 작품 <머신 걸>의 한 장면이 연출됐다. 단도에 맞은 남자의 몸과 얼굴이 4조각으로 갈라지며 사방으로 피가 분출하는 장면으로 니시무라 감독은 이번에도 스탭을 모델삼아 분장을 시연했다. 인체에 무해한 실리콘으로 얼굴에 호스를 붙인 그는 섬세한 붓질로 칼에 잘린 자국을 그려냈다. 칼자국이 점점 선명해지자 학생들의 플래시 세례도 거세졌고, 곳곳에서 또다시 비명이 섞인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수의 시범을 본 학생들은 다시 3인 1조가 되어 분장을 시도한 뒤, 직접 만든 피로 얼굴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모델이 된 학생들은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됐지만, 피의 끈적끈적한 느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날 강연에서 니시무라 감독이 강조한 것은 “돈이 없다고 해서 못 만드는 영화는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돈이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돈이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어떤 부분을 살리고, 어떤 것을 포기할지,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 예산 따위는 문제가 아닙니다.” 감독의 마지막 한마디는 강연에 참가한 여러 학생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홍익대학교 디지털미디어 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김영훈씨는 “고어영화를 매우 좋아하지만, 학생으로서는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강의에서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운 것 같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으며, 비공식 참가자로 강연에 참석한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은 “피를 사용할 건 아니지만, 현재 준비 중인 <권법>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는 중이다.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상상력만 있으면 예산의 부족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환상교실 : 아시아영화의 특수분장> 프로그램은 지난 7월14일, 한국의 특수분장팀인 셀의 강연으로 시작해 15일에는 중국의 미셸 왕 감독이 강연자로 나섰으며 17일 오후 7시에 있을 졸업파티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