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습니까?
내 이름은 노리코.늘어진 코트 소매의 실밥을 잡아당겼다. 이건 미츠코의 탯줄이다.
지루한 시골, 하루하루가 불만족스러운 17세의 펑볌한 여고생 노리코. 도쿄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으나 ‘도쿄에 가면 남자를 만나 임신하게 될 것’ 이라는 아버지의 고지식함에 진저리를 내며 때마침 터진 정전과 함께 집을 뛰쳐나온다.
그러나 막상 도쿄에 도착한 노리코는 마치 벌거벗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로 코트의 실밥을 탯줄이라 여기며 잡아 뜯고는 그녀가 대화명 ‘미츠코’로 또래 아이들과 허울 없이 소통하던 유일한 창구인 ‘폐허닷컴’에서 여왕이라 칭해지던 쿠미코를 만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쿠미코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연기를 시작했다. 가족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족을 연기해주는 렌탈가족을 만들어낸 것이다.
내 이름은 미츠코.
원하고 꿈꾸던 나를 내 마음대로 만들었어. 이제 나는 나와 관계한다.
자신이 원하던 자아 ‘미츠코’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노리코는 얼떨결에 쿠미코의 ‘렌탈가족사업’에 합류하게 되고, 정해진 시간 동안 의뢰인이 지정한 가족 구성원으로 파견되어 연기를 하게 된다. 렌탈가족은 따뜻하고 밝고 행복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법한 가족의 모습이다. 노리코는 렌탈가족의 롤플레이를 통해 완벽한 가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와 그녀 자신의 관계, 나아가 그녀와 가족간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동생 유카가 자신의 뒤를 따라 도쿄로 가출하면서 ‘렌탈가족’ 배후에 숨겨진 ‘자살클럽’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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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관계성에 대한 기괴한 재해석
‘나는 나의 관계자이다’
17살의 여고생 노리코는 집이 정전되는 순간, 충동적으로 가출을 감행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단순히 부모와 자식, 언니와 동생이라는 가족구성원간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를 이해하려는 척, 잘되기를 바라는 척한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의 가식적인 행동들에 신물이 난 것이다.
가족구성원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채 핏줄로 옭아매기만 하는 가족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그 또래 아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에 집착했던 노리코. 그녀는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입고 있는 코트 소매의 붉은 실밥을 탯줄이라 여기며 잡아 뜯는다. 그리고 대화명이었던 ‘미츠코’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아로 자신을 재정립하기에 이른다.
<노리코의 식탁>은 노리코가 주어진 환경에 고스란히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상의 익명성을 통한 자아 재창조를 현실로 확장, 미츠코로서 스스로에게 관계해 가는 독특한 관계성을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는 토끼 역할을 해야만 해’
폐허닷컴에서 만난 쿠미코 일행은 노리코에게 자살, 살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행복하려면 역할을 나눠야 해. 연인끼리, 부부끼리, 부모 자식이 역할을 바꿔보고 자기가 잘하는 역할을 맡으면 돼. 정글의 약육강식과 마찬가지야. 사자뿐만 아니라 토끼도 필요한 거야. 누군가는 사자가 되고 누군가는 먹혀야 돼.’
이 영화는 자살이 이 세상을 무리 없이 굴러가게 하는 자의 역할이라 여기고 있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의 여고생들을 통해 먹이사슬처럼 치열하게 먹고 먹히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붕괴되는 현대 가족의 불완전한 대안 – 렌탈가족
이 세상에서 가장 동생다운 동생,
누나다운 누나, 엄마다운 엄마…
세계 어디에 이처럼 가족다운 가족이 있지?
시골 생활에 넌더리가 난 노리코는 도쿄로 가출하여 폐허닷컴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쿠미코를 만나 렌탈가족사업에 합류하게 된다.
‘렌탈가족’이란 고객이 가족의 구성원과 상황을 설정하여 의뢰하면 그에 맞게 팀을 꾸려 정해진 시간 동안 가족 관계를 맺고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쿠미코는 태어나자마자 우에노 역 코인락커 54번에 버려져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를 가득 담고 살아온 소녀로, 핏줄로 얽힌 가족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가족다운 가족이라는 것은 그 구성원의 역할에 잘 맞게 연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쿠미코를 따라 렌탈가족의 팀이 된 노리코 역시 렌탈가족 롤플레이를 함으로써 오히려 인위적으로 구성된 완벽한 가족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15년 전 일본에서 ‘렌탈가족사업’을 하고 있는 20세의 여성을 실제로 만났던 경험이 있는 소노 시온 감독은 역할 연기로 행복한 가족을 순간적으로 완성시킨다는 설정을 통해 사람끼리의 관계성이 희박해져 가고 있는 시대를 그리고자 했다.
소노 시온 감독의 역작 <자살클럽>의 속편
신주쿠 역 54명의 여고생 집단 자살의 배경이 드러난다!
소노 시온 감독의 <노리코의 식탁>에는 2002년 그를 세계적인 컬트영화 감독으로 발돋움하게 한 영화 <자살클럽>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신주쿠 역 54명의 여고생 집단 투신 장면이 다시 등장한다. 이는 이 영화가 <자살클럽>과 평행선상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감독은 ‘당신은 당신의 관계자입니까?’라는 물음에 대해서 <자살클럽>에서는 자살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만 주력하고 이 말이 지닌 의미를 숨긴 채 끝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확실히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자살클럽>이 신주쿠 역 54명의 여고생들을 한꺼번에 카메라에 담았다면 <노리코의 식탁>에서는 그들 중 1명에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 때문인지 <노리코의 식탁>은 <자살클럽>에 등장하는 하드고어적인 장면은 배제하고 노리코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세밀하고 밀도 높게 카메라에 담는 것에 주력했다.
쿠미코가 경영하는 렌탈가족사업의 원념으로 자살 클럽을 절묘하게 엮어 놓고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소노 시온 감독의 탁월한 감각은 관객들에게 이 사회에 대한 뼈 속 깊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2시간 38분의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도록 의도된 미장센은 세계적 감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소노 시온 감독만의 미덕이다.
Director’s note - 소노 시온
당신은 당신의 관계자입니까?
전작 <자살클럽>에서도 키워드가 되었던 이 말이 이 영화의 모티브. 이것은 당시 내가 일본을 향해 읊었던 주문이었다. 그 주문은 점점 현실화 되어간다. 매일처럼 일어나는 가족 내 살인.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인다. 여고생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는 시대. 관계자가 희박한 시대. 부모와 자식간 관계. 타인과 자신의 관계. 이것이 점점 희박해진다. 이것은 최종적으로는 자기로의 위기로 연결된다.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그 윤곽선은, 자기자신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성이 희박해지면 질수록 자신의 존재도 희박해 질 것이다. 자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당신의 관계자인가? 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는가?
전작 <자살클럽>의 주문은 <노리코의 식탁>을 통해 보다 절박한 문제로써 2006년의 상황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가능하면 심장이 요동치는 중고생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R-15의 등급심의를 받았지만 성숙한 자의식을 가진 10대라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강하게 전달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 10대 아이들을 키우는 40대, 50대의 부모세대도 ‘이해할 수 없다’고 내버려두지 말고 이 현실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 테츠조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던져버리고 ‘전통적인’ 아버지상을 맹목적으로 쫓아 ‘전통적인 가정의 행복’을 믿고, 추구하고, 매진하는 것에서, 모든 것이 붕괴되어 가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 4명 모두 본래 1인1인 다른 사람들이다. 다른 의식을 가진 4명의 사람들이 한 지붕 밑에서 지내면서 ‘집’이라고 하는 개념에 휩쓸리고,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질릴 정도로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가 되어버린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로 역할 분담이 된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자녀는 착한 아이를 연기하는 것을 강요당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움을 강요받는다. 현재 일어나는 가족 내 살인사건은 ‘착한 아이’를 도저히 연기하지 못한 인간이(자녀 역) 역할을 내팽개치고 집에 방화하거나 충동적으로 부모를 살해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란 이래야만 한다’라는 관례나 전통을 맹신하여 자유롭지 못한 인간관계를 낳는다 .즉, 부모나 자식으로서 노력하는 것이 지나쳐 부모관계가 희박해진다. 인간관계 그 자체가 희박해져 간다.
똑바로 봐. 이게 현실이야.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이 가족의 등장인물이었다. 알코올중독, 폭력, 불륜 등 깨지기 쉬운 가족 형태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 별 문제없이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가족이 붕괴되는 것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 집만큼은 절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가정이다’라는 개념은 지금 사라지고 누구든지 조금씩은 ‘우리집도 언젠가 혹시라도 뭔가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불안을 품고 살고 있다. 행복함에도 불구하고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안함의 원인은 무엇인지 찾고자 했다.
연간 3만 명의 자살자를 양산하는 전쟁 없이 평화로운 나라, 일본에서 태어나서 타국의 테러현장 뉴스를 보며 ‘일본에서 태어나 다행이야’ ‘저기는 무서운 곳이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여기저기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금 그 어떤 전쟁도, 테러도 3만 여명의 사망자를 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3만 명의 사망자를 낳고 있는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도 사실은 무서운 나라가 아닐까? 이런 나라에서 살면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공포스러운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 10대와 50대의 인간이 서로 마주하는 한 지붕 밑의 ‘식탁’이라는 것은 얼마나 치열한 장소인가?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하게 관객과 대화하고 싶었다.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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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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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코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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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츠오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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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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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소노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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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하세가와 토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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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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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시네마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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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
http://www.noriko2007.co.kr/
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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