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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영화로 우뚝선 할리우드의 장
김도훈 2007-07-17

회고전으로 만나는 <해저 2만리> <마이크로 결사대>의 리처드 플라이셔

리처드 플라이셔는 할리우드의 거룩한 장인 중 한명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리처드 플라이셔는 애니메이션 단편영화를 감독하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1942년에 실사 단편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1946년에 첫 장편 데뷔작을 내놓았고, 초창기에는 <The Clay Pigeon>(1949), <Follow Me Quietly>(1949), <Armored Car Robbery>(1950) 등 주로 필름 누아르 영화들에 장기를 보였다. 플라이셔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주요 고용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월트 디즈니로 건너가 쥘 베른 원작의 <해저 2만리>를 완성하면서부터다. 가장 특수효과를 잘 이해하는 당대의 메이저 감독으로 떠오른 그는 <마이크로 결사대>(1966), <닥터 돌리틀>(1967), 그리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도라! 도라! 도라!>(1970) 등 특수효과를 활용한 당대의 대작들을 연이어 만들어내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는 특정한 장르에 스스로를 귀속시키지도 않았고, 대중의 촉수를 거스르는 기묘한 모험에 뛰어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플라이셔는 언제나 최상급의 대중영화를 만들어낸 사람이었고, 진정으로 잘 만들어진 대중영화의 가치를 잘 아는 남자였다. 올해 부천의 회고전은 (양적으로 좀 부족한 편이긴 하지만) 리처드 플라이셔의 장르적인 감수성과 재주를 그럭저럭 파악할 수 있는 4편의 리스트로 채워져 있다.

<마이크로 결사대>는 조 단테의 <이너스페이스>(1987)와 패럴리 형제의 애니메이션 <오스모시스 존스>(2001)의 원전이라 해도 무방할 작품으로, 마이크로화된 의료진이 환자의 몸으로 들어가서 치료를 감행한다는 내용의 SF영화다. <마이크로 결사대>는 개봉 당시 할리우드 특수효과를 한 단계 끌어올린 영화였는데, 4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더라도 끔찍할 정도로 낡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대의 수공예적 특수효과가 주는 키치적인 힘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사대의 모험과 인간관계로부터 서스펜스를 끌어내는 플라이셔의 연출력이 건실한 덕분이다. <마이크로 결사대>와 함께 플라이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클래식 중 하나가 쥘 베른의 원작을 토대로 만든 <해저 2만리>다. 커크 더글라스가 출연한 이 작품은 80년대 한국의 TV를 통해서 수없이 리바이벌 방영되었던 추억의 고전 중 하나다. 기본적으로는 소년층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60년대 디즈니 특유의 공산품이긴 하지만, 원작과 구식 특수효과의 아련한 힘은 여전히 낭만적인 고전 SF의 힘을 잘 간직하고 있다. 플라이셔와 커크 더러라스는 <해저 2만리>의 성공에 힘입어 또다시 손을 잡았고, 에디슨 마셜의 소설을 각색해서 거장한 판타지 사극 <바이킹>을 만들어냈다. 바이킹 왕의 배다른 자식들이 묘한 운명의 힘에 좌우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이후 플라이셔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사극 판타지 장르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

<마이크로 결사대>

<소일렌트 그린>

해리 해리슨의 SF소설 <좁다! 좁아!>(Make Room! Make Room!)를 원작으로 한 <소일렌트 그린>은 70년대 SF영화들이 다들 그렇듯 무시무시하게 낡은 주제와 배경을 번득이는 영화다. 인구폭발과 자원고갈로 고통받는 2022년 뉴욕. 사람은 많고 먹을 건 없다보니 인조식량 배급날만 오면 세상은 폭동에 휩싸이고, 경찰은 거대한 포크레인으로 난동꾼들을 푹 떠서 내던지는 기가 막힌 시위 대처법을 지니고 있다. 카타리나 허리케인 직후의 뉴올리언스를 연상시키는 뉴욕에서 어느 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문제는 하류인생들과는 달리 아름답게 호위호식하던 상류사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형사인 주인공 찰턴 헤스턴은 사건을 조사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는데, 사람들에게 배급하던 인공식량 ‘소일렌트 그린’의 재료가 알고보니 자살한 인간들의 시체였던 것. 도대체 스포일러를 밝히는 이유가 뭐냐고? 사실상 <소일렌트 그린>의 마지막 비밀은 이미 SF 장르의 낡고 오래된 클리셰에 불과하며, 알고 보든 모르고 보든 영화의 폭로는 별달리 힘이 없다. 오히려 <소일렌트 그린>은 베트남전과 냉전의 한가운데 살아가던 나머지 근거없는 멜서스적 디스토피아의 예견에도 사시나무 떨듯이 떨던 70년대 대중과 SF계의 불안감을 전하는 유물로서 좀더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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