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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를 확인하지 못해 우리에게 전설로 남은 영화가 있다. 가장 영향력있는 무성영화이자 공포영화인 <유령마차>도 그런 영화 중 한편으로, 잉마르 베리만이 “15살 때 처음 접한 뒤 여름마다 보았으며, 내 영화의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작품이다. 얼마 전 출시된 <유령마차>의 DVD로 그간 <산딸기>의 배우로 더 잘 알려진 빅토르 시외스트룀의 작품세계를 드디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유령마차>는 스외스트룀의 열렬한 팬이었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셀마 라게를뢰프와 감독이 네 번째로 만난 결과물이다. 시외스트룀은 <잉게보리 홀름>(1913)부터 <바람>(1928)에 이르는 걸작시대의 가운데 위치한 <유령마차>에서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사실주의 멜로드라마와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결합시켰다. 12월31일 밤, 다비드는 옆의 주정뱅이들에게 전설을 들려준다. 전설인즉 그해의 마지막 날에 마지막으로 죽은 자가
[해외 타이틀] 90년 전 공포영화를 만나는 기쁨, <유령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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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럽다. 1986년 4월28일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면 당혹스럽다. 인터뷰를 행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흡사 죽은 자를 대신한 심문처럼 들려서 불편하고 또 당혹스럽다. 20여년 전에 대학생이었던 인물들이 급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리는 대목 또한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낱낱이 듣고 싶어하는 카메라의 집요함 또한 당혹스럽다. 김응수 감독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당혹스러운 다큐멘터리다.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민족생존 위협하는 핵무기를 철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한 이재호, 김세진 두 열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다큐멘터리이지만,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1980년대를 다루는 후일담의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노무현을 이야기해도, 이한열 열사를 말할 때도, 광주를 떠올릴 때도 똑같은 풍경들이 나온다. 뒤따라 항상 같은 음악들이 붙는다. 지겹다. 모든 과거를 신화로 그리는 건 싫다.” 김응수 감독은 사건에 대해서도, 정황에
1980년대와 마주하기 <과거는 낯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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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한발의 대포소리가 그의 고막을 때렸다. 중국 공산당 제2야전군 139연대 9중대장인 구지디(장한위)는 그 때문에 퇴각 명령을 알리는 집결호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집결호는 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지디는 울렸는데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퇴각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품고 있던 47명의 중대원들을 계속 사지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대원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고 자책한다. 혼자 살아남은 구지디는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형제’들의 죽음을 괴로워한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시체들을 옮겨다놓았던 광산의 토굴은 전쟁 뒤에도 발견되지 않고, 결국 용감히 싸우다 죽은 구지디의 부하들은 비석도 없는 무명용사가 되고 만다.
<집결호>는 전쟁에서 혼자 살아남은 자의 비극이다. 온갖 후회와 자책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구지디가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지는 모습은 분명 죄를 용서받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영화는 두 부분으
순국선열을 향한 묵념 <집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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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은 뛰어난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이자 제작자이자 배우이면서 동시에 영화음악가이기도 했다.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의 천재영화인 찰리 채플린은 75편의 연출작 가운데 17편의 영화음악을 직접 작곡했다. 즉 오케스트라를 직접 다뤘고, 때론 로맨틱하고(<시티 라이트>) 때로는 괴이한 듯 경쾌하며(<황금광 시대>) 때론 섬뜩한 오프닝을 선사하기도 했던(<모던 타임즈>) 선율의 관현악 악보를 직접 썼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황금광 시대>(1925), <서커스>(1928), <시티 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살인광 시대>(1947), <라임 라이트>(1952)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걸작 장편들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모두 채플린에 의해 쓰여진 것들이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권위나 영향력에 있어 요즘 시대만큼의 척도가
채플린의 영화와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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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그녀의 꿈이자 희망이요, 인생의 전부다. 택시 뒷좌석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하루에 두탕의 결혼식을 뛸 만큼 제인(캐서린 헤이글)은 결혼 그 자체와 황홀한 사랑에 빠져 있다. 청첩장, 웨딩케이크, 드레스 준비에 이르기까지 웨딩 플래너를 자처해 친구들의 결혼식을 부랴부랴 뒷바라지하는 그녀는 그러나, 정작 자신의 연애에서만큼은 소심하기 짝이 없다. 직장 상사 조지(에드워드 번즈)를 열렬히 짝사랑하던 중 간신히 용기를 내어 고백하려 하지만, 미모의 모델인 동생 테스(말린 애커먼)가 눈앞에서 그를 채가버린다. 한편 결혼식 칼럼을 쓰는 기자 케빈(제임스 마스덴)은 들러리 역할에 열을 올리는 제인을 흥미로운 소잿거리로 생각해 그녀에게 접근하고, 제인은 애타는 마음을 감춘 채 조지와 테스의 결혼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연애만큼은 영 불운한 그녀와 금발의 미모로 손쉽게 남자의 심장을 사로잡아버리는 그녀. <27번의 결혼 리허설>은 <내 남자친구의 결혼
결혼이 인생의 전부? <27번의 결혼 리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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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ACF 쇼케이스’가 시네마테크 부산과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부산에서는 3월4일(화)부터 13일(목), 서울에서는 3월7일(금)부터 13일(목)까지다. 아시아영화펀드(ACF)란 아시아 다큐멘터리 네트워크(AND) 부문을 포함하여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영화의 지원과 네트워크를 통해 아시아 영화인들의 연대를 도모”해온 사업이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져온 작품들이 이 펀드의 지원을 통해 완성되어왔다. 그중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와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자가 여행의 동료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처음 만난 사람들>, 아무 꿈도 없던 20살 청년이 우연히 단편영화에 배우로 참여하면서 마침내 자기의 꿈을 찾아 노력하게 된다는 <나의 노래는>, 감독이 직접 택시 운전을 하며 서울의 승객들을 관찰한 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혼합으로 찍어낸 서울의 소야곡 <택시 블루스>, 감독 본인이
아시아 영화인들의 연대, 아시아 독립영화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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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겉보기에 부족할 게 없는 누군가가 솔로라고 하면, 다들 묻는다. “너 같은 애가 왜 애인이 없니?” 글쎄. 그 이유는 본인도 모른다. 얼굴 예쁘지, 몸매 착하지, 성격 밝고 귀엽지, 직업 근사하지, 덤으로 탱고까지 잘 추지. 서른살의 그레이(헤더 그레이엄)도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미스터리다. 뉴욕에서 함께 사는 외과의사 오빠 샘(톰 카바나)도 마찬가지로 솔로. 애인 대신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고 <Chick To Chick>에 맞춰 탱고를 추던 두 남매는 서로에게 애인을 찾아주기로 한다. 먼저 애인을 찾은 건 오빠. 샘은 밝고 매력적인 여성 찰리(브리짓 모나한)와 눈이 맞아 사귄 지 하루 만에 결혼을 결정하고 일주일 뒤 결혼식을 올린다. 들러리를 서게 된 그레이는 그들의 결혼식 전날 밤, 자신이 왜 근사한 남자친구를 가질 수 없는지 깨닫게 된다.
잘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었던 걸까? 그녀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삼십년 만에 자신의 성
금기시된 사랑 <잘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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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화양연화>도, <해피투게더>도 아닌 13년 전쯤 보았던 <중경삼림>에 대한 기억을 더듬게 만드는 영화다. 풋풋한 왕정문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틀어놓고 짝사랑하는 양조위를 물끄러미 쳐다볼 때, 금성무가 파인애플을 사모으며 애인을 기다릴 때, 자기 세계 안에서 점점 부푸는 이들의 사랑에는 감상적인 면이 적잖았지만 거기에는 매혹되고픈 고독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보면서 새삼 그 당시의 감정을 떠올린다. ‘현실이 너무 빠르게 변한 걸까, 왕가위의 세계가 멈춘 걸까.’ <중경삼림> 때보다도 노골적인 감상주의자의 길을 걷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의 필모그래프 중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일 뿐이라고 애써 위안하고 싶은 영화다.
2007년 칸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왕가위가 주드 로, 노라 존스, 레이첼 바이스
의아할 정도로 가볍고 퇴행적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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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단은 스포일러입니다.)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에서 라자레스쿠씨는 죽지 않는다. 그의 죽음은 영화가 끝난 이후의 문제다. 영화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은 뇌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눕혀지고 머리가 빡빡 깎인 상태다. 힘없이 그가 고개를 돌려 얼핏 카메라쪽으로 시선을 두는가 싶을 때 영화는 막을 내린다. 라자레스쿠씨는 영화에서 죽지 않았는데 왜 모두가 그의 죽음을 말하는가. 그러나 영화의 저편 혹은 그 이후의 일을 믿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힘이다.
분명 라자레스쿠씨(이온 피스큐테누)는 아침부터 속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저녁이 되자 신물이 넘어와 얼마 먹지도 못한 음식들을 죄다 토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웃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지나친 애주가이며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며 되는 대로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자립심도 없어 보이고 그다지 인간미 넘치는 호남형도 아니다. 성질도 까탈스럽다. 그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응급차가 오고 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루마니아영화의 새 바람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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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숭례문을 두고 다른 이름으로 남대문이라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 이는 일제가 숭례문을 비하해 부르는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태조 1년 도성 성곽을 완성하고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이니 이는 거짓이다. “성 쌓는 역사를 마치고 정부(丁夫)들을 돌려보내었다.…정남(正南)은 숭례문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남대문은 그 창건 때부터 숭례문의 속칭으로 불렸던 것이다. 가뭄과 수해가 큰 재해였던 옛날에 숭례문은 특이한 기능을 하였다. 일종의 풍수상의 비보책으로도 쓰였던 것인데 『조선왕조실록』에는 가뭄이 들면 숭례문을 닫고 비가 많이 오면 숭례문을 열었다는 기록이 숱하게 나온다. 그리고 가뭄과 관악산의 화기를 막는다는 이유로 건립 때부터 숭례문 밖에 큰 못을 팠다. 성종 9년에 이미 숭례문은 낡을 대로 낡았던 모양이다. “숭례문이 아주 기울어져서 허물어질 지경이라면 고쳐서 짓지 않을 수 없으나, 그렇지 않으면 요사이 공역(工役)이 너무 잦으니, 내 생각에는 그냥 두었으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숭례문 행장(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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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모르는 어떤 것들이 있다. 지금이야 공부를 아주 잘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튼튼한 것이, 어쭙잖은 학위보다는 언어나 기술 하나 더 배운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17살 때는 단순히 수학2와 한자 중에 뭐가 덜 괴로운가를 저울질해 ‘문과’를 선택했고, 스무살 무렵에는 이력서에 뭐라고 써야 취업이 잘될까를 ‘도토리 키 재기’를 해서 전공을 골랐다. 판단의 기준도 모호했지만 골똘히 고민하지도 않았다. 굳이 찾자면 모의고사 점수나 수능 백분위, 신뢰가 전혀 안 가는 IQ 테스트 결과, 이과 아니면 문과로 양분해주는 ‘흑백논리’의 적성검사로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그때그때 선택은 나의 몫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어김없이 돌아왔다.
바람이 잠시 멈춰 덜 춥다고 착각했던 일요일 오후, 삼청동 초입의 한 카페에 앉아 “그 나이”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M과 C와 담소를 나
[오픈칼럼] 20대 후반 싱글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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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머리’라는 제목은 그의 잘린 머리를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의 재료로 사용하는 장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보고나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이렇게 막막하게 만드는 영화도 많지 않을 게다. 아무튼 <이레이저 헤드>는 오늘날 이미 컬트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또 2004년에는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 의회 도서관에 영구보존할 작품으로 선정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이 기괴한 작품의 영화적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제까지 이 영화에 대해 크게 세 가지 해석이 나왔다고 한다. 첫 번째 해석은 이 작품을 준비되지 않은 부성에 관한 영화로 본다. 즉 헨리가 원치 않게 아버지가 되어 서서히 파멸되어 나가는 과정의 묘사라는 것이다. 다른 해석은 헨리를 성불구자로 본다. 이 경우 영화는 좌절당한 성욕의 상징적 표현이 될 것이다. 세 번째 해석은 헨리 자신을 영화 속 끔찍하게 생긴 아기로 푼다. 여기에 따르면 &
[진중권의 이매진] 해석의 틀을 벗어난 영화적 설치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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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형마트 매장을 거닐다 매대에 수북이 쌓여 있는 DVD타이틀 더미에서 반가운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홍금보 주연의 <삼덕화상과 용미육>. 할인초특가 6900원. 아무리 헐값이라지만 사다놓으면 한 번 제대로 보기나 할까 고민하던 끝에 결국 구입을 했다. 극장 개봉명 <중원호객>.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이기에 웬만하면 소장해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최초로 접한 영화가 이렇다보니 그 이후로도 홍콩 무술영화에 대한 탐닉은 계속되었고 그러다 간혹 <원권> <복권> <무림걸식도사> 따위의 국산 무술영화에 낚이는 실수도 범했지만 그럴수록 홍콩영화에 대한 동경과 확신은 날로 확고해져갔다. 암전의 화면에서 골든하베스트의 각진 ‘G’ 로고가 뜰 때면 예의 그 쿵쾅거리는 사운드에 맞춰 내 심장도 요동을 쳤고 그런 증세는 요즘도 약간 남아 있다. 정말 그랬다. 영화 하면 홍콩영화였고 그들이 보여주었던 경쾌함과
[내 인생의 영화] <킬링 필드> -나현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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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퍼>를 보다 보니 자꾸만 제다이 생각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헤이든 크리스텐슨에다 새뮤얼 L. 잭슨이라니! 새뮤얼 L. 잭슨이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점프 능력을 억누르기 위해 전깃줄로 휘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는 혹시 “빠와-! 모어 빠와!!” 하는 대사가 나와도 하나도 이상할 성싶지 않았다. 그러나 <스타워즈>의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점퍼>의 헤이든 크리스텐슨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둘 다 가족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외로운 소년이며 조용해 보이지만 실은 타인의 눈에 띄고 싶은 부글부글한 열망을 가슴속에 품고 있으며 자기를 절대 봐줄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소녀를 좋아한다는 면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 <스타워즈>의 아나킨은 젊고 자신만만한 제다이 슈퍼히어로였다가 그만 다리 잘리고 활활 화산재에 구워져서도 안티 히어로 다스 베이더라도 되었지만 <점퍼>의 데이빗은 그냥 좀도둑이 되어
[냉정과 열정 사이] 올해는 민폐 좀 덜 끼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