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해지자. 지금 현재 한지혜를 떠올리는 단 한컷의 장면이 있다면 일일드라마 <미우나 고우나>가 아니라 <야심만만>의 한 장면이다. 갑작스런 상황극을 통해 연인의 손을 잡은 남자는 “이 여자가 내 여자”라고 외쳤다. 그에게 손을 잡힌 여자는 차마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글썽였다. 본 방송에서는 몰랐던 부분이 자료화면으로 다시 비쳤을 때, 프로그램 제작진은 기어이 화면을 확대하며 그녀의 눈물을 포착했다. 사실 그때 이미 우리는 사랑하고 있었어요. 신변잡기의 대화로 웃고 떠들던 게스트와 시청자들이 그들을 어여쁘게 바라봤다. 그리고 한지혜라는 여배우의 가상과 실재가 오롯이 겹쳐올랐다. 그녀가 연기해왔던 여자들, 그러니까 오랫동안 사랑해오던 남자에게 동생 이하도 이상도 아닌 여자였던 <여름향기>의 정아와 사랑하는 남자에게 “빈티가 난다”고 구박받던 <비밀남녀>의 영지, 그리고 괴팍과 호감을 넘나드는 남자친구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어리둥절하던 <B
[한지혜] 휩쓸리지도 머무르지도 않으리
-
착한 걸까 멍청한 걸까. <27번의 결혼 리허설>의 제인은 답답할 정도로 남 뒤치다꺼리에 전력투구하는 여자다. 아무리 결혼식이 좋다지만, 무료 봉사형 웨딩 플래너를 자처해 남들 결혼식 챙기기에 바쁜 모양새란 오지랖의 경지를 넘어서 거의 자학의 수준이다. 옷장이 미어터지도록 수십벌의 들러리 드레스를 애지중지 보관하고, 짝사랑을 가로챈 동생의 결혼식을 애써 웃는 낯으로 준비하는 제인. 최소한의 영악함도 갖추지 못해 분통이 터지는 그녀의 얼굴을 조금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비록 화사한 금발을 밤색으로 물들이고 나왔지만, 당신이 떠올리는 그녀가 맞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여의사 이지 스티븐스. 바로 캐서린 헤이글이다.
금발 머리에 늘씬하게 떨어진 몸, 시원시원한 눈매. 전형적인 치어리더형 외모의 캐서린 헤이글은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 연예계에 입성했다. 9살 때부터 백화점 카탈로그와 시리얼 광고에 얼굴을 비치던 중 1992년 <사랑과 우정
[캐서린 헤이글] 서른살에 찾아온 스타덤
-
노라 존스가 영화로 찾아온다. 지난 2005년 3월 내한공연을 통해 매진을 기록하며 국내에도 강한 카리스마를 남겼던 그녀가 왕가위의 신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주인공이 되어 스크린으로 만나게 된 것. 이별을 겪은 엘리자베스(노라 존스)는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카페 주인 제레미(주드 로)를 만나고, 그가 만들어주는 블루베리 파이를 먹으며 조금씩 상처를 잊어간다. ‘재즈계의 신데렐라’ 혹은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노라 존스는 일찌감치 재즈의 간판 레이블인 블루노트에 발탁돼, 전세계에 2천만장이 팔려나간 데뷔앨범 《Come Away With Me》(2002)로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석권했다. 맑고 부드럽고 편안한 음색과 탁월한 곡 해석력을 바탕으로 재즈, 팝, 블루스 등 어떤 장르도 자기 식으로 소화하는 매력적인 보컬의 소유자인 그녀는 인도 음악의 거장 라비 상카를 아버지로 둔 독특한 이력답게 은근히 배어나오는 동양적 정서도 친숙하다. 그런 그녀의 영화 데뷔작이 바로
[노라 존스] “테이블 키스신을 이틀간 찍었다”
-
중국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인가, 중국의 <태극기 휘날리며>인가. <천하무적> <야연>의 감독인 펑샤오강의 신작 <집결호>는 이국 땅에 와서 여러 수식어로 불린다. 하지만 감독의 이름이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중국에서는 ‘펑샤오강의 <집결호>’로 불릴 뿐이고, 그 때문에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지난 10여년간 중국의 흥행사를 뒤흔든 감독. 펑샤오강에 대해 알아보자.
1. 펑샤오강의 과거
한때는 배우였다. 또 한때는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했다. 심지어 무대미술도 했다. 영화감독으로서 탐낼 만한 경력은 죄다 갖춘 펑샤오강은 중국에서는 ‘중국의 스필버그’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강제규’로 불린다. 1958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군생활 동안 총 대신 붓과 페인트를 들고 군인극단에서 무대그림을 그렸으며 제대 뒤에는 TV드라마의 세트를 디자인했다. 중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장이모나 첸카이거 등의 감독들이 베이징영화학교 출신
[알고 봅시다] 중국 최고의 흥행감독 <집결호>의 펑샤오강
-
-
죽음과 비상, <죽고 싶다는 것과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가지 행위에 대한 가벼운 단상이다. 무슨 일 때문인지 자살을 결심한 남자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려 한다. 하지만 그때 어깨에 빨간 망토를 두른 소년이 슈퍼맨의 비상을 따라하며 아파트 골목을 지나 옥상까지 올라온다. 세상에 낙심한 남자가 소년의 천진난만한 장난을 본 순간 그는 자신의 행위가 하늘을 날려는 소년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죽음과 비상, 전혀 다른 이 두 행위는 아파트 옥상에서 우연히도 겹친다.
김한누리 감독의 8분짜리 단편 <죽고 싶다는 것과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은 정말 8분 안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야기보다는 행위의 의미를 단편적인 이미지에서 짚고 들어가는 이 영화는 인물의 심리, 사건의 개연성을 따지기보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두 남자의 짧은 순간에 포커스를 맞춘다. 발상은 신선하지만 영화 자체도 거기서 멈추어버린다는 게 이 단편의 가장 큰 약점
[이달의 단편] 죽음과 비상에 대한 경쾌한 단상
-
일일 관객 수가 좀체 떨어질 줄 모르는 <추격자>의 흥행기세로, 제작자인 김수진 영화사 비단길 대표는 축하전화를 받기 바쁘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제작자로 걸고 만든 영화는 최근 <음란서생>(2006)과 <추격자> 두편이지만, 그에게 축하전화를 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김수진 대표가 지난 20년간 영화계에 몸담고 지내면서 알아온 지인들이거나 사업 파트너들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영화일을 시작한 김수진 대표는 당시 하명중영화제작소, 신도필름 등을 거쳐 20대 초반에 영화기획정보센터라는 회사를 꾸릴 만큼 이미 당찬 사업가였다. 그는 <꽃잎> <나쁜 영화> 등 한국영화 기획에 참여했고 <레옹> <퐁네프의 연인들>과 같은 영화를 수입해 흥행시켜서, 한국에 짧게 프랑스 예술영화 수입 바람이 일기도 했다. 올해로 영화일을 한 지 꼭 20년이 된 그는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충무로 원로”라는 별명 아닌
[김수진] “시나리오 보고 모두가 반대한 영화였다.”
-
레니 크라비츠의 대표곡은 둘이다. 하나는 <It Ain’t Over ‘Til It’s Over>이고 다른 하나는 <Are You Gonna Go My Way>다. 이 두곡은 올해 마흔셋이 된 이 베테랑 뮤지션의 두 가지 측면을 대표한다. 전자가 커티스 메이필드와 마빈 게이의 전통에 속해 있는 세련된 솔-훵크 음악이라면 후자는 지미 헨드릭스와 레드 제플린 등의 ‘기타 마스터’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강력한 하드록의 자장에서 움직이는 곡이다.
이 두 전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뮤지션이라면? 프린스다. 따라서 레니 크라비츠가 1989년 데뷔했을 때 사람들이 크라비츠를 프린스의 후계자(혹은 아류)로 지목한 것은 당연했다. 그는 프린스처럼 솔-훵크와 로큰롤 모두에 능했고, 그 둘을 구김살없이 융화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음반의 전곡을 작사·작곡했으며 음반에 사용된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했다.
그러나 크라비츠는 프린스와 달리 ‘예술가’(artist)보다는 ‘
고전적 록 스타로서의 회귀, 레니 크라비츠의 신보 <>
-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이언 매큐언의 데뷔 초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단편집이다. <암스테르담> <속죄>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이 이미 소개된 상태에서 새로 읽는 그의 이 소설집은 거칠고 끈적거리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혐오로 가득하다. 성인이 되고도 소년 시절의 철없음을 루저 정서에 맞물려 웃음을 끌어내는 닉 혼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이언 매큐언은 꿈꾸지 않는 청춘 군상을 부려낸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의 주인공들은 곧게 응시하기보다 고개를 돌려버리게 만드는 일그러진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데, 그 과정은 주인공들에게도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도 결코 녹록지 않다.
<나비>의 화자는 난생처음 시체를 봤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운하 위를 따라 뛰는 소녀를 봤다. 어린 제인이 익사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그는 ‘용의자로 찍힐 만한 인상’의 소유자다. 제인의 사건을 담당한 형사도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폐수 거품처럼 끈적이는 인간의 불쾌한 욕망 <첫사랑, 마지막 의식>
-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이제 애들도 어느 정도 다 자라버린 불혹의 나이를 넘긴 주부들을 모아놓고 자아찾기에 관한 강연을 했더란다. 거기서 자신의 이름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시 한번 짓는다면 어떤 이름으로 할 것인지에 관한 과제를 내주었다든가. 그리고 한 아주머니가 ‘김왕비’라는 이름을 들고 왔다고 한다.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지친 자신의 처지가 꼭 궁중의 무수리 같은 기분이 들어 다음에 태어나면 중전마마처럼 대접받고 살고 싶은 바람을 담은 이름이었다고.
그래, 여자라면 누구나가 왕비나 공주처럼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꿈을 꾸지. 그리고 여기, 왕비도 아니고 무려 왕후를 들고 나온 두편의 CF가 있다. 그리고 그것 모두가 다름 아닌 화장품 CF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도도함과 화려함과 기품으로 대변되는 왕후의 자리. 고개 숙여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 사이를 고개를 치켜든 채 유유히 걷는 우아한 왕후는 ‘피부는 권력’이라 말한다. 얼굴에 잡티있는 것들이 어
[도마 위의 CF] 미모는 권력이다?
-
KBS1 3월9일(일) 밤 12시50분
<마이클 클레이튼>의 주인공은 마이클 클레이튼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드러난 그는 불의의 중심에 있거나 정의의 중심에 있는 대신 그 사이에서 최대한 존재감없이 존재하는 자이다. 그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이지만, 소송팀에 속하지 못하고 회사와 관련된 음지의 일들을 은폐하고 처리해주는 일을 도맡고 있다. 게다가 그는 빚더미에 앉은 이혼남으로 사생활 역시 피폐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진실을 폭로하려던 절친한 동료 변호사가 괴로워하던 끝에 의문의 죽임을 맞이하자, 마이클은 더이상 썩어가는 우물처럼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뒤이은 마이클의 행동을 진실에 맞서는 정의감으로, 보잘것없는 남자의 영웅으로의 환골탈태로 포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더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이제는 적어도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현실과 대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토니 길로이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마
진실을 목도한 인간의 가장 정직한 표정, <마이클 클레이튼>
-
방송사와 시청자가 공유하는 ‘완전 소중한’ 캐릭터 군단에 애완의 대상도 세부 장르로 침투했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막론하고 만만하게 부를 애칭 하나 획득하지 못하면 마치 낙오자처럼 여겨지는 게 요즘 방송가의 풍경. 하찮든지 허당이든지 유치하든지 뚜렷한 캐릭터를 가져야 시청자의 적극적인 관심권 아래 머물 수 있다. MBC <무한도전>의 수선스럽고 빈틈 많은 남성들이 국민의 프렌즈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요즘 KBS2 <해피선데이>의 ‘1박2일’ 사람들도 먹고 자는 문제에 티격태격하는 유아적인 속성으로 시청자의 눈높이를 올리고 있다. 숭배의 대상보다 같이 놀거나 잔소리를 건네고 싶은 존재를 발견해 우월한 시선을 맛보는 게 TV라는 가상의 세계를 유쾌하게 즐기는 한 자세다.
그런데 한술 더 떠 ‘1박2일’ 멤버들 곁을 맴도는 복슬복슬한 수컷견 ‘상근이’마저 그 사례에 곁들여지고 있는 것은 갈수록 전지전능해지는 시청자의 눈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MBC
상근이와 경수씨의 공통점은?
-
영화의 시작은 시커먼 땅속이다. 은을 찾아 땅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오길 반복하는 남자 다니엘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갑작스런 사고로 다리를 다친다. 이후 그는 또 다른 사고로 목숨을 잃은 동료의 아들 H. W.(딜런 프리지어)와 함께 산다. 석유가 있는 곳을 찾아 미국의 서부를 오가는 그는 리틀 보스턴에 석유가 있다는 엘라이(폴 다노)의 제보에 아들과 함께 리틀 보스턴으로 향한다. 리틀 보스턴은 목사 엘라이를 중심으로 한 광신도적 교인들이 주민의 대부분이다. 다니엘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땅을 사고, 유정탑을 쌓으며, 배송관을 만들어 석유 발굴에 나선다. 사랑, 공동체 의식, 자연, 신앙, 가족 등 인간의 덕목이라 여겨지는 가치들은 석유와 돈을 향한 다니엘의 욕망 속에 자리를 감춘다.
땅속에서 유를 창출하고 좀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부를 불리는 다니엘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세를 불리기 위해 믿음을 전도하는 엘라이의 설교는 자본주의
성공을 꿈꾼 미국의 한 역사 <데어 윌 비 블러드>
-
“우리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 박은혜씨가 자기 몸 중에서 불만이 코라고 하더라.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예쁜데….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카메라를 향해 돼지코를 해보인 거고, 나머지 두 사람도 따라서 흉내내본 거다. 분위기가 좋았다. 촬영 때문이지만 와인도 한잔씩 하고,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 얘기들도 좀 하고, 김영호 선배님은 팝송까지 한곡 불러주셨다. 잘 부르시더라. 파리 촬영 내내 민박집에 같이 묵어서인지 현주 역의 서민정(맨 오른쪽)씨를 포함해서 다들 친해져서 이런 게 나올 수 있었겠지. 아, 근데 왜 돼지코냐고? 그냥. 영화에 나오는 돼지 머리하고는 전혀 상관없다…. 음 선견지명이라고나 할까.”
[숨은 스틸 찾기] <밤과 낮> 여탕 훔쳐본 돼지코가 혹시…?
-
강영준(조한선)이 경찰대학을 나와 내사과에 들어가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지대했다. 영준은 늘 뇌물을 받아먹고 불륜까지 저지르는 아버지 강민호(안성기)를 보면서 비리 경찰을 붙잡는 경찰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마약 조직과 관련을 맺고 있는 한 형사를 추적하던 중 부산의 마약 밀매조직이 그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사를 위해 부산의 한 경찰서로 파견나간 그는 그곳에서 풍속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민호와 8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수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파트너를 이뤄 좌충우돌하면서 거대한 범죄의 세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마이 뉴 파트너>는 거의 용도폐기되고 있던 형사 버디무비의 맥을 따르는 영화다. 이 영화가 참신할 수 있는 지점은 ‘투캅스’를 아버지와 아들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아들과 아버지라는 위치의 차이만큼이나 이 파트너십에서 두 사람의 목적은 다르다. 아들은 자신이 쫓는 범인을 빨리 붙잡아 증오해 마지않는 아버지
버디무비와 부자의 재회극 <마이 뉴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