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인기를 끈 대부분의 미드들은 미국에서 지상파 혹은 일반 케이블TV 채널을 통해 방영된 15금 정도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폭력은 성인들이 볼거리가 상당하지만 섹스만큼은 일정 표현 수위를 넘어서는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섹스 & 시티> 정도가 그나마 표현 수위가 좀 높은 편에 속했지만, 아주 적나라한 수준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반면 섹스와 마약 거기에 폭력까지 버무려 연예계의 추악한 뒷모습을 담은 <더트>(<Dirt>)나 동성애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퀴어 애즈 포크>같이 본격적인 19금스러운 작품들은 시청률에 자신이 없어서인지 국내에서 방영이 아예 안 되거나 방영이 되었어도 폭넓은 층의 주목을 끌진 못했다.
그런 면에서 남녀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될 정도로 본격적인 19금 작품임에도 국내에 많은 팬들을 확보한 <로마>(ROME)는 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19금스러운 장면들을 잘라내면서까지 공중파에서
[이철민의 미드나잇] 사실와 허구 사이, 두 로마인 이야기
-
뮤지컬 <스위니 토드> 9월15일~10월14일/ LG아트센터/ 02-501-7888
“이발사 탈을 쓴 악마!” 스위니 토드는 복수의 칼을 가는 남자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이 뮤지컬은 적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숨기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날카로운 칼이나 흥건한 핏자국을, 장난스럽게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듯 슬쩍 보여주면서 낄낄대는 모양새다. 잔인하고 섬뜩하지만 또 그만큼 유머스럽기도 한 기묘한 작품이다.
빅토리아 여왕 치세하의 런던. “눈부신 미소의 정숙한 여자”는 강간당하고, “순진한 사내”는 패배하는 “더러운” 시대다. 한때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한 삶을 꾸리던 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그녀를 탐하던 터핀 판사의 모략에 빠져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감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아랫집에 살던 파이집 주인 러빗 부인은 터핀 판사에게 희롱당한 아내가 자살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전한다. 설상가상으로 터핀 판사는 당시
차가운 면도날로 베어낸 뜨거운 복수
-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아르테 펴냄
학력 위조를 해서라도 똑똑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달리, 어떻게든 지성을 숨기려는 한 여자가 있다. 54살의 못생긴 과부인 르네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에서 수위로 일한다. 르네는 학교는 가보지도 못했고 항상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사실 문화귀족이다. 그녀는 오즈 야스지로와 톨스토이를 사랑면서도 그 사실을 한번도 남에게 알린 적이 없다. 부유한 아파트 주민들에게 나이들고 못 배운, TV나 보는 관리인 여자라고 낙인찍힌 채 혼자만의 낙원을 즐기는 게 그녀의 낙이다. 겉보기엔 무감각한 듯하지만,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고슴도치처럼.
‘30주 연속 프랑스 전체 도서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지성을 숨긴 채 살아가는 아파트 관리인 르네와 그 아파트에 사는 열두살 소녀 팔로마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두 사람은 꽤 흡사하다. 팔로마
바보 가면을 쓴 지성인들의 낙원
-
[정훈이 만화] <디스터비아> 남기남, 범죄현장을 목격하다
[정훈이 만화] <디스터비아> 남기남, 범죄현장을 목격하다
-
-
침체기에 빠졌던 러시아 영화산업이 재생을 거쳐 날개를 달고 솟아오르고 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후예들이 ‘러시아 블록버스터’라는 신종 영화를 제조했고 목마른 관객은 멀티플렉스를 가득 채운다. 2005년 러시아 최고 흥행작 <제9중대>의 개봉에 앞서 러시아 블록버스터와 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에 대해 알아본다.
1. 러시아 영화산업
소련 붕괴 전 러시아 영화산업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소설 각색이 대부분이었던 볼셰비키 혁명 전 영화는 차르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혁명 뒤 1920년대 에이젠슈테인과 도브첸코는 제한된 자유 속에서도 위대한 영화들을 빚어냈다. 당은 영화가 얼마나 파급력이 큰 선전 방법인지 일찍이 인지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타르코프스키가 등장한다. 1980년대 중반 페레스트로이카가 영화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소련 영화제작자연합은 개별 조합으로 나뉜다. 소련 붕괴 뒤 정부 보조금이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창의성이나 장인정신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알고 봅시다] 에이젠슈테인의 나라, 블록버스터의 날개를 달다
-
더이상 에바(에반게리온의 약칭)를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돌아왔다. 에바가 첫선을 보인 1995년으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그는 또다시 에바를 부활시키기 위해 소신문까지 발표하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序)>(부제 Evangelion 1.0: You Are (Not) Alone)로 귀환한 것이다.
<에반게리온>(정확히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1995년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일본의 지상파 <TV도쿄>를 통해 총 26화의 TV애니메이션으로 공개됐다. 당시 에바는 단순한 로봇애니메이션을 벗어나 인류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과 함께 심리학, 종교학, 신비학 등을 아우르는 다중적인 스토리구조를 선보였고, 다양한 전문용어 등으로 압도적인 정보량과 미스터리한 세계관을 제공하는 일명 ‘관객 참가형 애니메이션’을 실현해 수많은 에바 오타쿠를 양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서브컬처에만
[현지보고] 에반게리온, 12년 만의 귀환
-
베니스영화제에 안 가서 이 잡지의 대부분의 독자들처럼 선정작에 대해선 지역 매체 보도를 통해 듣고 있다. 그리고 대만 미디어의 경우,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섹스다.
세편의 중국어권 영화가 올해 베니스 경쟁에 갔다. 중국 본토 배우 지앙웬이 7년 만에 감독으로서 카메라 뒤에 선 <해는 다시 떠오른다>를 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공식적으로 대만영화로 크레딧에 기록된 두편의 영화, 리안의 <색, 계>와 이강생의 <에로스 나를 도와줘>에 집중 조명하고 있다.
국내 웹사이트가 스파이스릴러 <색, 계>에 대한 데릭 엘리의 평을 중국어로 번역한 반면, 대만 비평가들은 아직 자기 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다. 그들의 침묵은 부분적으로는 영화 속 성적 곡예에 대한 어휘를 찾아내는 데 느낀 어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만 신문에 따르면 양조위와 탕웨이는 ‘서류 클립 자세’로 사랑을 나눈다.
베니스에
[외신기자클럽] 벗어라, 영화! 열려라, 참깨!
-
기무라 다쿠야의 <히어로> 일본 개봉
<후지TV>의 인기드라마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히어로>가 9월8일 일본에서 개봉한다. 기무라 다쿠야가 드라마에 이어 도쿄지방검찰청의 검사 쿠류 고헤이를 맡아 사건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병헌이 우정출연하고 마쓰 다카코, 아베 히로시 등 낯익은 배우들이 출연한 <히어로>는 일본 개봉 뒤 아시아 지역을 순차적으로 찾아갈 예정인데, 10월18일에 홍콩, 대만 등에서 개봉하고 10월25일 한국에 착륙한다. <히어로>의 한국 개봉관 수는 250개로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영화 스크린 수로는 최고기록이다.
롭 좀비의 <할로윈> 노동절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여름 극장가의 열기가 수그러든 9월의 첫 주말, 노동절 북미 박스오피스의 정상은 공포영화 <할로윈>이 차지했다. <살인마 가족> <데블스 리젝트>의 롭 좀비 감독이 연출한 <할로윈>은 1978
[해외단신] 기무라 다쿠야의 <히어로> 일본 개봉 外
-
영화를 보시기 전 휴대폰은 진동으로… 아니, 그냥 꺼주세요~! 휴대폰이 영화 불법복제의 새로운 주자로 떠오르면서 할리우드가 두통을 앓고 있다. 지난 7월 <심슨가족, 더 무비>가 개봉한 뒤 3일이 채 지나지 않아 휴대폰 촬영본이 온라인에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빗 토렌트> <파이럿 베이> 등 인터넷 다운로드 사이트에는 휴대폰 불법촬영 동영상들이 속속들이 업로드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캠코더를 이용해 이루어져온 불법촬영이 휴대폰으로 둥지를 옮긴 데에는 이른바 “첩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우선 극장에 입장할 때 의심을 받지 않고, 크기가 작은 만큼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도촬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미국영화연합(MPAA)의 대변인 엘리자베스 칼트먼은 “기술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이 캠코더 이상의 다른 기기들을 사용하고 있다”며 “특히 휴대폰의 배터리와 메모리 기능이 향상되면서 도촬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 더
[What's Up] 극장에선 휴대폰 아예 꺼주세요
-
영화 다운로드,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 제시됐다. 2011년 미국과 서유럽의 영화 다운로드 시장 규모가 13억달러에 이르게 된다. 9월4일 글로벌 미디어 시장 분석기관인 <스크린 다이제스트>가 발표한 내용이다. 2006년 현재 미국과 서유럽의 소비자들이 온라인영화에 소비하는 비용은 5천만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 5년 안에 26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할 거라는 얘기다. 2011년까지 미국과 서유럽 영화 홈엔터테인먼트 시장 안에서 온라인 디지털영화 부문이 3%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릴 것이라는 예상은 몇몇 관측가들의 예상에 비하면 다소 소극적인 편이지만, DVD의 성장이 주춤한 가운데 다운로드 시장이 중요한 위치를 점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다운로드 시장의 속성과 이에 대처하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전략에 대한 우려까지 포함된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다운로드 시장 수입 13억달러 중 상당액에 해당하는 9억3500만달러 정도가 스튜디오와 콘
영화 다운로드, 시장의 확실한 금맥?
-
장준환 감독의 책상 위에는 카드 뭉치가 놓여 있었다. 신작 <타짜-리벤저>의 구상을 위해 필리핀에 있는 카지노를 5주간 견학하고 왔다는 게 생각나, 실력이 많이 늘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노력은 하는데 잘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웃음) 사람마다 합이 있나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항상 이기는 데 어떤 사람에게는 또 항상 안 되더라”며 웃는다.
그리고보니 지나치듯 한 이 말이 사실은 영화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기발한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이후 준비 중인 두 번째 영화 <타짜-리벤저>는 ‘어떤 사람에게는 항상 안 되는 누군가’가 기어이 상대방의 모든 걸 빼앗으면서부터 시작되는, 비틀린 관계와 욕망이 불러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부터 함께 단짝 친구로 지내온 장태영과 박태영, 일명 장태와 박태. 언제나 모든 천운과 함께 살아가는 장태에게 노력파 박태가 시기심을 가지면서 박태는 악마처럼 변해가고, 결국 장태의 모든 걸 빼앗아 그를
[2008 기대작] 장준환 감독의 <타짜-리벤저>
-
“아직도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 뭐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짧은 시놉시스만을 슬그머니 훔쳐본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는 한강 무인도에 상륙한 남자의 생존기다. 남자 ‘김씨’가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교각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자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김씨는 한강에 떠 있는 무인도 모래사장에서 눈을 뜬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수영으로 섬을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신세. 김씨는 유람선을 향해 살려달라 손을 흔들어보지만 승객은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할 뿐이고, 휴대폰은 텔레마케터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배터리가 나가버린다. 체념한 김씨는 한강 무인도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보기로 결심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철새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자급자족을 영위하던 김씨에게 어느 날 와인병에 담긴 쪽지가 도착한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망원경으로 남자의 삶을 지켜보던 한강변 고층 아파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여인이었다.
봉준호 감독
[2008 기대작]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
-
솔직히 물어보자. <천하장사 마돈나>의 감독 이해영과 강풀의 <26년>은 어울리는 조합인가. “아니… 겠죠. (웃음).” 이해영 감독은 영화화 제의를 받은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26년>이라는 작품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원작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거다, 하고 감이 왔던 걸까. 그도 아니다. “왠지 좀더 마초랄까, 혹은 더욱 적극적인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전두환을 죽이러 가는 이야기기라니, 자신이 없었다.” 하긴, 실존 인물의 암살을 그리는 원작을 누군들 선뜻 선택할 수 있겠나. 미디어 다음에 연재되며 하루 조회수 200만건을 기록했던 강풀의 <26년>은 전두환 암살 모의를 다루는 장르만화다. 계엄군으로 시민군을 죽인 죄책감에 평생을 고통받아온 대기업 회장 김갑세가 전두환 암살이라는 숙원을 이루기 위해 광주 시민군의 2세들을 불러모은다. 조폭, 경찰, 조각가, 사격선수 등으로 구성된 그들은 여러 가
[2008 기대작] 이해영 감독의 <26년>(가제)
-
“역도산, <피와 뼈>의 김준평, <내일의 죠>의 원작자 가지와라 잇기, <분노의 주먹>의 제이크 라모타, 왕우 같은 무뢰한들은 너무나 매혹적인 인물이다.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피투성이가 돼 스스로 자기무덤을 팠던 남자들.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오승욱 감독이 홍콩 무협스타 왕우에 대해 썼던 글에서) <킬리만자로>(2000)로부터 무려 7년, 오승욱 감독은 <무뢰한>이라는 신작에 매달려 있다. 그동안 <씨네21>을 통해서도 알랭 들롱, 박노식 등 동서를 넘나드는 과거 누아르 액션영화의 향수어린 주인공들에 대한 맛깔스런 글을 썼던 그이기에 <무뢰한>이라는 제목이 주는 울림은 크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무뢰한은 오히려 냉혈한에 가깝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그런 폭력적 무뢰한이기보다는 남에게 기대지 않는 대신 남이 자신에게 기대는 것 또한 거부하는, 철저히 자기만의 룰로 살아가는 냉정한 남자다. <킬리
[2008 기대작]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