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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그녀가 신인이라곤 믿지 못할 것이다. <색, 계>의 히로인인 탕웨이는 양조위와 비교해도 당당히 ‘주연’이라 말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격동의 세월과 흔들리는 욕망의 그림자는 오직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 압축돼 있다. 영화 내내 그녀는 전혀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묵묵히 견뎌낸다. 그런데 정말, 이미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장쯔이보다도 한살 많은 탕웨이는 신인이 맞다. 물론 연예계 활동은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10대 시절 모델로 활동했던 그녀는 베이징중앙연극학원에서 착실히 수업을 쌓았고, 2004년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이후 몇몇 TV영화에 출연하던 중 드디어 지난해에는 CCTV 영화채널에서 수여하는 최고 여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리안 감독의 <색, 계> 오디션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베이징과 홍콩을 오가며 모두 5번의 오디션을 봤다. 그러다 마음을 비우고 지방에 내려가 있
[탕웨이] 말로 할수 없는 것을 연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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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2000)으로부터 7년 뒤 리안 감독이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30∼40년대 홍콩과 상하이를 오가며 펼쳐지는 <색, 계>는 일제강점기의 격동의 세월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몸에 짙게 새겨진 ‘색’과 ‘계’의 흔적을 그린다. 이처럼 <색, 계>는 그가 7년 만에 다시 시도한 중국어영화지만 필름누아르적인 무드에서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그만의 면모 또한 녹아 있다. 이렇게 영화를 둘러싼 궁금증에서부터 양조위는 물론 <색, 계>로 데뷔한 탕웨이에 이르기까지 리안 감독은 영화에 대해 꼼꼼한 주석을 달아줬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7년 전 한국을 찾았을 때 인사동에서 맛보았다는 된장찌개를 다시 먹으러 갈 생각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먼저 <색, 계>는 당신의 이전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노출과 묘사의 수위를 보여줘서 큰 논란을 낳고 있다.
=아마 내가 중년의 위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웃음) 과거에는 사랑에
[리안] “<색, 계>는 연기에 관한 내 자전적인 논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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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개봉하고서 갑자기 <색, 계>에 홀렸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각각 애니 프루와 장아이링,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두 여류작가의 원작 소설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욕망을 뜻하는 색(色)과 신중을 뜻하는 계(戒)가 연결된 <색, 계>라는 제목은 표면적으로는 사랑과 섹스를 뜻한다. 그렇게 <색, 계>는 계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침울한 공기 속에서 색에 탐닉했던 두 주인공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홍콩으로 간 왕치아즈(탕웨이)는 대학교 연극부에 가입한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급진파 광위민(왕리홍)을 흠모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가 주도하는 항일단체에 몸담게 된다. 그들은 친일파의 핵심인물인 이(양조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왕치아즈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그에게 접근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상대를 신중하게 경계했던 두 사람은 곧장 사랑의
<색, 계> 또 하나의 이질적인 리안 영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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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소문으로만 전설이 된 것 같은 영화 <색, 계>는 미국에서 NC-17등급, 중국에서 30분가량 삭제되어야만 개봉될 수 있었다. <와호장룡>(2000) 이후 리안 감독의 새로운 중국어영화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정과 관능의 묘사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궁금증은 증폭됐다. 양조위의 탁월한 변신과 탕웨이라는 신인의 발굴도 거기에 더해진다. 그렇게 리안 감독은 1930∼4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항일 애국주의 드라마를 섹슈얼리티에 대한 탐색으로 풀어놓았다. 국내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무삭제 개봉한다. 더불어 <색, 계> 개봉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리안 감독과 배우 탕웨이를 만났다. 아쉽게도 양조위는 <적벽> 촬영으로 인해 함께하지 못했다.
치명적인 관능, <색,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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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성공가도를 달리는 자신만만한 남자가 있다. 경력만 화려한 줄 알았더니 아내에겐 가정적인 남편이요, 딸에겐 자상한 아버지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이 남자의 삶은 그 완벽함 때문에 왠지 위태롭다. 아니나 다를까, 곧 그의 안온한 일생을 박살내는 악당이 등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다시는 딸을 보지 못하리라 협박한다. 마이크 바커 감독의 스릴러 <더 버터플라이>에서 닐 랜달(제라드 버틀러)이 라이언(피어스 브로스넌)의 횡포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딸 소피의 납치다. 거기다 함께 붙잡힌 아내 애비(마리아 벨로)와 그가 회사와 관련해 저지른 몇 가지 비리들 역시 그의 발을 묶어놓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전까지 닐의 세계를 완전무결하게 보이게끔 한 모든 것들이 도리어 치명적인 비수로 돌아오는 셈이다. 게다가 라이언은 유례없이 잔인한 악당이다. 자신이 돈 따위에는 관심없다는 사실을 시사하듯 닐에게 전 재산을 인
아이리시 억양의 악당 피어스 브로스넌 <더 버터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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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결혼식의 들러리로 만난 시트콤 작가 세스(프렌치 스튜어트)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첼시아(브리짓 윌슨)는 첫눈에 서로에게 끌린다. “세번의 식사”라는 첼시아의 데이트 룰에 따라 허겁지겁 조건을 채운 두 사람은 속궁합을 확인한 뒤 동거에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로맨틱코미디의 전부라면 나머지는 동거부터 시작한 커플의 충돌과 애증 병존의 남녀관계를, 시트콤과 관계조정 드라마의 성긴 조합으로 보여준다. 감독이 여성혐오자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결혼에 맹목적인 첼시아와 더불어 다른 여자 캐릭터들도 멍청하거나 이기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갖은 공을 들여 프러포즈를 받으려던 첼시아의 사랑은 결혼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적대적으로 돌변한다. 영화는 파국으로 치달은 관계를 코미디로 표현하는데, 애완동물을 납치하고 제모제로 머리카락을 녹여버리는 등의 상황은 웃기기보다 황당하다. 세스가 각본을 쓰는 시트콤 <로니와 줄리엣>은 극중극의 구조로 악화일로의 관계를 재
충돌과 애증 병존의 남녀관계 <트러블 앤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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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무기회사의 영국 판매부서가 헝가리로 워크숍을 떠난다. 시작은 좋았다. 그들이 할 일이라고는 사장이 소유한 호화 산장에서 며칠 푹 쉬는 것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브란스>는 슬래셔영화니 누구의 편안한 휴가도 보장하지 않는다. 먼저 헝가리인 운전기사가 숲 한복판에 일행을 내버리고 달아난다. 리더십이라곤 없는 부장이 팀원을 데리고 겨우 도착한 곳은 폐허나 마찬가지인 버려진 산장. 다음날 그들은 팀워크를 위한 페인트볼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하지만, 팀원 중 한명이 누군가가 설치한 곰덫에 다리 한쪽을 잃는 순간 목숨을 담보로 한 진짜 서바이벌 게임이 막을 올린다.
‘절단’이라는 의미를 지닌 <세브란스>는 스플래터 장면이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슬래셔영화다. 하지만 <세브란스>의 거두절미 사지절단 장면들은 기꺼이 참아낼 가치가 있는 즐거움이다. 크리스토퍼 스미스의 <세브란스>는 전작 <크립>과는 달리 포복절도할 코미디 장면들을 잔뜩
포복절도 코미디 혹은 슬래셔 무비 <세브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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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영, 조창호, 김성호 세 감독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영화. 첫 번째 에피소드 <암흑 속의 세 사람>(연출 박수영).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늦잠을 자고 시험시간에 들어가지 못한 여고생(한여름)이 낙담 끝에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멀쩡하다. 그 뒤부터 이 여학생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별난 남학생(타블로) 하나가 나타나 학교를 폭파하겠다고 하고, 양호 선생(김가연)은 갑자기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해오고, 학생 주임(박휘순)은 누군가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겁에 질려 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소녀의 주변에 몰려든 걸까. 두 번째 에피소드 <날아라 닭>(연출 조창호). 자살하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경찰(김남진), 자살 직전 한 무리의 괴한들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우연히 알게 되고 그들과 대치하게 된다. 총알은 세개 남았을 뿐인데 남자는 지금 당장 상대방을 겨눠야 할 처지다. 그의 자살을 위한 마지막 총알은 과연 남을 것인가. 세 번째
유쾌함이 묻어나는 환상 <판타스틱 자살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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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노모 밑에서 하녀처럼 생활하던 아든(토니 콜레트)은 어느 날 참혹하게 살해된 채 버려진 여자를 발견하고 난생처음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불현듯 나타난 시체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드걸>은 하나의 죽음이 다섯 여인의 삶에 가져온 파장을 탐색하는 옴니버스 구조의 영화다. 무력했던 일상에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아든, 15년간 지속된 언니의 실종에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레아(로즈 번), 남편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루스(메리 베스 허트), 죽은 딸이 감췄던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는 멜로라(마샤 게이 하든). 4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죽음의 둘레를 맴돌던 영화는 마지막으로 시곗 바늘을 돌려 “데드걸” 크리스타(브리트니 머피)의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데뷔작 <블루 카>(2002)로 호평받은 바 있는 카렌 몬크리프 감독은 하나의 살인을 구심점으로 삶의 모자이크를 그리는 동시에 폭력과 빈곤 등 실상 죽은 바와 다름없이 살아가던 여인들의 내면과 그 흔들
죽음이 변화시킨 그녀들의 삶 <데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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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7년, 하이테크로 무장한 일본이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듯 문을 걸어잠근다. 10년이 지난 2077년,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 일본은 온 세계를 자신들의 수출품으로 점령하지만 위성 촬영을 막는 보호막마저 친 이 섬나라에서 뭔가 수상한 기미가 새어나온다. 그리하여 쇄국정책 아래 단 한명의 외국인도 출입하지 못한 이곳에, 그 음모를 캐내고자 미국 특수부대 스워드(SWORD)가 잠입한다. 스워드 부대원인 벡실은 역시 스워드의 일원인 리온과 연인 사이. 벡실에게 감추고 있지만 리온은 일본에 얽힌 비밀을 지니고 있다.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일본에 잠입한 그들은 보호막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직전 일본군에 들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다음 임무를 수행코자 대열에서 이탈한 벡실만이 홀로 살아남아 레지스탕스 조직과 그 리더인 마리아와 마주한다.
<벡실>은, 뚜렷한 세계관을 지닌 SF물들이 그러하듯 다소 복잡하고 충격적인 설정을 따르는 SF애니메이션이다. 거대한 군수공장에
인간의 용기와 희생 <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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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 할리우드는 끊임없이 자기 상처를 들여다본다. 수많은 영화들의 그러한 시도는, 그러나 대체로 공포와 피해의식에서 머뭇거릴 뿐이었다. 더이상 예견도, 포착도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무시무시한 불안만이 팽배하다. 민주당 지지자인 로버트 레드퍼드의 <로스트 라이언즈>는 9·11 이후, 명분없는 전쟁으로 무너져가는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조금은 다른, 어쩌면 조금은 나은 영화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반부시적이기는 해도 반미국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최선을 다해 성찰하지만, 국가라는 모호한 실체 앞에서는 애매하게 성찰의 끈을 놓아버린다.
영화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세 가지 이야기, 혹은 영역, 혹은 양상을 교차시킨다. 하나는 언론과 정치가 맞물린 기생의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남의 땅에서 죽이고 죽어가는 파병된 미군들의 공간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런 사회를 무기력하게 분석하고 냉소하는 학문의 공간이다. 영화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세 가지 이야기 <로스트 라이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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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워치>의 시놉시스를 정리하기 위해선 일종의 심호흡이 필요하다. 전작 <나이트 워치>와 개봉을 기다리는 속편 <데이 워치>는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존재하며 인류를 지켜온 두 종족, 나이트워치와 데이워치의 전쟁을 다룬다. 나이트워치는 어둠의 세력인 뱀파이어나 마녀 종족을 감시하는 빛의 기동대고, 데이워치는 빛의 세력인 천사나 마법사를 감시하는 어둠의 기동대. 둘은 ‘상대방에게 단 한 방울이라도 피를 흘리게 하면 안 된다’는 평화협정을 통해 아슬아슬한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트 워치>에서부터 슬며시 균열 조짐이 보이던 두 종족의 협정은 <데이 워치>에서 마침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전작에서 아내의 불륜에 분노한 나머지 계약을 통해 나이트워치가 된 주인공 안톤(콘스탄틴 카벤스키)역시 <데이 워치>에서 조금 복잡한 상황에 빠져든다. 그는 세상을 멸망시킬 만큼 거대한 힘을 지녔으나 성격은 제멋대로인 나이
모스크바산 블록버스터의 화력 <데이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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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나무를 심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시작된다. 모두들 점점 사막화되어가는 초원을 어떻게든 지켜보려는 헝가이(바트을지)의 노력이 무모하다고 여기고 더이상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고 여겨 그곳을 떠나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여긴다. 마른 모래땅에 묘목을 심는 그의 행위는 자연에 대한 정복이나 개발과는 거리가 먼, 불가능한 믿음처럼 보인다. 이 고지식한 사내는 문제가 생긴 딸의 청력을 고치기 위해 울란바토르로 떠나자는 아내의 간청마저 뿌리치고 혼자 남는다. 이웃과 가족이 다 떠나버린 뒤 탈북자 모자 최순희(서정)와 창호(신동호)가 하룻밤 묵을 곳을 청하며 그의 움집 문을 두드린다. 귀가 들리지 않았던 딸의 자리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소년이, 그의 나무심기를 비난하던 아내의 자리에 묵묵히 일손을 돕는 여자가 들어선다. 그들이 청한 하룻밤은 소년이 떠나기를 거부하면서 하루 이틀 연장되고 사내와 모자는 천천히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그들이 같이 있
인간의 내밀한 욕망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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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색, 계>는 육체의 형형한 실존에 대한 영화다. 생(生)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치열한 길항작용에 대한 영화이고, 지루한 세월이 폭발하는 찰나에 맞서 힘겹게 싸움을 벌이는 영화다. 혹은 시간은 불균질하고 공간은 윤회한다. 그리고 삶은 ‘지금 여기’와 ‘기타 등등’으로 나뉜다.
1938년 홍콩. 대학 연극반에 가입한 왕치아즈(탕웨이)는 대륙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에 맞서 애국적 저항 활동을 벌이려는 광위민(왕리홍)에게 매료된다. 광위민이 친일파 핵심 인물인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이에 동조한 왕치아즈는 신분을 위장하고 미인계를 써서 이의 아내(조안 첸)에게 접근한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와 왕치아즈는 서로에게 강렬히 이끌리지만, 급작스레 이가 상하이로 발령이 나 옮기는 바람에 암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1941년 상하이. 강력한 항일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광위민이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 왕치아즈에게 3년 만에 찾아
육체의 형형한 실존에 대한 영화 <색,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