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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즐겨라”
김도훈 2008-05-02

2일부터 4일까지 펼쳐지는 심야 상영 프로그램 ‘불면의 밤’

처음엔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전주영화제에 왠 불면의 밤이냐고. 오히려 부천영화제에 걸맞는 섹션 아니냐고. 하지만 지난 몇년간 심야 상영 프로그램 ‘불면의 밤’은 전주영화제의 가장 인기있는 섹션으로 자리를 굳혀왔다. 마니아 성향의 관객과 작가영화 관객, 새로운 실험을 찾아헤매는 영화광들의 취향을 고루 충족시켜려는 프로그래머들의 고민이 빛을 발해온 덕분이다. 올해 불면의 밤은 ‘호러의 밤’(2일), ‘활극의 밤’(3일), ‘음악의 밤’(4일)의 세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모두 9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조지 로메로의 신작 <시체들의 일기>와 윌리엄 프리드킨의 <버그>, 앤드루 도미닉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조이 디비전의 팬들을 위한 <조이 디비전> 등 상영작의 면모는 어느해보다도 열광할 만하다.

호러광들이 기다려온 작품은 ‘호러의 밤’의 정점인 조지 로메로의 신작 <시체들의 일기>일 것이다. 시체 3부작(<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시체들의 새벽> <죽음의 날>)의 오랜 거장은 2005년 개봉한 <랜드 오브 데드>를 통해 전성기의 창조력을 되찾았노라 선언한 바 있다. <시체들의 일기>에서 그는 조금 더 나아가 <클로버필드>와 <블레어 위치>의 형식을 차용한다. 공포영화를 찍으러 교외로 나간 대학생들은 위성 TV를 통해 좀비 역병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의 목숨을 건 탈출기는 2대의 카메라에 의해 기록되어 UCC 사이트에 업로드된다. ‘시체 시리즈’를 통해 자본주의와 베트남 전쟁의 함의를 담아냈던 로메로는 이제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칼날을 들이댄다. 하지만 <시체들의 일기>는 지나치게 말이 많다. 말 없이 끈적한 공포를 통해 시대를 감지했던 로메로는 이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는데 힘쓴다.

<버그>(Bug)는 오랫동안 성공작을 내지못한 윌리엄 프리디킨이 오랜만에 내놓은 역작이다. 폭력적인 남편의 출소일을 피해 주인공 아그네스는 교외의 낡은 모텔로 들어가 걸프전 참전용사인 피터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피터는 걸프전 당시 생체실험자였던 자신의 몸에 벌레(Bug)가 이식되었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시놉시스만으로는 식인벌레가 등장하는 B급 호러영화처럼 보이지만 <버그>는 관객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반하는 작품이다. 동명의 브로드웨이 연극을 스크린에 올린 이 작품에서 프리디킨은 공포의 실체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공포 그 자체를 이용해 관객의 숨을 틀어막는데 성공한다. <엑소시스트> 이후 프리디킨의 최고작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말은 아니다.

‘활극의 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은 앤드류 도미닉의 서부극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이다. 젊은 청년 로버트 포드는 19세기 후반 서부의 로빈훗이라 불리던 갱단 두목 제시 제임스를 동경한 나머지 그의 단원이 된다. 하지만 로버트는 점점 제시 제임스를 죽여서 명성을 얻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지 못한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은 (같은 촬영감독을 공유하고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할리우드에서 새롭게 사유되고 있는 ‘서부영화’다. 전통적인 장르의 관습은 철저하게 해체되고 영웅주의는 더이상 찾아볼 수 조차 없다. 작년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브래드 피트와 벤 애플렉의 동생인 케이시 애플렉은 지금 할리우드의 젊은 남자배우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급의 연기를 과시한다.

이미 개봉한 안톤 코빈의 <컨트롤>을 통해 이언 커티스와 조이 디비젼의 삶을 회고했던 음악팬들이라면 ‘음악의 밤’의 클라이막스인 다큐멘타리 <조이 디비전>을 놓치지 마시길. 록그룹 라디오헤드의 투어를 기록한 다큐멘타리로 명성을 얻은 그랜트 지 감독은 ‘뉴 오더’ 멤버들과의 인터뷰와 오래된 공연 기록 영상들을 빼곡히 모아서 조이 디비전의 전설을 회고한다. 이언 커티스의 음울한 매력이 빛을 발하는 공연 실황만으로도 잠을 잊을 가치가 있다.

한가지 덤이 있다. 영화제측은 올해 ‘불면의 밤’에 참가하는 밤을 잊은 관객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모두 1500여개의 바나나, 3000여개의 삼각김밥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이어트 중인데 이런 야식테러 라니. 너무한거 아니냐고? 다이어트 중인 영화광이 식도락의 천국 전주에 왔을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