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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축 늘어지는 품새가 여간 피곤한 모양이 아니다. 하룻동안에 이미 15건의 인터뷰를 시간차공격처럼 척척 해치웠다는 말을 들으니 살짝 겁이 난다. 이 배우 설경구, 까칠할 때는 꽤 까칠한 인간인데 피곤에 절어 비협조적으로 나올까 걱정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어휴, 힘들어. 나 그냥 갈게. 당신 마음대로 써줘”라고 말한다. 약간 부아가 나 “그럼 가시든가”라고 농을 던지니 자세를 곧추세우며 “일하자, 일!” 한다. 빈둥대다가 결국 사건에 임하면 악다구니로 밀어붙이는 강철중처럼 그는 자연스레 감기는 눈꺼풀을 치뜨며 대화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설경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 중 하나라고 평가했던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다시 입는 소감부터 물어봤다.
-<공공의 적>의 형사 강철중을 다시 연기하는 건 어땠나.
=나쁘진 않았다. 검사 강철중보다는 좀더 비어 보이는 형사가 나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공공의 적을 잡는다는 건 매력이 없지 않나. 경찰이
[설경구] “요새 다 힘든데 강철중이라고 살기 편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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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물에 만족하나.
=스탭들과의 기술시사를 5월30일에 했고, 6월1일에는 점검 차원에서 혼자 영화를 봤는데 관객과의 정면승부에서 질 것 같지는 않더라. 코미디를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놓았는데 내가 의도했던 데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썰렁한 반응이 나오면 나는 죽는 건데 말이다. 혼자 마지막으로 점검하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사실상 <공공의 적>의 2편인 셈인데 어떤 점에 염두를 뒀나.
=<공공의 적>은 내가 만들었지만 이성재가 연기했던 악당 캐릭터가 좀 불편했다.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는 좋은데 그에 비해 적은 너무 단순했다. <공공의 적2>의 정준호도 가진 자라 자신이 나쁜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악당이었다. 반면 <투캅스> 1편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웃음이 있었다. 웃지만 그냥 막 웃어넘기는 그런 영화는 또 아니었다. 그래서 <공공의 적>의 캐릭터가 좋으니까 그 캐릭터에 <투캅스> 스타일을 얹어보자는 생각을 했
[강우석] “이걸로 안 되면 나는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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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은 강우석 감독 개인에겐 카운터펀치 같은 의미를 갖는 영화다. 오로지 상업영화, 오락영화를 만들어왔던 그는 <실미도> 이후 <공공의 적2>와 <한반도>를 만들면서 노선을 급선회했다. 그는 이들 영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직설화법으로 외쳤지만, 평단은 물론이고 대중적 반향 또한 그의 기대를 밑돌았다. 그가 <공공의 적>의 사실상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강철중>을 만들기로 작심했던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만들어왔다고 자부하는 오락영화, 상업영화를 통해 감독으로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지난 6월2일 기자 시사를 통해 첫선을 보인 <강철중>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은 그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다. 다양한 비판도 제기되지만 대체로 ‘무난한 오락영화’라는 의견이 나오고
<공공의 적>의 속편 <강철중: 공공의 적 1-1>의 성취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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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의 컴백이다. <공공의 적>(2002)에서 관객을 웃기고 울렸던 강철중 형사가 마침내 복귀한 것이다. <공공의 적2>(2005)가 있긴 하지만 그 영화 속 강철중은 세상에 대해 ‘메시지’를 내지르는 사명감 투철한 검사였다. 무식하고 게으르지만 일단 뭔가를 물면 절대 입을 벌리지 않는 미친 개 같은 캐릭터 강철중이 <공공의 적>의 진정한 매력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공공의 적2>는 시리즈 영화로서 정통성을 부여하기 어려웠다. ‘공공의 적1-1’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강철중>은 그런 면에서 <공공의 적>의 적자(嫡子)에 해당한다. 과연 <강철중>은 <공공의 적>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나. 그리고 어떻게 차별화하려 하는가. 그 성취와 한계를 짚어본다. 강우석 감독과 설경구의 인터뷰도 함께 싣는다.
<강철중: 공공의 적 1-1> 미친 개 강철중의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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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연희 감독만큼 대중에게 얼굴이 잘 알려진 의상감독은 없을 게다. 이름만으로 얼굴이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얼마 전까지 전파를 탔던 인테리어 벽지 광고를 하나 떠올려보시라. 이영애에게 “누구 감각?”이라고 묻던 지인(知人). 그녀가 바로 마연희 의상감독이다. 궁금증은 거기서 출발한다. <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조감독 출신인 장훈이 메가폰을 쥐고 김기덕 사단의 스탭들이 그대로 참여한 누아르영화다. 우아한 여배우에게 감각을 조언하던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 의상감독이 김기덕 사단의 액션영화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뭘까. 표면적인 이유야 간단하다. “<아름답다>랑 김기덕 감독님 신작 <비몽>에서도 의상을 맡았으니까. 그 인연으로 계속해서…. (웃음)”
<영화는 영화다>는 주먹과 예술이 싸움질하는 이야기다. 강패(소지섭)는 폭력조직에서 넘버 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깡패다. 수타(강지환)는 스타급 배우다. 수타는 <영화는 영화다>라는
[하반기 한국영화] 마연희 의상감독이 말하는 <영화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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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사람을 먹는다. 영화 <차우>의 제목으로 쓰인 ‘차우’는 바로 그 식인멧돼지를 일컫는 이름이다. 몸길이 2m. 추정 몸무게 약 410kg. 지리산 기슭의 10년 무사건사고 마을 삼매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 거대한 몸집의 동물은, 세상에 있을 법하나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 가상의 동물이다. 말하자면 <차우>에서 삼매리 마을 사람들과 뒤엉키는 식인멧돼지는 100% 가짜다.
<차우>는 코미디와 호러를 독특한 감각으로 조합한 영화 <시실리 2km>(2004)로 데뷔한 신정원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이 영화의 멧돼지 CG 작업은 ILM 출신의 할리우드 스탭 한스 울리히가 맡고 있다. CG 작업이라고 해서 문자 그대로 컴퓨터상에서 픽셀로만 완성되진 않는다. ‘차우’는 세 가지 타입으로 만들어졌다. 애니매트로닉 버전, 스턴트 버전, CG 버전. 애니매트로닉 버전은 눈 깜박임이나 귀 펄럭임 등 섬세한 신체 표현들이 가능한 고가의 로봇 인형이고,
[하반기 한국영화] 한스 울리히 CG수퍼바이저가 말하는 <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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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정윤수 감독의 1년 전 대답은 단호한 부정이었다. 내 것보다는 남의 물건을 탐냈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의 네 주인공은 ‘지금 살고 있던 사람’을 떠나서야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질문에 대해 정윤수 감독은 이제 복잡한 긍정으로 답한다. 한 남자와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또 한번의 결혼을 감행하는 이야기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혼없이 두 가정을 거느리는 대담한 여자의 로맨스다. 박현욱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인어공주> <팔월의 일요일들>의 송혜진 작가가 각본을 쓴 작품. 제도가 둘러놓은 울타리 속에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주인공들이 자기 집을 버린 채 옆집을 탐했다면,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주인공 인아(손예진)는 자기 집도 지키고 저 아래 경주에 새로운 집도 차린다
[하반기 한국영화] 정윤수 감독이 말하는 <아내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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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고고클럽을 무대로 통행금지의 밤을 젊음으로 질주하던 고고밴드 ‘데블스’가 온다. <고고 70>은 바로 70년대 기지촌 클럽을 전전하던 보컬 상규(조승우)와 기타리스트 만식(차승우), 그리고 그들의 6인조 그룹 데블스의 이야기다. 화려한 무대매너와 카리스마로 고고클럽 ‘닐바나’를 주름잡던 그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함께 상경한 미미(신민아) 역시 매력적인 춤과 패션으로 동반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화재로 멤버가 사망하는 사건도 벌어지고, 긴급조치 9호로 무대마저 잃게 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데블스는 다시 열정의 무대를 준비한다.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오직 음악을 향한 열정이 그들을 이끈다. <고고 70>은 바로 모처럼 만나게 되는 순도 100%의 음악영화다. <다세포 소녀> <짝패> <라디오 스타> 등을 거치며 쉼없이 달려왔던 방준석 음악감독 역시 오직 그 열정 하나만으로 <고고 70>에 매달렸
[하반기 한국영화] 방준석 음악감독이 말하는 <고고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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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아침이다. 잠에서 깨어난 남자는 익숙한 손짓으로 축음기를 켠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경쾌한 재즈. 그런데 멜로디가 익숙하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남자는 재즈로 편곡된 <메기의 추억>을 들으며 옷을 입고, 머리를 만지고, 구두를 닦는다. “음, 멋있어.” 거울 속 용모에 만족한 남자가 발랄한 스텝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잡음으로 가득한 축음기의 음질은 5.1채널의 서라운드로 변신한다. <모던보이>의 음악을 맡은 이재진 음악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장면은 일종의 선전포고다. “아마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축음기 소리가 5.1채널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처럼 <모던보이>도 모노가 아닌 5.1채널 버전의 경성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웃음)”
음악은 <모던보이>의 “첫번째 퍼즐”이다. 1930년대 경성이 배경이자 중심 캐릭터인 영화를 만들면서 제작진이 겪은 가장 큰 고민은 “고증의 하한선과 모던의 상한선을 어디에 둘 것인
[하반기 한국영화] 이재진 음악감독이 말하는 <모던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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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는 영조가 즉위한 해다. 그러나 여균동 감독의 퓨전사극에서 1724가 뭐 그리 중요하리오. <1724 기방난동사건>이라는 제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오히려 ‘난동’이다. 권유진 의상감독(해인엔터테인먼트 대표)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시나리오를 보니 정통사극이 아닌 건 분명했다. 재미는 있겠지만 정말 어렵겠다 싶더라.” 고증과 과장을 잘 배합하는 것이 최대 관건임은 분명해 보였다. “너무 고증과 관계없이 나가면 대개의 감독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요? 고증을 잘 살려서 만들어가면 감독들은 또 이런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요? (웃음) 그 사이를 잘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했던 딜레마는 없었다. 여균동 감독은 고증은커녕 난동보다 더한 난동을 원했던 것이다.
하긴 <1724 기방난동사건>이라는 영화 자체가 조선시대에도 조폭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완벽 퓨전요리다. 천둥(이정재)은 조선 제일의 주먹이
[하반기 한국영화] 권유진 의상감독이 말하는 <1724 기방난동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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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옥 미술감독은 <신기전>을 촬영하는 동안 여주인공인 홍리로 살았다. 홍리(한은정)는 신기전을 제작하는 무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인물이다. 신기전의 기본도면과 원리를 습득하고 그것을 응용해 신기전을 만드는 홍리와 영화적으로 신기전을 재현해야 하는 민언옥 감독은 다를 바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홍리의 방을 만드는 게 가장 쉬웠다. 그녀 역시 디자이너 아닌가.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그림만 그리는 줄 아는데, 사실 과학적인 근거에서 작업하는 게 많다. 그녀의 방도 내 작업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웃음)”
<신기전>은 1400년대 세종 시대의 이야기다. <춘향전> <혈의 누> 등의 사극영화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민언옥 감독은 <신기전>의 공간에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감성을 채워넣으려 했다. 세종이 조선에 뿌려놓은 과학과 이성의 공기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관객의 상식적인 선을 중요하게
[하반기 한국영화] 민언옥 미술감독이 말하는 <신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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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난감하다. 러시아어 교사 양미숙(공효진)은 천하의 ‘삽질 여왕’이다. 게다가 툭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은 완전 대박이다. 그런 홍익인간인 그가 짝사랑하는 동료이자 심지어 유부남이기까지 한 서 선생(이종혁)의 또 다른 연애(그러니까 바람?)를 막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한 부모의 이혼을 원치 않는 서 선생의 딸이자 교내 ‘왕따’인 서종희(서우)도 그 작전에 합세한다. 그렇게 미숙과 종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연애를 방해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써서 달려들지만 당최 일은 쉽게 풀리지 않고 꼬여만 간다. 이거 참 요상한 동맹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가슴이 아니라 정신이 아픈 선생과 철부지 학생은 얼떨결에 손을 잡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사건은 더 꼬여만 간다. <홍당무>의 재미란 그런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란 게 노력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현재 후반작업 중인 <홍당무>는 박찬욱 감독이 대표로 있는 모호필름에서
[하반기 한국영화] 이경미 감독이 말하는 <홍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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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반드시 새우 등이 터지는 건 아니다. 제 몫만 딱 챙기고 잘살아가는 새우도 있으니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하 <눈눈 이이>)의 안토니오가 그런 인물이다. 안권태·곽경택 공동연출작인 <눈눈 이이>는 사건 해결에 관한 한 ‘백전백승’인 강력반장 백성찬(한석규)과 대량 금괴 및 현금 절도를 계획하는 도둑 안현민(차승원)간의 밀고 당기는 힘 대결을 그린, 이른바 ‘투톱 남자영화’다. 여기서 안토니오는 안현민으로부터 밀수 금괴 600kg을 팔아 현금화해달라는 거래를 제안받고 이를 즉시 백 반장에게 고자질하는 치사한 인물. “성공하면 커미션 챙겨 돈 벌고, 실패하더라도 백 반장이 대신 처리해줄 테니 뒤탈없을” 꼼수를 부리는 거다. 양다리를 걸친 채 손 안 대고 코 풀어보자는 안토니오의 계획은 어떻게 될까.
안토니오는 낮에는 금은방, 밤에는 트랜스젠더 클럽을 운영한다. 안현민이 그에게 금괴 600kg 처리를 부탁해오는 것도 그가 밀수와
[하반기 한국영화] 안토니오 역의 이병준이 말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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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를 베트남으로 속여라. 남편을 찾아 베트남에 가는 여자 순이의 이야기 <님은 먼곳에>는 사실 타이에서 촬영한 영화다. 제작여건상 촬영 허가를 받기 쉬운 타이가 인접국가 베트남의 대체 공간으로 선택된 셈이다. 따라서 영화의 미술이 초점을 맞춘 것도 타이를 베트남처럼 자연스레 위장하기. 영화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한 강승용 미술감독은 “타이와 베트남은 둘 다 지형적으로 길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혼재해 있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 공법부터 생활방식까지 모든 게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전 사전 조사차 베트남에 다녀왔고, 이후 베트남 전문가를 따로 둬 70년대 당시 베트남 상황에 대한 디테일을 전해 받았다. 하지만 정작 속이기보다 더 힘들었던 건 그 거짓말을 티가 안 나게,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었다. 타이, 베트남에 대해 국내 관객이 갖고 있는 “상식적인 이미지”와 실제 모습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강승용 미술감독이 가장 애를 먹었던 부분이다.
[하반기 한국영화] 강승용 미술감독이 말하는 <님은 먼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