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합기도의 달인, 황인식
홍콩으로 건너간 한국 액션배우 중 최고의 카리스마는 역시 합기도의 달인 황인식이다. <맹룡과강>(1972)에 하얀 도복을 차려 입은 일본인 무술가로 나와 이소룡과 일대일 대결을 펼쳤고, 성룡의 <사제출마>(1980)와 <용소야>(1982)에서는 상대 주인공 악역으로 출연해 특유의 관절꺾기와 놀라운 스피드의 박력있는 액션을 선보여 절찬을 받았다. 현재 견자단 정도의 스피드를 떠올리면 될까? 이소룡은 <사망유희>(1978)를 구상하면서 5층 석탑 안에서 싸울 인물들 중 그를 1층의 남자로 콘티에 그려넣기도 했다.
1940년생인 황인식은 한국 무술배우를 물색하던 골든하베스트사의 권유로 황풍 감독의 <합기도>(국내 개봉 제목 <흑연비수>(1972))에 캐스팅됐다. 기존 홍콩 무술영화에서 볼 수 없던 과감한 관절기와 날렵한 발차기를 선보인 황인식의 실력은 단연 돋보였고, 이 영화의 단역이었던
[무술영화열전] 한국액션영화의 다섯 남자들
-
<수색자>(1956)에서 존 웨인이 석양으로 사라질 때, 웨스턴의 팬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문밖 저쪽 황야로 존 웨인이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수색자>의 끝장면이기도 했지만, 왠지 웨스턴이 끝나가는 예감까지 전달했다. 먼지가 풀풀 이는 서부에서 오직 자기만의 법으로 고독하게 살아가던 무법자의 모습을 더이상 못 볼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것이다. 사실 웨스턴은, 그리고 존 웨인은 <수색자>를 통해 고별을 알린 것이나 다름없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는 존 웨인과 그리고 웨스턴과의 이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관객에게 주어진 여분의 기회였다.
당시는 누가 봐도 진 켈리의 시대
이렇게 배우와의 이별이 곧 장르와의 이별이 되는 또 다른 경우가 <밴드 웨건>(1953)이다. 뮤지컬의 역사를 이끈 프레드 아스테어 때문이다. 그가 RKO에서 진저 로저스와 팀을 이뤄 뮤지컬을 만들어낼 때인 193
[걸작 오디세이] 안녕 프레드 아스테어, 안녕 뮤지컬
-
<트와일라잇> 시사회에서 돌아오니 누군가가 묻더군요. “전 로버트 패틴슨 때문에 볼 거예요. 어때요?” 그래서 전 대답했지요. “연기를 못해요.”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로버트 패틴슨은 <트와일라잇>에서 그냥 연기를 못했죠.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냥 끝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올랜도 블룸을 잇는 제2의 나무토막 배우가 나온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전 그 답변이 너무 단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잘하는 연기에 수만 가지 종류가 있는 것처럼 못하는 연기도 그만큼 다양하지요.
올랜도 블룸과 비교하면 어떤가? 일대일 비교는 불가능하죠. 일단 블룸이 패틴슨보다 나은 배우예요. 그는 나무토막 배우라는 말을 들을지 몰라도 어색하지는 않아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그의 연기는 적절했어요. 적당히 투명하고 적당히 영웅적이라 받아들이기 쉬웠죠. 대단치는 않아 보이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역을 찾고 그걸 적절하게 해낸다면 우리가 트집 잡을 필요는 없지요
[듀나의 배우스케치] 로버트 패틴슨
-
이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한국 무술영화 열전’의 프로그래머인 오승욱 감독이 긴 회고를 보내왔다. 이른바 한국의 ‘만주 웨스턴’과 ‘다찌마와리’ 영화를 거쳐 이소룡과 성룡으로 대표되는 홍콩 무협영화와 조우했던 한국 액션영화의 어지러운 기억과 기이한 욕망 속으로 안내한다. 한국 액션영화의 슬픈 역사는 그렇게 기록됐다.
한 사나이가 거리에 들어선다. 사나이는 회한에 잠긴 눈으로 거리를 둘러본다. 그의 어깨 위에는 차가운 눈이 내리고, 그의 상념에 젖은 눈에는 그가 이 거리를 떠나게 된 과거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머리에 이가 득시글거리는 깡통을 든 거지 전쟁고아였던 그는 검은 장갑을 끼고 사람들에게 협박을 하는 주먹 인생이 안되었더라면 절대 생존할 수 없었던 이 거리에 돌아왔다. 거지였던 자신을 거둬들여 밥을 먹여주고 거리의 자식으로 생존하는 법을 알려준 그의 은인이자, 그의 아내를 죽이고 자신을 배신한 복수의 대상인 큰형님을 찾아 그는 이 거리에 돌아왔다.
[무술영화열전] 원한의 거리여, 내가 돌아왔다
-
-
“올 연말, 의외의 적시타(!)” 누군가의 이 20자평(정확히 말하자면 9자평)은,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홈런’에 ‘만루 홈런’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사실 방점은 ‘의외’라는 단어에 찍혀 있을 것이다(라고 내 맘대로 짐작해본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기대 이상’이 있었다. 좀 까칠하게 말하자면, ‘의외’였기 때문에 ‘적시타’고 ‘홈런’이고 ‘만루 홈런’으로 보였던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영화 홍보 컨셉에는 다소 철지난 유행어 같은 썰렁함이 있었고, 그래서 기대를 한껏 낮추고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영화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과속스캔들>의 최대 장점은, 정말 확실하게 ‘웃겨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의 비결은, 일종의 ‘뻔뻔함’에 있다. 영화는 현실적인 ‘그럴듯함’(plausibility)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와 영화를 아주 뻔뻔하게 인용하고 뒤섞고 비틀면서 자유롭고 귀엽게
[영화읽기] 한국 코미디, 이만큼만 만들자
-
8편의 CF와 5편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1편의 단편영화. 김가은이 우리 곁에 머문 시간은 아직 짧다. 데뷔 3년차 신인이기 때문이지만 그녀는 긴 이야기보다 짧은 이미지 속에서만 놀다 갔다. 이동통신사 쇼의 CF나 이지형이 부른 <뜨거운 안녕> 뮤직비디오, 그리고 김종관 감독의 10분짜리 단편 <헤이 톰>까지.
뉴질랜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큰 눈망울을 가진 순수한 소녀 이미지의 표상이다. 그래서 아직은 CF나 뮤직비디오가 많다. “말을 하고 싶었다”며 웃지만 카페 테이블에 앉아 친구의 수다를 상대하는 <헤이 톰>의 소녀도 CF나 뮤직비디오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말 대신 미세한 표정을 카메라는 예민하게 담는다. 하지만 김가은이 꾸는 꿈은 배우다. <태왕사신기>의 이지아 역할이나 연극 연기를 무엇보다 하고 싶다고 말한다. 쏟아질 것처럼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연기수업 때 들었던 교훈을 하나둘 훑어낸다. 올해 스물이지만 가진 생각이나
[김가은] 소녀가 깨어날 시간
-
일시 12월 12일(금) 오후 2시
장소 씨네큐브
이 영화
2차 세계대전 중 파리 근교에 위치한 카톨릭 기숙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된다. 똑똑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 줄리앙(가스파르 마네스)은 전학생 보네와 침대를 나란히 쓰게 된다. 보네(라파엘 페이토)는 수학과 작문, 피아노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지만, 말수가 적고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질투 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보네를 관찰하던 줄리앙은, 보물 찾기 게임 때문에 보네와 함께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경험 이후로 절친한 사이가 된다. 그리고 보네가 감춰왔던 비밀이 밝혀진다. 그는 유태인이었고, 게슈타포에 쫓겨 이름까지 바꾼 채 이 학교에 숨어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100자평
<굿바이 칠드런>은 루이 말 감독이 자신의 유년기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성장영화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비시정권과 독일군 치하에 있던 프랑스의 한 카톨릭 기숙학교에서 소년들은 함께 공부하고 자라난다. 파시
루이 말의 <굿바이 칠드런> 공개
-
지난 11월 공중파 TV광고 신청 물량이 2007년에 비해 30%나 줄었다. 업계에서는 12월 광고 물량이 이보다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매달 1일이면 적어도 스무개 이상 선보였던 신규 TV광고가 12월에는 10개도 채 안됐다. 광고주들 대부분이 내년 광고 물량을 줄인다고 이야기하고, 몇몇 광고 대행사는 이런 시장 분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해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불황기 광고’라는 주제의 기사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불황기 광고의 패턴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품목의 변화, 메시지의 변화, 톤 앤드 매너(광고 전반에 걸친 분위기와 태도)의 변화다. 우선 재테크를 독려하는 금융광고, 고가 사치품이 줄어들고 대신 내구재나 실용적인 가치를 가진 품목들이 늘게 된다. 외식이 크게 줄어들었던 지난 IMF 구제금융 시기에 ‘쿠쿠밥솥’이 성공한 것이 그 보기다. 메시지의 경우, 희망을 독려하거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가 늘어난다. 삼성의 기업 PR도, LG텔레콤의 오즈 캠페인도 시청
[CF 스토리] 웃기면 살 수도 있다니깐
-
방탕한 여형사와 괴짜 천사는 ‘환상의 짝꿍’이 될 수 있을까? 그레이스(홀리 헌터)는 능력있는 경찰이지만 사생활은 엉망이다. 늘 술과 담배에 찌들어 있고 하는 말마다 거짓말과 욕이다. 여동생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부터 그는 현재의 욕망에 충실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여느 때처럼’ 음주운전을 하던 그레이스는 길을 가다 사람을 치어 죽게 한다. 너무 놀란 나머지 믿지도 않은 하느님을 찾았더니 어디선가 백발의 중년 남자가 나타나 자신은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온 천사라고 말한다. 그렇게 인생 최악의 사고에서 그레이스를 구해준 천사는 그때부터 그레이스의 주변을 맴돌며 일상생활을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레이스는 엄마 같은 잔소리꾼 천사와 잘 지낼 수 있을까? 영화 <피아노> 출연으로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칸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홀리 헌터의 첫 드라마 데뷔작. 홀리 헌터는 이 드라마로 2008년 에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주의 추천프로] 잔소리꾼 천사 등장
-
“<스타의 연인>, 일본 드라마 같네?”
지난 12월10일 첫 방송된 SBS <스타의 연인>을 본 시청자의 반응이다. 일본 아스카 지역의 이국적인 영상, 조연급 배우들의 일본식 과장된 연기, 스치듯 지나가는 작은 소품까지 챙기는 세밀함, 감각적인 카메라 촬영 기법 등이 시청자에게 일본 드라마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구사나기 쓰요시(초난강) 주연의 일본 드라마 <스타의 사랑>처럼 톱스타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인 <스타의 연인>은, 톱스타 이마리(최지우)와 국문과 강사 김철수(유지태)의 운명 같은 사랑을 다룬다. 뻔한 스토리, 진부한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 ‘통’하는 멜로드라마의 감수성을 지녔다. 한류의 선봉에 섰던 드라마 <겨울연가>를 떠올리게 한다.
윤석호 PD가 연출한 <겨울연가>는 한류의 원조다. 애초 일본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드라마도 아니었고, 철저히 국내 시청자의 감수성에 기댄
[TV] <스타의 연인>, 제2의 <겨울연가>가 될까
-
세개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며 전개된다. 어린 시절 누나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그것을 막지 못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 폴 그레이브스의 이야기, 그 작가의 연작소설에 등장하는 늙고 지친- 수십년간 뒤쫓은 절대 악당을 이젠 감당할 여력이 없어 보이는- 형사 슬로백의 이야기, 50년 전 친구 페이예를 죽인 범인을 찾아달라며 폴을 대저택에 초대한 앨리슨 여사와 저택 사람들 이야기. 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틀린 채 연결되어 있다. 슬로백은 그레이브스의 누나를 죽인 동명의 악당을 추적하며 작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폴의 분신이며, 페이예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날수록 폴은 누나의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전진하는 동안 고통스럽고 어두운 기억과 죽음의 이미지가 등장인물들의 일상 속으로 침투한다.
<밤의 기억들>은 오랜만에 접하는 느린 박자의 서스펜스물이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참신한 결말도 없지만
누아르영화로 보고 싶군
-
세계 어디를 가든 내 손에는 론리 플래닛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든 론리 플래닛을 들고 거리를 헤매는 여행객을 만난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살짝 눈웃음을 친다. 여행자의 바이블 론리 플래닛을 손에 든 객들은 같은 책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서로가 반가운 법이다.
<론리 플래닛 스토리>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세계여행을 떠났던 가난한 히피 부부 모린 휠러와 토니 휠러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여행 가이드 론리 플래닛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뭐 별거 있겠는가. 이들은 자기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여행 정보를 좀 공유하자는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차라리 책을 하나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따름이란다. <론리 플래닛 스토리>에는 탄생 설화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 350명의 필진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가이드북 회사가 된 지금에 겪는 새로운 고민들도 가득하다. 모든 여행자들이 언제나
론리 플래닛에 궁금한 모든 것
-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면 당신은 누구를 떠올리는가. <탑>을 위시한 작품이 실린 초기 단편집을 생각하며 “황석영”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테고, 90년대 대학가에서 연애할 때 단골로 등장하던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입시준비생이라면 가장 만만한 이름 “오 헨리”를, 머리 희끗한 왕년의 문학도라면 “모파상”을, 독서 트렌드에 예민한 독자라면 “레이먼드 카버”를. 나이와 경험, 그리고 시대 분위기에 따라 기억하는 이름, 아끼는 이름이 다르다는 말이다. 존 치버라는 이름을 낯설어하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가 위치하는 지점은 문학적 지형도에서 레이먼드 카버 곁이다. 레이먼드 카버와 술친구였던 그는 미국 단편소설 중흥기를 열었다. 하지만 시대적, 물리적 가까움과 달리 두 작가의 단편소설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치버는 정서적인 추락의 풍경을 그 누구보다 잘 그릴 줄 아는 작가다(레이먼드 카버는 유명한 몇몇 단편에서 잊을 수
존 치버의 책이 무려 6권이나!
-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고요? 눅진하게 남은 사랑의 잔해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요? 당신만을 위한 특별서비스를 준비해드리죠. 이름하여 ‘영원한 망각’ 서비스.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30대 부부 수희와 명훈. 9년간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 결혼에 성공했건만 다 큰 남녀가 한집에서 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쌓여가던 현실적 문제들이 어깨를 짓눌러오자 마침내 이혼을 결정하고 만다. 헤어짐을 결심한 그들에게 단골 카페의 웨이터가 제안한 것이 바로 영원한 망각. 그러나 과거를 잊기 위해 옛 기억과 다시 조우한 이들 부부는 그들에게도 가슴 떨리는 순간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제목에서부터 운율이 느껴지는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120여분간 40여곡의 음악을 쉴새없이 늘어놓는 대담함. 노래를 곁가지로 삼게 마련인 다른 소극장 창작뮤지컬과의 차이점이다. 수작이라는 평가가 자자했던 뮤지컬 <빨래>에서 몽골인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을 맡아 눈길을 끈 박시범이
뮤지컬 <두 드림 러브>, ‘영원한 망각’을 제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