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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9일부터 스폰지하우스 중앙, 광화문, 압구정 세 군데에서 시작되는 씨네휴 레인보우 영화제에서는 최근 유럽영화의 다양한 풍미를 한껏 즐길 수 있다. 거장 에릭 로메르의 신작 <로맨스>부터 신인감독 룰라 드와이옹의 <저스트 어바웃 러브>까지, 독특한 양식의 코미디 <유, 더 리빙>에서 섬뜩한 주제에 거침없이 다가서는 다큐멘터리 <리벨리온>까지, 유럽인들의 이주를 지독하게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낸 <수입 수출>에서 공간적 이동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연의 고리를 다룬 <천국의 가장자리>까지,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의 황폐함을 인간의 얼굴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알렉산드라>에 이르는 다양한 영화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17세기 고전주의 연애소설, 오노레 뒤르페의 <아스트레>를 각색한 에릭 로메르의 작품은 양치기인 셀라동과 시골 처녀 아스트레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다소 건조한 유머를 섞어 평범
최근 유럽영화의 다양한 풍미, 씨네휴 레인보우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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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인 MIT 대학생들이 카드게임 블랙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고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21>은 실제 사건에 기반한 영화다. 물론 이 영화는 실화를 취재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한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를 또다시 가공한 것이니 실제 일어난 일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듯, 영화보다 소설이, 소설보다는 실화가 더 흥미롭다. 대체 이 천재들은 왜 카지노를 습격했을까.
1. 블랙잭
블랙잭은 쉬운 원리 덕분에 카지노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블랙잭’이라는 이름은 이 게임이 처음 미국에 소개됐을 당시, 도박장에서 스페이드 에이스와 검은색 카드인 스페이드 J(잭) 또는 클로버 J가 동시에 나왔을 경우 10배의 배당을 주면서 붙여졌지만 현재는 그런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잭의 게임 룰은 단순하다. 게임의 목표는 자신의 카드에 매겨진 숫자를 더해 21을 만드는 것.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딜러로부
[알고 봅시다] 수학천재여, 카지노를 공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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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주인공일 줄 알았다. 영화와 미니시리즈, 심지어 일일드라마의 주연배우인 한지혜가 출연하는 단편영화라면 응당 상석을 내줘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 그런데 주인공이 3명이고 조연이 1명인 영화에서 조연을 연기한다니. “주인공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연기를 워낙 못해서요. (웃음)” 세종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그녀가 학교 선배의 부름을 받고 출연하는 이 작품의 제목은 <그 집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영화 <와일드 카드> <신기전>의 라인프로듀서인 박나나 감독이 연출하는 작품으로 세 남녀가 한집에서 복닥거리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라고. 4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영화학도 한지혜가 맡은 배역 명은 ‘비서’다. 시나리오상으로 볼 때도 상사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는 장면이 대부분. “하루 종일 커피 배달만 하고 있다”는 푸념이 그럴싸하다. “학교에서 연극은 몇번 했는데, 단편은 처음이에요. <미우나고우나>가 끝나고 나서 차기작을 고르다가
지혜는 조연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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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지대루다~.” “옳지 않아~!” “머라 처씨부리 쌌노?” 어쩌면 신봉선의 유행어를 극장에서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침스: 우주선을 찾아서>를 수입한 쇼타임은 지난 6월9일, 신봉선이 <스페이스 침스…>의 목소리 연기를 한다고 밝혔다. 신봉선 외에도 가수 MC몽이 주연 캐릭터인 햄에게 목소리를 입힐 계획. 멀게는 과거 <노틀담의 꼽추>에서 배우 채시라가 에스메랄다를 연기했고, 가깝게는 <호튼>에서 차태현과 유세윤이 목소리를 빌려줬을 만큼 낯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그 효과가 어떤지는 궁금하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건가?
“두 사람 모두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그만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쇼타임의 최명숙 실장이 말하는 연예인 더빙의 효과는 홍보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포커스] 캐릭터와 궁합이 맞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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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캐스팅] <인디아나 존스4> 크리스탈 해골의 정체는?
[대박 캐스팅] <인디아나 존스4> 크리스탈 해골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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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발병한 '리퍼 바이러스'로 수 백만명이 죽자
발생지역을 봉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25년 후 바이러스가 재 발생하고 봉쇄했던
격리지역에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에
여전사 '이든 싱클레이어'(론다 미트라)와 함께 팀을 만들어
치료제를 찾으러 간다.
2030년의 미래와 중세시대 두 시대를 그리고 있는
<둠스데이:지구 최후의 날>은 오는 6월19일날 개봉할 예정이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를 클릭해주세요.
[개봉작 NEW] <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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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유월은
생맥주가 땡기기 시작하는 시절.
전국 美 쇠고기 반대 6·10 촛불집회
마음 울린 양희은과 안치환의 노래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경찰, 세종로에 시위차단용 컨테이너 설치
쥐 보호하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아예 청와대에 명박산성 세워라.
그리스 칠 잊지 말고.
촛불집회 간 정운천 장관, 소통 불발
장관님, 집회 안 오셔도 돼요.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내장 수입 막아주세요.
그걸로 족해요.
온라인 시위… 1시간째 청와대 홈페이지 다운
페이지 다운되니 jpg.파일 올려놓는 센스.
클릭 안 되는 그림판 홈페이지라니.
‘분노의 촛불’ 전세계 외신보도 잇따라
Boys,
be MB shuts.
뉴라이트 임헌조 맥도날드 발언 논란
광대 로날드군!
자네도 사내라면 임 열사 100억달러 소송관광!
가짜 쇠고기 다시다 350만명분 유통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어도
안심할 수 없을 듯한 이 먹을거리 불안.
정부, “공공요금 인상 최소화·시기 분
[이주의 한국인] 내 고장 유월은 생맥주가 땡기기 시작하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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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별명은 ‘검투사’(라고 한)다. 2007년 6월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그의 별명이 검투사라고 보도했다. 죽을 각오로 협상에 임했다는 뜻이겠지. 90년대 말에 외교통상부 출입하다 몇번 김 본부장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별명은 ‘무사’였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와 깡마른 얼굴상 때문이었다.
근데 6월12일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는 그의 얼굴에 검투사나 무사의 ‘필’은 없었다. 담판 지으러 가기보다는 애걸하러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도 10분 만에 황급히 자리를 떴다.
포털 다음의 이날 ‘이슈 검색어’ 순위 25권 안에 쇠고기 추가협상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김종훈’도, ‘쇠고기’도, ‘추가협상’도 없었다. 포털 네이버 인기검색어 3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 누리꾼은 이렇게 이날 정부의 발표를 한마디로 ‘쌩깠다’. ‘재협상’이란 단어가 빠진 정부 발표는 관심도 없다는 뜻
[오마이이슈] 미국이냐 국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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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독재다.
온통 촛불 이야기다. 이 칼럼에서도 벌써 몇주째 연속이다. 연일 신문의 칼럼들과 방송의 논평들 역시 매한가지다. 양초 말고 다른 걸 들어보려던 나 역시 굴복했다. 다른 이야기는 생뚱맞으리라. 그럴 용기가 없다.
청와대로 가려던 시민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특공대를 투입했던 게 6월1일 새벽이었다. 그날 아침 인터넷으로 조·중·동 뉴스사이트를 읽으며 나는 진한 실망감을 느꼈다. 여전히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몰아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철없는 시민이 아닌 철없는 대통령을 타이르는 쪽으로 변해갔다. 날이 갈수록 조·중·동답지 않은 논조를 연출했다.
단적인 예로, 6월3일자 <중앙일보>를 보자. 3면에서 집중분석을 했다. MB에겐 지금 다섯 가지가 없다고. 그 다섯 가지란, 소통이며 포용이며 겸손이며 성찰이며 신사고란다. 한달도 되기 전 “김용선 교수도 미국 쇠고기 즐겨 먹는다”라는, 신문 편집사에 길이 남을 엽기적 헤드라인을 1면에 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죽 쒀서 쥐밥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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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1일 촛불시위에 참여한 이모(28·회사원·서울시 보문동)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명확한 견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과 구호를 외치고 노래 부르는 것이 즐거워 시위에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6월2일자 C일보 사회면 기사의 끝부분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서울 보문동에 사는 스물여덟살의 회사원 이모씨가 저 문장을 그대로 말했을 리 만무하다. 예상되는 취재과정은 다음과 같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어떤 측면이 가장 우려되세요?”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잘은 몰라요.”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나오게 되셨어요?” “즐겁잖아요.” “어떤 부분이요?” “구호를 외친다거나, 노래를 부른다거나.” 이모씨가 항의해본들 아무 소용없다. 인용된 멘트가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사실이니까.
기자들은 다 저렇게 일하냐고? 완전 그렇다. 나는 4년4개월 동안 218번의 마감을 하면서 만날 그랬다.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 해외 영화인에 대한 몇 페이지 기사를 쓸 때면 두툼
[오픈칼럼] 야마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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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세계영화 시장을 석권한 것은 1차대전 때부터다. 유럽영화가 전쟁으로 침체기에 빠졌을 때, 유럽과 세계의 극장에선 미국영화가 넘쳐났다. 전쟁이라는 변수가 컸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자체가 대중의 요구를 크게 만족시켰다. 유럽의 관객은 특히 그리피스 같은 멜로드라마 감독들이 보여주는 눈물 나는 이야기에, 또 맥 세네트 같은 코미디 감독이 펼치는 포복절도할 개그장면에 환호했다. 그러자 이런 영화들이 계속하여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버스터 키튼은 좀 달랐다. 다른 영화인들이 여전히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몰두할 때, 그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했다. 다시 말해, 영화 매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 장본인으로 버스터 키튼은 기록되는 것이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는 영사기사의 이야기
이른바 ‘성찰적’(reflexive)인 영화가 나온 것으로, 마냥 세상을 비추기만 하던 영화가 드디어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는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셜록 주니어>(19
[걸작 오디세이] 코미디로 풀어낸 메타시네마의 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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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처음으로 얼굴을 접했을 때 ‘와! 세상에 이렇게 예쁜 사람이 있네?’ 하는 생각이 들고 한대 얻어맞는 것처럼 머리가 꽝 하고 울리는 그런 외모를 가진 사람요. 물론 그 효과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길어야 몇년 정도면 끝이죠. 그렇다고 그 미모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익숙해지면 처음의 꽝 하는 효과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어떤 때는 왜 처음에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때도 있고. 그럼 좀 슬프죠. 대상이 누구건 그 꽝 하는 감정은 꽤 즐거운 경험입니다.
제시카 알바를 처음 보았을 때도 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전 이 배우를 어린이 TV시리즈 <플리퍼>에서 처음 봤습니다. 아직 파릇파릇한 틴에이저 시절이었는데, 애가 화면에 나오자마자 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던 사람들의 눈이 갑자기 또렷해졌던 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알바의 외모가 주는 효과는 그만큼이나 즉시적이었어요. 거의 설탕 한 스푼이 주는 쾌락과 같았죠.
[듀나의 배우스케치] 제시카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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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아임 낫 데어>는 펠리니의 <8과 1/2>이 아니다. 물론 토드 헤인즈는 펠리니에게서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게다가 영화 중간에 펠리니의 <카사노바>에서 가져온 니노 로타의 음악을 시침 뚝 떼고 쓰기까지 한다. 마치 자, 지금 저는 펠리니를 베끼고 있습니다, 라고 노래라도 부르듯이. 그러나 여기에는 창작의 위기도 없고, 그렇다고 상황도 없다. 혹은 승화시켜야 할 그 어떤 목표를 가진 것도 아니다. 토드 헤인즈의 목표가 있다면 전기의 무효화라고 할 만한 유머 안으로 밀어넣는다. 유머? 그렇다. 왜냐하면 <아임 낫 데어>에는 끝내 누가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끈질기게 이 영화에서 어떤 깊이나 너비를 찾으려는 이들을 실망시킨다. 토드 헤인즈는 여기서 영화의 어떤 표현의 방법을 확장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아임 낫 데어>가 유일하게 목표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밥 딜런을 무의하
[전영객잔] 거기 없는 것을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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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는 욕망이 지적 유행이었고, 지금은 애도가 트렌드이다. 대상을 바꿔가면서 앞을 다퉈 장례식에 열중하고 있고, 새로운 리빙 데드를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저 단지 들뢰즈에서 데리다에로, 혹은 지젝에서 아감벤으로 아카데미 안의 명품이 시즌 패션을 바꾼 것이 아니라면) 왜 갑자기 상실이 그렇게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는 것일까? 실패가 예정된 존재론. 타자에 대한 채무. 그런데 무엇을 빚지고 있는가? 대차대조표 안의 납골당 앞에서 이미 삼켜버린 타자를 토해내기 위해 자아는 왜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가? 성공적인 애도와 불충분한 애도 사이의 숨바꼭질. 이미지들이 날뛰고, 환영이 세상을 감싸고 있으며,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 안에서 무엇이 도래하고 있는가? 그 뒤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주어로서의 무엇과 목적어로서의 무엇. 둘 사이의 차이. 어제까지 정신분열증이 자본주의를 시적으로 정의하고 있었다면(들뢰즈-가타리의 니체적인 그 아름다운 문체), 이제 세계화를 설명하는 증
[전영객잔] 거기 없는 것을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