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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상위원회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기간(9월20~23일) 중 두 차례의 패널 토론과 한 차례의 포럼을 열었다. 우선 부산영상위원회가 의장을 맡고 있는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가 두개의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지난 9월21일 ACFM 내 부산영상위원회 공동부스에서 이뤄진 ‘아시아 글로벌 프로덕션 서비스 강화’와 ‘아시아 시장에서의 공동제작과 필름커미션의 역할’이 두 가지 주제였다. 글로벌 영화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제 아래 세계 각국의 관계자가 모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제작 지형이 완전히 뒤바뀐 지금, 가장 뜨거운 화두는 역시 국제공동제작이었다. 영화제작의 새로운 확장과 파급을 모색할 수 있는 길로 계속하여 언급됐다. 국제공동제작의 새로운 가능성과 전략을 논의하는 장으로 거듭난 두 패널 토론에서는 지난해의 경과를 넘어 성공 사례 공유와 같은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이어 22일 부산영상위원회는 영화진흥위원회
[기획] 위기의 시대, 협력에 길을 묻다, 부산영상위원회가 바라본 ACFM 속 국제공동제작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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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중략)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밀란 쿤데라, 『우스운 사랑들』, 민음사, 2013.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이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영화적 사건은, 단지 한 예술가가 도달한 미학적 성취를 극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계 3대 영화제가 최고상의 영예를 수여하는 동안, 이란은 자국의 감독에게 15년간 법적 제재를 가했다. 그렇기에 감독의 영화는 치안적인 것을 분열시키는 정치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곤 했다. 영화감독을 향한 잔인한 박해는 망명 혹은 이주의 결과를 산출한다. 프리츠 랑과 루이스 부뉴엘. 그리고 태국 정권의 계속되는 검열에 맞서, 검은 화면을 영사하거나 자국에서 장편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영화적 영토에 발을 디딘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을 떠올릴 수 있다.
자파르 파나히의 여정은 이들과는
[기획] 폭력의 빈자리를 가늠하면서, 자파르 파나히 <그저 사고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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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여전히 인류를 향한 공감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스스로를 ‘사회적 사상가’라 지칭한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로부터 영감을 받는다는 뜻이다. 나의 영화는 내가 사는 곳과 그곳의 역사, 그리고 내 삶에 영향을 받는다. 처음 만들었던 5분짜리 영화에서부터 지금까지, 내 상황이 바뀔 때마다 영화들도 변화를 겪었다. 영화제작을 금지당하면서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보다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게 됐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 영화를 만들지 말해준다. 이것이 내가 항상 생각하는 섭리이다.
- 이란영화의 현황과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나는 이란영화가 가진 두 가지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관객을 따라가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이 감독을 따라는 영화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혁명 이후, 상업영화는 계속되어왔지만 그와 별개로 독립영화는 늘 검열과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들은 새로운 언어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란영화의 독창적
[기획] <그저 사고였을 뿐> 자파르 파나히 감독 마스터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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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에 수여됐다는 영화적 사건은, 단지 한 예술가가 이룬 미학적 성취를 조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칸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이르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의 영예를 안는 동안 감독은 15년간 이란으로부터 법적 제재를 받아왔다. 그렇기에 감독의 영화는 치안적인 것을 분열시키는 정치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곤 했다. 영화감독을 향한 뼈아픈 박해는 역설적이게도 영화사에 찬란한 흔적을 남겨왔다. 대표적으로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리츠 랑,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멕시코로 망명한 루이스 부뉴엘을 언급할 수 있다. 동시대 감독으로는 태국 정권의 끊이지 않는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 검은 화면을 영사하거나 자국에서 장편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을 떠올릴 수 있다.
자파르 파나히의 여정은 이들과는 식별되는 것인데, 그는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상황에도 이란에서 영
[기획] 동시대 시네마의 역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된 자파르 파나히 감독 마스터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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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여인의 포스터는 늘 예리한 길잡이였다. 그는 상업 작업을 “합의된 틀 안에서 예술성을 시험하는 기회”로 여기며, 작품과 작가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왔다. 하나의 포스터가 완성되기까지 그가 거친 과정과 품은 생각을 정리한다.
<어쩔수가없다>
염소와 새, 어린이가 구름 같은 잎에 감싸인 거대한 나무 그림. 개인전에서 와 마주했다면 연여인과 <어쩔수가없다>의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촘촘한 드로잉, 비밀을 간직한 인물과 소품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의 스타일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과도 닿아 있다. 이번 포스터에서 연여인 작가는 삽화를 담당했다. “기획을 총괄한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스테디’가 보내온 전체 스케치 배치에 맞춰 펜 드로잉과 명암 작업” 등을 진행했다. 알아주지 않더라도 잉크 작업을 고집한 건 “물질성”을 원했기 때문이다. “종이에 펜이 닿았을 때의 거친 느낌이 좋다. 잉크는 자체적으로 무게감을 지녔는데, 잉크 라인 안을 밝은색으로
[기획] 그림 속 상징과 비밀들, 연여인 작가가 직접 말하는 포스터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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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개인전 <The House That My Mother Built>는 유년 시절의 공간과 기억이 중심이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나를 이루는 근간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회화 개인전은 <ENGRAM; 기억흔적> 이후 6년 만이다. 오랜만에 하는 전시에서는 나는 왜 이러한 창작자가 되었는지 되짚어보고, 나에 대한 힌트를 찾는 주제를 잡고 싶었다. 그간 상업적 협업에 주력하면서 커리어도 쌓고 업무 처리 능력도 늘었지만 개인적인 원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이 전시는 이 생각을 앞으로는 실천하겠다는 일념으로 준비했다.
- 인장과도 같은 잉크 작업은 “노동집약적이고 반복적이라 일종의 수행”처럼 여긴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페인팅 작업은 어떤 상태로 이끌었나.
페인팅은 잉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노동이다. 우선 캔버스가 월등히 큰 만큼 몸을 많이 써서 내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느낀
[인터뷰] 내게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일러스트레이터 연여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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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배롱나무가 서 있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포스터는 검붉은 매혹을 발산한다. 쌀알 같은 잎들의 집요함과 나무 곳곳에 자리한 인간과 동물의 의뭉스러움은 당장이라도 나무를 흔들어 이들을 떨어뜨린 뒤 속내를 묻고 싶게 만든다. 영화가 미치도록 궁금해지는 순간, 포스터의 첫 목적은 완수된다. 이 디자인의 삽화를 그려낸 이는 연여인 작가다. 그는 <동조자><나인 퍼즐><보 이즈 어프레이드>등 영화와 시리즈 포스터에 참여했고, 레드벨벳과 DAY6, 젠틀몬스터와 케이스티파이 등 다양한 아티스트, 브랜드와 협업하며 환상적인 세계로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연여인은 화가다. <ENGRAM; 기억흔적>(2019), 잉크 컬렉션 <001030>(2023)을 통해 영감의 화수분인 자신을 탐색하고 재조립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될 무렵, 마침 그가 개인전 <The House That My Mother Buil
[기획] 나라는 영원한 화두, <어쩔수가없다> 포스터의 일러스트레이터, 2년 만에 개인전을 연 연여인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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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봉 제목에 따라 1993년 리안 감독의 영화는 <결혼피로연>으로, 앤드루 안 감독의 작품은 <결혼 피로연>으로 표기합니다.
<결혼피로연>과 <결혼 피로연> 사이엔 32년의 시차가 있다. 그렇다면 앤드루 안의 <결혼 피로연>은 다시 만들어져야 했을까? 질문에 답하자면 앱솔루틀리 예스다. <결혼 피로연>은 강산이 세번 바뀔 32년의 시간이 이룩한 퀴어 커뮤니티 내외부의 인식 변화를 각색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소수자의 포용적 사회통합에 필요한 요건을 짜맞추며 2025년에만 할 수 있는 유의미한 퀴어 담론을 건넨다. 일찍이 <파이어 아일랜드>를 통해 퀴어 관점의 고전 재해석을 선보인 앤드루 안은 이번 영화에서도 전작 못지않은 위트로 과거의 이야기를 동시대와 호흡하도록 만든다. 영화를 통해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신예 한기찬이 해사하게 빛나고, 무엇보다 이름 세 글자로 모든 게임을 끝낼 배우 윤여정이
[인터뷰]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개인은 어떤 선택을 내리고 성장하는가, <결혼 피로연> 배우 윤여정, 한기찬, 앤드루 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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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도>로 시작해 <그대를 사랑합니다><광해, 왕이 된 남자><행복의 나라>등 한곳에 정박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장르를 바꿔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온 추창민 감독이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인 <탁류>를 통해 다시 한번 사극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추창민 감독 본인도 잘 알고 있던 바였다. 그러나 그에게 익숙한 무언가를 반복한다는 것은 옵션에 없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천만 관객 동원 이후 들어온 수많은 사극 제의를 전부 거절했던 그는 자신의 성향을 “음식도 한번 먹은 건 잘 먹지 않는다”라며 에둘러 표현했다. 시류에 쉽게 편승하지 않는 그가 마침내 두 번째 사극을, 그것도 첫 OTT 시리즈 작업을 통해 연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선택의 결과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추창민 감독에게, 그간의 선택 과정에서 느꼈을 심경에 관해 물었다.
- 오랫동안 영화
[인터뷰] 조선 중기 마포 나루터의 하층민 삶을 새롭게 흥미롭게, <탁류> 추창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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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를 지정 장소에 놔두면 미화원이 트럭에 담아 옮긴다. 구역을 독점하는 사업으로서 공공이 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폐기물 정책의 주요 목표는 폐기물 감축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업체는 감축에 나설 동기가 부족하며, 실적을 부풀릴 위험도 있다. 트럭에 바위를 숨기고 무게를 단 업체도 있었다. 업체와 관련해 이런저런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최근에도 파주시와 청도군 등지에서 관련 뉴스가 나온다. (아마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자체 폐기물 수집운반업은 사기업이 대행하고 있다. 비용을 절감한다는 것이 핑계다. 참고로 지자체는 연구 용역으로 산정한 사업비를 업체에 지급한다. 차량 감가상각비까지 싹 다 대준다. “고거 먹고 인건비나 나오겄어?” 인건비도 다 들어가 있다. 그럼 어디서 절감이 이뤄지는 걸까. 현장 노동자의 인건비다. 업체 미화원과 운전원의 인건비(직접노무비)는 시중노임단가를 따른다. 지자체 미화원보다 적잖게 낮다. “지자체가 직영해서 미화원한테 주려는 거 이거, 이거 이거 고임
[김수민의 클로징]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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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전공했지만 4년째 다른 작가의 보조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와다(도모토 쓰요시). 혹사에 가까운 노동과 낮은 임금 속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어른은 없다’는 체념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사고로 해고까지 당한 그는 방바닥의 개미를 따라 무심코 그린 동그라미 하나가 SNS를 타고 전세계적 유행을 일으키며 하루아침에 인기 작가가 된다. <동그라미>는 <카모메 식당><안경>으로 국내외 많은 사랑을 받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현대미술을 둘러싼 논란을 영리하게 끌어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감독 특유의 담담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그림을 그린 당사자조차 해답을 알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답답함을 불교적 통찰을 경유한 서사로 풀어내며 맑고 간결한 울림을 전한다.
[리뷰] 급할수록 향을 잃는 다도(茶道)의 영화,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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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 해병대의 전설적인 특수요원 레본(제이슨 스테이섬). 20년 넘게 나라에 헌신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자살한 아내를 둘러싼 오해뿐이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거짓 소문으로 딸과의 만남마저 위태로워진 그는 건설 현장에서 평범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의 딸 제니(아리아나 리바스)가 괴한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딸을 잃는 고통을 또다시 지켜볼 수 없었던 레본은 숨겨온 정의의 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워킹맨>은 <비키퍼>에 이어 제이슨 스테이섬과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배우와 감독의 앙상블로 탄생한 액션 시퀀스는 보장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진부한 인신매매 응징극의 클리셰를 답습하여 전작보다 돋보이는 지점을 찾기 어렵다. 또 다른 액션 스타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각본을 맡았다.
[리뷰] 요란한 포장지에 싸인 익숙한 맛이 끝내 피로감을 유발한다, <워킹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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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돕기 위해 생산된 헬퍼 봇 올리버(신주협)와 클레어(강혜인)는 빈 아파트에 버려진 채 살아간다. 떠난 주인 제임스(유준상)를 기다리던 올리버는 앞집에 사는 클레어와 주인을 찾아 나서고 두 로봇의 여정이 시작된다. 대학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재해석한 이 작품은 로봇 이야기임에도 차갑거나 기계적인 질감을 배제한다. 금속성 광택이나 첨단 장비가 없는 집 안의 세심한 인테리어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며 인간의 삶에 로봇이 늘 있어온 듯한 가정 풍경을 보여주어 사실감을 높인다. 특히 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비인간적 인간’을 등장시키지 않고 타자를 악역으로 만들지 않는 선택은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올리버에게 물건을 배송하는 택배 기사(강홍석)의 표정 변화와 두 로봇의 버전 차이를 미세하게 구별하는 디테일이 돋보인다.
[리뷰] 인간 없는 인간세계가 오히려 인간다운, <어쩌면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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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창사 특집 단편 드라마가 드라마 방영 10주년과 한글날을 기념하여 2주간 롯데시네마에서 특별 상영한다. 단막극을 웹드라마로 먼저 공개해 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던 화제의 작품으로, 청소년의 고민과 사랑을 명랑하게 담아낸 판타지 사극이다. 수학을 포기한 고3 장단비(김슬기)는 수능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하고 수학과 한글 연구에 몰두하는 조선의 왕 이도(윤두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완성도 높은 디테일과 섬세한 연출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며,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해 반전과 유머를 이어간다. 판타지다운 상상력으로 관객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이 작품은 수능으로부터 도망친 단비를 통해 오늘을 버리지 말고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도 잊지 않고 전한다. 고3 가방에서 나오는 신문물의 활용과 캐릭터의 입체적인 활약이 기발하고 사랑스럽다.
[리뷰] 귀여움에 취하고 디테일에 놀라다, <퐁당퐁당 러브: 더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