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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가 9월4일부터 9일까지 총 6일간 제천시 일대에서 열린다. ‘아시아 유일의 국제음악영화제’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올해 제천영화제는 음악영화와 영화음악에 관한 다양한 즐길 거리를 한상 가득 준비했다. 컬트 뮤지컬의 전설 <록키 호러 픽처 쇼>의 50주년을 맞아 그의 후예들을 돌아보고, 음악가로서 데이비드 린치가 남긴 족적을 되새긴다. 경쟁 섹션 중 눈여겨볼 부문은 단연 기성 영화음악가들의 한국 장편영화 속 음악을 대상으로 한 ‘뮤직인사이트’, 신인 영화음악감독이 작업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작품을 수급한 ‘뉴탤런트’다. 이 두 부문은 음악감독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특히 뮤직인사이트에 호명된 음악가들은 2006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제천영화제의 영화음악아카데미 수료생 102인의 표결을 통해 결정됐다는 점에서 한번 발굴한 음악가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영화제의 신의를 엿볼 수 있다. 제천영화제의 자랑인 라이브 공연에도 주목
[기획] 음악영화의 범주는 한없이 넓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 - 제2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장항준 집행위원장, 조명진 프로그래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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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장편을 연출하면서 극 중 등장인물 수, 제작 과정에서의 스태프 규모 등 다방면에서 외연을 확장했다.
규모의 확장을 의도했다기보다 이 시나리오가 많은 인원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을 받으면서 단편 때보다 오래 함께한 정광은 프로듀서와 모색해 공동 제작사를 만난 영향도 컸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광고 등 작업의 폭이 넓고 프로페셔널한 프로덕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더리스 필름과 인연이 닿아서 정인석 촬영감독, 그리고 커머셜 작업이나 뮤직비디오 작업에 단련된 크루들과 협업했다. 새로운 동료들과 안정감 있게 촬영하기 위해 콘티 작가를 따로 두고 작업하기도 했다. 창작적인 결정에 있어서 연출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특히 프로듀서들에게 고맙다.
- 장편 데뷔작 <이어지는 땅> 이전인 2018년에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초고를 썼다고. 우선 제목의 출처부터 묻고 싶다.
오래 전 접
[인터뷰] 영향 아래의 작가,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조희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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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인물들이 공원과 거리, 각자의 일터와 작업실에서 스치거나 만난다. 사건으로서 수렴하고자 하면 약 나흘의 시간을 담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에서 확실한 것은 이것뿐이다. 전시를 준비 중인 미술가 인주(정보람)는 간간이 정호(감동환)의 작업실을 찾는다. 작업실을 정리 중인 정호에겐 애인 수진(공민정)이 있는데, 수진은 정호 몰래 글 쓰는 훈성(유의태)과 만나고 있다. 배우인 유정(정회린)은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동안 연인 우석(류세일)과 자주 다툰다. 인주는 정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상황보다 뒤늦게 도착하도록 유예하는 데 익숙하고, 정호에게 죄의식을 품은 수진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훈성의 기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돌보고 감내하는 쪽으로 기울어 보이는 유정과 우석의 관계에서, 유정은 과거의 연애에 빚진 순간을 떠올린다. 오래전 유정과 정호는 함께했는데 유정은 어쩐지 이번 연애에서 자신이 과거의 정호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렇게 놓고 볼
[기획] 쓰고, 그리고, 연기하는 이들의 서로 다른 언어가 사랑의 감정과 길항하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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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데뷔작 <이어지는 땅>(2022) 이후 두 번째 장편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만든 조희영 감독은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존재들을 탐험하는 드문 시선의 소유자다. 정규 교육기관에서 영화를 배운 적 없고 미술과 의상을 전공한 그는 회화적 사유가 영화 내러티브의 동력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주거나 서로 다른 시공간의 패턴을 세밀히 바느질하는 손길로 놀라움을 준다. 고유의 언어를 여전히 실험 중이라 말하는 이 젊은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고 자세한 인터뷰를 담았다. 그의 자태는 언뜻 가만하지만 우연한 조각들을 주워 담아 삶의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말들이 한 사람이 지나온 대담하고 부지런한 시간을 더듬어보게 했다.
*이어지는 글에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의 리뷰와 조희영 감독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파편화된 시공간을 하나의 감각적 총체로 - 올여름의 독립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만든 조희영만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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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계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996년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초기작 세편, <샐리의 애교점>, <나의 나이아가라>(1992), <먹이> (1995)가 상영된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작품이 제대로 ‘번역’될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는데, 당시 한국 관객들은 교포 감독의 영화를 정말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었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임순례 감독, 뉴욕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곽경택 감독, 그리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데뷔한 홍상수 감독 등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과 교류를 시작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후 <서브로사>(2000)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소개되었고, 장편 데뷔작 <우양의 간계>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 최근 정이삭, 셀린 송, 앤서니 심 등 북미의 한국계 영화인들이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계 디아스포라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
[인터뷰] 참사 속에서 아프고 다치게 된 세대를 위로하고자 했다, <먹이> <텐더니스> 헬렌 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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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1일 개막한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가 7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올해 영화제는 불법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광장을 메운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출발해, 인도·필리핀·아프가니스탄 등 아시아영화계 여성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려는 기획이 특히 돋보였다. 다채로운 프로그램 가운데 올해의 핵심으로 소개된 특별전 ‘헬렌 리: 여기와 어딘가 사이’는 한국계 캐나다 감독 헬렌 리의 작품 세계를 조명했다.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35년간 활동해온 그는 총 12편의 장·단편을 통해 한국, 아시아,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과 정체성을 탐구해왔다. 24일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헬렌 리는 5살에 한국을 떠난 뒤 모국과 다시 가까워지게 된 여정, 휴지기를 거치면서도 창작을 이어온 경험, 그리고 1세대 여성 교포 감독으로서의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눴다.
단편 <샐리의 애교점>(1990)으로 데뷔해 장편 <우양의 간계> (2001)를 선보였고, 신작 <텐더니
[기획] 한국, 안에서 경험하기 밖에서 보기 -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특별전 ‘헬렌 리: 여기와 어딘가 사이’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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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부산, 국민 영웅 골프선수와 이름이 같은 19살 세리(신은수)는 악성 곱슬머리를 쫙 펴고 짝사랑 상대 앞에 서고 싶다. 그가 택한 방법은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자신 있게 홍보하는 미용실 사장의 아들 윤석(공명)과 친해지는 것. 친구 찬스로 할인 혜택을 누리려는 세리와 콤플렉스마저 진취적으로 해결하려는 생기에 스며든 윤석은 동상이몽 <고백의 역사>를 쓰고 있다. 8월29일 넷플릭스에서 관객을 만난 이 영화에 “대책 없는 낙관성”을 불어넣은 이는 남궁선 감독이다. 계획 없이 임신한 여성이 보내는 <십개월의 미래>, 아이돌 그룹을 그만둔 동료들의 <힘을 낼 시간>을 지나온 그는 창작자로서 목말랐던 밝은 에너지를 세 번째 작품을 통해 수혈받았다며 세기말 고등학교에 다녀온 후일담을 들려줬다.
- 처음부터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전작들과 달리 <고백의 역사>는 지춘희, 왕두리 작가의 글을 본 후 감독으로 합류했다. 무엇에
[인터뷰] 보는 순간 생기가 넘실대는 영화, <고백의 역사> 남궁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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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28일, 고3 학부모인 교수 A는 한 입시 전문가와 식사를 했다. ‘쓰앵님’께 스펙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던 걸까. 이튿날부터 A는 연구실에서 인턴 증명서를 만든다. 2007년 6월부터 2009년 9월까지 한 사기업에서, 2009년 5월에는 한 국립대 센터에서, 자신의 딸이 인턴을 했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반영된 사기업 증명서는 기업명 중 한 글자가 잘못 표기됐다. 9월 모 사립대 입시에 제출된 국립대 센터 증명서는 센터용이 아닌 교수용 레터지였다. “그런 인턴은 없었다.” 관계자들의 하나같은 증언은 둘째치자. 기관 명의의 입시용 증빙서류를 학부모가 작성·저장·출력하는 날조 과정이 포렌식으로 명백히 밝혀졌다. A는 그러나 위조죄를 피한다. 공문서(국립대 센터 증명서) 위조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있었다. 사기업 증명서 조작은 명의를 도용한 ‘위조’가 아닌 ‘허위 작성’으로 규정되었다. 아는 관계자에게 날인을 건네받았다는 이유다. 형법에 ‘허위 사문
[김수민의 클로징] 캐치 미 이프 유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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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이유로 모국에서 추방되어 태국에서 한량처럼 살아가는 전직 요원 루카스(조시 하트넷). 그에게 미국으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다. 방콕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 ‘고스트’라 불리는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라는 옛 상사(케이티 새코프)의 지시를 받은 그는, 같은 목표물을 노리는 전세계 킬러들을 공중에서 상대해야 한다. <킬러들의 비행>은 크리스토퍼 놀런, 가이 리치, M. 나이트 샤말란 등 거장들의 프로젝트에서 최근 활약하고 있는 배우 조시 하트넷의 신작이다. 아시아를 배경으로, 이동 수단 내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킬러들의 액션이라는 설정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불릿 트레인> (2022)을 연상시킨다. 다인종·다성별의 킬러 캐릭터들이 다양성을 무기로 B급 액션의 익숙한 공식을 비틀고, 예상치 못한 긴장과 리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다.
[리뷰] 다양성이 추진하는 탈것 액션, <킬러들의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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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인 팀(데이브 프랭코)과 밀리(앨리슨 브리)가 관계 회복을 위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린다. 교사인 밀리가 교외의 작은 학교로 전근하게 되었고, 뮤지션을 꿈꾸던 팀은 고민 끝에 밀리와 함께 이사를 가게 된다. 일상의 사사로운 문제들로도 조금씩 어긋나던 둘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모종의 원인으로 인해 서로의 몸이 점차 붙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무언가에 취한 것처럼 서로를 원하게 되고, 피부가 맞닿는 순간 두 사람의 몸이 합쳐지는 현상을 겪게 된다.
이처럼 <투게더>는 근래 유행 중인 보디 호러 장르에 로맨스 서사를 더하며 독특한 장르물의 묘를 내뿜는 작품이다. 올해 선댄스영화제 미드나이트 부문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큰 화제를 끌었고, 인디 배급사의 작품임에도 북미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진입하는 등의 성과를 보였다.
[리뷰]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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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콜먼(줄리아 버터스)과 릴리 레예스(소피아 해먼스)는 학교에서 소문난 앙숙이다. 아이러니하게 하퍼의 어머니 안나(린지 로언)와 릴리의 아버지 에릭(매니 저신토)은 사랑에 빠져서 재혼하기로 마음먹는다. 하퍼와 릴리, 안나와 안나의 어머니 테스(제이미 리 커티스)는 둘의 결혼을 기리는 파티에서 수상한 영매 마담 젠(버네사 바이어)을 만난다. 젠의 마법으로 릴리는 테스와, 하퍼는 안나와 몸이 바뀌고 하퍼와 릴리는 결혼식을 방해하려고 한다. 린지 로언을 하이틴 스타로 만든 <프리키 프라이데이>가 22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다. 린지 로언과 제이미 리 커티스도 주연으로 컴백했다. 캐릭터의 수가 늘어난 만큼 전작에 비해 서사가 훨씬 복잡해졌다. 넷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팬 서비스와 각 세대를 풍자하는 유머가 쏟아진다. 다소 구성이 산만하나 세대 통합을 바라는 메시지가 뭉클함을 자아낸다.
[리뷰] 쏟아지는 팬 서비스와 세대 풍자, <프리키 프라이데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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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성소수자 철준(조유현)은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 성실히 살아가지만 다수의 세계에 쉽게 편입되지 못한다. 처음 참석한 모임에서 영준(김현목)을 만난 그는 서로의 일상과 고민을 나누며 점차 마음을 연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른 이 영화는 박준호 감독의 첫 장편으로, 경계에 선 인물을 담백하게 그리는 그의 연출 경향을 잇는다. 소외된 인물을 특별한 존재로 과장하지 않고 하루하루 생존 방식을 배워가는 평범한 청년으로 그리고 있으며, 일상을 버티는 모습에서 그의 사랑이 드러나게 한다. 인물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 화법은 누구를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에 시선을 두게 하고 비장함 없이 일상에 녹여냄으로써 주변화된 인물을 평범한 개인으로 복원해놓는다. 사랑을 말하려면 삶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증명하는 수작이다.
[리뷰] 사랑하고 살아가는 그 보석 같은 보편, <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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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는 작가 코노하(다카이시 아카리)를 따라 명문 사립고에 입학한 문학소녀 토코로(후지요시 가린)는 뜻밖의 사건으로 문예부가 아닌 신문부에 들어간다. 작가를 꿈꾸던 그녀는 베일에 싸인 코노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비밀 활동을 이어가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며 기자의 세계에 눈을 뜬다. <신입기자 토롯코>는 학원물의 전형적인 성장 서사를 따르면서도 사랑이나 또래 관계가 아닌 사회적 사건의 해결을 통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학교라는 공간을 사회의 축소판으로 삼아 학생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권력과 비리를 마주 보게 하면서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담백하고 차분한 연출로 어린 주인공의 변화에 설득력을 더하고 학원물 특유의 좌충우돌 포인트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채로운 색이나 만화 같은 그래픽보다는 비슷한 계열의 색을 통일되게 사용해 정돈된 영상미를 구현했는데 이는 어린 인물들의 서사와 의외의 케미를 만들어
[리뷰] 로맨스 없는 성장담이 오히려 새롭다, <신입기자 토롯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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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회부 기자인 백선주(조여정)에게 제보 전화가 걸려온다. 제보의 주인공은 11건의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 이영훈(정성일). 그간 일말의 증거도 남기지 않고 범죄를 저지른 그는 선주에게 자신과 인터뷰를 하면 계획된 살해 한건을 멈추겠다고 제안한다. 특종을 따내 기자로서 본때를 보여야 하는 선주는 영훈의 제의에 응한다. 인터뷰가 시작하자마자 영훈은 선주에게 살해 증거를 들이민 후, 정신과 전문의로서 자신의 범죄는 치료의 일환일 뿐이라고 답한다. 내담자가 겪는 고통의 근원을 제거해 환자를 낫게 하는 의료 행위를 수행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선주는 영훈의 진술에 점차 혼란을 느끼고, 선주를 앞세워 잠복 중이던 형사 한상우(김태한)는 현장 급습을 시도한다. <살인자 리포트> 속 선주는 인터뷰어이면서 인터뷰이다. 그가 기자로서 취재원인 영훈의 진술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영훈의 유도심문에 감겨 복잡한 내면을 조금씩 누설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선주의 위치는 <살인자 리
[리뷰] 20세기 말 21세기 초 조디 포스터를 체화한 조여정, <살인자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