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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열의 촬영미학] 사라진 입체, 남겨진 역사 - 박홍열 촬영감독의 <안젤름>
박홍열(촬영감독) 2026-06-11

<안젤름>

<안젤름>은 빔 벤더스의 12번째 다큐멘터리이자, <피나>이후 12년 만에 다시 만든 3D다큐멘터리다. <피나>는 디지털시네마와 함께 등장한 초기 디지털 3D영화 가운데 하나로, 피나 바우슈의 무용과 공간 감각을 인상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그 이후 영상기술은 4D, VR, 버추얼 프로덕션과 언리얼 엔진을 거쳐 AI가 영화를 대체할 것이라는 시대까지 도달했다. 이제 육체적 감각의 체험으로서 3D는 무감각한 매체가 되었다. 제임스 캐머런을 제외하면 3D를 영화의 핵심 형식으로 밀어붙이는 감독은 거의 없으며, 2D 기반의 후반작업만으로도 3D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아바타: 물의 길> 역시 전통적인 의미의 완전 실사 3D라기보다 CGI 기반의 네이티브 스테레오스코픽 3D에 가깝다. 그런데 벤더스는 다시 실사 기반의 3D다큐멘터리를 선택한다. 오늘날 거의 사라진 대형 3D 리그와 스테레오 카메라 시스템을 사용하면서까지. 3D영화를 제대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아이맥스 같은 일부 극장에 한정되어 있고, <아바타>시리즈 같은 블록버스터가 아닌 이상 멀티플렉스에 3D다큐멘터리가 상영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아는 감독이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실사 3D임에도 <피나>와 <안젤름>이 전혀 다른 감각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피나>의 3D가 무용수의 움직임을 공간 안에 부유시키는 매체였다면, <안젤름>의 3D는 물질의 무게와 역사의 층위를 관객의 몸에 새기는 매체다.

안젤름 키퍼는 캔버스를 넘어선 거대한 크기, 두꺼운 납과 재, 진흙의 거친 질감과 폐허의 잔해들로 독일 전후 망각하려 했던 전쟁과 역사의 기억을 ‘물질’로 재구성하는 작가다. 건물과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전환하거나 건축적으로 쌓아올려,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공간 안에 표현한다. 독일 사회는 전후 경제성장 속에서 나치 문제를 침묵하거나 덮고 있었다. 키퍼는 그 억압된 기억을 물질로 다시 표면에 끌어올린다. 키퍼의 주재료 중 하나인 납은 변형 가능하고 인체에 해로운 오염물질이다. 역사와 기억이 몸에 남기는 흔적을 납이라는 물질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캔버스 안은 공간적으로 깊이감이 강하고, 캔버스 위로는 재료들의 축적이 표면을 뚫고 나오듯 입체적이다. 강한 원근법으로 관객을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하지만 원근법이 도달하는 소실점에 공간은 비어 있다. 인간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아 있다. 키퍼에게 공간과 깊이, 그리고 물질은 작업의 근본 조건이다.

철학에서 ‘연장’이란 공간적 부피와 크기를 지닌 물질성의 근본 조건이다. 대상을 물리적 공간의 법칙 안에서 파악할 때 반드시 전제되는 것이다. 키퍼는 역사를 이 연장 위에 놓는다. 거대한 캔버스와 건축적 공간 위에 수직적으로 물질을 쌓아올리며, 망각되는 역사에 물리적 부피를 부여한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함을 통해 역사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를 가진 것으로 경험되게 만든다. 키퍼의 작업이 도달하려는 최종 지점은 물질 자체가 아니다. 연장을 가진 물질을 통해 연장이 없는 인간의 의식 안에 역사를 새겨넣는 것이다. 물질에서 출발하되 비물질적인 기억과 인식에 도달하는 것. 벤더스의 3D 역시 같은 경로를 따른다. 3D는 스크린의 평면을 물리적으로 해체한다. 이미지가 스크린 뒤로 후퇴하며 깊이를 만들고, 동시에 스크린 앞으로 돌출하며 관객의 신체 공간을 침범한다. 이 양방향의 물리적 자극을 통해 궁극적으로 관객의 의식 안에 역사적 감각을 심으려 한다. 키퍼의 물질성과 벤더스의 3D는 이 지점에서 만난다. 둘 다 연장에서 출발해 연장 너머에 도달하려는 작업이다.

<안젤름>

3D는 기술적으로 시청각 경험의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카메라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안젤름>도 카메라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영화의 첫컷부터 움직이던 카메라가 멈춰 서는 지점이 있다. 키퍼의 평면 회화작품을 들여다볼 때다. 이 순간 역설이 발생한다. 평면인 회화가 3D영화보다 더 강한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키퍼의 원근법은 관객의 시선을 캔버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캔버스 위에 축적된 물질의 층위가 스크린 앞으로 돌출하듯 다가온다. 벤더스는 3D 카메라로 이 평면 회화를 공간적 체험으로 전환한다. 키퍼가 회화 안에 구축해놓은 입체성을 3D가 문자 그대로 현실화하는 것이다. 벤더스가 키퍼의 작품 위로 2차대전 뉴스릴을 얹어놓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평면이지만 입체적인 키퍼의 작품 위에, 전혀 입체적이지 않은 과거의 뉴스릴이 올려지는 순간은 키퍼의 방식을 벤더스가 영화적으로 수행하는 장면이다. 키퍼가 폐허의 잔해를 캔버스 위에 쌓아올리듯, 벤더스는 과거의 기록 이미지를 키퍼의 현재 작품 위에 쌓아올린다. 입체 위의 평면, 현재 위의 과거. 우리가 잊어가거나 잃어버린 것들 위에 이미지를 층층이 겹치며, 벤더스는 키퍼의 방법론으로 3D영화를 구성한다. 이 순간 관객은 물질의 깊이와 역사의 깊이를 동시에 응시하게 된다. 눈앞의 입체감 안에서 과거가 현재의 물질 위로 스며드는 감각, 그것이 이 영화에서 3D가 도달하는 지점이다.

이 작품은 한편의 아카이빙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키퍼의 작품과 2차 세계대전의 이미지, 키퍼가 기록한 아카이빙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벤더스는 아카이빙과 인터뷰로 단순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는다. 여러 아카이빙 이미지를 나열한다고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으며, 아카이브의 나열로 역사를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창작자의 오만함이라고 말하듯, 벤더스는 매체들의 차이와 몽타주, 3D 카메라를 활용해 그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키퍼와 벤더스에게 역사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폐허처럼 남겨진 물질이 중요하다. 역사는 고정될 수 없고, 물질의 변화 그 자체가 역사다. 벤더스는 아카이빙 이미지와 2D, 3D 매체의 물질적 차이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같은 이미지라도 어떤 매체 위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무게와 질감을 갖게 되며, 그 차이 자체가 역사가 고정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아카이브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 사이의 간극을 벌려놓음으로써, 벤더스는 역설적으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현실적으로 <안젤름>을 상업성 짙은 아이맥스에서 3D로 보기는 어렵다. 관객 대부분은 이 영화를 2D로 볼 수밖에 없다. 3D로 촬영되었으나 3D로 상영될 수 없는 이 영화의 조건은, 역사 자체의 조건과 닮았다. 역사는 지금 눈앞에 펼쳐질 수 없는 과거이며, 존재했으나 온전히 재현될 수 없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조건이 영화에 또 하나의 층위를 부여한다. 2D 스크린 위에서 키퍼의 원근법적 깊이감은 여전히 작동하며, 관객은 자기 몸의 시선으로 그 깊이 안에 들어가야 한다. 3D 장치가 만들어주던 입체감을 이제 관객의 시선이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벤더스는 2D의 화면을 3D의 시선으로 응시하길 바란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3D가 아닌 2D로 볼 때, 원근법이 관객 자신의 몸 안에서 역사적 시선으로 고정되며 이미지가 비로소 영화로 새겨진다. 키퍼가 물질 위에 역사를 쌓아올리고, 벤더스가 매체 위에 매체를 쌓아올리듯, 이 영화는 3D와 2D, 회화와 영화, 아카이브와 체험 사이의 층위를 겹겹이 구성한다. <안젤름>은 망각된 역사를 붙잡기 위한 가장 입체적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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