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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줄리엣 비노쉬,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내로라하는 여성 배우들의 연출 데뷔작을 여럿 호명했다. 2019년 <방랑의 로마>로 먼저 그 부름을 받은 타니슈타 차테르지는 사실 메가폰을 잡을 계획이 전혀 없었다. “동료 남성 배우에게 재밌는 아이디어를 들려줬는데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로 만들어보라는 격려를 들었다. 그의 진심 어린 응원에 힘입어 상상도 못 해본 도전을 했다.” 뒤이어 탄생한 두 번째 장편이자 올해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암린의 부엌>도 한 여자가 주변의 영향으로 알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다. “집안에서 가사 노동만 할 뿐 자기 자신을 위해 즐거운 일은 하지 않는 주부”이자 인도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암린(키르티 쿨하리)은 부유한 비건 부부의 집에 요리사로 취직하면서 인생의 다른 국면을 맞는다. 차테르지 감독은 친구의 집에서 열리는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비슷한 광경을 본 후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암린이 아보카도
BIFF #8호 [인터뷰] 그녀가 음미한 삶의 다른 국면, <암린의 부엌> 타니슈타 차테르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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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의 신작 <루오무의 황혼>에서 상실과 사랑의 형태는 상당히 닮아 있다. 바이(바이 바이허)는 오래 전 헤어진 옛 연인 왕이 '루오무의 황혼'이라 적어 보낸 엽서를 받고 작은 마을 루오무에 도착한다. 정처 없이 마을을 돌며 바이는 왕의 흔적을 발견한다. <야나가와> <백탑지광>에 이어 장률 감독이 중국에서 만든 세번째 영화로 장소와 인물을 엮는 장률 감독의 특성과 전에 없던 새로운 실험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 루오무를 배경지로 택한 이유는.
중국의 4대 불교 명산인 어메이산에 가서 쉬려고 했는데, 그 아래에 있는 루오무 마을을 지나다 그곳의 이상한 매력에 끌렸다. 2~3일 정도 마을에 뭐가 있는지 구석구석 따지고 보니 ‘영화 하나 찍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 둘 배우들에게 연락을 돌려 우선 시놉시스 한 장을 보여줬다. 그렇게 루오무에 모인 배우, 제작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 바이가 루오무로 향하는 이야기는
BIFF #8호 [경쟁] 나를 그곳에 있게 하는 장소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루오무의 황혼> 장률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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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나이, 성별, 인종이 다른 두 사람이 영혼의 단짝이 되어 미국 독립영화계의 살아있는 신화가 됐다. 이제 두 사람은 전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타이베이로 집중시키려 한다. <왼손잡이 소녀>는 타이완의 쩌우스칭 감독의 단독 연출 데뷔작이자 <아노라>(2024)로 칸과 아카데미를 동시 석권한 션 베이커 감독의 제작, 각본, 편집 복귀작이다. 영화적 비전에 있어서 만큼은 “98%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두 사람이지만 “2% 다른 곳에서 모두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왼손잡이 소녀>에서 짙은 ‘션 베이커스러움’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곧 우리가 션 베이커의 세계에서 ‘쩌우스칭스러움’을 놓쳐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서 첫선을 보인 후 부산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영화를 소개하는 소감은.
쩌우스칭 타이베이영화위원회를 통해 부산과 연결될 수 있었다. 위원회의 국제 공동제작 펀딩
BIFF #8호 [경쟁] 당신의 왼손이 이끄는 곳으로, <왼손잡이 소녀> 쩌우스칭 감독 , 션 베이커 제작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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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 중국 / 2025년 / 99분 / 경쟁
9.25 BCM 15:30
바이(바이 바이허)는 오래전 헤어진 애인 왕이 머물렀던 마을 루오무에 들른다. 그곳에 들른 이유는 ‘루오무의 황혼’이라 간결하게 적힌 왕의 엽서가 바이에게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한 바퀴 도는 데에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루오무를 바이는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리우(리우 단)와 그의 애인 황(황젠신), 리우의 술친구인 샤오펭 등 다양한 주민들과 마주한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바이는 루오무에 3년 간 머물렀던 왕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한편 바이 역시 죽음과 밀접히 맞닿은 자신의 과거를 리우에게 털어 놓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적을 옮겨 작업을 시작한 이후, 장률 감독이 <야나가와> <백탑지광>에 이어 내놓은 세 번째 장편이다. <루오무의 황혼>은 장률 감독의 전작과 교집합을 지닌다. 가령 <경주>의 최현(박해일)과 같이 주
BIFF #8호 [경쟁] 루오무의 황혼 Gloaming in Luo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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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간/ 중국, 프랑스/ 2025년/ 156분/ 경쟁
이걸 어떤 영화라고 해야 할까. 판타지? 영화를 위한 영화? 기억과 이미지에 대한 우리 인식에 도전하는 실험? 비간 감독의 네 번째 작품 <광야시대>를 마주하는 순간, 의미와 장르적 범주로 이 영화를 해석하는 시도는 불가능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비간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세트를 재현한 무성영화로 문을 연다. 영화의 화신처럼 보이는 신비로운 여인(서기)이 <노스페라투>와 <프랑켄슈타인>이 뒤섞인 듯한 어느 괴물을 돌보고 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소동극을 시작으로 영화는 다섯 개의 다른 이야기를 그려낸다. 근미래, 인간들은 꿈을 꾸지 않으면 불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꿈꾸는 자는 불꽃을 피우다 녹아내리는 촛불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타즈머’라 불리는 이단자들은 단명할지언정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양천새가 연기한 판타즈머는 꿈을 통해 20세기 중국사의 다양한 시공간을 떠돈다.
BIFF #8호 [경쟁] 광야시대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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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부산 어워드 (Busan Award)를 신설, 경쟁 영화제로 전환한다. 경쟁부문에 오른 14편의 아시아 작품에 대상,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배우상, 예술공헌상 등 총 5개 부문의 시상을 진행한다.
BIFF #8호 [별점] 경쟁작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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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웨블리 / 미국 / 2025년 / 83분 / 플래시 포워드
9.24 L6 16:30 / 9.25 L10 14:00
<오마하>의 간결한 각본은 대사를 최소화하고 관찰을 통해 가족의 서사를 쌓아 올린다. <퍼스트 카우>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보여준 존 마가로의 내성적 연기에 온전히 기댈 수 있는 공간이 그렇게 생겨난다. 강제 퇴거 통지를 받고 쫓겨난 아버지(존 마가로)와 딸 엘라, 아들 찰리, 그리고 리트리버 한 마리가 낡은 차에 몸을 싣고 네브래스카 오마하로의 로드 트립을 떠난다.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는 무력감과 수치심을 숨기려 애쓰지만, 차창 너머로 보안관이 다가오고 끼니를 해결할 돈 마저 떨어지는 순간에 눈가에 떠오르는 절망을 아홉살 딸 엘라가 모를 리 없다. 무엇보다 가족이 왜 오마하로 향하는 것인지 초조한 심정으로 단서를 헤아려가는 소녀의 시선이 비극의 무게를 더한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의 경제적 여파를 흡수한 로드무비인 <
BIFF #8호 [씨네초이스] 오마하 Om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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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국 / 한국 / 2025년 / 110분 / 비전-한국
9.24 L10 17:30
부모와 딸 하나로 이뤄진 가족이 있었다. 그 견고해 보이던 삼각형의 꼭짓점 하나가 사라지자 두 여자는 균형을 잃는다. 인선(이지현)은 남편 없는 일상이, 수연(홍승희)은 아버지 없는 고향이 낯설기만 하다. 그의 부재만큼이나 두 사람을 괴롭히는 건 그 남자가 스스로 죽기로 한 이유를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 무지로 인한 고통은 집 밖 타인들의 무례를 먹고 자라나 모녀 사이마저 메워버린다.
이광국 감독의 신작 <단잠>은 자살 유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생활의 풍경화를 한장 두장 넘기다 인물을 보듬으려는 마음으로 그린 추상화까지 내보이는 영화다. 공통 경험을 가진 이들끼리의 연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두루 탐색하는 시선 또한 이 영화에 무게감을 더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무엇도 쉽게 속단하지 않는 태도가 이야기 전반을 지배한 덕분이다. 주인공 모녀를 둘러싼 군상의 이채로운 면면을 놓치지 말고
BIFF #8호 [씨네초이스] 단잠 BEAUTIFUL DRE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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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소사이 / 이탈리아, 독일 / 2025년 / 100분 / 플래시 포워드
맨 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세상이라면 항상 취해 있는 것이 차악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365일 혈중 알코올 농도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두 한량 카를로비안카(세르지오 로마노)와 도리아노(피에르파올로 카포빌라)처럼 말이다. 정처 없이 술을 찾아 헤메던 술꾼들은 샌님같은 건축과 학생 줄리오(필리포 스코티)를 우연히 만난다. 세 사람은 어떤 목적지도 정해두지 않은 채 끝없는 음주의 길에 오른다. 숙취를 느낄 새도 없이 비틀거리는 만취의 로드무비다. 다만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가 알콜의 힘을 빌려 그려낸 것은 단순한 여흥의 삶이 아니다. 주정뱅이들이 탄 차창 뒤로는 황량한 이탈리아의 동시대적인 풍경이 그들을 비웃듯 지나친다. 주정처럼 뇌까리는 대화 사이로는 자본의 유령이 넘실거리는 우화가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이들은 숙취와 같은 냉혹한 현실을 피해 차라리 영원히 깨지 않기를 택한 것이다
BIFF #8호 [씨네초이스] 가는 길에 딱 한 잔 더 The Last One for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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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8호 [Topic] 오늘의 이벤트
BIFF #8호 [Topic] 오늘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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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어워드’의 향방은 과연 어디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막바지에 들어설수록 경쟁부문을 비롯한 각종 부문의 수상작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부산 어워드를 비롯한 주요 부문의 시상은 9월 26일 18시부터 이어질 폐막식에서 치러진다. 5개 부문의 부산 어워드(대상,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배우상, 예술공헌상)을 비롯해 뉴 커런츠상, 비프메세나상, 선재상의 주인공이 가려진다. 25일에 진행되는 비전의 밤에선 올해의 배우상, 플래시 포워드 관객상, 다큐멘터리 관객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 CGV상 등 20여 개 부문의 상이 시상될 예정이다.
BIFF #8호 [Topic] ‘부산 어워드’의 영예는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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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3일 15시 30분,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에선 APM(아시아프로젝트마켓) 시상식이 진행됐다. 1998년 부산프로모션플랜(Pusan Promotion Plan; PPP)으로 시작해 28회를 맞은 올해 APM엔 15개국에서 온 30편의 영화 프로젝트가 선정됐으며, 이 중 13개의 작품에 APM 부산상, CJ ENM 어워드, 홍해필름펀드상, KB어워드, 칸타나 어워드(픽처, 사운드), TAICC상 등의 상이 수여됐다. ACFM은 “장르적 다양성과 지역별로 뚜렷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들 주목”하며 “한국에서는 장르 다양성과 섬세한 감수성이 공존하는 신진·중견 감독들의 다채로운 신작 선정”하겠단 시상 기준을 밝혔다. 미화 1만 달러의 개발비가 지원되는 CJ ENM 어워드는 <세입자> 등을 연출한 윤은경 감독의 <고치>에게 돌아갔다. “항상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는 SNS 과잉 시대에 한 유튜버 부부가 물고기 '고치'를 통해 인
BIFF #8호 [News] 상보다 기쁜 응원의 시간, APM(아시아프로젝트마켓) 시상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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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무릇 월급쟁이라면 다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의 국내 번역판에 담긴 박찬욱 감독의 추천사다. 박찬욱 감독은 오랫동안 <액스>를 영화화하고 싶다고 밝혀왔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액스>를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과 오랫동안 소통해왔다. 그렇게 탄생한 <어쩔수가없다>는 <액스> 또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와 얼마나 다를까. <어쩔수가없다>만이 지니는 특이점을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만수의_표적들
유만수(이병헌)는 자신과 유사 경력을 지닌 취업 경쟁자의 프로필을 입수하기 위해 유령회사인 ‘레드 페퍼 페이퍼’를 세운다. 소설 <액스>와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에 등장했던 ‘B. D. 산업용지’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버크
[기획] <어쩔수가없다>만의 특이점은 이렇게 완성됐다, <액스>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와의 전격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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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지, 않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보는 내내 당신의 뇌리를 지배할 하나의 질문. 만수(이병헌)는 왜 꼭 저 길을 택해야 했을까. 만수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극 중 또 다른 실직 가장 범모(이성민)에게 아라(염혜란)는 일갈한다. “실직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후의 대처가 문제”라고. 관객의 심경을 대변하는 아라의 대사를 들으며 이제 의심은 명확한 질문으로 거듭난다. 만수의 행동들은 정말 재취업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인가. 어디까지가 변명이고 어디부터가 진심인가. 애초에 진심이란 건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를 증명하는 건 우리의 말인가, 생각인가, 행동인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늘 그랬듯 ‘어쩔 수 없다고 믿는’ 상황들이 진행될수록 질문은 도리어 두터워진다. 다만 전작 <헤어질 결심>과 차이가 있다면 질문이 안개처럼 흩어져 모든 것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질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기묘한 긴장감이 피어오른
[기획] 고추잠자리와 분홍 소시지의 코미디, 송경원 편집장의 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