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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도 제철이 있다면 호러의 계절은 누가 뭐라 해도 여름이다. 왜 여름에 보는 호러가 더 제맛인 걸까. 공포를 맛에 비유하자면 매운맛과 닮았다. 매움은 맛이라기보다는 통증에 가깝다고 하는데, 공포영화를 보는 심경도 비슷하다. 다양한 종류의 불쾌감을 전제로 깔아야 얻을 수 있는 재미는 통증을 견뎌낸 뒤에야 오는 매운맛의 쾌감처럼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다. 어쩌면 여름이 호러영화의 계절로 자리 잡은 건 더울 때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싶다. 공포에 흠뻑 젖은 뒤 등골이 오싹한 기분. 불쾌감의 허들을 통과한 자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
꽤 오랫동안 여름은 호러의 계절이었지만 최근 2, 3년 사이를 뒤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연휴 영화, 방학 특수 등 영화 개봉의 전통적인 사이클이 무너지면서 한동안 호러도 상시 개봉에 가깝게 계절을 타지 않았다. 그런 호러가 다시 여름 시장을 공략하며 돌아왔다. 정확히는 1년 내내 다양한 방식의 호러들이 꾸준히 개봉하는 것에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한여름 호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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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기로디 감독의 전작 <호수가의 이방인>에서 카메라는 정직하게 인물들과 정면으로 마주 선다. 호숫가 주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인물들의 나체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위치에서 깊은 심도로 프레임 안 인물들보다 살짝 낮은 레벨에서 정면으로 바라본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얼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사를 하거나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에서도 얼굴을 강조하는 숏이나 클로즈업숏 없이 무심하게 인물들의 나체 풀숏을 긴 호흡으로 담아낸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인물들과 그들의 사랑 행위를 호수와 주변의 나무와 풀, 모래와 자갈들처럼 자연의 일부로 만든다. 우리의 욕망이 퀴어이든 아니든 특별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님을, 영화의 스릴러라는 장르와 프레임과 컷의 배치, 그 길이를 통해 드러낸다. 욕망 자체를 뒤틀림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인물들을 자연 속에 배치한다. 화면은 넓은 화각에 깊은 심도, 롱테이크로 프레임 안의 모든 것들을 자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만든다
[박홍열의 촬영 미학] 자비의 색채, 욕망의 렌즈 <미세리코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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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에서 동화(하성국)와 준희(강소이)의 아버지 오령(권해효)은 함께 뒷산을 올라 산어귀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두 사람의 주변은 초록색 풀로 둘러싸여 있다. 저 멀리 강이 보이고, 풀이 흔들리고, 이들은 순간 완전한 자연 속으로 이동한 듯하다. 프레임 안쪽을 채우고 있는 풀 이미지는 두 사람이 있는 공간을 일순간 다른 시공간처럼 보이게 만든다. 풀 이미지는 화면에 자연이라는 요소를 불러들이고 시공간을 자연의 힘 속으로 끌어당긴다. 이들은 분명 함께 뒷산을 올랐다. 하나 지금 두 사람은 정녕 어디에 있는 걸까.
시공간을 불확정적으로 주조하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인물의 동선과 장소가 이어지지 않거나 불일치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자연은 유독 이상한 시공간의 감각을 자아낸다. 오령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카메라가 줌아웃하면서 반듯하게 정돈해놓은 정원의 조경이 드러난다. 자연은 현실과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
[비평] 서간체로 감각하기: 식물 사유 연습, 김예솔비 평론가의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풀> <광합성하는 죽음> <이어지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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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웃기는데 난데없어 더 웃긴 <THE 자연인> 앞에서 냉정해지기란 쉽지 않다. 아니,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가 나뉘리라 짐작하면서도 <THE 자연인>이 아주 제대로 노는 코미디영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 영화와 함께 놀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허들이 높진 않다. 얼마간 비위가 강해야 하고 망측한 장면에서도 의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만 충족되면 취향 타는 영화를 보는 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든 노영석은 웃음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는 폭소든 실소든 풍자로든 여러모로 관객을 웃기는 데 재능이 있다. 우리는 그의 저력을 데뷔작 <낮술>(2008)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기도 하다.
누군가는 <THE 자연인>을 ‘병맛’ 코미디라고 칭하고 B급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풍부한 코미디의 결을 다 살리지 못하는 듯해 살짝 석연치 않지만, 이 영화의 성격상 부인하기 어렵다.
[비평] 한판 신나게 놀아젖히는 영화, 홍은미 평론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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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에서 박 과장은 회사 돈을 몰래 챙겨 먹는 데 달인이다. 사내 최고의 영업사원인 박 과장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 받는 게 전부인 걸 억울하다고 여기고, 계약이 성사될 때마다 업체로부터 뒷돈을 또박또박 받는다. 그러다가 아예 백마진을 구조적으로 설계한다. 가족이 경영하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현지거래처로 위장해 거액을 챙긴다. 오 과장을 중심으로 한 영업 3팀 직원들은 이를 의심했고, 결국 인턴 장그래의 결정적인 신의 한수로 박 과장의 비리는 만천하에 드러난다. 감사팀에 끌려가는 박 과장의 뒤를 보며 오 과장은 읊는다. “보상받는 거라 생각했을 거다.”
베스트셀러 작가 A의 갑질은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A는 출판사 직원을 매니저처럼 부려먹는다. 자신의 책 소개하는 행사에 필요한 도움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개인 일정에 대동한다. 그가 출판사를 방문하면 모두가 도열해 90도로 인사한다. 대표는 회사 매출에 절대적 기여를 한 작가가 혹시나 후속작을 다른 출
[오찬호의 아주 사소한 사회학] 나는 상상한다. 보상이란 단어가 없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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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영화산업에는 베트남과의 공동제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먼저 <공조> <창궐>의 김성훈 감독이 배우 이광수와 함께 로맨스 코미디 <러브 바리스타>를 공개한다. 칸영화제 진출을 꿈꾸는 아시아 스타 강준우(이광수)가 어쩌다 베트남에서 무일푼으로 남겨진 뒤 현지 여성 타오(황하)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광수 배우의 별명이 ‘아시아 프린스’로 통용되는 만큼 베트남에서 대중적 관심이 몰릴 거라는 예측이 크다. 베트남과 한국 모두 올해 10월 개봉예정이다. 이어 호러 장르로도 장르적 범주를 넓힌다. <파묘> 김영민 프로듀서는 탕부 감독과 손잡고 공포스릴러 <개묘>(가제)를 제작한다. 베트남 전통의 묘지 이장을 뜻하는 개묘를 모티브 삼아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할 예정이다. 현지에서는 베트남 전통 장례문화를 영상 콘텐츠로 해석한 첫 사례라는 평가가 이어진다고. 베트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 경우
[특집] 누구와 함께? 무엇을 새롭게? - 설렌 마음 가득한 해외 합작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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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제작사와의 공동제작에도 시간에 따른 경향이 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워리어스 웨이>(2010), <라스트 갓 파더>(2010), <설국열차>(2013), <넛잡: 땅콩 도둑들>(2013), <메이크 유어 무브>(2013), <옥자>(2017) 등 영어권 시장과 함께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주를 이뤘다면 2016년 즈음부터는 <연애의 발동: 상해 여자, 부산 남자> <엽기적인 그녀2> <대역전> 등 중국과의 공동제작이 활발했다. 국제적 여파가 컸던 한한령 이후에는 더 다양한 국가와의 공동제작이 늘어났다. 2019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2021년에는 태국과 일본, 2022년에는 싱가포르와 대만, 2023년에는 일본, 브라질 등과 함께했다(<KOFIC 현안보고-2024 아시아 영화공동제작 현황과 지원방안> 참고).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지금까지 공동제작
[특집] 장르와 국경을 넘나들며 화제가 된 - <이국정원>부터 <랑종> <패스트 라이브즈>까지, 해외 공동제작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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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첫날 개봉 후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어느 가난한 이발사가 아버지가 다른 한국인 형에게 어머니를 맡기려는 이야기다. 이 비가를 쓰고 연출한 이는 한국인 모홍진 감독. 제작은 <널 기다리며> <안시성> 등을 만든 모티브픽쳐스와 CJ ENM베트남 영화제작팀장 출신 최윤호 대표가 이끄는 SATE(Sidus And Teu Entertainment)가 함께했다. 최윤호 대표는 5년 전 창립작 <블러디 문 페스트>로 큰 흥행을 기록하며 베트남에서 주목받는 제작자로 자리 잡았다. 그가 “진정한 공동제작”의 결과물이라 말하는 신작은 어떻게 베트남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 개봉 첫주에 100만, 3주차에 200만 관객을 만났다. 제작자로서 진단하는 흥행 요인은.
제목과 소재가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한 것은 물론 베트남 톱배우들이 한국 배우(정일우 배우가 특별 출연했다.-편집자)와 공연한다는 소
[인터뷰] 존중과 이해는 공동제작의 밑바탕 - 베트남 흥행작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제작한 최윤호 SAT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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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공조> <창궐>)이 연출하고. 이광수 배우가 주연한 로맨틱코미디 <러브 바리스타>가 한국보다 베트남 개봉 날짜를 먼저 확정했다. 시작부터 베트남 시장을 염두에 둔 영화였기 때문이다. 한국인 감독이 구상한 러브 스토리를 베트남 대중의 구미에 맞게 요리하기 위해 한국 제작사 제리굿컴퍼니, 영화사이창, 웨스트월드와 베트남 제작사 SATE(Sidus And Teu Entertainment)가 힘을 합쳤다. 호찌민에서 조우한 한국 톱스타와 베트남 여성의 사랑을 그린 결과물은 10월3일 베트남 관객을 먼저 만난 뒤 올해 하반기 안에 한국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러브 바리스타> 외에도 최근 국내외 영화인들의 협업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도 사쿠라 배우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정주리 감독 신작 <도라>는 프랑스와 공동제작에 돌입했다. 제이앤씨필름은 스포츠 영화 <블라인드 러너>를 위해 중국과 손잡았다. 하얼빈을
[특집] 이야기의 수입·수출은 여러모로 득이 커서 - 지금 한국 제작자들이 국제 공동제작에 뛰어드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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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무수한 영화가 국경을 넘나들며 태어났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계 창작자들의 저력을 드러냈고,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제작된 <킹 오브 킹스>도 한국 스튜디오의 기술력을 증명하며 크게 흥행했다. CJ ENM과 A24가 함께한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침체된 국내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제작자들로 인해 한국의 국제 공동제작 포트폴리오는 앞으로 더 풍성해질 전망이다. 최근 동남아시아 시장을 필두로 성공 사례를 누적해온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국영화’라는 명명이 불필요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올해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작품들의 제작 국가 목록만 봐도 예감할 수 있다. 하야카와 지에의 <르누아르>, 요아킴 트리에르의 <센티멘털 밸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
[특집] 이렇게 ‘한국영화’는 멀리까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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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방효린의 행보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다. 노래하듯 맑고 새된 목소리로 에로영화로 데뷔하려는 신인배우(<애마>), 수학여행 당일 자살을 기도하는 학교폭력 피해자(<지옥만세>)로 분했고, 1980년대 서울 충무로(<애마>), 사이비종교 교단(<지옥만세>), 인간 사냥터(<저 ㄴ을 어떻게 죽이지?>)를 누볐다. 한곳을 골똘히 바라보는 얼굴은 방효린의 전매특허다. 그때마다 방효린은 대기 상태다. 지구에 남아 화성으로 떠난 연인을 기다리고(<로웰에게>), 오피스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며 여자가 집으로 자신을 들이길 기다리고(<렛미인>), 세 친구 사이에서 관계의 진척을 기다린다(<구름이 다소 끼겠습니다>). <로웰에게>를 제외한다면 나열한 작품이 이성간 연애가 아닌 이하늬, 오우리, 하윤경, 김보라 등 여성배우들과의 짙은 케미스트리로 기억된다는 점 또한 이 배우의 특질을 돋보이게 한다. 이번
[인터뷰] 연기로 마음을 송두리째 헤집는 날까지 - <애마> 배우 방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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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충무로 최고의 배우 정희란(이하늬)은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돌아오는 귀국길에 분노가 치민다. 전속계약으로 묶인 신성영화사에서 또 한번 자신을 ‘벗는 영화’인 ‘애마부인’에 출연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신성영화사는 마음대로 조종 가능한 신인배우를 작품의 주연에 앉히고 희란을 조연으로 강등시킨다. 수많은 배우 지망생이 제2의 정희란을 꿈꾸며 오디션장을 찾지만 곽인우(조현철)의 눈에 들어온 원석은 신주애(방효린)다. 주애는 ‘애마부인’의 ‘애마’를 꿰찬다. 희란은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한 영화에 더해 후배마저 자기에게 기가 죽지 않아 불만이 크다. 은근하고 아련한 에로티시즘을 구현하려는 감독 겸 작가 인우와 달리 신성영화사의 대표 구중호(진선규)는 무조건 여자들이 몸을 노출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에 혈안이다. 모든 게 삐걱거리는 ‘애마부인’ 현장. 여기에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가 애마의 ‘말’(馬)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시나리오와 제목을 전면 검열한다.
“유신
[기획] 같은 것, 다른 것, 그녀(들)의 것 - <애마>가 <애마부인>을 다시 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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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세상 이 악물고 버텨라
이해영 監督의 新作
<애마부인>의 제작기를 그린 가상의 歷史劇
女子가 狂女가 될 수밖에 없는 獨裁政權의 忠武路
말 탄 두 女子가 우리를 解放케 하리라!!
女子의 觀點! 女子의 慾望!
에로·그로-테스크·난-쎈쓰를 打破하다
*이어지는 글에서 <애마> 리뷰와 배우 방효린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女子는 미치고 싶다, 六부작 연속극 <애마> 리뷰와 主演女優 방효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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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독립영화제 거버넌스 회복이 갖는 의미와 과제’ 토론회는 윤석열 정부에서 ‘0원’으로 전액 삭감됐던 서울독립영화제의 예산이 지난달 4일 2차 추가경정예산에서 지원 예산 4억원이 편성되며 예산 복구 및 증액된 가운데, 영화인들이 새 정부의 장기적인 정책 마련을 촉구한 자리였다. 이날 현장에서는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상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김현수 영화진흥위원회 사업본부장, 김지희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이 참석했고 모은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램위원장,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 김미영 감독, 권해효 배우, 이동하 영화인연대 공동대표(영화사 레드피터 대표), 이원재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사회는 김조광수 감독이 맡았다.
50년 역사 속 거버넌스의 변화
토론회 첫 발제를 맡은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램위원장은 서울독립영화제
[기획] 영화제 운영 공모 방식은 무조건 공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