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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봤다. 이자연 기자가 무려 14번 관람한 끝에 이벤트로 서프라이즈 박스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이 일어 부랴부랴 극장을 찾았다. 영화 보는 일이 업이지만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같은 영화를 두번 이상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거의 없다. 두 번째 볼 때부터는 진짜 ‘일’처럼 느껴지는 탓에 아무리 좋은 영화도 왠지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같은 영화를 저렇게 여러 번 볼 수 있도록 이끄는 걸까.
요즘은 대체로 글을 통해 영화를 먼저 접하다 보니, 보지 않았음에도 이미 여러 번 봤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그중 하나였다. 이미 원작 소설까지 읽었을 뿐 아니라 장면 하나하나까지 구체적으로 스포일러를 당한 상태라 어쩐지 심드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극장에서 직접 확인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온도 때문인 것 같다. 올해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보고 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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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서사에서 먼저 손을 뻗는 쪽은 대개 후자다. 반복되는 신호로든 안타까운 불시착으로든 음흉한 목적을 감춘 행로로든 그들이 지구에 온다. 지구인은 이 움직임을 ‘침입’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하곤 한다. 하지만 낯선 존재의 출현에 두려움보다 호기심에 사로잡히는 예외적인 인간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주류영화에서 그 호기심은 주로 과학자 혹은 어린이의 몫이다. 그들의 본능은 베일에 싸인 타자의 신비로운 이야기로 향하며 타자와의 접촉 지반을 확장할 방식을 골몰한다. 그 길을 발견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 전쟁의 스펙터클 한편에서 이야기의 주요한 축을 이룬다. 아무리 허구의 장르 안에서라도 ‘다른’ 세계와의 접속이란 단숨에 일어나기 불가능하다는 점, 공동의 언어란 수월하게 획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이들 영화가 공유하는 최소의 토대인 셈이다.
요컨대, 넓적한 얼굴과 짧은 팔다리의 외계인이 처음으로 소년의 이름을 어눌하게 내뱉어 그를 기쁘게 만든 순간은 종의 차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지구인이 꿈꾼 몸이 닿지 않는 포옹, <프로젝트 헤일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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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씨네21> 1549호, ‘영화 바깥의 세계-<차임>)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구로사와 기요시가 21세기 영화의 특징으로 꼽는 ‘외측’은 21세기 영화에만 국한된 특징은 아니다. 그것은 영화의 시원적인 매혹에 관한 이야기다. 구로사와는 강연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을 상영하고 이 영화가 세계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 이유에 대해 화면에 비치지 않는 ‘프레임 바깥’까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노엘 버치가 <영화의 실천>에서 적극적으로 펼친 ‘외화면’에 대한 논의와 공명한다. 버치가 꼽는 외화면을 탁월하게 다룬 감독들 중에 로베르 브레송이 있다. 그는 브레송이 등장인물의 입장과 퇴장으로 만들어진 빈 화면과 이로 인해 활성화된 외화면 공간을 핵심적으로 활용했다고 평가한다. <영화의 실천>의 원서 초판이 1969년에 나왔기에 버치가 책에서 브레송이 남긴 최후의 숏을
[비평] 감옥으로 향하는 오디세이, 오진우 평론가의 <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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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장치들> 전시를 찾는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시아 각지에서 자기만의 투쟁을 이끌어온 이들의 비디오아트를 보다 보면 시간의 물줄기를 거슬러 이들이 출발한 예술적 발상지가 궁금해진다. 31팀의 참여 작가 중 한옥희, 김동령X박경태, 아다치 마사오, 장민승, 차학경, 정재훈, 타이키 삭피싯 등 총7팀의 이야기를 심도 깊게 경청했다. 직접 질문을 건넬 수 없었던 한옥희, 아다치 마사오, 차학경 작가는 김지하 학예연구관의 말을 빌려 그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술의 전경을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해 이들의 비디오아트를 포스터로 재해석한<시네마토그래피로서의 포스터> 코멘터리 세편도 함께 담았다. 계속해 돌고 도는 영상이 평면 이미지로 탄생하기까지 세 디자이너가 거쳐온 시간은 우리의 시야 또한 넓힐 것이다.
01. 한옥희
한옥희 감독이 ‘카이두 클럽’이라는 한국 최초의 여성 실험영화 그룹을 결성했다는 사실은 현재 여성들까지 고양시키기에 충분한 이야
[특집] 저항하고, 비판하며 예술을 만들어가기 - <아시아의 장치들> 참여 작가 7팀의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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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장치들>은 김지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학예연구관의 숙원 사업이었다. 2015년 개관 당시 ACC의 핵심 업무는 필름앤비디오 아카이빙 프로젝트였다. 어떤 분야의 필름과 비디오를 다룰 거냐 했을 때, 그의 방향성은 실험영화로 기울었다. “애초부터 영화나 미술 어느 한쪽의 제도에 속하지 않았던 비제도적 장르이기에, 국립기관에서라도 그 기록을 남길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아시아 실험영화의 상징처럼 여겨지거나 그 의미가 중요한 이들에게 먼저 접촉했고, 두개의 축이 한옥희와 아다치 마사오 감독이었다. 나아가 아시아 영상 작가 80여명의 작품 800편 이상을 수집하고 보존했다. 하지만 아카이브를 공개하거나 전시하는 작업은 여러 사정으로 순탄치 못했고, 늘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었다. 개관 10주년 전시가 적절한 자리였다. “지금껏 축적된 ACC의 활동을 보여줘야 하는 기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4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고 그 결과가 <아시
[인터뷰] 10년의 궤적을 거쳐 - 김지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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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장치들>에선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관람 순서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전시장 입구에 으레 비치되는 종합 리플릿도 없다. 1층부터 3층까지 전시된 64개의 작품이 각자의 시청각적 자극을 내뿜으며 인지의 혼선을 자아낸다. 관객은 눈과 귀와 발의 자연스러운 충동에 따라 작품을 마주하게 되며, 개별 작품의 리플릿을 하나하나 모으면서 전시의 맥락을 스스로 짚어가게 된다. <아시아의 장치들>이 어떤 공간과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관객 각자의 길 탐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 체험기를 전한다.
1층 – 원의 안쪽
1층에 들어서면 커다란 원형의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바닥엔 국내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분야의 주요 연대기가 적혀 있다. 원형의 테두리를 만드는 별실(셀)들 안엔 아시아의 역사를 여성 서사로 재편한 작품들이 도사리고 있다. 차학경, 한옥희, 김소영, 임고은, 김동령×박경태, 마리암 타파코리 등 국내외 여성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피
[특집] 돌아다니며 보기, 올라가서 내려다보기 - <아시아의 장치들> 전시 체험기와 작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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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장치들>이란 전시의 제목을 들으면 모종의 익숙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우선 ‘장치’(apparatus)라는 개념은 미학·철학에서 꾸준히 애용되던 단어라 다소 친숙하다. 한편으론 적확히 정의하기가 모호한 용어이기도 하다. 수많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대표적으로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이론을 통해 지배계급의 착취가 어떻게 교육·법률·사회·정보적 ‘장치’로 작동하는지 설파했다. 불어로 디스포지티프(dispositif)라 번역될 때는 뉘앙스가 다소 다르다. 미셸 푸코의 ‘장치’(디스포지티프)엔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배치·배열되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실증적으로 달라진다는 함의가 중심에 있다. 요컨대 장치란 풀이 방식에 의해 다양하게 변용될 수 있는 단어이다. 여러 변주의 한 가지 공통점은 이것이 주로 서구(유럽)권에서 논의되고 발전해온 개념이란 것이다.
그러니 ‘장치’에 ‘아시아’라는 관계를 이었을 때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질 수
[특집] 익숙함과 이질감 사이에서 - 지금 <아시아의 장치들>을 감상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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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 ACC)에서 3월19일부터 9월27일까지 <아시아의 장치들>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ACC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기획된 <아시아의 장치들>은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를 아우르는 아시아의 무빙 이미지 작품들로 꾸려져 있다. 지난 10년 동안 ACC가 축적해온 아카이브와 네트워크를 통해 아시아의 주요 실험영화, 비디오아트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씨네21>은 직접 ACC를 찾아 <아시아의 장치들>의 전시 공간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전시를 기획한 김지하 ACC 학예연구관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덧붙여 이번 전시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들의 소감을 한자리에 모았다. 영화 매체의 테두리가 무척이나 희박해진 요즘이다. <아시아의 장치들>을 거닐며 무엇이 영화라는 제도를 만들었고, 무엇이 영화라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아시아의
[특집] 전시관 속 영화관 - 무빙 이미지의 뿌리부터 현재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10주년 전시 <아시아의 장치들>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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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12.3>은 여느 다큐멘터리보다 빼곡한 엔딩크레딧을 자랑한다. 12·3 비상계엄 전후 대한민국을 염려한 각계각층이 이름을 보탠 결과다. 이명세 감독이 제작 소식을 알리자 283명의 시민과 65개 의원실에서 2024년 12월3일을 포착한 사진, 영상, 자료를 보내왔다. 약 1만5천명이 영화 완성을 위한 후원에 참여해 크라우드펀딩 목표 금액 110%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들의 지원에 힘입어 개봉하는 <란 12.3>은 여러 모양을 한 파편들이 한데 섞인, 다만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로 다듬어진 콜라주다. 조각들을 연결한 접착제로서의 선율은 조성우 음악감독이 만졌다. 또 하나의 조각으로서 사태를 집약한 일러스트는 이강훈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씨네21> <한겨레21>에 삽화를 그리며 활동을 시작해 <한국 괴물 백과><독립운동가, 난민이 되다>등의 도서에도 그림을 남겼다.
그들은 어떻게 모였을까. 우선 이명세 감독에게
[기획] “비상계엄을 말할 때 절대 빠지면 안되는 장면이 무엇이지?” - 영화 <란 12.3>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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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이 12·3 비상계엄을 소재로 다큐멘터리영화를 연출한다, 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한국 사회가 정치적 격동기를 지나고 있던 1980년대 말에 등장했으나 당대의 지배 경향에 아랑곳하지 않는 독자 노선으로 ‘유치찬란한 멜로영화를 만드는 감독’, ‘역사의식을 망각한 악질 스타일리스트’로 매도당했던 그 이명세 아닌가. 40년 후 시류에 타협하지 않는 이 장인 예술가의 세계관이 돌연 방향을 선회한 것인가. ‘이명세의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인터뷰, 내레이션이 하나도 안 나오는 놀라운 다큐멘터리영화’라는 마케팅의 수사보다 기록과 보존을 본령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이 이명세의 작가적 특질과 만나는 지점이 궁금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란 12.3>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명세의 영화다. 눈과 바람, 낙엽, 신호등, 스모그, 그림자, 빛줄기, 골목길, 깜빡임, 철도 건널목 등 이명세의 전매특허로 알려진 표식들이 그득하기 때문이다. 시각예술의 역사를 순회
[기획] 어느 시민 혁명에 관한 시네마틱 마니페스토 – 장병원 평론가의 다큐멘터리로서의 <란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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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씨네21>은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그날을 다큐멘터리로 옮기고 있는 이명세 감독을 만났다. 그는 “내란성 불면”에 시달리며 시민들이 보내온 푸티지를 쌓고 엮는 중이라고 했다. 잇단 재판을 지켜보며 마지막 장면을 고심하던 그가 넉달 후 영화를 완성했다.
4월22일 개봉하는 <란 12.3>은 극장의 막을 열어젖히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저들의 엔딩크레딧을 열거하는 피날레까지 내달리는 한편의 소동극이자 치열한 르포르타주다. 내란 수괴와 그 가담자들을 비췄다가, 국회 앞 소용돌이에 감겼다가, 반짝이는 응원 봉 사이를 유영한다. 무성영화를 연상케 하는 교향곡이 흐르고, 애니메이션으로 참상을 에두른다.그 문법을 숙고한 장병원 영화평론가 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빛과 소리로 빚은 시청각 오페라’로서의 <란 12.3>을 사유했다. 이명세 스타일의 오디오 비주얼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현대사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넓혔는지 탐
[기획] 영화가 12.3을 기억하는 법 – 이명세 감독의 비상계엄 다큐멘터리 <란 12.3> 비평과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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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2일 EP 《애증》을 발매했다. 어떻게 만들어진 음반인가.
애증을 주제로 삼은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큰 그림을 먼저 그렸다. 이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애’(愛)를 담은 <게임 오버 ?>, ‘증’(憎)을 담은 <1111>을 실었다. 리스너들이 지금 자기 심경에 맞는 곡을 찾아 듣거나 두곡을 반복해 들으면 계획했던 애증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감응한 듯한 반응을 많이 건네 듣는다. 무한히 반복되는 애증을 받아들이되, 미움 받을 용기와 사랑할 용기를 함께 쟁취하겠다는 감상을 전해 들었다.
- 그간 발매한 EP는 제목에 ‘비행’, ‘집’ 등 시각화가 분명한 단어가 들어갔다. 이에 반해 ‘애증’은 무형의 감정이라 앨범 구상부터 애를 먹었을 것 같은데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택했다.
오히려 부담이 적었다. 애증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삶에 녹아든 감정이지 않나. 커버의 경우 상처 분장을 얼굴
[인터뷰] 한로로가 말하는 노래와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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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더하기 영, 영 플러스 영? 한로로에 따르면 <0+0>은 [영영]이라고 읽는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만나(0+0) 영원(∞)을 꿈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노래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라는 구절이 특히 큰 호응을 얻었다. <사랑하게 될 거야>와 더불어 한로로의 차트 역주행 및 커버 열풍을 이끈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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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소설. <자몽살구클럽>을 냈다. 동명의 EP 앨범과 연결된 작품이며, 죽음을 고민하는 네명의 여중생(소하, 태수, 유민, 보현)이 서로를 살리기 위한 비밀 모임을 결성해 여름방학 전까지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은 자몽살구클럽에 입단하는 소하의 시점이지만, EP 《자몽살구클럽》엔 보다 다양한 캐릭터의 시점을 담은 곡이 수록됐다. 출간 7개월 만에 교보문고 2월 3주차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가수가 집필한 소설이 종합 1위를 차지한 것은 2008년(타블로, <당신의 조각들&g
[기획] 0부터 5까지, 숫자로 알아가는 한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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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로로를 이야기한다. SNS에선 한로로의 가사를 두고 저마다의 분석을 이어가고, 한로로가 추천하는 콘텐츠의 목록은 Z세대의 척도로 인용된다. 한로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로부터 건네 듣기만 했던 ‘낭만’의 노스탤지어를 문화의 일종으로 2020년대에 복권해냈다. 음악으로, 그리고 그의 언어로.
화제의 한가운데에서, 한로로가 신보 《애증》을 출시했다. 한로로는 이 앨범과 자신의 음악 세계(혹은 언어 세계)를 돌아보며 사랑의 전이, 평화의 필요, 고통의 소멸을 강조했다. 혼란의 시대, 누구나 절감하는 보편적 가치를 특수한 언어로 옮겨 노래하는 이를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른다. 이 시대 청춘들이 망설이지 않고 ‘시인’이라 호명하는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와 <씨네21>이 만났다. 지난 4년간 한로로를 구성한 여섯개의 숫자와 그가 세상과 나누려는 언어의 진의를 전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한로로의 지난 4년 돌아보기와 한로로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해석의 장에서 음악으로 유희하다, 한로로가 말하는 노래와 노랫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