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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상영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 활동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카테고리가 있다면 바로 예술가라는 점이다. 이들은 글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우리 일상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들이다. 이런 이들이 지난 3월 말 SNS 엑스(X)에 자신들의 예술활동이 제도, 즉 예술활동증명을 받는 데 어려웠다고 밝히자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이들의 창작이 예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의구심부터 예술활동증명을 받는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경험담이 X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패담이 많이 들려온 건, 실제로 예술활동증명 탈락률이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손솔 진보당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에는 예술활동증명 신청자의 53%가 자격을 얻지 못했고, 2024년엔 실패율이 68%에 달했으며, 2025년에는 58%를 기록했다.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예술활동증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측은 손솔 의원측에 예술활동증명 불인정에 이
[특집] 예술활동증명,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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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예술활동증명이 완료되었습니다.” 한통의 문자를 받기까지 이처럼 오랜 기간이 걸릴 줄 몰랐다고 예술가들은 말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소설가 박상영은 지난 3월22일 자신의 엑스(X)에 예술활동증명을 받기까지 지난했던 과정을 웃기지만 슬픈 어조로 털어놓았다. “네덜란드 댐 막는 소년처럼 이걸 고치라 하면 이걸 틀어막고, 저걸 내놔라 하면 또 그걸 틀어막았다. 나중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오기가 생겨서 할 수 있는 모든 증빙을 다 했다.” 뮤지션이자 영화감독인 이랑 감독도 4월9일 자신의 X에 “2017~25년까지 되다가 2026년부터 도무지 등록 안된다”라면서 두 번째로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3월에 시작된 예술활동증명에 대한 논란이 4월이 넘어서도 지속되는 사이 현실 속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예술활동증명을 반려당한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활동증명TF를 발족하였고, 손솔 진보당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은 4월 중으로 국
[특집] 예술활동증명,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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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감독’의 레퍼런스를 찾아서
감독 권익 보호에 힘쓰는 한국영화감독조합, 영화계 내 다양한 직군을 포괄하는 여성영화인모임과는 구별되는 여성감독네트워크의 발단에는 한명의 감독과 그에게 바통을 건네받은 다섯 감독이 있었다.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불안정한 여성감독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집단”을 세우는 게 목적이었다. 그 시작을 기억하는 박소현 감독이 말문을 뗐다.
“2010년대 초에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여성감독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봤지만, 지속되지는 못했다. 2023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이숙경 감독님이 여성감독들이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다.”
그 뜻에 공감한 초동 멤버가 강유가람, 박소현, 유은정, 유혜민, 허지예 감독. 그들은 2023년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 중 네트워크 결성에 관한 수요 조사를 펼쳐 70명가량의 가입 의사를 확인했다. “섬처럼 작업하고 있는” 2030세대의 관심이 특히 높았다.
[기획] 솔직하게, 내밀하게, 친근하게 - 여성감독네트워크(W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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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은인> <세계의 주인> <양양> <홍이> <3학년 2학기>…. 지난해 개봉한 이 영화들에는 여성이 연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감독들은 모두 여성감독네트워크(Women Directors’ Network, WDN) 회원이다. 나이, 경력, 장르는 달라도 여성으로서 영화를 만든다는 정체성 하나로 손을 맞잡은 인원이 어느덧 218명에 달한다. 2023년 첫 회동 이래 매해 10명이 넘는 운영진이 끈끈한 거미줄을 짜낸 결과다. 짧아도 두터운 여성감독네트워크의 역사를 <씨네21>에 기록하기 위해 초기 운영진인 박소현, 부지영, 유혜민 감독과 현 운영진인 이채민, 한세하 감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이어지는 글에서 전현직 운영진 5인 감독이 말하는 여성감독네트워크와 단편 애니메이션 <재민이>의 짧은 리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우리에겐 우리가 필요해! - 전현직 운영진이 말하는 여성감독네트워크(WDN)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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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드의 음성을 처음 들은 후 바로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적신월사가 인터넷에 공개한 짧은 발췌본에서 힌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절박한 열망이 마음속에서 일었다. 가장 먼저 힌드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가 여전히 애도 상태에 있었던 터라 과정이 쉽진 않았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좋은 대화가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믿는다. 힌드의 어머니가 매우 큰 용기를 내줬다. 그는 대단한 여성이자 작품의 가장 큰 지지자다. 당시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체를 내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당부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힌드 말고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가자 지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영화가 책임 규명과 정의 실현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면, 부디 끝까지 작업을 포기하지 말아달라.”
- 그다음 적신월사에 연락했나.
이스라엘에 의해 사망한 구호 요원의 숫자는 집계조차 어렵다. 이들은 너무나 혹독한 대가를 치렀고 많은
[인터뷰] 픽션보다 재연에 가까운 - <힌드의 목소리>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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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711만여명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사망했다. 5500명 이상의 민간인이 2026년 이란 시위와 미국-이란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민간인 7만5천여명의 삶을 앗아갔다. 건조한 통계로 맞이하는 죽음. 그 숫자가 기하급수적일수록 타인의 고통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비극 앞에서 예술은 어떻게 목소리를 드높일까. 죽은 자와 산 자, 혹은 살리려는 자와 살아남은 자 중에서 누구를 위무하려 들까. 끊이지 않는 전쟁 속에 전 인류가 최전선에 서 있는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재현한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가자 지구의 한 소녀를 살리려 한다.
비극에 응답하는 영화
2024년 1월29일.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적신월사로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일가족이 탄 자동차가 가자 지구에서 피격을 받았고,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제보였다. 콜센터 직원 오마르(모타즈 말히스)는 즉시 전화를 걸고, 라얀이라
[기획] 영화 바깥의 현실, 영화 내부의 허구, 카우테르 벤 하니아의 <힌드의 목소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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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그리고 2026 아카데미 특별전까지. <힌드의 목소리>는 지구의 안녕을 염려하는 시네필들에게 관람 의무작이 된 지 오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제시 버클리 등 해외 영화인들이 자비로 상영회를 연 데 이어 국내에서도 배우 소지섭, 배두나, 이주영 등이 ‘제 목소리를 보탭니다’ 캠페인을 통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개봉 전부터 이토록 뜨거운 지지와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힘은 어디에 있을까. 4월15일 정식 개봉하는 <힌드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또한 영화를 연출한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이 지난 1월 <씨네21>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가 직접 전하는 연출론은 <힌드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하니아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힌드의 목소리> 리뷰와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목소리를 보탭니다, <힌드의 목소리> 리뷰와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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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한국인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직격한 임필성 감독의 드라마 제목이다. 영화 <마담 뺑덕>(2014), <인류멸망보고서>(2012), <헨젤과 그레텔>(2007), <남극일기>(2005) 등으로 영화 팬에게 익숙한 감독인 그는 “영화광의 DNA를 쏟아부으며” 첫 드라마를 찍었다. 19년 만에 방송드라마에 복귀한 배우 하정우와 더불어 임수정, 김준한, 정수정, 심은경이 주연으로, 김남길, 박병은, 주지훈이 카메오로 나선 그야말로 호화로운 군상극. 각양각색의 인물이 저마다의 욕망으로 전력 질주하는 이 이야기의 끝엔 무엇이 있을지, 캐스팅 비하인드부터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까지 짚었다.
- 첫 드라마 연출작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부동산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주택청약을 위해 아이를 입양하는 단편 <보금자리>(2017)에서부터 세속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인터뷰] “영혼까지 털어서 캐스팅했다” -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임필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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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정순(염혜란)에겐 매년 돌아오는 제주도의 봄이 버겁다. 8살 이전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바람이 살랑이고 꽃잎이 날릴 때마다 의식을 잃는다. 그 봄날, 정순의 아들 영옥(신우빈)은 ‘민종’ 같은 세련된 이름으로 개명하고 싶다. 서울에서 전학 온 경태(박지빈)가 휘두르는 권력에 부당한 줄 알면서도 매혹되고, 모범생 친구 민수(최준우)는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진다. <내 이름은>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세대를 거듭해 통과해온 폭력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중 영화가 가장 공들여 들여다보는 비극은 제주 4·3 사건(이하 4·3)이다. 50년이 넘도록 은폐되기 바빴고, 여전히 이름도 진실 규명도 부재한 이 비극이 ‘대중영화’로 처음 다뤄지는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시민들과 함께 상처 극복의 뜻을 모아 <내 이름은>을 만들었다. 그의 곁엔 염혜란을 위시한 기라성 같은 한국의 배우들, 그리고 이 작품의 공동 주연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신예 신우빈이 함께했다.
[인터뷰] 4·3의 이름들을 찾아서 - <내 이름은> 정지영 감독, 배우 신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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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흉한 소문이 감도는 저수지 살목지에서 정체 모를 형체가 찍힌 것을 발견한 로드뷰 촬영팀은 재촬영으로 그곳에 발이 묶인다. 기태(이종원)는 늦은 밤 촬영 장비가 필요해진 수인(김혜윤)에게 도움을 주러 살목지로 향하던 중 행방이 묘연했던 선배 교식(김준한)이 저수지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2017년 모델로 데뷔해 웹드라마 <고, 백 다이어리>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 이종원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금수저>, <밤에 피는 꽃> 등에서 안정적 연기로 존재감을 알렸다. 지난 4월8일 개봉한 공포영화 <살목지>에서 기태 역을 맡아 첫 영화의 주연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이종원을 만나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에 대해 들었다.
- 로맨틱코미디, 메디컬드라마, 사극, 청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 경험을 쌓아왔다. 첫 영화 출연작으로 공포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장르에서 연기를 해온 건
[인터뷰] 어떤 장르여도, 어떤 사랑 이야기여도 좋다 - <살목지> 배우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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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과 번아웃의 시대에 <마녀배달부 키키>가 재개봉한다. 마녀는 13살이 되면 수습 마녀로 거듭나 1년 동안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 동족이 없는 타지에서 생활하며 수행을 쌓는 것이 마녀들의 규칙이다. 이제 막 13살이 된 키키는 아주 맑은 날 밤, 보름달 아래서 빗자루를 타고 수련을 떠나고자 한다. 하지만 웬걸, 천둥번개와 함께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수행 과정도 녹록지 않다. 언젠가부터 하늘을 날지 못하고 검은 고양이 지지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늘 습관처럼 해오던 일인데. 당연하게 여겨온 일들인데. 삶의 의욕이 소진된 마녀는 난생처음 무기력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군분투의 시간을 아이맥스의 거대 화면으로 끄집어낸 이가 있으니, 바로 오쿠이 아쓰시 촬영감독이다.
현재 스튜디오 지브리 집행임원이자 영상부 부장, 이그제큐티브 이미징 디렉터인 오쿠이 아쓰시 촬영감독은 1982년 아사히 프로덕션에 입사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극
[STAFF] 필름이 간직한 시간을 읽는 일 - <마녀배달부 키키> 4K 리마스터링 오쿠이 아쓰시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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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가 실사화로 새롭게 탄생했다. 태평양의 폴리네시아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원작을 실사화하면서 토머스 카일 감독이 가장 공들인 것은 섬 주민들의 문화와 삶, 생활양식 등을 진실성 있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공감을 일으키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무작정 감정적 연결로 다가서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진짜 현존하는 세계인 것처럼 핍진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디즈니에 의해 재해석된 섬 문화가 아니라 진짜 그곳에 살아 있는 것들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우리가 이 문화권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짜 공감을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은 실제 스태프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의상, 미술, 안무 등 팀마다 실제 해당 문화권을 알고 있는 전문가를 섭외하여 문화 정확성 담당자를 두었다. 단순히 현지 느낌을 참고한 수준이 아니라 제작 구조 자체를 재설계한 것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파트뿐만 아니라 세부 디테일에도 일일이 전문가를 모았다. “별을 이용한 천체
[인터뷰]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 - <모아나> 토머스 카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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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모스크바를 떠나 브랸스크로 돌아가는 밤, 젊은 검사 코르녜프의 맞은편 자리에 한 노인이 앉는다.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로 불리는 외다리 퇴역 군인은 한때 레닌에게 직접 탄원하러 갔던 자랑스러운 무용담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코르녜프가 스탈린의 대숙청 아래 억울하게 투옥된 원로 검사 절차 끝의 낙원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스테프냐크의 사연을 품고 모스크바로 향하는 참이니 공교로운 만남이다. 노인의 격없는 수다스러움은 중앙정부의 거대 절차를 마주할 신임 검사의 긴장을 언뜻 잠재우는 것처럼 보인다. 열차 객실을 배경으로 영화를 순식간에 농민극의 무대로 바꿔놓는 이 장면엔 전환의 유희만큼 쓸쓸한 전조가 짙다. 긴 클로즈업을 목격하는 동안 발생하는 기묘한 지각 덕분이다. 퇴역 군인의 얼굴은 방금 전까지 교도소 독방에서 고문의 흔적을 온몸에 새긴 채 코르녜프와 마주 앉아 있던 원로 검사 스테프냐크와 같다. 실제로 배우 알렉산드르 필리펜코가 두 역할을 모두 연기했고 세르게이 로즈니차 감독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절차 끝의 낙원, <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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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모니’에서 처음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몽블랑’이 구름 위로 솟아 있었다. 4807m. 유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나는 그 산 아래에서 스키 부츠의 버클을 조이고 있었다. 목적지는 ‘마터호른’이 솟아 있는 스위스의 ‘체어마트’. 알프스산맥에 자리한 두 도시의 직선거리는 70km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건너야 할 설원은 훨씬 더 길고 험했다. 이 루트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높은 길’이라는 뜻의 ‘오트루트’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 투어링 루트일 것이다. 우리는 다섯명이 한팀이었고, 프랑스인 가이드를 하나 두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자크였다. 처음 만났을 때 자크는 특별한 인상이라 할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중년 아저씨였다. 그러나 스키를 타고 활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다섯살 때부터 알프스에서 스키를 탔다는 그는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무색하게 눈 위를 날아다녔다. 수십년을 눈과 함께 살아온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보였다. 직업이 스키 가이드라
[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높고 오랜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