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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비채 펴냄
홋카이도의 소도시는 지명부터가 일본의 다른 지역과 다르다. 겨울이 유난히 긴 최북단의 홋카이도의 지명에는 일본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어의 울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한자로 쓴 지명조차 한자의 원래 뜻과는 관계없이 음이나 훈을 빌린 것이라 낯설게 읽는다. 호로카나이, 오토이넷푸, 도마코마이, 시무캇푸 같은 지명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홋카이도에서 생활한 적 있는 게이코는 그런 지명마저도 그리워한다. 급여가 몇분의 일 수준으로 깎이는데도 게이코가 홋카이도의 안치나이 마을에 계약직 우편배달부 일을 구하고 이사한 이유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게이코의 나날을 묘사한다. 속도가 느린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눈을 뗄 수가 없어 계속 읽게 된다. 홋카이도의 자연에 대한 묘사, 그 풍경을 통해 드러나는 게이코의 내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를 쓴 마쓰이에 마사시는 1
씨네21 추천도서 - <가라앉는 프랜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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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프랜시스> -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비채 펴냄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 탐낌 지음 우디 옮김 엘릭시르 펴냄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 윤혜정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 마틴 푸크너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말뚝들> - 김홍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 - 최재천 지음 창비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 그 책은 오래 내 마음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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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이 첫 산문집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을 냈다. ‘열심히’와 ‘대충’이 어떻게 한 문장에 있는지 의아하다가도 윤덕원의 가사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납득하고 만다. 그의 가사를 흠모해 이게 내가 쓴 글이면 좋겠다고 욕심내기도 했던지라 윤덕원의 ‘쓰기'의 과정이 궁금했다. 브로콜리너마저 4집 수록곡이자 이번 책에도 실린 노래 <되고 싶었어요>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완벽한 노래를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무엇도 남기지 않았어야 해요.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그래도 해야 해요.” 정말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은 할 수도 전할 수도 없다면서, 그럼에도 말해지는 가사들. 체념과 염원이 제자리에서 조응하는 윤덕원의 문장을 탐구해봤다.
- <씨네21>에서 연재됐던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 만’을 챙겨 읽었던 이에게는 익숙한 글들이다. 산문집으로 묶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 2년에 걸쳐
[trans x cross] 그 모든 거짓말 같던 진짜, 브로콜리너마저 윤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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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14일, 빔 벤더스가 80살 생일을 맞았다. 독일-프랑스 합동 방송인 <아르테>는 그의 생일을 잊지 않고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특별 편성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무궁동의 빔 벤더스>를 제작해 방영했다. 다큐멘터리 속 빔 벤더스는 베를린 국립 도서관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 속 천사들이 거닐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의 속삭임이 가득하던 그 장소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카메라로 사람들과 풍경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던 기억을 떠올린다. 카메라로 세상을 응시하던 벤더스의 ‘관찰자 시점’이 이미 8, 9살 무렵에 시작된 것이다. <무궁동의 빔 벤더스>는 특히 사진가로서의 벤더스에 주목한다.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외과의사였던 아버지의 꿈이 사진 작가였음을 고백하며 자신이 그 길을 따라갔음을 고백한다.
빔 벤더스의 80살 생일은 독일에서도 큰 행사였다.
[베를린] 길 위의 예술가를 기리다, 빔 벤더스, 80살 생일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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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셰프>는 프랑스 최고 요리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연지영(임윤아)이 사학자인 아버지가 부탁한 고서 <망운록>을 구해 귀국하다가 조선 시대로 시간 이동을 하면서 펼쳐지는 가상 역사극이다. 지영이 떨어진 시대는 하필 폭군으로 기록된 연희군 시대다. 지영은 미식가로 소문난 연희군, 이헌(이채민)과 악연으로 얽혔다가 왕의 대령숙수가 되어 매일 요리를 하게 된다. 수라간을 배경으로 요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드라마 <대장금> 의 2025년 버전 같다. 또한 경연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 설정은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과 같은 요리 서바이벌 예능을 떠올리게도 한다. 무엇보다 지영과 이헌의 로맨스가 이 드라마에 ‘감칠맛’을 더한다. 그러나 <폭군의 셰프> 의 결정적 매력은 요리를 정치와 연결 지은 것에 있다. “요리가 곧 정치다”라는 연희군의 말처럼, 드라마에서 요리는 흥미로운 볼거리나 로맨스의 매개 이상의 의미가
[오수경의 TVIEW] 폭군의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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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살인클럽>
넷플릭스 | 연출 크리스 콜럼버스/ 출연 헬렌 미렌, 실리아 임리, 나오미 애키, 피어스 브로스넌, 벤 킹슬리, 조너선 프라이스, 데이비드 테넌트 외/공개 8월28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올스타급 배우진이 말아주는 동묘 패션풍의 클래식한 멋
간호사 조이스(실리아 임리)는 딸의 권유로 은퇴한 엘리트가 사는 요양원 쿠퍼스 체이스에 입주한다. 그녀는 입주한 당일 추리를 즐기는 동호회 목요일 살인 클럽을 만난다. 엘리자베스(헬렌 미렌), 론(피어스 브로스넌), 이브라힘(벤 킹슬리)이 클럽의 회원 이다. 넷은 쿠퍼스 체이스의 경영권을 둘러싼 살인 사건을 접하고 요양원을 지키기 위해서 도나 경위 (나오미 애키)와 해결에 나선다. <목요일 살인클럽> 은 리처드 오스먼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나홀로 집에> <바이센테니얼 맨> 등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거장 크리스 콜럼버스가 연출했다. 안정적인 연출력이
[OTT리뷰] <목요일 살인클럽> <의문의 발신자: 고등학교 캣피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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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평론가로 등단한 이래 개봉한 미국 대형 스튜디오 영화 중 최고가 아닐까?” 며칠 전 <인디와이어>의 비평가 데이비드 얼리크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감상한후 남긴 트윗이 화제를 모았다. 동시대 미국영화의 가장 중요한 이름 중 하나인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돌아온다. 어김없이 폴 토머스 앤더슨이 메가폰을 잡은 동시에 각본을 썼고, 그의 장편영화 중엔 처음으로 촬영감독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그와 수차례 협업한 조니 그린우드 역시 또 한번 음악감독으로 앤더슨호에 승선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관심을 모으는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주연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기 때문이다. 앤더슨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디캐프리오는 자유를 외치는 혁명가 밥 퍼거슨으로 분한다. 모종의 사건으로 삶이 파괴된 밥의 유일한 희망은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뿐. 하지만 16년 전 숙적 스티븐 J. 록조(숀 펜) 가
[coming soon]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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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5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2026년 정부의 영화 관련 예산이 1498억원으로 올해 대비 669억원(80.8%)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여러 사업 예산이 올해 대비 증액, 복원됐다. 영화 기획개발지원 사업에 80억원(33억원 증액), 올해 신설된 중예산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200억 원(100억원 증액), 국내외 영화제 육성지원 사업에 48억원(15억원 증액)이 투입된다. 올해 국회 추가경정예산에서 통과되지 못했던 차기작 기획개발비 사업은 2023년 연말 이후 폐지됐 다가 17억원 규모로 복원됐다. 독립·예술영화의 관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상영지원 사업 (18억원)이 신설되기도 했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독립·예술영화의 상영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 다. 또한 2026년 완공 예정인 부산기장촬영소 내의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 제작·운영에 164억원, 인공지능 기반 영화제작에 22억원 규모의 신
[국내뉴스] 2026년 정부의 영화 예산 “2019년 이후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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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수렴하고 기억은 발산한다. 기록은 기록자가 택한 형태로 고정되기 마련이다. 이때 기록의 대상과 내용만큼 중요한 건 기록이 새겨질 방식이다. 종이에 쓰는 것부터 시작하여 영상으로 남길 수도 있고, 때론 공간이 직접 기록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기록이 기록자의 입장을 진하게 반영한다면, 기억은 받아들이는 쪽의 태도에 따라 매 순간 달리 발현된다. 우리는 기억이 과거의 것이라 여기지만 실은 기억이란 언제나 현재형이다. 기억을 ‘한다’는 건 과거를 지금 이 순간과 연결시켜 대화를 나눌 초대장을 보내는 것과 같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영화의 역사는(정확히는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기록과 기억 사이를 오간 궤적의 산물이다. 다큐멘터리사(史)를 논할 때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의 첫손가락은 주저 없이 프레더릭 와이즈먼이다. 이유야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차고 넘치지만 무엇보다 카메라라는 영화 장치로 현실의 몽타주를 담아낸 작가적 일관성 면에서 독보적이다. 그리하여 1967년부터 지금까지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기록,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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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 강박증, 불안증, 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 그러니까 온갖 어둠을 끌어안고 광적으로 폭발하는 팬지(메리앤 장밥티스트)는 <내 말 좀 들어줘>가 골똘히 주목하는 한 세계다. 주변을 고통과 피로로 물들이면서도 수치심보다 자기 연민에 먼저 반응하는 이 어둠의 전파자는 마이크 리의 전작들에서 자주 접한 인물형이기도 하다. <비밀과 거짓말>에서 내내 애정결핍을 호소하던 엄마 신시아(브렌다 블레신)나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외로움을 어쩌지 못해 불청객이 되어버린 메리(레슬리 맨빌)와 켄(피터 와이트)처럼 마이크 리의 영화는 감정의 민낯을 보이는 방식으로 소통을 갈구하는 얼굴들의 가련한 동시에 뻔뻔한, 거부하기도 포용하기도 어려운 초상을 주시해왔다. 마이크 리가 인간사에서 길어낸, 쉽게 극복되거나 구해질 수 없는 그 끈질긴 그늘은 워낙 예리하고 강렬하게 빚어져서 그의 영화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얼룩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이 과도한 어둠을 그릴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한 걸음의 변화를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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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헷갈린다. 과잉된 신체 노출과 자극적인 성적 대상화, 남성적 판타지의 실현. 많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저항하며 싸워온 것들을 도리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여자들은 진정 내 편일까. 과연 자매애나 연대의식 같은 단어로 우리 모두가 나란히, 동등하게 묶일 수 있을까. <애마> 속 신주애(방효린)는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1980년대, 스포츠, 섹스, 스크린 등 ‘3S 정책’으로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돌리려던 정부 전략에 따라 극장가는 본격적으로 성애영화를 쏟아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위로 네명의 오빠들의 팬티를 빨던 신주애는 생각했다. 오직 연기만이 자신의 피난처가 될 거라고. 지긋지긋한 감옥을 빠져나갈 비상구는 그곳이 유일하다고. 으레 야망을 품은 인물을 다루는 작품은 주인공의 ‘그럴 수밖에 없는 가여운 사정’에 몰두하지만 독특하게도 <애마>는 그렇지 않다. 주애의 선택을 처절하고 애틋하게 그리기보다 낯서리만치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이자연의 해상도를 높이면] 카메라 앞에 헐벗은 저 여자는 내 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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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몸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바로 약국을 찾았고, 소화제 한알을 삼키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어글리 시스터>(2025)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 <기생충>(2019)의 타이틀이 떠올랐다. 알레고리로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기생충’이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하얗고 기다란 생명체, 이 물질에 대해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있다. 원치 않는 상태에서 관객들의 내부로 그것을 주입시키려는 것 같다. 그 일그러진 형체, 어쩌면 이 물체는 성공 혹은 해피 엔딩을 향한 모티프를 닮았다. 대다수 영화에서 형이상학적으로 드러내는 주제를 이 작품은 몹시 물리적으로 다루고 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와 닮았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잔혹 동화의 공포 버전이라고 전했다. 모두의 의견에 동의하며 <어글리 시스터>가 전달하는 끔찍함의 강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발과 농담의 경계를 오
[비평] 심리적인 쾌감의 부재 - 이지현 평론가의 <어글리 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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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후 복길의 K팝 강연도 있사오니 청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메일을 확인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강연이라뇨? 분명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요, 그런 애매함을 설명하느니 강연(의 일종…)으로 얼버무리는 게 나았겠죠. 그런데 ‘행사 후’는 뭔가요? 저는 제가 참여하는 것이 행사 그 자체인 줄 알았는데요? 왜 축하공연처럼 알리는 거죠? 아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이름 뒤에 작가나 선생님 같은 직함이 붙어 있는데, 전 그냥 ‘복길’인 거예요? “행사 후 복길의 K팝 강연”이라니… 너무 허접해 보이고… 또 너무 특별해 보여요….
“어머, 그런데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 거죠? 저희 직원이 설명했는데 저는 잘 와닿지 않아서요.” 행사 장소에 도착하니 나를 섭외한 담당자는 어김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벌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익숙하게 나를 알 리 없는 책임자에게 나도 모르는 나의 정체를 설명하고, 돌아오는 그의 뜨뜻미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너 나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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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폭발적인 기세와 화려한 애니메이팅 기술에는 웹계 애니메이터(이하 웹계)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근래 가장 인기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여겨지는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 <체인소 맨>에 직접적인 인적 기반과 애니메이팅 스타일을 다지게 했고 <귀멸의 칼날> 시리즈와 같은 작품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웹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캐릭터의 ‘움직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으로, 최대한 화려한 애니메이팅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셀애니메이션이 아닌 디지털 작업을 중심으로 애프터 이펙트, 포토숍, 블렌더 등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화려한 시각적 움직임과 이펙트를 구현한다. 웹계의 시조로 알려져 있고 <천원돌파 그렌라간>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애니메이터 료치모는 웹계의 본질을 “애니메이션이 너무 좋아서, 그 움직임의 표현만을 위해 지금까지의 방식을
[특집] 더 화려하게, 더 개성 있게 - 웹계 애니메이터가 현대 애니메이션에 준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