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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수행의 시간, 조현나 기자의 <그녀가 돌아온 날>
조현나 2026-06-10

<도망친 여자>에서 우진(김새벽)은 감희(김민희)에게 진저리쳐진다는 표정으로 불만을 표출한다. 영화감독인 남편이 본인 연출작을 두고 인터뷰 때마다 설명을 반복하는 게 징그럽다는 것이다. “같은 말을 계속하는데 어떻게 진심일 수가 있겠어.” 종종 인터뷰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곱씹게 되는 말이었다. 가타부타 설명 없이 곧바로 기자와 정수(송선미)의 맞대면으로 시작하는 <그녀가 돌아온 날>은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두 인물의 대화 신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우진에 따르면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인터뷰라는 형식 안에서, 지금 자신이 너무 말이 많지 않느냐고 검열하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한 배우의 입장을 고려해보게 된다.

있는 그대로 보기의 가능성

<그녀가 돌아온 냘>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독일식 레스토랑이라는 설명이 붙긴 하지만 이전의 로드무비(<밤의 해변에서 혼자> <당신얼굴 앞에서> <여행자의 필요> 등)나 배경이 주요했던 <> <수유천> 등처럼 장소성이 강조되진 않는다. 바깥 풍경을 보여주는 큰 창마저 정수의 요청에 따라 가려지면서 카메라가 비춘 식당은 다른 곳으로 대체되어도 모를 만큼 간결해진다. 뒤통수, 옆모습만 드러낸 채 기자의 시선은 눈앞의 배우에게 고정된다.

인터뷰에선 대화가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수가 기자들과 나눈 인터뷰의 대화는 정석의 틀을 벗어난다. 기자들은 신작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하되 그간의 공백, 작품 외적인 정수의 삶까지 알고 싶어 하는 모양새다. 때로 질문은 배우에서 기자에게로 향하는데 김소희 평론가가 짚었듯 마치 상담을 원하는 내담자처럼(<씨네21> 1558호) 기자들은 개인적인 고민까지 털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작품에 관해 나눈 이야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서로 느슨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세 인터뷰 장면은 5막의 연기 수업을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감각하게 한다.

수업에서도 여전히 기자는 질문하고 배우는 답한다. 그러나 세 기자를 대변하는 준희(박미소)는 정수와 상호작용하기보다 대본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계적으로 외운 대사를 내뱉을 뿐이다. 공간은 더 단출해졌다. 무언가를 닦아내고 준비하던 식당에서와 같은 배경음이 부재한 고요하고 어둑한 실내는 <물안에서>를 연상시킬 만큼 저화질로 구현된다. 1~3막과 같이 창의 블라인드를 내린 채 5막은 더 극단적으로 정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수의 대본은 앞서 오간 대화를 압축한 형태이나 몇 가지 차이를 둔다. 정수가 해석이 넘쳐난다고 피력했던 것처럼 “좋았다”, “어렵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로 시작되는 기자들의 피상적인 평은 “나중에 글로서 대신하겠다”는 말로 유보된다. 대본 말미엔 “있는 그대로 보기”에 관한 조언이 길게 추가된다.

이 대본은 <그녀가 돌아온 날>의 트레일러를 연상시킨다. 세 인터뷰를 다중노출 이미지처럼 겹친 형태인데, 오진우 평론가는 그것이 “정수의 실체에 가장 가까울 것”이며 “홍상수 감독이 구현하고 싶은 한폭의 이미지일 것”이라 말한다(<씨네21> 1557호).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정수의 실체에 가까운 무언가라기보다 실체라고 제3자들이 예측한 결괏값에 불과할지 모른다. 기자들이 건네는 질문에는 정수에 관한 기억, 신작에서 구현된 이미지, 눈앞의 형체가 전부 중첩돼 있다. 어떤 대답이 나왔느냐에 관계없이 영화와 인터뷰를 통해 접한 정수는 그녀의 작은 부분에 다름없다. 기자들이 목격하지 못했을, 인터뷰를 마친 뒤 담배를 태우는 정수의 에너지가 한결 느슨하고 그만큼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고정된 프레임, 반복되는 풍경, 신작에 한정하지 않은 대화 등 대상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조건에서도 사운드와 이미지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은 트레일러처럼 정수라는 인물을 명확히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가 차용한 인터뷰라는 틀은 “있는 그대로 보기”의 실천이 아마도 영원히 불가할 것이라 재차 설파하는 장치가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선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일까’(<씨네21> 1557호). 오진우 평론가가 던진 이 질문을 정수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정수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각색을 감행하는 존재다. 정수는 한 기자에게 일부 답변을 제외해달라 전한다. 이 기사는 최종적으로 정수의 컨펌을 거쳐 노출될 것이다. 5막에선 직접 고른 문답에 정리된 자기 의견을 더한 대본을 작성한다. 인터뷰와 수업은 동일하게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그러나 끝나는 시간을 고지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인터뷰 도중 불시에 삽입된다면 5막의 극중극을 마무리 지으며 감독의 역할을 대변하는 것은 연기 선생이 아닌 정수다. 오직 정수만이 노출될 자신의 이미지를 다듬고 오늘 하루의 경험을 선별할 의지를 지닌다.

정수의 신작은 공개되지 않았고 인터뷰 기사 역시 발행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정수가 쓴 대본과 정수, 준희가 구현한 극중극만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완결된 형태의 작업물이라 할 만하다. 여러 평자가 언급했듯 블라인드를 내린 뒤 시작되는 인터뷰와 수업은 극장과 영화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5막의 연기 수업을 가장 영화에 가까운 결과물이라 칭해도 되지 않을까.

복귀의 장소

<도망친 여자>

<그녀가 돌아온 날>의 요소들은 어쩔 수 없이 감독의 전작을 연상하게 한다. 차이와 반복, 모방과 같이 홍상수의 세계를 설명할 때 으레 인용되는 모티프 역시 떠오른다. 그러나 김예솔비 평론가의 말대로 눈의 수난 혹은 눈의 종말(<씨네21> 1556호)이 도래한, 후반부로 갈수록 사운드마저 덜어낸 세계 속에 선 정수의 태도를 쉬이 놓칠 수 없다. 동수(김상경, <극장전>)의 내면을 대신한 내레이션이 현실에 하나의 레이어를 더했듯 정수의 대본 역시 현실에 또 하나의 막을 덧입히는 모양새다. 그 출발은 5막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들이 정수를 가늠하는 태도를 거울 삼아 정수 역시 그들의 삶의 형태를 짐작한다. 연극 한 회차를 마친 뒤 뒤편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인터뷰 자리마다 정수는 쉼을 동력 삼아 매끄럽게 대화의 물꼬를 튼다. 해석과 평가가 배제된 5막의 무대에선 눈앞의 것을 단 1초라도 그대로 바라보고 체험해야 한다고 재차 힘주어 말한다.

본 것. 보여지는 것. 말한 것. 말해지는 것. 이미지와 사운드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길 택할 것인가. 대본에 추가된 대사는 기자에게 닿지도, 발행될 기사에도 담기지 않을 말이다. 그럼에도 정수는 수행자의 태도로 대사를 반복한다.

<도망친 여자>와 <그녀가 돌아온 날>의 후반부를 나란히 놓고 대조해보자. 극장에서 정 선생(권해효)과 재회한 감희는 본인이 당신을 보러 여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여기 왜 왔냐”고 정 선생이 반문하자, 감희는 답변을 피하듯 자리를 뜬다. 극장 밖으로 나서던 감희는 돌연 결심한 듯 다시 극장으로 돌아온다. 상영관에 안착해 묵묵히 영화의 엔딩을 마주한다. 신작과 이혼, 복귀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토해낸 뒤 지친 얼굴이 된 감희는 기어이 연기 수업에 참여한다. 준희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쓰고 읽는 수행을 시작한다. 극장은 감희에게 도피처이자 현재의 감희가 과거와 완전히 단절했다는 변화를 대변한다. 한편 정수에게 연기 수업은 배우로서 복귀한 하루를 되새길 곳이다. 블라인드를 내려 빛을 차단한 이곳은 관념적 동굴 같기도, 극장 같기도 하다. 무(無)의 공간과 다름없는 이곳에서 정수는 자신을 바로 세운다. 도망치지 않고 결말을 마주하거나 본인이 구성한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서 각색된 하루를 재현한다. 그렇게 두 여자는 돌아왔다. 그 앵글에 충분히 머무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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