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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다큐멘터리 노동자의 시간
글·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촬영감독) 2026-06-11

일요일에 비행기를 탔다. 두바이를 거쳐 30시간을 날아 상파울루에 내렸다. 그곳도 일요일이었다. 시간이 접혔다 펴진 자리에 일요일이 두번 놓여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밟아보는 남미. 공항 바깥의 공기는 겨울을 향해 식어가는 가을의 결이었다. 한국은 지금 여름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인데. 시차에 더해 계절까지 반대라니, 뭔가 행성을 옮긴 것 같은 현기증이 스쳤다. 시내로 들어가는 차창 너머엔 높고 낮은 건물의 벽면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가 끊이지 않고 넘실댔다. 신호에 멈춰 서자 차창 옆으로 누군가의 손이 다가왔다. 물병, 껌, 작은 과자 봉지 같은 것들을 가득 들고 위태롭게 차도를 횡단하는 행상들. 머리 위로 헬리콥터 한대가 낮게 지나갔다. 코디네이터가 차창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부자는 헬기로 출퇴근해요. 헬기가 뉴욕 다음으로 많은 데가 여기예요.” 머리 위로 흐르는 삶과 발밑으로 흐르는 삶의 강한 대비. 그의 한탄이 이어졌다. 브라질 물가는 어지간한 선진국 뺨친다고. 그런데 임금은 그 뺨에 한참 못 미친다고. 물가상승률과는 반대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 불렸던 ‘룰라’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친다고. 브라질 노동자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질에 온 것은 어느 방송국의 특집 다큐멘터리 때문이었다. 일년에 한두번 하는 특집이니 작정하고 만드는 것일 텐데도 현장은 단출했다. 연출자, 나, 스태프 하나, 그리고 현지 코디네이터. 이럴 땐 모든 장비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 크로스 백을 가로질러 메고, 바퀴 달린 장비 가방을 끌고, 어깨엔 삼각대를 둘러멨다. 손대지 않던 사운드 녹음도 직접 챙기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다음날 촬영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가방은 무거웠고 어깨는 아팠다. 그래도 신이 났다. 평소엔 다른 누군가의 몫이던 일이 내 손에 들어오는 그 일당백의 감각. 그게 좋았다.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굴러먹어야 할 체질인가 보다.

영화판에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 부르는 짧은 시간대가 있다. 해가 막 떨어진 직후, 짐승의 윤곽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되지 않을 만큼의 빛이 겨우 남아 있는 잠깐. 세상의 모든 도시가 그 시간에 가장 단정한 얼굴을 내어준다. 하지만 그 얼굴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15분. 일정에 쫓기는 다큐 현장에서 그 시간을 잡자고 고집부리기는 사실 민망한 일이다. 그런데도 연출자와 코디네이터가 흔쾌히 배려해준 덕에 중요한 건물의 외관을 그 시간에 맞춰 찍을 수 있었다. 출장 내내 구름이 가득해 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마땅한 시간대 아래에서는 흐린 날씨도 그럴싸한 그림이 된다. 장비가 모자라고 사람이 모자란 다큐멘터리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란 ‘마땅한 시간대’밖에 없다. 자연이 잠시 내어주는 시간의 호의. 나는 그 호의가 다 흘러내리기 전에 종종걸음으로 카메라를 옮기고 서둘러 삼각대를 펼친다. 그리고 화면을 짧게 검토하고 다급하게 레코딩 버튼을 누른다. 그러는 동안 숨은 제대로 쉬는지조차 모르겠다.

촬영을 마치고 밤늦게 호텔로 돌아오면, 땀 흘려 일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안온함이 기다린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몸이 매트리스로 가라앉는 것만 같다. 어떤 밤은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지만, 어떤 밤은 애써 몸을 일으켜 연재 글의 초안을 쓴다. 책상 위엔 카메라가 비스듬히 놓여 있고 충전 중인 베터리가 이미 가득한데,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아이패드를 펼친다. 이럴 때면 ‘카페지뉴’ 생각이 간절해진다. 브라질 사람들이 작은 종이컵에 따라 마시며 하루의 고비를 넘는다는 진한 에스프레소. 나도 그 한잔으로 이곳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보고 싶지만 몇달 전부터 카페인을 끊은 터였다. 대신에 작고 동그란 치즈빵 한 봉지를 사들고 왔다. 팡 지 케이주. 그러고보니 ‘빵’은 포르투갈에서 온 말이다. 수면 트러블 때문에 카페인은 못 들이지만, 이 한입은 누구의 잠도 빼앗지 않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빵을 한입 베어 물고 자판을 잡는다. 하루 종일 카메라를 잡았던 그 손. 어느 작품이든 내 시간을 갈아넣는다. 그렇게 들인 시간이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마음을 쓴다. 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과 머리를 더 부지런히 굴린다. 글이 헐거우면 새벽까지 붙들고 고친다. 이 글만 해도 어느 단락은 상파울루의 호텔방에서 시차로 어지러운 채 시작되었고, 어느 문장은 늦은 밤의 서울에서 송고하기 직전에 마감되었다.

상파울루 일정을 마치고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겨가던 날, 코디네이터는 몇 시간이면 간다고 했다. 금방 갈 것처럼 말하더니 차로 일곱 시간이 걸렸다. 한국 땅에서는 끝에서 끝까지 가도 차지 않을 시간을 이곳에서는 짧다고 말한다. 땅이 넓으면 시간을 대하는 감각도 달라진다. 일곱 시간을 미끄러져 가는 동안 창밖 풍경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정말 흐르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 무렵에야 바다와 산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가 드러났다. 어느 산꼭대기에서 거대한 예수상이 양팔을 벌리고 세상 유명한 해변, ‘코파카바나’를 굽어보고 있는 게 멀리서 보였다. 다음날 예수상을 찍으러 갔지만 구름 속에 숨어 실루엣조차도 내어주지 않으셨다. 그다음날 갔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마땅한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단 이틀 동안 리우의 상징들을 가득 담아야 했으니까.

모든 촬영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다시 짐을 싼다. 빨래할 옷은 주머니에 따로 담고, 장비 가방은 한번 다 풀어 처음부터 다시 패킹한다. 짐을 때려담으며 쌓는 것 같지만 케이블은 엉키지 않게, 렌즈는 서로 부딪히지 않게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 들어앉아 있다. 짐의 무게는 출장 올 때와 똑같다. 다만 내 몸의 어딘가에 출장의 무게가 따로 들어차 있다. 어깨에, 손바닥에, 종아리에. 창밖으로 다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같은 도시의 다른 높이를 가르며. 올 때는 요일 하나를 덤으로 얻었지만, 돌아갈 때는 서른 시간의 비행 동안 가만히 앉아서 요일 하나를 더 내어줘야 한다. 지구가 돌아가는 이치가 이토록 공평하다. 장비 가방의 랫치를 딸깍딸깍 야무지게 채운다. 마지막으로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멘다. 온몸이 이 익숙한 무게를 받아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