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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뤼크 베송 감독의 신작 <도그맨>은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한마디로 문을 연다. 위 문장은 인간을 위로하는 존재로서의 신을 긍정하고 오랜 세월 인간과 공생 관계였던 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말이다. 이는 이제부터 펼쳐질 극의 방향성과 분위기를 암시하는 장치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에 따르면 <도그맨>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 첫째는 ‘불행’이고, 둘째는 그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을 구원해줄 누군가이다.
돌이켜보면 ‘불행’과 ‘구원자’의 서사는 40년간 20편에 달하는 작품을 연출한 뤼크 베송의 영화 세계에 자주 등장한 레퍼토리다. 아니 어쩌면 라마르틴의 저 한 문장만으로 이 감독의 여러 영화들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그랑 블루>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자크에게 신이 돌고래를 보낸 영화이고, 대표작인 <레옹&
[커버] 개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세계, ‘도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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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디디온 지음 /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펴냄
잊을 만하면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는 나라에 살지만 사회적 애도에 대해서는 유독 박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상실에 대해 슬픔에 잠기기보다는 그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서사로 치장하는 데 분주한 사람들이 애도를 금지된 것으로 만든다. 조앤 디디온의 <상실>은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이 기묘한 방식으로 잠시 멈추었던 나날에 대한 글이다. 원제 ‘The Year of Magical Thinking’(마술적 사고의 해)은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뜻한다. 애도가 끝나기까지의 필요한 마음의 시간을.
2003년 12월30일. 조앤 디디온 부부는 집중 치료실에 입원 중인 딸을 면회하고 귀가했다. 조앤 디디온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남편이 이상하다는 것을- 더는 살아 있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이 순간은 <상실>에서 몇번이고 반복해 등장하는데
[리뷰]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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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노백(미아 바시코프스카)은 엘리트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양 교사다. 환경과 건강을 염려하는 아이들에게 노백은 ‘의식적으로 먹기’라는 느린 식사법을 제안한다. 눈앞의 음식을 천천히 응시하면서 먹으면 먹는 속도가 줄고 자연스레 먹는 양도 줄게 된다. 음식을 적게 소비하면 환경을 지킬 수 있고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마음의 평화까지 얻게 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아이들의 심리적 부담을 부드럽게 헤아려주는 노백의 관심에 학생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고, 결국 믿음을 향해 완전히 잠기게 된다. 의식적 식사를 성공적으로 터득한 학생들은 노백의 지도에 따라 다음 단계로 향하며,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는 모노 다이어트를 거쳐 아예 음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금식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전한다. 이것은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다. 이미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아이들은 다음 과제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노백은 아이들에게 세상 어딘가에 먹지 않고 지내며 비밀스럽게 편견에 맞서고 있는 ‘
[리뷰] '클럽 제로', 웃을 수도 화낼 수도 없는 무기력한 부조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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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도래하는 순간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혼란한 와중에도 정직 테크의 경리 영미(이유영)의 짝사랑은 변함이 없다. 같은 회사 직원 도영(노재원)의 횡령을 눈감아주고 금액을 맞추기 위해 부업을 병행하면서도 말이다. 사촌 대신 큰어머니까지 부양하는 상황임에도 영미는 불평 한마디 없다. 1999년 12월31일, 영미가 큰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 도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20세기의 마지막 날 두 사람은 못다 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미는 도영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69세>를 연출한 임선애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미쓰 홍당무>의 미숙(공효진)을 상기시킬 만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영미의 행보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두 파트로 분리해도 무방할 만큼 영미의 삶은 2000년을 기점으로 극단적으로 변한다. 도영의 범죄를 묵인한 죄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앞에 도영의 부인 유진(임선
[리뷰] '세기말의 사랑', 이상하고 독특한 여성들의 다정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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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화(김금순)는 남편의 사고사 이후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갑작스럽게 정리 해고 대상이 된 그녀에게 악재가 겹친다. 윤화의 아들이자 집안 장손 세진(최우빈)이 그녀 몰래 전 재산을 비트코인에 투자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친척들은 어려워진 사정을 핑계대며 문중 땅을 빼앗으려 한다. 윤화의 남편 기일에 맞춰 등장인물 모두가 울산에 모이며 영화가 막을 올린다.
<울산의 별>은 여성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계급을 다루는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발생하는 사건의 원흉은 대부분 돈이다. 하지만 <울산의 별>은 전형적인 ‘사회고발 독립영화’의 틀 안에 머물지 않는다. 독특한 소재나 플롯 구조를 활용하는 건 아니다. 작품의 참신함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각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들간의 차이에 있다.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를 보며 인혁(도정환)이 내뱉는 불만이 대표적이다. “전근대적이야.” 젠더 고정관념은
[리뷰] '울산의 별', 우리는 모두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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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은수(크리스 필립스)가 양자들과 함께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는 이후 왕좌를 차지하지만 기주후 소호의 딸 달기(나란)를 후궁으로 맞이하면서 폭군이 되고 만다. 은수의 천륜을 저버린 만행과 폭정으로 하늘이 노한다. 곤륜산의 원시천존(천쿤)은 천벌이 내려진 인간들을 구할 봉신방을 강지아(황보)에게 주어 인간계로 보낸다. 사대 백후를 제거한 은수에게 마계가 동참하고, 마침내 신계와 인간계 그리고 마계의 전쟁이 일어난다.
<봉신연의: 조가풍운>은 명대 소설 <봉신연의>와 송대 소설 <무왕벌주평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은 역사적 사건에 도가 사상을 씌운 동양 판타지 장르물이지만 영화의 주제는 권력 앞에서 한없이 비정해지는 인간상에 가깝다. 이미 수차례 영상화됐지만 5400억원의 제작비와 8년의 제작 기간은 새로운 기대를 심어준다. 특히 영화 초반 기주성 대규모 전투 장면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상시킬 정도로 장대한 스케일을
[리뷰] '봉신연의: 조가풍운', 전투 신 하나만큼은 장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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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들이 다니는 시마다 고등학교는 폐교가 정해져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교실은 마냥 들뜬 분위기다. 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모교와 작별을 준비한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도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더 큰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지만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소녀들에게 첫 이별은 무척이나 시린 경험이다.<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로 국내에서 호평받은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네 사람의 시점이 교차하며 벚꽃이 만개한 졸업식 풍경이 스크린에 담긴다. 하지만 영화는 정교한 서사를 통해 각 학생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엔 관심이 없다.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장면 연출도 없다. 오히려 영화는 공간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한다. 카
[리뷰]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그 시절 우리의 작은 세상은 참으로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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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드레스에 금발 머리를 한 남자가 한밤중에 긴급 체포된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수십 마리의 개를 트럭에 태운 채 이동 중이었다. 경찰 앞에선 함구했으나 정신과 의사가 찾아와 사연을 묻자 그는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자신을 더글라스(케일럽 랜드리 존스)라고 소개한 남자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형과 아버지는 투견을 키우던 사육장에 오랜 기간 그를 방치했다. 결국 경찰에 구조됐지만 아버지가 쏜 총탄에 맞아 보조 장치 없인 걸을 수 없게 됐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그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 건 수백 마리의 개들이었다. 인간관계보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신뢰하는 영화의 태도는 뤼크 베송 감독의 전작 <그랑 블루>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도그맨>은 인간-동물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악을 처단하는 수호자로서 묘사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일부 비약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더글라스의 비극을 노래로 승화한 케일럽
[리뷰] '도그맨', 인간과의 관계엔 불행이, 동물과의 관계엔 구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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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펀드 매니지먼트 회사 나나이트 캐피털의 CEO로 일한 매트 터너(리암 니슨)는 곤란한 상황에 놓인다. 주식이 폭락해 고객이 떠나는 것을 막다가 가족과 사이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만에 아버지 노릇을 하고자 두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한다. 그때 발신제한으로 그의 좌석 아래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거기서 일어나는 순간 폭탄이 폭발한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온다. 매트는 좌석 아래의 폭탄을 확인한 다음에 차분히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지시에 따른다. 협박범은 그의 동료들을 차례대로 죽이더니 이윽고 매트에게 앤더스(매튜 모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와중에 경찰은 매트를 테러리스트로 오인해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레트리뷰션>은 한국에서도 <발신제한>(2021)으로 리메이크된 적 있는 스페인 스릴러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을 원작으로 한다. 공연 실황과 픽션을 오가는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의 감독 님로드 언털이
[리뷰] '레트리뷰션', 15년째 메아리치는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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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덕희(라미란)는 ‘손 대리’(공명)를 잊을 수 없다. 은행 직원이라고 사기 친 그에게 전화금융사기를 당해 전 재산 3200만원을 날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화재 사고로 집까지 잃어 어린 자식들과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는 좋은 인생 경험했다 치라는 박 형사(박병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손 대리 찾기에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 대리에게서 돈을 찾게 해줄 테니 중국 칭다오에 붙잡힌 자신을 구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공장 동료들과 큰일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중년 여성이 보이스 피싱 조직의 총책을 잡았다는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시민덕희>는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는 메시지에 집중하며 내달린다. 모든 잘못은 악질적인 범죄 조직과 안일하고 무심한 수사당국에 있다는 걸 대사로 분명히 전달한다. “추진력 좋은” 주인공을 빼닮은 영화이기도 하다. 덕희는 영화 시작 5분 만에 사건에 휘말린 뒤 일종의 여성 히어로로서 거침없이 활약하고 그의 이
[리뷰] '시민덕희', 걸림돌을 제거하고 추진력 있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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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골 윈즈>는 2001년 월드컵 예선에서 호주 국가대표에 31 대 0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패배해서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된 아메리칸사모아 국가대표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다. 때는 2011년 월드컵 예선을 한달 앞둔 시점이다. 오합지졸인 아메리칸사모아 국가대표의 소원은 A매치에서 한골이라도 득점하는 것이다. 그들 앞에 불같은 성격으로 물의를 연달아 일으킨 감독 토마스 론겐(마이클 패스벤더)이 등장한다. 토마스는 토속적인 정서와 여유가 가득한 아메리칸사모아 국가대표의 훈련장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의 문화에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한다. 〈넥스트 골 윈즈>는 <조조 래빗〉(2018)과 <토르> 시리즈로 단숨에 스타 감독이 된 타이카 와이티티의 신작이다. 언더도그의 반란을 담은 스포츠영화로 <드림>(2023) 등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 다만 전작과 달리 감독의 장기인 제4의 벽을 넘나드는 몬티 파이튼(코미디 그룹)식 개그
[리뷰] '넥스트 골 윈즈', 축구영화라 쓰고, 아메리카사모아 투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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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먼 일인 양 기억이 차올랐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전시 중인 <구본창의 항해> 사진전을 관람하며 2006년 7월 어느 여름날, 분당 작업실을 방문했던 날이, 담벼락 아래 피어 있던 능소화와 함께 선생님의 다정한 옅은 미소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올해 70살을 맞이한 구본창 작가의 600여개의 수집품과 500여점의 사진 작품을 시간의 흐름으로 엮어낸 이번 회고전에서 다수의 반가운 영화 포스터도 만날 수 있다. 2024년 말 도봉구 창동에 개관 예정인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을 앞두고 기획된 이번 전시는 3월10일까지 계속된다.
[ARCHIVE] 사진으로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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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여행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발견하고 싶다
축구 시합
손흥민 선수를 만날 날을 꿈꾸며 취미 삼아 하는 축구팀이 있다. 시합할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느는 느낌이 들어 좋다.
FC온라인 게임
축구는 게임으로 하는 것도 좋아한다. 종종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운동과 다이어트
올해 목표가 <무빙>의 통통한 봉석이 때와 달리 다부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 운동법과 식이요법을 찾고 있다.
악기 배우기
우쿨렐레를 다룰 줄 알지만 혼자 하는 정도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는다. 악기 하나를 제대로 배워서 그럴듯한 연주를 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LIST] 이정하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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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가 초래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택한 방법은 개인에게 적극적으로 죽음을 권하는 것이다. <플랜 75>의 배경지인 근미래 일본은 75살 이상의 국민들에게 안락사를 지원하는 ‘플랜 75’ 프로젝트가 활성화된 상태다. 극 중 노인들은 노인 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무용한 노동자로 판단돼 점점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더이상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없고 의지할 연고도 없는 이들은 결국 플랜 75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린다. 해당 프로젝트에 연관된 미치(바이쇼 지에코),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 요코(가와이 유미),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는 각자의 위치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여러 개인의 시선을 통해 국가가 권유하는 안락사의 현실이 드러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옴니버스영화 <10년> 중 하야카와 지에 감독이 연출한 동명 단편을 장편화한 작품으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와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
[Coming soon] ‘플랜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