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유럽과 일본을 횡단하며, <율리시스> 우와가와 히카루 감독
이우빈 2025-05-09

<율리시스>

1996년생 우와가와 히카루 감독은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신예 중의 신예다. 올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오른 첫 장편 극영화 <율리시스>가 마르세유국제영화제와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신진감독이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우와가와 히카루 감독은 2019년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하며 단편 <경솔한 벤타나> <우리 집의 야경> 등을 통해 유럽과 일본의 영화적 향취를 고루 섞어내는 독특한 궤적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율리시스>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전술한 대로 유럽과 일본의 영화적 맥락을 자연스레 섞어내는 탁월한 감각, 그리고 현실을 마주하는 그의 다큐멘터리적 태도다.

<율리시스>는 크게 3개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한 모자의 일상과 저녁 식사 시간, 산세바스티안에서 우연히 만난 스페인 여성과 일본 남자의 만남, 그리고 일본의 대명절인 오봉 기간에 맞춰 죽은 이들을 기리는 가족들의 초상이 그 구성이다. 지구의 이곳저곳에서 나타난 세편의 에피소드는 각 지역의 고유한 영화적 리듬과 공간성을 따르는 한편, 우와가와 히카루 본연의 영화적 태도를 관철한다. 이를테면 첫 번째 에피소드에선 (아마 세상을 떠난 듯한)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한 소년이 어머니에게 자꾸만 아버지가 언제 돌아오는지 묻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떤 보물을 찾고 있어 아직 집에 돌아올 수 없다는 어머니의 답변은 아들의 소원을 유예하고, 그 유예의 시간은 부모님의 친구들을 초대한 유럽식 저녁 식사 자리의 유쾌함과 정적을 통해 갈무리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선 일본인 남자가 스페인 여성에게 어릴 적 자신이 아버지와 겪었던 일화를 풀어내면서 구술을 통한 이미지의 구현을 꿈꾼다. 또한 두 사람은 공원을 거니는 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지만 영화는 그 촬영의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죽은 이를 기리는 산 자들의 마음은 그저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의 지속과 이야기로만 형성될 뿐 망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요컨대 <율리시스>는 대안적 이미지라는 영화의 극적인 꿈에 응답하지 않고, 이미지의 부재를 부재로 두는 다큐멘터리적 과감함을 택한다. 어느샌가 유령과 가상의 존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듯한 근래 영화 작가들의 풍토를 전복하면서 따스한 현실에 발붙이기를 택한다. 단순히 비유하자면 기욤 브락 감독이 보여주는 생의 쾌활함과 유호 이시바시 감독 등이 택하는 일상의 담담함을 절묘하게 섞는 방식이다.

<율리시스>

<율리시스>가 보여주는 현실의 감각은 각 에피소드의 공간을 찍는 카메라의 방법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카메라는 각 장소의 공간적인 제약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방과 방 사이가 비교적 단절돼 있는 유럽의 집들은 여러 개의 컷을 통해 쪼개고, 집 안 전체가 중정을 통해 연결돼 있는 일본의 전통가옥에선 가벼운 패닝과 틸트를 통해 공간의 총체성을 강조한다. 이야기에 맞춰 사람을 배치하여 극의 매끈함을 키우기보다는 공간에 맞춰 카메라를 배치하면서 각 지역의 공간에 대한 솔직한 시점을 이어간다. 이토록 젊은 신인감독이 동시대의 어떠한 유행이나 시선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낸 일에는 분명히 더 집요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