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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초월하다, <나미비아의 사막> 야마나카 요코 감독
유선아 2025-05-09

<나미비아의 사막>

시대와 세대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지만 시대적 맥락보다 세대를 포착하는 시선은 동 세대 감독의 카메라에서 가장 편견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일본의 영화감독 야마나카 요코의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야마나카 요코는 니혼대학교 예술학부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진도가 너무 느리다는 이유로 자퇴한다. 그로부터 1년 후 처음 각본을 쓰고 연출한 <아미코>에서 야마나카 요코는 짝사랑하는 남자아이가 사라져 그를 찾으러 나선 10대 소녀 아미코의 뒤를 따른다. 감독이 10대였던 시절에 만든 이 66분 길이의 영화로 그는 2017년 일본 피아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고, 그다음 해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상영되어 영화제에 초청된 최연소 장편감독이 되었다. <아미코> 이후 7년 만에 연출한 두 번째 장편 <나미비아의 사막>의 카메라는 또다시 감독 자신이 속한 세대의 20대 여성 카나(가와이 유미)를 쫓는다. 애초에 원작이 있던 <나미비아의 사막>은 촬영 6개월 전 주연배우 가와이 유미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시 구상하고 새로 써 지금의 영화가 되었다.

주연배우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여줄지를 고민하며 각본을 집필했기 때문에 <나미비아의 사막>은 가와이 유미에게서 시작되고 끝나는 영화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가와이 유미가 맡은 역할 카나가 만인에게, 특히 세대나 성향이 다른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별다른 고민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카나는 흔히 말하는 욜로족이나 일본의 프리터족은 아니다. 그는 뷰티 에스테틱 직원으로 일하지만 직업에서 재미를 느끼지도 않고, 현재에 크게 불평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고민이 있다면 자유분방한 작가 지망생 하야시(가네코 다이치)와 정식으로 사귀기 위해 헌신적인 연인 혼다(간이치로)와 헤어질 구실을 찾아야 한다는 것뿐. 이별 후 카나를 찾아온 혼다는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카나를 쫓다 이내 거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카나는 전 연인을 향해 돌아서서 말한다. “이상한 사람.”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이상한 사람은 바로 카나이고 온갖 이상한 조짐과 증세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그의 생활과 행동을 자극한다.

이상함의 뉘앙스

<나미비아의 사막>

카나는 관객의 이해와 몰이해, 수용과 거부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가 때로 이상하게 여겨져 심적 거부감을 유발하는 이유는 영화가 카나의 행동을 먼저 보여주고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나중에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상당 부분 동안 카나의 반복 행동은 점차 이해할 수 없는 수위로 치솟는다. 안정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혼다를 정리하고 이제 막 가까워지기 시작한 연인 하야시와의 사이에서 카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보인다. 카나는 하야시를 지배하고 우위에 서고 싶은지, 아니면 어리광을 부리고 보살핌을 받고 싶은지 정하지 못하고 양극단의 욕구를 번갈아 드러낸다. <나미비아의 사막>에서 조성되는 이상함은 돌변하는 카나의 반복 행동과 감정의 극단적 기복 속에서 증폭된다.

야마나카 요코는 일찍이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에세이에서 쓰인 ‘분인’(分人)의 개념으로 카나를 설명한 바 있다(<씨네21>, 1477호, ‘시절을 기록하기’). 이른바 다양한 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이는 여러 모습 또한 나라는 한 존재라는 게 개념의 첫 핵심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관계에 따른 분인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사회학 이론은 이와 정반대로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를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규정한다. 카나를 따르며 그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는 야마나카 요코의 카메라에서 드러나는 이상함은 분인을 향한 일본인의 자연스러운 수용과 이를 부정하는 사회학 이론의 이견에서도 발생한다. <나미비아의 사막>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 차이를 인지하고 그것을 카나라는 다중적 인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다른 일본영화에서 본 적 없는 미세한 긴장의 파동을 만든다.

카나는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고, 행동한 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 또한 그를 향한 신뢰를 무너뜨다. 이 불일치에서 비롯된 긴장은 영화적 오해나 미스터리로 조성된다. 분리된 카나의 말과 행동은 주거 공간의 안과 밖, 컷과 컷의 대비로도 시각화되며 결국 영화는 의식의 안과 밖으로 나뉘는 경계에 도달하게 된다. 카나가 습관적으로 하야시의 죄의식을 자극하며 관계를 주도하려고 하거나 먼저 배려받기를 바라는 약자의 입장임을 모순적으로 강조하는 동안에 둘 사이의 긴장은 고조된다. 치고받으며 싸움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에서 화면 귀퉁이에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카나가 등장한다. 마치 TV쇼에서 녹화된 장면을 시청하는 패널처럼 무표정한 카나의 내적 의식은 밖으로 튀어나와 휘적대며 “너무 지쳤어”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진단하고자 했지만 길을 잃은 카나의 의식이 억압과 분출을 반복하며 경미한 해리 증상을 일으키기라도 한 것처럼 묘사되는 순간이다. <나미비아의 사막>에서 카나의 의식은 이렇게 여러 번 꼬여버린 뫼비우스의 띠처럼 밖으로 튀어나왔다 속으로 감춰지기를 계속하며 이어져왔다.

의식 속을 모험하는 주의력 결핍의 카메라

<나미비아의 사막>은 표면적으로 방황하는 현세대 일본 여성의 평범하고 무기력한 일상을 따라가지만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는 방식에서 평범함을 초월한다. 일본식 순응주의를 향한 무의식적 저항이기도 한 카나의 기행은 내적 의식이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하며 표면을 뒤흔든다. 그는 상담의와 면담 중 모래 장난을 하고, 숲에서 이웃집 여자와 만나 모닥불을 뛰어넘으며 ‘캠프 가자’ 노래를 부른다. 하나의 시퀀스처럼 이어지는 장면을 따르다 보면 이는 곧 카나의 의식이며, 영화 초반의 산만한 카메라는 카나의 의식 상태를 예비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카나의 대사와 동작 또한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물의 의식과 행동을 분리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의 첫 장면, 도심의 인파 속에서 카메라는 부산하게 카나를 찾아 포착한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그는 걷는 와중에도 몸 곳곳에 로션을 바르며 시종 딴짓을 한다. 카페에 도착해 친구 이치카와 만난 카나는 동창생의 죽음을 전해 듣지만 그의 귀에는 주변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심지어 뚜렷한 노이즈처럼 말을 잇는 주변 인물에 접근해 그의 대사를 들으면서 엉뚱한 방향을 살핀다. 카나의 의식 상태를 모방하는 듯 주의력이 결핍된 카메라는 역설적으로 영화에 자유로운 의식의 부유를 가능케 한다. 영상 감각에 친밀한 제너레이션 Z의 시선, 길 잃은 자기의식의 행방을 메타인지로 관람하는 야마나카 요코의 신선한 화법은 그가 누구의 후예도 아닌 일본의 신예 영화감독이라고 여겨지게 한다. 야마나카 요코의 영화는 영화사적 계보에 뚜렷이 편입되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1980년대 일본 자주영화의 정신을 영화 안과 밖에서 계승하고 있는 듯하다. <나미비아의 사막>은 남아프리카의 국가 나미비아와도, 사막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 장소는 어쩌면 카나 안에 깊숙이 자리한 의식 저편을 가리키는 표지판일지도 모른다. 야마나카 요코의 카메라는 의식의 행방을 찾으려는 인물의 자유로운 의식과 함께 유영해 마침내 누구도 말한 적도 없는 그 장소로 조용히 침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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