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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놓인 아날로그 라디오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알리는 뉴스가 들려온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한 장면. 단순한 사물과 소리의 결합이지만 기묘하게도 과거와 현재 시제가 뒤섞인 듯한 인상을 건넨다. 여전히 20세기에 남겨진 것처럼 보이는 시대착오적 연인들의 멜로드라마 위로 동시대 전쟁과 폭격을 알리는 소식이 겹쳐질 때, 이 평범한 외형의 장면으로부터 생경한 질문이 생겨난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은 라디오 뉴스가 전해주는 현재의 시간에 정착할 수 있을까? 카우리스마키의 카메라가 포착해온 연인들. 그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느 시간에 머물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카우리스마키는 은퇴를 번복하고 완성한 이 영화가 필모그래피 초기에 만들어진 ‘프롤레타리아 3부작’의 연장선에 있는 네 번째 연작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두 연인에게 드리워진 시선은 일자리를 잃어버린 빈곤한 노동자들의 삶을
[비평] 극장 앞의 평범한 연인들, <사랑은 낙엽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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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선균 배우의 첫 사극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문현성 감독의 <임금님의 사건수첩>(2016) 현장이다. 더운 여름날이라 촬영장의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전주의 세트장에서 촬영을 마친 뒤, 그는 안재홍 배우와 맛집 탐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어떤 음식을 먹을지를 두고 사담을 나눴는데, 그는 꼭 ‘우리 국수 잘하는 집’의 열무국수를 먹을 것이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렇게 서로 맛보았던 국숫집이 오늘따라 유독 그리워지는 날이다.
[ARCHIVE] 그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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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빙> 다음 차기작이 MBC <쇼! 음악중심> MC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무대를 워낙 좋아해 음악방송 MC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제안이 들어와 무조건 한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항상 도전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공동 MC인 더 보이즈 영훈씨와 엔믹스 설윤씨와 함께 악뮤의 <Love Lee>를 MC 신고식 무대로 가졌는데 가수가 아니다 보니 연습실에서 매번 끝까지 남아 열심히 준비했다. 그럼에도 당일에 동선을 못 찾고 헤매서 아쉽긴 하지만 나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웃음)
- 한달 반가량 했는데 어떤가. 몇 개월간 수많은 엔지와 오케이를 거쳐 하나의 완성본을 만들어내는 매체 연기자에게 생방송 MC는 새로운 감각을 안겨줄 것 같은데.
= 생방송에서 말실수를 할까봐 항상 긴장 상태다. 하지만 매주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다음에 그걸 보완해나가는 과정이 재밌다. 성장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좋다. 오늘처럼 사진 촬영이 있을 때
[인터뷰] ‘태양이 뜬다’, 배우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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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하에겐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능력이 있다. 많은 캐릭터가 그에게 당했다. <하지 말라면 더하고 19>의 설아(전유림)는 미워죽겠는 남자친구 태희(이정하)의 해맑은 사랑 고백에 그만 화를 풀어버렸고 <알고있지만,>의 유나비(한소희)와 <무빙>의 희수(고윤정)는 후배 은한(이정하)과 친구 봉석(이정하)의 천진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런 온>의 기선겸(임시완)은 또 어땠나. 후배 선수 우식(이정하)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자 따라 우는 표정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현실에서도 그는 여러 사람을 속수무책의 상태로 밀어넣은 바 있다. KBS 아이돌 서바이벌 쇼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이하 <더 유닛>)의 냉철한 심사위원단은 그가 어설프지만 당당하게 춤추기 시작하자 단체로 귀엽다며 책상 위로 쓰러졌고 실력이 부족한 참가자에게 왜 자신이 끌리는지를 자문하기 바빴다. 타고난 반달 모양의
[커버] <씨네21> 2023 시리즈 신인 남자배우,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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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30일>
코미디가 연기하기 어려운 장르인데 이 작품은 출연 배우 모두의 연기가 뛰어나다. 연출과 배우의 합도 잘 맞아 좋은 작품이 탄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스키
한병을 만들기 위해 수십년간 고생한 이들의 수고를 느끼며 마셔보길 권한다. 미묘하게 서로 다른 맛을 구분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 중 더 맥캘란을 주로 즐긴다.
골프
서로 숨 가쁘게 경쟁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점이 좋다. 함께 라운딩하는 이들과 아름다운 풍경 아래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아 힐링이 된다.
<리그 오브 레전드>
출시 초창기엔 어려워 보여 손이 안 갔는데, 최근 몇년 새 이 게임에 재미를 붙였다. 나는 ‘원챔’이라 일편단심 미스 포츈으로만 플레이 중이다.
쳇 베이커
재즈를
[LIST] 진영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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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
디즈니+/ 8부작/ 연출 제임스 보빈 / 출연 워커 스코벨, 레아 제프리즈, 버지니아 컬 / 공개 2023년 12월20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다시 한번, 신들의 전쟁
퍼시(워커 스코벨)는 종종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의 환영을 본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그의 학교생활은 따돌림과 상담의 연속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버지니아 컬)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 퍼시가 신과 인간의 혼혈 ‘데미갓’이라는 것이다. 퍼시는 자신의 특별함을 깨닫고 괴물들의 습격을 피해 ‘데미갓’들이 머무는 아지트 ‘캠프’로 향한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오해에서 비롯된 올림포스 신들의 전쟁을 막는 것이다.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된 바 있는 릭 라이어던의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한 작품이다. 등장인물과 스토리는 영화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10년 만의 영상화에 걸맞
[OTT 추천작]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들’ ‘솔트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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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에도 꽃이 핀다>
넷플릭스, 티빙, 지니 TV / 12부작 / 연출 김진우 / 출연 장동윤, 이주명, 김보라, 이주승, 윤종석, 이재준/ 공개 2023년 12월20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포스트 우영우는 어디쯤?
씨름의 고장 거산. 장사 타이틀 한번 달지 못한 서른둘의 씨름 선수 김백두(장동윤)는 은퇴를 결심한 첫날, 옛 단짝 친구 오두식(이주명)을 만난다. 반가움을 표하는 백두에게 두식은 자신은 이 동네에 살던 오두식이 아니라 새로 이사 온 오유경이라 소개한다. 두식 혹은 유경의 정체를 둘러싸고 백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아보며 혼란에 빠지는 한편, 마을 저수지에서는 타살로 의심되는 차량 추락 사건이 발생한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무해한 호감형 캐릭터인 백두를 필두로 두식/유경이라는 인물의 젠더를 교란하며 흥미롭게 시작한다. 지방 소도시의 사사로운 일상사와 기묘한 범죄 사건을 병치하는 스토리텔링은 <동백꽃 필 무렵&g
[OTT 리뷰] ‘모래에도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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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키친 싱크 리얼리즘의 태두, 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 <나의 올드 오크>가 1월 극장가를 찾는다. 현대 영국 북동부 어느 광산 마을. 광산의 번성은 옛말이다. 폐광 이후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고, 마을을 지키는 몇 안되는 광부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삶의 터전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다. 이들의 혼란은 영국 정부가 마을에 배치한 시리아 난민까지 수용하며 가중된다. 보이지 않는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마을의 오래된 펍 ‘올드 오크’의 주인장 티제이(데이브 터너)와 사진에 관심이 많은 시리아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는 특별한 우정을 쌓는다. 영국 노동자들이 겪는 제도적 모순과 부조리에 관해 언제나 목소리를 높여온 켄 로치 감독이 다시 한번 사회적 약자의 성토를 은막에 담는다. 연기 경험이 없는 영국 노동계급의 비전문 배우를 기용해 그들로부터 최상의 연기력을 끌어내는 켄 로치 감독의 연출력이 이번 작품에도 얼마만큼 형형히 드러날지 기대를 모은다. <칼라송&
[coming soon] 나의 올드 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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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배우를 배우로서 기억하기. 지금 그를 추모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2023년 12월27일,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이선균이 남긴 작품과 캐릭터들을 돌아본다.
이선균은 21세기와 함께 한국영화에 등장했다. 1975년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1기 출신인 이선균은 2001년 졸업 후 영화계에 뛰어들어 2002년부터 10여편 가까이 상업영화 단역 출연으로 분주한 초심자의 시절을 보냈다. 2004년작 <알포인트> <인어공주>를 기점으로 업계의 물망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비슷한 시기 TV단막극의 인기 속에서 <MBC 베스트극장> <KBS 드라마시티>의 단골 배우로도 눈도장을 찍었다. 2007년은 성실히 도움닫기한 자에게 커다란 지렛대가 주어진 해였다. <하얀거탑>의 진중한 내과의 최도영과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여심을 사로잡은 음악가 최한성으로 연달아 주목받은 이선균은 방송가 루키에서 일약 주연급으로 도약했다
[obituary] 스크린에 진실을 새기고, 배우 이선균의 영화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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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일곱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중 세편을 느슨하게 융합하고 각색해 한편의 영화를 탄생시켰다. 우선 연극 연출가인 가후쿠와 사망한 그의 아내, 운전자 미사키의 이야기인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영화의 뼈대로 삼았고, 단편 <기노> 속 아내의 외도를 제대로 직면하지 않은 남성의 이야기를 가져왔으며, 영화 속 아내 오토가 읊는 동급생의 집에 몰래 드나드는 소녀, 그리고 칠성장어 전생 이야기는 단편 <셰에라자드>에서 빌려왔다. 다만, 다카츠키가 차 안에서 가후쿠에게 말해주는 소녀의 뒷이야기는 소설에 없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설계한 이야기를 이어서 완성시킨 것이다.
한 장면 한 장면 소리내 읽다 보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시나리오 읽기를 통해 한신 한신 준비한다. 감정을 배제한 채
[Masters’ Talk] ‘드라이브 마이 카’ 뒤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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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없었습니다”
이제훈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가후쿠의 이야기가 있고, 또 오토와 가후쿠가 만드는 ‘칠성장어’ 이야기와 가후쿠가 하고 있는 연극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담겨 있습니다. 글을 쓸 때 이야기의 레이어들이 잘 융화될 수 있을까, 라는 확신이 있으셨나요. 어려운 작업이겠지만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여러 해석으로 이어져 놀라웠거든요.
하마구치 류스케 확신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없었습니다. (웃음) 이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원작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쓴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단편소설집이 원작인데, 거기에 가장 먼저 실린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만 읽고 상당히 재밌어서 언젠가 영화화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자 없는 남자들>은 단편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공통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 주인공들의 감정에 어떤
[Masters’ Talk]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새로운 영화적 경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이제훈 배우를 만나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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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2023년 12월21일, 갑작스레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며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내내 따뜻한 겨울을 보내던 한국 사람들도 낯선 추위에 몸을 떨던 그때,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드라이브 마이 카> 재개봉을 기념해 내한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자신만의 속도로, 그러나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각본상을 받았고, 2022년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맞이하게 된 2023년 12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시동을 멈추지 않고 다시 한국 극장을 찾아왔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빨간 ‘사브 900’을 운전하는 이들의 삶을 통해 소통에 관해 이야기한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아내 오토(기리시마 레이카)의 외도를 알아차리지만 그에 관
[Masters’ Talk] “어느 장면이든 10번 이상 촬영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이제훈 배우를 만나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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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SGK)의 김병인 대표가 <심해> 시나리오 저작자 분쟁에 대한 후속 보도를 요청했다. 김병인 대표는 지난해 12월9일 SGK의 보도자료를 통해 <심해> 논란을 공론화했으며 “최윤진 영화사 꽃 대표가 김기용 작가의 저작자 권리를 침해”했단 주장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번엔 <씨네21>이 게재한 최윤진 대표의 반론 보도 “‘1인 제작사 vs 대형 제작사의 횡포’, 실익의 방향성이 진실을 가리킨다-<심해> 시나리오 분쟁에 대한 최윤진 대표의 입장”(<씨네21> 1438호)에 전면으로 반박했다. 1월3일 SGK가 발표한 보도자료 “<모럴해저드> 최윤진 감독, 신인 작가 김기용의 <심해> 각본 탈취 시도”와 다른 맥락에서 최윤진 대표의 입장에 더 상세하게 반론했다.
- SGK는 “2020년 최윤진 대표가 더 램프와 <심해> 공동제작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더 램프에 김기용 작가
[포커스] 작가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심해> 시나리오 분쟁에 대한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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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주간 글로벌 톱10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시청 시간은 2022년 대비 70억 시간 이상 감소했다. 이는 전년 대비 거의 17%에 달하는 수치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중반부터 매트릭스를 조정하여 총시청자가 아닌 시청 가구 수에 따라 프로그램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톱10에 올라가는 프로그램은 여전히 가장 많은 시청 시간을 기록하는 순으로 공개된다.
지난 2년간 매주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프로그램의 글로벌 시청 시간을 살펴보면 그들은 예전처럼 히트작을 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3년에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프로그램 <나이트 에이전트>(출연 가브리엘 바소, 루시안 뷰캐넌, 홍차우)는 일주일 동안 최대 2억1640만 시간 동안 가입자들을 만났다. 2022년 넷플릭스 시리즈가 2억 시청 시간을 돌파한 것은 세번이며, 실제로 2022년 12월 신작 시리즈 <웬즈데이>는 한주 만에 4억1130만 시청 시간을 돌파했다.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넷플릭스 가입자는 늘었지만 시청 시간은 줄어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