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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토대와 자기만의 리듬, <우리 집> <모든 밤을 기억하다> 기요하라 유이 감독
이우빈 2025-05-09

<모든 밤을 기억하다>

1992년생 기요하라 유이 감독은 201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기획전 ‘일본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통해 국내에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도쿄예술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만든 첫 장편 극영화 <우리 집>으로 제40회 피아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두 번째 장편 극영화 <모든 밤을 기억하다>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의 너른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 집>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 이야기 구조를 택한다. 한집이지만 두개의 세계에 사는 네명의 여성이 간접적으로 서로간의 기억을 공유하며 서사가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작법을 택한다. 유령처럼 보이는 인간들의 신묘한 일상은 기요하라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자크 리베트나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영향을 받아 “영화에서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설정할지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그의 영화적 작법은 모던 시네마의 미학적 유산을 적절히 계승하되 소마이 신지, 모리타 요시미쓰 등 이전의 일본 감독들이 보여준 일본 영화만의 파격적인 정동을 곳곳에 섞어낸다.

“춤이란 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고, 인간의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인간의 움직임에 주목했던 그의 두 번째 장편 <모든 밤을 기억하다>는 형식주의적 모양새에 집중했던 <우리 집>보다 더 정제되고 편안한 형태의 영화이자 말 그대로 ‘인간의 근원적인 움직임’을 더 세세히 파고드는 역작이었다. 근래 동시대 일본 감독인 스기타 교시나 사이토 히사시, 오타 다쓰나리 혹은 최근의 오기가미 나오코처럼 등장인물들의 전원적인 일상을 천천히 좇는 듯한 이 영화는, 무성영화의 톤 앤드 매너 아래에서 사람을 비롯한 자전거, 기차, 불꽃, 나무, 바람, 돌 등 온갖 생물과 무생물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그것들의 동선을 채록하고 상하좌우 프레임을 넘나드는 수직과 수평의 운동으로 조립해낸다. 말수는 적고, 움직임은 다채로우며, 그 움직임의 리듬이 수학적으로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덕에 피사체들의 동선만 유심히 바라보더라도 하나의 영화가 완성된다.

<우리 집>

다만 <모든 밤을 기억하다>는 그 모든 움직임의 근원에 ‘사람’의 생태와 성정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는 일견 인본주의적인 결론에 도달하며 <우리 집>에서 보여준 ‘인간의 기억’이란 테마에 다시금 복귀한다.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무생물들의 존재와 주연들의 관계는 사람들 각자가 지니고 있던 훼손된 필름, 부식된 디지털 메모리의 기억을 복원하면서 달라진다. 그들은 기억의 연결과 복구를 통해 서로에게 이어져 있던 인연의 실을 발견한다. 즉 동시대 일본 작가들이 하나의 시대 의식으로 견지하고 있는 인간적 회복의 가능성을 기억이라는 매개와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적절히 조합해낸 것이다. 요컨대 기요하라 유이는 풍부한 영화사적 맥락 위에서 자기만의 템포와 로맨틱함을 유려히 조정할 줄 아는, 그러는 동시에 작금의 시대가 원하는 (커다란 절망 이후) 삶의 향상성을 부담 없이 내재할 줄 아는 독보적인 영화 작가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이 과연 어떤 결과물을 보여줄지 한없이 기다려지면서, 그의 작품이 더 자주 국내에 소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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