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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림(66) 상무는 단성사 터주대감이라 불릴 만하다. 태흥영화 이태원 사장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역사책이야”라고 말할 정도다. 단성사 왼편 건물 3층에 마련된 간이 사무실, 여전히 그는 건재했다. 지난 9월1일로 극장 업무는 끝났지만, 여전히 그가 바쁜 이유는 뭘까. “그래도 제일 큰 극장이었잖아. 곧 100년을 채울 텐데, 내가 직접 쓰지 않더라도 누군가 책 한권 정도는 내야지.” 그가 지금까지 모은 극장 자료만 해도, 큰 박스로 2개나 된다. 어디 고이 모셔 있던 자료를 거저먹은 게 아니라 당시 문화공보부 등을 들락거리는 등 발로 직접 뛰어서 구한 것들이다.몇년 전부터는 1920∼30년대 영화들의 원제를 찾느라 직접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그런데 자료 찾느라 <매일신보> 같은 걸 뒤지다보면 배꼽잡을 일이 많아. 예를 들면 당시 배우들 이름 뒤엔 군 또는 양을 붙였거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외국사람 이름만으로 성별을 아나. 그러니 로버트 아무개양이라고 써놓고선 며
“살아 있는 역사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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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역사처럼 단성사의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다. 기록이나 구술에 의한 것만 하더라도 열번이 넘는다. 첫 번째 단성사를 세운 이는 지명근, 박태일, 주수영 세 사람. 1907년 동대문시장 상인 출신이던 이들은 근처 영도사 대원암에 사람들을 모아넣고 ‘조선 연예계 발전 방안’이라는 연설회를 가진 뒤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그 다음은 이익우. 1909년부터 경영을 맡았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지가 않다.단성사는 같은 해 호남의 갑부 한흥석에게 넘어가고, 이듬해 일본인 후지와라 구다마로에게 넘어갈 정도로 운영이 어려웠다. 그러다 1917년 황금관(이후 국도극장)의 소유주인 다무라가 단성사를 인수한다. 당시 토지는 일본인들에게 불하한 것이라, 해방 이전까지 단성사의 땅 주인은 다무라였다. 단성사가 흥행 극장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18년 당시 광무대의 소유주이자 창에 빠져 있던 박승필이 단성사를 인수한 뒤, 영화상설관을 표방하면서부터다. 그는 본관을 신축하고, 주임변사 서상호 외 6
거기에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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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겨울여자, 단성사를 찾다.1972.10.17 박정희, 국회 해산 및 정치활동 금지를 골자로 하는 유신조치 발표 1978.6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 여고생 농락 사건 발생1979, 정부, 영화사 등록제를 허가제로 변경. 이로 인해 제작사 수 대폭 감소“할리우드 제국의 신성일, 로버트 테일러 얼굴에/ 지지직 굵은 비가 내렸네 나는 어느새/ 70년대의 찌린내와 함께 종로 화신극장에 앉아 있었네/ 격투기 쑈도 보고 연극도 보았던 그 옛날 원형극장의 관객들처럼/ …/ 그래, 누구도 살아서 이 극장의 어둠을 벗어나진 못할 것이네”(‘로마 콜로세움 속의 화신극장’, 유하 <천일馬화> 중에서)1970년대 한국영화는 암흑기의 수렁을 피할 수 없었다. 유신조치와 함께 영화를 한편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아졌다. 영화사 설립여건이 강화돼 수많은 영화사들이 무너졌고, 제작사전신고부터 시작되는 겹겹의 검열에 한국영화는 숨이 막혔다. 제작 의무편수를 정해놓고 그걸 채워야 외화 수입권을 주는
아듀! 한국영화 100년의 벗이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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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 100년이 허물어진다. 자그마치 5천만명 이상이 드나들었던 놀이터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의 새카만 족적만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여흥과 위락의 장소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한 세기를 버텨오는 동안, 단성사 돌벽은 시대의 어둠을 피해 군중이 찾아들어간 안온한 카다콤이었고, 그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소망의 앙코르와트였다. 좁디좁은 의자에 잠시나마 등허리를 기대고 그들이 피워올린 꿈의 환영은 언제나 푸른색이었기에, 진동하는 화장실의 지린내와 도사린 구석의 퀴퀴함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단성사는 없다. 그리고 시대의 꿈은 영원히 지하에 매장된다. 꿈의 체취를 맡고자 하는 열망이 남았다면 무너지기 전, 단성사의 기억을 거슬러볼 일이다.제1장 셋이 모여(團) 뜻을 이루다(成)1907.5.22 이토 히로부미의 압력에 의해 박제순 내각 사퇴하고, 이완용 내각 성립, 서울 전역에 콜레라 창궐.“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지명근, 박태일, 주수영 제씨가 발기하여 우리나라
아듀! 한국영화 100년의 벗이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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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와 바퀴벌레의 콜라주 - 이미지의 실험실 부문NFB의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독특한 기법과 실험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모았다. <신데렐라 펭귄 이야기>는 동화 <신데렐라>를 펭귄들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으로 바꾼 작품. 내용은 알려진 대로지만, 신데렐라와 요정, 왕자까지 모두 귀여운 펭귄인데다 유리 구두가 유리 물갈퀴로 바뀌는 설정 등 코믹한 각색과 다양한 카메라워크가 돋보인다. <E>는 커다란 ‘E’ 모양의 상을 소재로 독재와 폭력을 비꼰 우화. 독재자와 군대까지 등장해 ‘E’에 대한 의견이 다른 사람은 머리를 열어 생각을 고쳐놓고 마는 풍자가 날카롭다. <바로크 앤 롤>은 소수 민족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다룬 인형애니메이션. 터번을 쓰고 색다른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따돌림받던 아이는, 얼음이 깨진 강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친구를 얻는다.서울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이 세편. 부산에서는 모래에서 태어난 모래 인간이 생명체를
모래의 연금술, 디지털의 황홀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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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관한 긴 이야기 - 장편 2편<말괄량이 삐삐>는 잉거 닐슨의 연기로 기억되는 TV시리즈 및 영화로 이미 만들어진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명소설의 애니메이션 버전. 부모세대에 의존하지 않고 꿋꿋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도 늘 유쾌한 주근깨 소녀 삐삐의 모험담으로, 널바나의 공동창업자이자 캐나다 상업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감독 클라이브 스미스가 공동연출했다. 판화와 스크래칭, 컷아웃 등 다양한 기법과 이미지를 시도해온 NFB 출신의 작가 피에르 에베르의 <인간 식물>은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장편. 도서관 사서직을 은퇴한 뒤 개를 돌보고,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미셸의 외로운 일상 틈틈이 걸프전 등 갖가지 사회풍경을 겹쳐놓는다. 동화에서 추상화까지 - NFB 단편걸작선 부문‘Beyond NFB’를 제외한 섹션들은 사실상 다 NFB 단편걸작선이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11편을 따로 묶었다. 한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
모래의 연금술, 디지털의 황홀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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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같은 황무지에 수십년간 나무를 심는 사람의 이야기를, 혹 봤거나 읽었을지 모르겠다. 물과 생명이 말라붙고 마을의 폐허만 남은 땅에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어 마침내 숲으로 가꿔낸 양치기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의 삶 말이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동명소설을 렘브란트의 회화마냥 섬세한 빛과 색채의 일렁임, 결이 풍부한 크레용화로 살려낸 프레데릭 벡의 87년작 <나무를 심는 사람>은 국내에는 다소 낯설고도 신기한 화풍의 캐나다 애니메이션이다. 히로시마, 자그레브 등 유명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물론, 클레르몽 페랑과 오스카의 애니메이션 트로피까지 각종 영화제를 휩쓴 이 작품은 국내 공중파 방송과 위성채널, 비디오로도 소개된 바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국내 토양에서 캐나다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낯선 그림이다. 영화제가 아니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캐나다 애니메이션 축제가 오는 9월 말과 10월 중순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다.오는 9월25일부터 28일
이미지의 숲으로 소풍가자, 낯설고 고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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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세계로<프로젝트 A> <쾌찬차> <용형호제> 등 할리우드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한 대작을 만들던 성룡의 최종목표는 세계 진출, 할리우드 진출이었다. <프로젝트 A> 이후 성룡의 영화는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홍콩관객을 위한 영화와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영화가 나뉘는 것이다. <미라클> <쌍룡회> 같은 영화는 영락없는 중국인의 구정용 영화다. 반면 <폴리스 스토리>는 세계 무대를 향한 시발점이다. 인종과 국가를 막론하고 경찰의 활약을 그린 영화는 가장 보편적이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점차 무대를 세계로 넓히고, 액션의 강도를 높이는 점도 그렇다.성룡은 지금도 동일한 전략을 고수한다. 할리우드에서 일급 스타 대우를 받으면서도, 홍콩에서 <성룡의 빅 타임> 같은 명절영화를 만든다. 아시아 관객만을 위한 액션영화 <나이스 가이> <엑시덴탈 스파이> 등을 만드는 것도 같
난 당신이 좋다, 그 `순수한 육체`의 향연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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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 나오는 중·고등학교 단체관람. 그 시절 단체관람의 레퍼토리에 가장 빈번하게 들어갔던 영화는, 시리즈와 함께 성룡의 쿵후영화였다. <사형도수>나 <취권> <소권괴초> 같은. 낡은 극장 1, 2층을 가득 메운 까까머리의 학생들에게 시리즈는 대단한 이상향이었다. 마침 로저 무어가 수영복으로 몸매를 과시하는 대규모 본드걸을 이끌고 나오던, 에이즈의 위협이 전혀 없던 시기였다. 섹시한 본드걸이 등장하면 환호성을 지르고, 제임스 본드가 그녀를 안으면 침이 꼴깍 넘어가고, 그것도 수백명이 한꺼번에.하지만 성룡의 영화는 이상했다. 왕우의 <유성호접검>처럼 기상천외한 액션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성룡에게 이소룡 같은 카리스마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지기 전이었으니, 공명정대한 ‘무협’에 싫증났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유치해 보이는 성룡의 영화는 당대의 남학생들은 물론, 남녀노소 가릴 것 없
난 당신이 좋다, 그 `순수한 육체`의 향연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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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도 안 들어가고 색보정도 안 된 미완성 상태에서 <꽃섬>을 봤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송일곤 감독이 작가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고 곧바로 영화제에 초청할 것을 결심했다. 데뷔작으로는 드물 만큼 진지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세명의 여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매우 용감했다. 또 송 감독은 아주 개인적인 시각과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깊이가 있다. 감독이 스토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세 여자에게 현재의 사회에 대해 말하게 한다. 아주 좋고 용감한 영화다.”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9월5일(현지시각) 오전 <꽃섬> 제작사 ‘씨앤필름’ 주선으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accomplished’, ‘good’, ‘brave’, ‘auteur’, ‘artist’ 등 호의적인 수사를 연발했다. 자기가 초청한 영화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게 관례일 수 있지만, 평론가 출신으로 이탈리아 안의 여러 영화제를 이끌었던 바르베라
“견고한 구성의 용감한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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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차대전은 끝났지만 전쟁에 나갔던 그레이스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영국 저지섬 숲 속의 빅토리아풍 대저택에서 두 자녀와, 사회와 격리된 외딴 섬에서와 같은 삶을 산다. 어린 남매는 빛에 노출되면 바로 탈을 일으키는 특이한 병에 걸려, 집안은 온통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촛불로 조명을 한다. 엄격한 그레이스는 행여 빛이 들어올까봐 방마다 자물쇠를 잠그고, 아이들에게는 독실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친다. 수도원을 연상케 하는 이 집에 밀즈 부인(피오눌라 플래니건)이 가정부로 들어오고,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잠궈놓았던 문이 열려 있는 일이 잦아진다. 딸아이는 집안에 다른 꼬마 아이가 살고 있으며, 수시로 그 아이를 본다고 말한다.급기야 이 고택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첩이 발견되고 남편이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돌아가더니 어느날 아침 집안의 커튼이 한꺼번에 사라져버린다. 그뒤의 섬뜩한 반전은 이 가정이 전
어둠의 아이들이 빛을 맞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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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낙인>의 리메이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리메이크에 대한 아이디어는 프로듀서가 냈다. 기획과 진행은 주로 프로듀서가 알아서 했다.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꿈의 이미지가 아주 독특하다. 어떤 의미인가.난 잘 모르겠다. 관객이 더 잘 알지 않겠나.컬러의 사용이 매우 독창적이다. 컬러의 선택이나 변화가 내러티브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사실 별로 의미심장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트릭을 쓰는 일인데, 컬러는 그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긴 하다.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이 다 여성이다. 왜 여성 캐릭터로 설정했나.남자 캐릭터들로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연극무대 같은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건 무슨 의미인가.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본 기자단 폭소) 나는 어떤 답도 갖고 있지 않다. 서양 킬러가 등장하는 장면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일종의 코미디적인 요소다. 일본 전통극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일본 전통
“꿈의 이미지? 관객이 더 잘 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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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장르가 무엇인가. 코미디인가 뮤지컬인가.‘뮤지컬 드라마틱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꼭 하나의 장르나 스타일로 규정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건 정치도 마찬가진데, 한 사람의 성향을 꼭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어떻게 착안한 영화인가.내 인생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간 접했던 수많은 영화와 연극과 음악과 문학작품들이 조금씩 다 녹아 있다. 영화는 어쩌다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나 자신과 관객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또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늘 살펴본다. 그건 정치가들이 해야 할 일이라거나 뭔가 거창한 데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늘 사랑하고 싶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 그래서 사랑하자, 행복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정치인들을 풍자해서 웃음을 자아내려는 노력도
“개척은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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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절반 이상이 흘러가도록 베니스에는 입성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동정 이외에는 특별한 이슈나 화제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면, 이번 베니스영화제가 거장들의 컴백무대를 제공했다는 사실. 올 베니스영화제는 동서양의 현대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명의 ‘마에스트로’에게 특별한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이집트의 유세프 샤인, 그리고 포르투갈의 마뇰 드 올리베이라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신작을 들고 베니스를 찾아왔고, 족히 3세대와 5개 대륙을 아우를 법한 너른 관객 앞에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재미있는 아이러니는 중견 또는 신진감독들이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작품들을 내놓는 반면, 평균 연령 75살이 넘는 이들의 신작은 도전과 실험의 의욕과 에너지로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우러르며 비결을 묻는 후배들 앞에서도 이들은 폼을 잡지 않았다. 셋 중 막내뻘인 일흔넷의 유세프 샤인은 작품 속 대사를 통해 이렇게 둘러댔다. “일흔 넘은
거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젊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