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門客棧
<용문객잔>
1968년
간신들의 모함으로 충신은 살해되고, 그의 자식들도 간신들이 파견한 자객들에게 쫓긴다. 무고한 충신의 자식을 보호하려는 협객들과 황궁의 자객들이
주점 ‘용문객잔’에서 마주친다. 1967년의 <대취협>과 함께 호금전 스타일의 확립을 알려주는 초기 걸작. 두 작품은 일본 사무라이영화의
뒤쫓기에 급급하던 홍콩영화계를 뒤흔들었다. 사실적이고 자극적인 액션 대신 경극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동선과 빠르면서도 시적인 리듬의 세련된
편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호금전은 무술 지도를 맡은 한영걸뿐만 아니라 출연진에도 경극 배우들을 대거 참여시켜 무협의 톤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여 검객의 등장도 기존 무협의 관습을 깨며 호금전 영화의 시적인 결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개봉 당시 홍콩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으며, 한국에도 <용문의 결투>란 제목으로 개봉됐다. 서극의 <신용문객잔>은 코믹멜로 버전.
俠女
<협녀>
1971년
호금전의 무협이 동작의 예술이면서 동시에 공간의 예술임을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 칸영화제 기술공헌상을 수상하면서 호금전의 이름을 비로소 서방에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객잔의 좁은 공간을 벗어난 검객들이 들판과 숲으로 달려나갈 때, 갈대는 가냘프게 흔들리고 프레임의 여백엔 안개와 연기가
유유히 흐른다. 간신의 모함으로 죽은 충신의 딸이 황궁의 비밀요원에 의해 쫓긴다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중국 산수화의 선적 정취와 처절한 검투의
동선이 기적적인 조화를 이룬 작품. 소림사의 승려들이 체포조 검객들 앞에 나서는 종결부 장면의 믿기 힘들 만큼 유려한 공간 연출은 호금전 스타일의
백미다. 몇몇 액션장면 중심으로 잘라내 국내 출시된 90분짜리 비디오로는 호금전의 미학적 성취를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리안의 <와호장룡>으로
뒤늦게 세계에 전해진 와이어 액션의 마술적인 매혹도 이 영화에서 이미 정점에 이르렀다. <와호장룡>이 기꺼이 경배를 바친 대나무숲
결투장면은 25일 동안 촬영했다고 한다.
忠烈圖
<충렬도>
1975년
명조 말기인 16세기 중엽, 중국 동해안지역엔 왜구가 들끓고 있다. 지역 관리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왜구와 결탁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황제는 왜구
척결을 위해 유다이우 장군을 특파한다. 유 장군은 지역의 협객들을 불러모아 왜구와 대적시킨다. 불교적 허무주의가 진했던 전작에 비해 남성적인
무협액션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다소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작품. 그러나 데이비드 보드웰이 생략의 편집이라 이름붙인 독특한 호금전식 편집 기법의
정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이 영화도 호금전이 직접 편집했다). 변절한 수리안이 다리로 유의 가슴을 10번 가격하는 장면에서 호금전은
가격할 때마다 컷 수를 달리하면서 같은 동작의 10가지 변주를 실험한다.
山中傳奇
<산중전기>
1979년
환생의 비법을 담은 경전을 번역하기 위해 선비는 산중으로 들어간다. 산중 저택에 머물게 된 선비는 그 집의 딸과 반강제로 결혼하지만 알고보니
아내가 된 여인은 사람으로 환생하려는 귀신. 또다른 귀신 여인이 그를 유혹하면서 살벌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귀신 쫓는 고승이 뛰어든다.
무협액션은 뒤로 물러나며 <협녀>에서 초반을 이끌던 괴담 분위기가 전편에 흐르는 호금전의 마지막 걸작. <천녀유혼>을
연상케 하지만 멜로적 요소는 전무하며 귀기가 압도한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들과 허물어진 성채, 출구없는 산중은 시종 폐쇄공포증에 가까운 불안을
선사하며, 주인공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귀신에 사로잡히거나 공허의 심연을 떠돈다. 늘 그랬듯 호금전의 관심사는 인물 탐구가 아니라 공간과 인간의
관계맺음이다. <공산영우>와 함께 한국에서 촬영된 <산중전기>의 공간은 가장 어둡고 우울하다.
天下弟一
<천하제일>
1982년
자신이 천하제일이라고 믿는 당나라 마지막 황제는 점점 정신이상을 드러낸다. 총리대신은 그를 치료하기 위해 당대 제일의 의사, 도둑, 화가를
불러모아 치료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왕위는 장군이 물려받아 송나라를 세운다. 쳉페이페이를 비롯한 호금전 사단이 다시 모여 일종의 역사 우화를
시도했지만 60, 70년대 호금전의 체취는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세속 권력을 도가의 관점에서 조롱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엉뚱한 영화는
아니라 해도, 호금전의 위대성은 그런 주제의식을 조작적 이야기에 담는 기술에 있진 않았다. 40살에 이미 대가의 경지에 오른 호금전은 80년대부터는
편집에서도 미장센에서도 동작의 연출에서도 안타깝게 노성(老成)의 길을 걷지 못했다.
▶ 무협영화의
신, 호금전이 온다
▶ 호금전
감독의 작품세계
▶ 미리보는
부천영화제 초청작 다섯 편
▶ 호금전
마지막 인터뷰
▶ 호금전을
추억하다
▶ 회고전을
열기까지 준비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