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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아니 표현이 다소 과했다. 거의 모른다. 1년에 1번. 잡지의 창간 기념을 맞아 크고 작은 개편을 한다. 코너를 바꾸고, 새로운 필자도 모시고, 디자인도 이래저래 다듬어본다. 매주 마감하는 주간지의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짬짬이 틈을 내어 회의하고, 시안을 만들고, 다시 엎는 등 추가 노동력을 투입해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실은 딱히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일이다. 물론 연속성을 알아봐주는 정기 구독자도 적지 않지만 매주 이슈와 필요에 따라 잡지를 보는 독자 입장에서는 한권 한권이 독립적이다. 게다가 연중 소폭의 개편과 변화를 주면서 다듬어나가는 편이라 내용의 조정은 충분히 갈음할 수 있다. 말하자면 개편은 일종의 가욋일, 속된 말로 고생을 사서 하는 작업인 셈이다. 그럼에도, 굳이 때맞춰 개편을 거르지 않는 건 일종의 의식에 가깝다. 현재 우리의 위치와 형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점검이라고 해도 좋겠다.
편집장을 맡고 세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세 번째 개편을 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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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견고한 것들의 추락에는 반드시 어떤 굉음이 따른다. 물리적으로 실체를 가진 것들뿐 아니라 권위, 제도, 사상, 그러니까 그 모든 달콤한 것들의 상징적인 추락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굉음을 들으려 하지 않을 때, 그 추락은 망령 비슷한 것이 되어 추문으로 떠돌게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건재해 보이는 실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추락 자체를 부정할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는 저게 보이지 않나요? 반면 들리지 않는 굉음에 대해 증언하려는 사람은 보이는 것 너머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를 재편해 새로운 감각적 현실을 창안하기. 이를 위해 기이하고 열정적인 망상을 동원하기. 이것이 영화가 현실에 관여해온 방식이 아니던가요.
기이하고 열정적인 망상을 동원하기. 이것이 영화가 현실에 관여해온 방식이 아니던가요. 후자의 문장에서 ‘영화’의 자리에 영화 대신 ‘미술’을 가져다두어도 의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이하고 열정적인 망상’이라는 표현과
[비평] 상상적 우애를 위한 장소, 김예솔비 평론가의 <오,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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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납치당하고 싶다”, 작가 수전 손택이 2000년 <뉴요커>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영화가 자신의 의식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강제로 낚아채주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손택에게 영화관이란 자신을 내맡기는 곳, 그녀가 4년 전 에세이 <영화의 쇠퇴>(The Decay of Cinema)에서 썼듯 “이미지의 물리적 현존에 압도되는” 곳이었다.그 에세이에서 손택은 집에서 TV로 영화를 보는 빈약한 경험을 개탄했다. 오늘날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한 글을 읽는 것에 대해 그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터넷은 분명 우리를 현재로부터 휩쓸어간다. 나 자신을 포함해 손바닥에 꽉 쥔 기기 위로 몸을 구부린 채 거리를 몽유병자처럼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증거다. 그러나 인터넷은 우리를 황홀하게 납치하는가? 손택이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우뚝 다가서는 거대한 스크린의 장관에 대해 말했듯, 인터넷은 “우리의 온전한 주의를 요구”하는가? 온라인에서 우리는 스와이프하거나 스크
[특집] 오늘날 영화잡지 편집자로 산다는 것 - <사이트 앤드 사운드> 편집팀장 이저벨 스티븐스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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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현존하는 영화 전문지 중 가장 오래된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극적으로 변모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마리나 빌러와의 협업을 통해 전면 리디자인을 단행한 것이다. 오랫동안 고집한 ‘&’를 ‘and’로 바꾸고 영화 슬레이트에서 영감을 받은 굵직한 타이포그래피와 격자 디자인, 서체의 현대적 재해석이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사랑받는 것은 새로운 표지 전략이다. 개편 첫호는 네 감독의 초상- 클로이 자오, 스티브 매퀸, 소피아 코폴라, 루카 구아다니노- 을 각각 표지로 내세운 4종 커버였다. 이후에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2024년 10월호), 데이비드 린치(2025년 3월호), 봉준호(2025년 4월호), 폴 토머스 앤더슨(2026년 3월호) 감독 등이 표지를 장식해오고 있다. 매호 ‘감독의 의자’(Director’s Chair) 칼럼에서는 현역 감독이 필자로 참여하며, 감독을 게스트 에디터로 초대하기도 한다. 최초의 게스트 데이터는 2020년
[특집] 언제나 현대적인 -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공적 토대에 기반한 현실적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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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봄, 도쿄시 긴자 도심에 있는 <키네마 준보>편집국의 문을 두드렸다. 한동안 맥이 끊겼던 <씨네21>과 <키네마 준보>의 기사 제휴 등을 논의하고,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잡지사답게 20여년 전과 필진에 변화가 크게 없었으므로, 다행히도 연락이 닿았다. <키네마 준보>의 필진이자 <씨네21>과도 연이 깊은 사토 유 영화평론가가 만남을 주선해줬다.
100년 넘은 잡지이니만큼 <행복한 사전>(2014)에 나오는 근대풍의 출판사 사무실을 상상했으나,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정갈한 화이트 톤의 최신식 오피스였다. 아주 살짝 실망하려는 순간 입구에서 방문객을 반기는 <키네마 준보> 창간호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1919년에 발행된 잡지다. ‘역시 <키네마 준보>구나!’ 싶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편집국 내부를 보니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아
[특집] 그쪽은 괜찮으신가요? - <키네마 준보> 편집국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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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마 준보>는 1919년 7월 창간된 일본의 영화잡지다. 현존하는 주요 영화잡지 중 가장 긴 역사를 지닌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2026년 4월호가 무려 1943호째 잡지다. 시작은 자그마했다. 도쿄공업고등학교(현재 도쿄과학대학) 재학생인 다나카 사부로 등 4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동인지로 출발한 것이다. 초기엔 자국 영화를 비판하고 해외 영화를 물신화하는 경향이 짙었다. 1910~20년대에 일본에서 일어난, 이른바 ‘순수영화운동’에 가담하는 쪽이었다. 노가쿠나 신파극 등 기존 연기 예술의 연극적 요소를 배제한 영화 매체의 순수한 역량을 발견하자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초기 성질은 1924년 시작된 <키네마 준보>베스트 텐 시상식이 얼마간 해외 영화를 대상으로만 이뤄졌다는 사실에서도 발견된다. 다만 1926년 <키네마 준보>베스트 텐에 일본영화 부문이 도입되고, 일본의 영화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최근엔 자국 영화를 다루는 비중이 훨씬 커졌다. 현재
[특집] 107년의 축적 - <키네마 준보>, 종이 잡지에 기반하는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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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가르송 영화평론가는 2020년 <카이에 뒤 시네마>부편집장에 임명됐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 외부 필진으로서 꾸준히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기고한 그는 잡지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적임자였다. 중간에 7~8년간 <카이에 뒤 시네마>를 떠나 다른 매체에서 글을 발표하고 라디오에 출연하며 평론 활동을 하던 기간이 있었지만, 2020년 마르코스 우잘 신임 편집장이 부편집장 역할을 제안하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말해 제안받고 주저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잘 알기 때문에 만만치 않을 거라고 마르코스 우잘 편집장과 페르난도 간조 공동 부편집장에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쉽지 않은 여정도 어느덧 6년째다. 그 시간은 어떤 경험이었을까. 지금 그가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서울과 파리, 7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영화잡지란 공통점 하나로 그와 화상으로 만나 나눈 긴 대화를 꼼꼼히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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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만 살아남고 싶지 않다” - 샤를로트 가르송 <카이에 뒤 시네마> 공동 부편집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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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는 한권의 종이 뭉치를 넘어 영화사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영화잡지다. 시작은 1951년, 7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편집장은 영화의 리얼리즘을 특별히 강조한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이다. 바쟁은 영화잡지 <레뷰 뒤 시네마>에서 글을 써오다가 1949년 창업자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폐간을 경험한 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창립하고 스스로 편집장에 올랐다. 바쟁은 1호의 커버로 미국 할리우드영화 <선셋대로>를 내세웠는데, <카이에 뒤 시네마>를 떠올릴 때 프랑스의 영화잡지란 인상이 강하지만 창간호부터 미국영화를 비추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창간 초기부터 프랑스영화계와 심하게 불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1954년 <카이에 뒤 시네마> 1월에 실린,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평문이 된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은 22살의 젊은 평론가가 쓴 프랑스영화 살생부에 가까웠다.
[특집] 역사를 만든 사람들 - <카이에 뒤 시네마>의 ‘작가주의 이론’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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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잡지의 문을 닫는 사람들은 거창하거나 뭉클한 고별사를 마다하곤 한다. 대개 원치 않는 결과였을 터다. 2024년 봄, 캐나다의 영화 계간지 <시네마스코프>의 편집장이자 비평가인 마크 퍼랜슨은 97호 에디토리얼에서 종간을 알리며 이렇게 썼다. “이 잡지를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 방법은 구걸이 아니고서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가이 매딘 감독이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표지로 두른 마지막 호는 특별한 장식도 없이 평소처럼 발행됐다. 한 시대의 종언치고는 담백한 퇴장이다.
<시네마스코프>의 폐간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국제 잡지·미디어 산업 협회인 FIPP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잡지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연평균 3.1%씩 줄어들고 있었고, 2020년에는 전년 대비 16% 급락을 기록했다가 2022년 들어서야 소폭 회복했다. 이들의 예측은 앞으로도 연평균 약 2.1%의 감소가 지속될 거란 전망이다. 전세계 종이 잡지 시장의 하강 곡선 안에서
[특집] 종이는 무엇을 기념할 수 있을까 – 전 세계 주요 영화지들의 운영 현실을 개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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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씨네21>을 정기 구독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매혹시키는 이 영화잡지를 직접 사는 것은 특별한 의식이었다. 경남에 살던 어린 시절 <씨네21>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날은 목요일이었다. 그날이 되면 아파트 앞 편의점 신문 가판대에서 잡지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걸어갔고, 문화 소양이 깊은 시민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유광 컬러 표지를 일부러 미끌거리면, 표지가 내지와 부드럽게 분리되는 촉감이 좋았다.
훗날 세르주 다네가 <카이에 뒤 시네마>를 사는 의식에 대해 고백한 책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를 읽으며 내 얘기처럼 느껴져 놀랐다. 그는 노란 테두리가 둘러진 잡지를 살 때 “그날만을 기다렸으면서도 마치 관심 없다는 듯이 집어왔다”고 했다. 내 유년 시절보다 겸손했던 다네. 그가 영화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낼 때 <카이에 뒤 시네마>를 소환했듯이 <씨네21>은 영화에 대한
[특집] 잡지, 안녕하십니까 vol.1 - <카이에 뒤 시네마> <키네마 준보> <사이트 앤드 사운드>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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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야기해보고 싶다.
1993년 베이징 영화학교(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내게 거대한 스승과 다름없었다. 풍부한 문화 생태를 갖춘 곳이었고, 역사의 변화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 베이징에 불어오는 돌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중요한 신념을 세웠다. 영화는 고립된 예술이 아니어야 한다. 영화는 폐쇄 속에 존재할 수 없다. 영화는 예술이므로 관객이 살아가는 동시대의 일부여야 한다.
- 당시의 결심을 조금 더 부연해준다면.
수많은 매체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려 든다. 그럴 때마다 동시대의 예술을 다양하게 접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학생 시절 다녔던 전시회와 그 당시 관람한 영화를 서로 융합시키며 성장했다. 사회 속에 살며 다양하게 직면하는 사건과 딜레마를 종합해온 것이다. 영화는 종합예술의 한 형태라고 배웠고, 영화 이외의 매체를 통해서도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간절히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기획] 기법 너머 단어와 문장을 선택하는 시나리오를 - 지아장커 감독 마스터클래스 지상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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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듣고, 보고, 느끼라.”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로 데뷔해 <2046> <게이샤의 추억> 등 수많은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 장쯔이는 여전히 예술대학에서 배운 가르침을 바탕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제19회 아시안필름어워즈에서 아시아 영화 엑설런스상을 수상한 그가 시상식 직전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연기 인생 중 잊을 수 없는 몇 순간을 호쾌한 웃음과 함께 회상했다.
<와호장룡>
“당시 현장은 ‘생고생의 구렁텅이’였다. (웃음) 내가 학교에서 배운 무용의 기초를 총동원해 모든 무술 시퀀스를 소화했다. 수련(양자경)과 교룡(장쯔이)이 결투하는 장면을 찍을 땐 손톱이 통째로 뜯겨나갈 정도였다.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머릿속엔 온통 다음날 찍을 액션 생각만 가득해서 자다가 몽유병에 걸린 듯 깨어나 연습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당시엔 연기 경험이 적어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진 못했다. 어린 나는 교룡을 어른 말 안 듣는 재벌
[기획] 장쯔이가 말하는 ‘내 인생의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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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아시안필름어워즈가 3월14일부터 22일까지,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의 시취센터에서 열렸다. 올해 아시안필름어워즈는 지난해 홍콩에서 발생한 왕푹코트 화재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로 경쟁부문 시상과 레드카펫 행사를 생략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조용히 치러졌다. 하지만 아시안필름어워즈는 화려한 볼거리 없이도 행사의 본질을 지켜냈다. 동아시아영화의 역사를 이룩한 영화인들의 특별 강연 ‘마스터클래스’와, 지금 동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인들이 한데 모이는 ‘아시안 시네라마’와 ‘인 컨버세이션’ 행사에 집중하며 영화를 찍고 만드는 행위의 의미를 전 세계 관객들과 함께 다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아장커 감독과 배우 장쯔이가 각각 나선 마스터클래스는 취재진과 현지 관객, 영화학도들의 열띤 신청으로 일찌감치 표가 매진됐다. 두 중화권 영화인의 마스터클래스 내용은 이어지는 지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영화인들의 활약 또한 두드러졌다. 황동혁 감독이 지아장커, 장쯔이에 앞서 마스터클래스의 연
[기획] 영화의 내일이 더 밝기를, 세상이 보다 평화롭기를! - 제19회 아시안필름어워즈 축소 개최, 한국 영화인들의 활약 두드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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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필마트는 와야죠.” 홍콩 출장 기간 중 이곳저곳에서 스치듯 만난 국내 영화수입사 직원들이 하나같이 건넨 인사다. 3월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홍콩무역발전국(HKTDC) 주최로 제30회 필마트가 열렸다. HKTDC가 올해 설립 60주년이니, 필마트는 HKTDC 역사의 절반을 함께해온 셈이다. 지난 30년간 필마트는 아시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마켓이자, 한해의 상반기에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유럽필름마켓과 칸영화제의 칸필름마켓 사이 필수로 방문해야 하는 엔터테인먼트 행사로 성장했다. 기념비적 숫자 덕분인지 올해 필마트는 역대 가장 성대한 규모로 행사를 열었다. 38개국 및 지역에서 790개 이상의 스튜디오가 합류해 작품을 선보이고, 약 50개국 및 지역에서 온 7700명의 방문객이 사전 등록을 마쳤다. 필마트가 개장하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모든 부스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미팅이 열렸고 부스별 웅성임은 거대한 백색소음으로 뭉쳐 주기적으로
[기획] 인공지능, 숏폼 그리고 대한민국 - 정재현 기자의 제30회 필마트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