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를 연출한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마약 거래를 시도하는 싱글맘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영화 <나이트 플라워>는 술집에서 일하며 어린 딸과 아들을 키우는 나츠키(기타가와 게이코)가 우연히 길에 떨어진 마약을 주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생활고에 지쳐 마약 거래를 시도했다가 조직원에게 흠씬 두들겨맞은 나츠키는 여성 격투기 선수 타마에(모리타 미사토)와 협력하면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다.
위태로운 밤거리에 두 캐릭터를 데려다놓은 우치다 에이지 감독을 만나 여성 연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고로 우치다 에이지 감독은 영화계로 들어오기 전, 잡지사 기자로 11년간 일했다. 이번 영화를 위해 그가 얼마나 취재에 공을 들였는지 이야기할 땐 마치 동료 기자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 시나리오를 쓸 때 나츠키란 싱글맘 캐릭터가 먼저였는지, 마약을 줍는 사건이 먼저였는지 궁금하다.
예전부터 어머니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마약 비즈니스에 깊이 빠져드는 일본인을 그린 작품도 그리고 싶었다. 어느 순간 그 두 가지가 연결되면서 영화가 기획되었다.
- 오프닝부터 강렬하다. 잠이 부족해 술집 화장실에서 졸던 나츠키가 바깥의 부름을 받고 나가 노래를 부를 때,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가사를 절규하듯이 내뱉는다.
연출자로서 화장실 숏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미술감독에게 낙원을 형상화한 그림을 잔뜩 모아달라고 요청해서 화장실 벽에 걸어두었고, 싱글맘 나츠키가 그런 그림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도록 했다. 그림 중에는 앙리 루소의 <꿈>도 있는데, 그 앞에서 나츠키가 꿈을 꾸고 있는 형상이다. 이후 나츠키는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문을 경계로 해 안쪽과 바깥의 간극을 의식하며 촬영했다.
- 밤이 아닌 낮의 나츠키는 여느 엄마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친구를 때린 아이를 대신해 사과 편지를 전하며, 피곤을 참으면서 일한다. 일과 육아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은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세밀함을 갖추었나.
죽을힘을 다해 취재했다. (웃음) 수십명의 싱글맘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시나리오에 녹여냈다. 아무래도 평균의 모습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 보니 한 사람을 밀착 취재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개 싱글맘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급여는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급여에서 생활비는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 평균치를 냈다. 그러면서 이들이 경제적으로 고생하지만 삶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일상의 행복을 놓지 않는다. 문제는 삶을 더 즐기려 한다거나 아이 교육비를 늘리려 하면 생계가 빠듯해진다는 사실이다.
- 나츠키에게 구원자처럼 격투기 선수이자 성 노동자인 타마에가 나타난다. 두 여성이 곧바로 서로를 알아보고 도울 수 있었던 동기가 무엇이라고 보았나. 타마에에게 필요한 건 돈보다 공동체였던 걸까.
예리하다. 현대 일본인들은 자신이 설 자리를 중시한다. 젊은 사람 중에는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을 만한 곳이 없는 이들이 꽤 많다. 이건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큰 문제다. 타마에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닐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만한 장소를 찾던 타마에는 격투기에 빠져들었고, 이후 나츠키 가족을 만나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 또 다른 여성 캐릭터인 나츠키의 딸 코하루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코하루는 아직 어린 남동생과 달리 엄마인 나츠키가 처한 상황을 알아차리는 성숙함을 갖췄다. 어떨 땐 어른보다 더 성숙하고 엄마가 보지 못하는 상황까지 내다본다.
엄마 나츠키에 대한 숨겨놓은 설정이 하나 있다. 중학생 때 밴드 활동을 했지만 노래를 너무 못해 밴드를 해산시켰다는 설정이다. 그와 반대로 코하루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아이로 그리고 싶었다. 부모가 갖지 못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을 일본에서는 ‘기프티드’(gifted)라 칭한다. 내 친척 아이 중에도 기프티드가 있다. 엄마는 폭주족인데 플롯에 천재성이 있어 음대에 진학했다. 나로서는 리얼리티를 갖고 코하루를 만든 셈이다.
- 이야기의 중요한 국면이 캐릭터 내면의 동기가 아닌 물건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속도감도 빠르다. 예를 들면 길가에 버려진 만두 도시락을 가지고 가려던 나츠키는 우연히 마약을 줍고, 손에 마약이 생기자 팔아서 돈을 번다. 다시 돈을 손에 쥐다 보니 더 큰 돈을 바라면서 물량을 많이 떼온다. 그렇다고 마약이 그에게 무조건 행복만을 주는 게 아니라 발이라도 달린 듯 다른 인물로 이동하여 새 국면을 만들어낸다. 연출자로서 영화의 갈등과 주요 대목을 물건의 이동을 통해 풀어나가려고 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 늘 3시간 분량이다. 아무래도 전환이 빠른 작품을 지향하다보니 분량을 줄이는 단계에서 사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쪽을 선택한다. 캐릭터의 감정에 의해 사건을 전환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 한국영화는 대사가 많다. 하지만 당신의 작품은 말없이 감정을 끌어내는 게 흥미롭다. 코하루가 바이올린 레슨비를 벌기 위해 길가에 서서 연주할 때, 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일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영화학교에서는 가급적 대사를 적게 쓰라고 가르친다. 대사는 적게, 상(像)으로 보여주라는 가르침은 일본 고전영화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일본에서는 ‘아우’(合う. 합쳐지다, 조화를 이루다라는 뜻.-편집자)란 말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일본인끼리 통하는 문화적 코드다. 물론 ‘아우’에는 곤란한 점도 있다. 영화가 대사 없이 무언가를 표현하면 일본 관객에겐 통하지만 해외 관객에겐 전달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를 많이 개선한 분야가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싶다.
-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일단은 안도할 수 있지만 앞으로 이 가족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리라 낙관하긴 어려웠다.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초반에 등장한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란 노랫말에 관해 되짚어보게 한다.
인간에겐 감동적인 이야기를 보거나 읽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다. 그에 반해 현실에선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 괴리에 관해 상당히 고민하는 편이고,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출자로서 관객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엔딩을 좋아한다. 관객 각자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엔딩이 다르게 보이도록 열린 결말을 만들고 싶었다. 참고로 아내와 장모가 함께 보았는데, 아내는 영화가 너무 침울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장모님은 해피 엔딩이라며 좋아하셨다. 연출자로서 같은 영화를 두고 이렇게 다른 반응이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