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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술은 말걸기에서 출발한다. 몸으로, 말로, 글로.
며칠 전 회식 자리였다. 소맥, 양맥 칵테일 이어달리기로 사위가 혼미해진 게 대략 새벽 2시. 낼 후회하기 전에 지금 집으로 가야 해, 라고 아득한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건만 발걸음은 후배가 앞장선 클럽으로 향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살아남은 자는 남2 여2. 대충 어색한 몸놀림이 시작된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건장하고 기장 긴 두 사내가 우리 사이로, 아니 후배 여기자들 앞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세는 매우 적극적이고 노련했는데 부비부비 준비운동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당황스러웠던 건 그 준비동작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남자2를 조금도, 아니 전혀 의식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애초 파트너가 아니었으니 선택은 여자가 하는 게 맞다, 는 패배의식에 휩싸여 전투를 포기하고 그냥 자리로 돌아왔다. 약간 화도 난 듯했다. 다행히 어여쁜 후배가 나를 다시 무대로 이끌었고(너 사회생활 좀 되겠다), 그 뒤로 몸싸움에서
[오픈칼럼] 말걸기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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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천적으로 냄새를 맡지 못한다. 아니, 냄새의 형태를 아예 모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가 바지에 변을 보셨을 때 ‘머리가 좀 아프네’ 하고 느낀 게 내 평생 느낀 냄새의 전부이다. 이러니 향수는 물론, 소독차 냄새, 커피 향 등 아예 냄새와 관련된 기억이 있을 리 없다. 냄새에 관한 기억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실연 뒤에 상대의 냄새로 그의 기억을 함께 떠올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내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냄새에 관한 기억을 꾸며내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운 기억들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비 냄새가 난다며 창밖을 가리키거나, 꽃 향기 좀 맡아보라며 꽃을 내밀었을 때 난 당혹함을 감추고 ‘음, 좋다!’ 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친구들이 하수구 냄새나 비린내를 맡고 코를 쥘 때 나도 시간차를 두고 코를 쥐었다. 반에서 누군가 방귀를 뀌었을 때 그 냄새를 추적하는 아이들이 마치 셜록 홈스처럼 보
[이창] 두 번째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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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뒷북스러운 얘기다 싶긴 하다만 그럼 좀 어때, 본 코너가 남보다 한 시간 빠른 뉴스도 아니거늘이라는 핑계로 뒷북 한번만 더 치고자 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개봉되었어야 했다. <아버지의 깃발>과 함께 말이다. 아니다. 이건 이렇게 고쳐서 얘기하는 편이 맞겠다.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에서…>와 함께가 아니라면 개봉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사실 필자는 <아버지의 깃발>을 보고 난 뒤, 막판에 제대로 끊지 못하고 나온 숙변자의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었더랬다. 그 정체 모를 찝찝함을 문장으로 바꾸면 ‘아냐, 분명 뭔가가 더 있을 텐데…’쯤이 될 텐데, 여기에서 말하는 ‘뭔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오지마에서…>였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깃발>은 그 자체로도 훌륭무쌍한 영화다. 하나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깃발>은 그 하나만으로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얘기를 온전하게 담지 못
[투덜군 투덜양] 반쪽짜리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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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연인은 오직 서로 다른 품성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받는다. 존 큐런 감독의 <페인티드 베일>은 상대방이 갖지 못한 것들에 얽매여 스스로 마음의 감옥에 갇힌 연인의 사연을 따라간다. 1925년 영국, 사교 모임과 카드 게임을 즐기는 쾌활한 미인 키티(나오미 왓츠)는 영국 정부에 소속된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에드워드 노튼)를 따라 상하이로 건너온다. 월터의 사랑은 깊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 키티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한다. 열정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키티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외교관 찰리 타운센드(리브 슈라이버)와 사랑에 빠진다. 언젠가는 아내가 자신을 돌아봐주리라는 소망이 배신당하자 월터는 그녀의 불륜을 벌하기 위해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로 발령을 자원한다. 후덥지근한 중국 남서부의 낙후된 마을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남편의 철저한 무시 속에 유배나 다름없는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다. 영국에 대한 중국의 악감정과 콜레라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두 사
한편의 낭만시 <페인티드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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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해밀턴 지역의 가톨릭계 사립학교에 다니는 소년 랄프(애덤 버처)는 말썽쟁이 소년의 표본이다. 14살인 그는 이미 애연가이고, 일주일에 211번이나 신의 이름을 욕되게 부르는 죄인이고, 22번의 야한 생각을 하는 욕정어린 화신이며, 22번이라는 엄청난 횟수를 자랑하는 자위의 왕이다. 백주대낮 수영장에서도 그의 어린 욕정은 우스운 꼴로 발산된다. 엄숙한 학교 분위기에서 그런 행동은 지탄의 대상이자 체벌감이다. 교장 신부는 욕정을 다스리라며 강제로 크로스컨트리를 배우도록 명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랄프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니체라는 사람의 문장에 감동할 줄 아는 남다른 감성을 가졌고, 이 세상에서 기적이 이뤄진다는 섭리를 굳게 믿는 보기 드문 신념의 소유자다. 아빠는 죽고,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살고 있는 랄프. 그가 기적을 바라는 건 병으로 누워 있던 엄마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엄마가 병에서 낫는 건 기적이 일어나야만 가능하다고 했고, 그
기적을 좇는 소년의 의지 <리틀 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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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마운틴>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에게 ‘기괴한 컬트 감각의 소유자’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군인에게 집단 학살된 시체의 몸에서 끝없이 나오는 새들, 온갖 이교도와 주술의 낯선 상징들, 똥으로 금을 만드는 연금술. 더럽고 잔혹하며 펄펄 뛰는 풍자의 통렬함 때문에 뇌가 욱신거릴 정도다. 처음 20분이 지나면 묘하게 자극적이지 않은데 감각기관이 과부하된 원인도 있겠지만 감독이 각각의 문단을 아방가르드 미술의 분위기 안에서 신화 양식 안으로 끌어모으기 때문이다. 남성주의, 군사독재, 대통령, 기업가, 종교인, 제국주의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조리한 권위에 대한 육두문자 섞인 욕을 영상화한 것 같다.
예수를 닮은 사내가 나타났을 때 그를 진심으로 반긴 것은 손 잘린 난쟁이와 창녀들뿐이었다. 시민들은 독재정권에 영합했고 교회는 눈감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즐겼다. 그는 ‘우주적인’ 영적 지도자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다른 일곱명의 태양계를 대
성산(聖山) 등반 프로젝트 <홀리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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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말로 두더지인 엘 토포는 벌거벗은 아들과 동행하며 사막을 가로지르는 총잡이의 이름이다. 그는 마을 주민을 몰살시킨 산적을 응징한 뒤, 자신보다 강한 현자-총잡이들을 쓰러뜨리고 중원(?)을 평정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는 네명의 현자로부터 한 가지씩을 깨닫고 결투에서 이긴다. 그러나 “이긴다 해도 진 것과 같아”라며 자책감에 곧 빠진다. 영화는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뉜다. ‘광야’의 선지자처럼 자기 내부의 악과 싸우는 부분과 집단화된 악에 둘러싸여 민중을 위해 깨달음을 실천하는 부분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성스러운 피>(1989)로 잘 알려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엘 토포>의 감독·각본·주연· 음악·미술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그가 발휘한 ‘파괴적인’ 상상력 덕에 관객은 이전에는 보지 못한 기묘한 영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의 한축에는 약탈당하고 기형이 되어버린 삶에 대한 묘사가 그득하다.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잔혹함, 사
이전에는 보지 못한 기묘한 영화 <엘 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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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역사>는 크세르크세스의 부하의 입을 빌려 스파르타인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법이라는 왕을 섬기고 있습니다. … 이 왕이 명하는 것은 언제나 한 가지, 즉 어떠한 대군을 맞이하더라도 결코 적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말고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적을 제압하든지 자신이 죽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스파르타는 자유와 법을 지키고자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과 맞서 싸웠고 병사 300명 모두가 전사했다. 프랭크 밀러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각색한 <300>은 수십만명에 달하는 페르시아 대군의 발을 묶어두었던 그 테르모필레 전투를 신화로 끌어올리는 영화다.
B.C. 480년 페르시아 국왕 크세르크세스(로드리고 산토로)가 이끄는 대군이 그리스로 진군해온다. 1년 전 복종을 요구하는 페르시아 사자를 우물에 처넣었던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는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연합군을 결성하려고 하지만, 신탁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
신화가 되어 돌아온 전사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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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수(감우성)는 누구보다 모범 시민이며 걸어다니는 법의 실현이다. 윤리교사 아버지의 강제된 교육 탓에 어릴 적 품었던 카레이서의 꿈은 이미 날아가버린 뒤고, 지금은 그저 그런 공무원으로 지낸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아내는 이혼을 통보한다. 그의 지나친 준법정신이 불러온 무사안일의 삶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을 뒷전으로 하고 회사에 가니 이번에는 직장 상사가 그를 불러 해고를 알린다. 그의 환송회장. 박만수는 끝내 모멸감을 주는 동료들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술상을 뒤엎는다. 이제부터 막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껏해야 노상방뇨를 하던 중에 파출소로 붙잡혀 들어간다. 그때 거기서 이상한 인물 양철곤(김수로)을 만난다. 양철곤은 이런 힘겨운 세상에서 지내느니 때마다 가벼운 잡범으로 붙잡혀들어가 감옥에서 살다 나오는 게 훨씬 좋다는 주의다. 일은 아주 쉽게 풀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다. 호송되던 박만수는 경찰의 권총을 빼앗아 달아나고, 엉겁결에 양철곤도
이해하기 힘든 상투의 덧칠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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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반대하는 행위는 그 행위에 대한 그 사람의 무의식적 끌림 또는 그 욕구에 대해 자기 스스로는 통제 불능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지나친 ‘00포비아’는 자기 안에 있는 00적 경향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순진한 ‘호모포비아’들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것을 허용하면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이 만연하게 되리라는 것을 내세운다. 그런 논리는 동성애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며 정치적, 사회적 차별에 의해 자연스런 성욕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그렇게 말한 이의 내밀한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타인의 성적 취향에 의해 그것이 흔들릴 공포를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처럼 사회적으로 ‘전염성이 강한 나쁜(?) 욕망’으로 거론되는 또 다른 것은 죽음에 대한 욕망이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예인들이 연이어 자살을 선택한 뒤 떠도는, 어르
잘 죽고 싶은 욕망 <씨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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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없다. 신문 정치면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안 보여줄 것 뻔히 아는데 보여줄 게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정치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못한다. 번번이 홀랑 다 벗는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어디 한두번 속나. 보는 사람이나 보여주는 사람이나 안 벗을 거 다 아니까 영 긴장감이 생기질 않는다. 직업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 벗지 않고 남겨두는 게 있다. 전두환의 비밀계좌처럼 볼썽사나운 가리개가 전복적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싸구려 비디오 에로물로 전락시킨다. 정치가 재미없다는 편견은 그래서 생긴다. 그런데도 정치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없다고 말한 건 정치가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엉뚱한 데서 작동할 때이다. 가릴 거 다 가리는 정치인들과 달리 직업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의 정치는 종종 알몸 다 보여줄 때까지 거침이 없다. 황우석 사건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연일 반대증거가 제시되고 배신자가 속출했던 그때는 정말 입이 바짝 타는 긴
[편집장이 독자에게] 희생양 장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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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복제를 다룬 영화들은 꽤 있었지만, 대게 복제로 인해 자아와 영혼까지 복제된다는 식의 오해를 기반으로 한 것들이었다. (가령 <갓센드>에선 '전생'의 기억들이 옮아가질 않나, <이온플럭스>에선 아예 자아가 영속된다고 믿질 않나...) 복제는 사실 시차를 수십 년 달리하여 태어난 쌍둥이로 환경요인이 서로 다르게 작용한 탓에, 동시에 태어나 환경인자까지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들만큼도 유사성이 적고, 태어나는 방식으로 보자면 단성생식에 의한 자녀로 차라리 한쪽 부모만 '옴팡 닮은' 자녀와 비슷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똑같다'에 현혹이 되어, 같은 개체, 같은 자아, 같은 영혼 인 것처럼 오해되어 온 것이다. 한 피아니스트가 난치성 질환에 걸리자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딸을 낳고, 그 딸을 자신과 같은 피아니스트로 키운다. 모녀는 외모와 재능이 매우 닮았고, 어머니의 집착은 남다르다. 딸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복제의 사실이 사회적으로 밝혀지자, 딸은
[전문가 100자평] <블루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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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이 중국을 휘젓고 있다. <괴물>의 제작사인 청어람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8일, 중국에서 <한강괴물 漢江怪物 >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괴물>이 520만 위안 (약 6억 3천만원)의 수입을 기록, 개봉 주말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또한 중국에서 개봉한 역대 한국영화 중 250여개 스크린이라는 최대규모로 배급된 <괴물>이 유효 개봉 스크린 점유율 25%을 보유하고 있는 현재 상태에서, 관객들의 관람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크린 수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괴물>의 흥행은 중국 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중궈뗀영바우(중국전영보 中國電影報)는 8일자 보도를 통해 "여성관객들의 표가 <한강괴물>로 몰리고 있다"고 알렸다. 또한 중국 현지 공동 배급사인 화하華夏의 담당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많은 회사에서 단체관람표를 구매하였으며,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중이
<괴물>, 중국 박스오피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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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청춘이도다.” 고아성 미니 홈피 맨 위에 보니 그렇게 쓰여 있다. 자기의 화양연화를 이미 정했다는 말투 같다. 그러고 나서 보니 몇장의 사진들과 몇개의 메모들, 사진이나 메모나 성숙하다. 때아닌 눈바람이 날리던 초봄의 어느 날 <즐거운 인생>의 리딩 연습을 마치고 온 이 소녀는 과연 예상을 뛰어 넘는 깊은 심상으로 말할 줄 안다. “별로 기분이 안 좋아요. 제 신경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날에는 날씨나 냄새나 소리에 민감해지거든요.” 눈이 온 참에 친한 척 운을 한번 떼보려고, 참 이상한 날 만났다, 봄에 눈오는 날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기자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녀의 어록. “좋아하는 소리요… 음… 무거운 물건 끄는 소리. 서랍 여는 소리, 사진기 셔터 소리요. 사진은 원래 할아버지가 그쪽에서 일을 하셨고요,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배)두나 언니가 카메라를 사주면서 찍게 됐어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게 뭔지 전 잘
거침없는 이팔청춘, <괴물> <즐거운 인생>의 고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