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왓킨스는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한 방향으로만 보라고 말하는 위계적인 영화가 아니다”영화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는 피터 왓킨스의 영화에 ‘유니크 픽션(unique fiction)’이라는 수식부터 헌사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카페 안의 사람들은 같은 시간 축 위에 있지만, 모두들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나. 그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도 그런 느낌이다” 피터 왓킨스 회고전의 모더레이터로 전주를 찾은 후지와라는 피터 왓킨스의 다큐멘터리가 제시하는 이미지와 사운드가 간단한 연산이 아니라 복잡한 방정식에 따른 “매력적인 결합”이라고 설명한다. 1990년대 말 뉴욕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워 게임>(1965)을 보고 피터 왓킨스가 창조한 가상 세계에 홀렸다는 그는“인간의 욕망과 경험을 전시하는 또 다른 방식을 맛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회고전을 택하라고 권한다.
뉴욕에서 나 고등학교 때까지 보스턴에 머물렀던 후지와라는 열혈 영화광이다. “어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이유로 유년시절부터 호러무비에 빠져들었고, 16, 17살때는 왕성한 욕구를 참지 못해 “히치 하이킹을 해서라도” 씨네필의 천국 뉴욕을 들락거렸다. <기온의 자매>(1936)를 본 뒤 미조구치 겐지를 시작으로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넓혀 온 그는 한국영화 감독 중엔 신상옥, 김기영 두 사람을 최고로 친다. 그가 꼽은 감독들을 듣다 보니, 문득 공통점 하나가 떠오른다. “맞다. 그들의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독특하고 개성이 있다. 여성의 심리나 고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는 영화들을 유심히 본다. 임권택 감독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인터뷰를 끝낼 무렵, 과거 락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다는 이력을 듣고 그룹 이름을 물었더니 손수 한글로 꾹꾹 눌러 써준다. “이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한국인이었다. 그 친구에게서 조금 배운게 전부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