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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본 친구들은 각자 자기 상황에 적용하느라 분주했다. 악마는 폭탄주를 마신다, 악마는 데리다를 읽는 척한다, 악마는 이디피에스를 즐긴다…. 직장 상사, 선배, 지도교수, 부모….일상의 슈퍼바이저들이 총출동했다. 자기 상사와 메릴 스트립을 비교하면서, 우리 중 누가 가장 핍박받는 ‘뉴 에밀리’인지를 놓고 경쟁했다. “그래도 메릴 스트립은 추천서는 써주잖아, l년만 견디면 보상이 있잖아, 나중에 고마워는 하잖아, 사람은 알아보잖아, 능력이 뛰어나니까 후배를 경쟁자로 보지는 않잖아, 성희롱은 안 하잖아….” 내 악마만이 진정한 악마일 뿐 남의 악마에 대한 칭찬과 부러움이 끝이 없었다. 그렇다. 어느 조직이나 지도자를 지배자로 착각하는 사람, 권한과 역할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지만 최소한 이 영화의 악마는 지도력 없는 지도자는 아니다.
한마디로, “무능한 주제에 인간성도 바닥인 상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성토장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유스토피아 디스토피아] 악마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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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의 마스터’ 김병욱 감독이 돌아왔다. 아쉬움 속에 종영된 <귀엽거나 미치거나> 뒤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내고 11월 초 내놓은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말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로 이어지며 한국 가족시트콤의 원형을 만들어낸 김병욱 감독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가장 ‘가족적’이지만 ‘가족시트콤’은 아닌 그 무엇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시작부터 하이킥을 날리며 거침없이 돌진해오는 문제적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가족은 소우주, 우주가 요동치는 웃음이 왔다
MBC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집은 종종 광활한 공간처럼 묘사된다. 순재(이순재)가 잘못을 저지른 그의 자식들을 뒤쫓을 때, <거침없이 하이킥>의 카메라는 수평구도로 집을 바라보며 집을 최대한 넓게 보여준다. 그렇게 넓게 묘사된
김병욱 시트콤의 이상향을 향한 일보전진, <거침없이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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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개월 전, 남들에겐 있는데 내가 갖지 못한 세 가지가 있었다. 나는 직장이 없었고, 통장 잔고가 없었으며,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는 통산 여섯 번째(많기도 하지!) 직장이 장렬히 전사한 뒤, 엄청나게 남는 시간과 얇은 지갑을 주체 못해 간간이 들어오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참이었다. 이따금 전전(前前) 직장을 들락거리며 옛 사수들에게 “어이, 오랜만이야→왔냐?→또 왔냐?→한가한가 보구나→…왔군”이란 소릴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자발적) 백수세계에 입문한 전전 회사의 편집장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실업급여를 함께 신청하러 가자는 것이었다(우리는 한 동네에 산다). 국가가 내게 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악착같이 받아야 한다며, 나는 기꺼이 집을 나섰다.
실업급여를 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고용안정센터의 분위기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그 세계에서 인간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사회 경제인이거나 백수이거나. 편집장과 기자
[오픈칼럼] 수평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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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심정을 그댄 아는가? 너무나 아프고 아픈 그 가슴에 칼을 꽂는 마조히스트의 심정을. 내가 그런 심정에 빠져 있을 때 날 구해준 것은 한명의 시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성복이다. 이성복 시인은 아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시가 정녕 싫어지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느낄 만큼 그의 시어들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성탄절>이란 시를 읽고 난 가슴에 정확히 총알이 박히는 기분을 느꼈다.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우울이다.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늘이 있어도 없는 척 능청스럽게 살 수 있을까. 마음을 정리해도 끝까지 남는 것은 언제나 우울이다. 그럼 불안, 고독 등 인간이 가져야 할 당연한 감정들마저 죄의식처럼 느껴진다. 밤새 라디오를 들으며 행복하게 웃다가도, 방송 뒤에 찾아 듣는 음악은 엘리엇 스미스나 막시밀리언 해커의 곡들이다. 마치 우울을 향해 몸을 던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말이다.
우울할 때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하면서도 끝
[이창] 우울과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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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이전부터 관객을 흥분시키는 감독이다”, “독특한 감수성으로 관객을 감화시키는 연출자다”.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일본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제3회 메가박스일본영화제에서 만났다. 영화제 마지막 날인 11월19일, ‘영화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두 감독은 서로에 대한 칭찬과 질문을 시작으로 각자 개인의 영화적 경험을 털어놓았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데라와키 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의 대화가 다소 거창한 심포지엄 주제인 ‘영화의 현재와 미래’의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TV와 만화를 통해 영화적 감수성을 쌓아온 두 감독의 대화는 현재 한국과 일본영화의 한 경향을 설명하는 데 충분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터치> 상영 뒤, 90여분간 진행된 심포지엄을 여기 옮긴다.
데라와키 겐: 우선 봉준호 감독께 <터치>를 본 소감을 부탁드린다.
봉준호: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하나는 야구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
봉준호 감독, 이누도 잇신 감독 심포지엄 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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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튜디오 감독들보다 마틴 스코시즈는 홍콩 뉴웨이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우삼은 <첩혈쌍웅>을 그에게 헌사했고 왕가위는 <비열한 거리>를 따라 자신의 첫 극영화 <열혈남아>를 만들었다. <택시 드라이버>의 비오는 슬로모션의 도시적 스타일은 수많은 홍콩영화들에 녹아들어갔다. 스코시즈는 최근 가장 강력했던 아시아의 액션영화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를 통해 이에 대한 보답을 보내고 있다.
유위강과 맥조휘의 2002년작 <무간도>의 뛰어난 이야기는 영화 역사의 두 번째 세기를 맞아서야 등장했다(만약 그전에 나왔다면 독자들은 알려주시기를). 강력한 조직의 두목은 소년기 아이를 데려다 경찰 조직에 심고, 경찰은 비밀 요원을 두목의 폭력 집단에 심어놓는다. 두 조직은 고정 첩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영화의 절정에 가서야 깊숙이 숨겨진 첩자 둘은 서로를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중요한 극적 장치로 휴대폰이 사
마틴 스코시즈의 <디파티드>가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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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감독의 신작을 보기 힘든 한국에서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의 끝자락에서 여균동과 배창호의 작품을 만난 기쁨은 컸다. 우연인지 <비단구두>와 <길>은 공히 로드무비 형식으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다. 두 감독이 자조 방식으로 힘겹게 만든 영화가 또한 어렵사리 개봉됐지만 관객은 많지 않았다. 먼저 <비단구두>가 DVD로 관객을 찾는다. 두 배우를 이끌고 음성해설을 척척 진행하는 여균동의 솜씨에 방송 진행자와 배우로서 활동했던 전력이 묻어난다. 음성해설 도중 최덕문의 말수가 적으니까 여균동은 “두 마디 이상 문장은 안 됩니까”라고 따져본다. 그래도 최덕문은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어이없었을 감독의 얼굴이 선히 보인다. 깡패의 협박에 못 이겨 영화 흉내를 내게 된 감독의 이야기 <비단구두>에는 “영화는 뭐든 할 수 있잖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음을, <비단구두>는 안팎으로 보여준다.
[코멘터리] “춥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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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러셀 크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섹스 & 시티>에서 네 여자가 성적 판타지를 채우고 싶은 섹시남으로 러셀 크로를 꼽았을 때 “언니들, 그러니까 맞고 사는 여자 보고 맞을 짓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잘해봐야 <LA 컨피덴셜>에서 보여준 약간의 아이 같음이나 <글래디에이터>의 우직한 용기, <신데렐라>에서의 묵묵한 부성애 정도가 러셀 크로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좋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마디로 너무 무식하고 깡패같이 보인다는 말씀이다. 사실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그가 <어느 멋진 순간>이라는 ‘로맨틱코미디’에 ‘펀드매니저’로 등장한다는 기사를 보고 ‘지나가던 개나 웃을 만한 영화군’이라고 생각했다(이런 영화를 돈 주고 봐야 하는게 ‘투덜양’의 비애라고나 할까). 사실 이 영화의 앞부분은 이런 예상을 크게 넘어가지 않았다. 와인잔을 앞에 두고 어린 시절 주인공의 삼촌이 주저리주
투덜양, <어느 멋진 순간>을 보고 프로방스의 낭만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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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쉴 곳이 필요해>(Gimme Shelter)는 롤링 스톤스의 악명 높은 히트곡이다. 제대로 알아먹기 힘든 그 노래는 두 주체의 외설적 대화 혹은 분열된 자아의 이중 음성을 담고 있다. “폭풍우가 지금 내 삶을 위협하고 있어… 쉴 곳이 필요해”라는 겁먹은 듯한 독백 다음에 “그건 그냥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 강간, 살인, 그건 그냥 지나가는 것일 뿐이야”가 이어지고 “사랑이란 말이야, 아가씨, 그건 그냥 지나가는 키스일 뿐이야”라고 끝맺는다.
마틴 스코시즈는 전작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에도 이 음악을 썼지만 <디파티드>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살인자, 신성모독자, 여성혐오자, 인종주의자, 동성애혐오자 그리고 아이리시 갱 두목인 프랭크 코스텔로는 이 노래와 함께 등장해 보스턴의 아일랜드인 갱의 역사를 요약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를 희롱하며 자신의 아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에게 ‘
거장의 가장 나쁜 영화 <디파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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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와 그랬노?” <친구>에서 감옥에 갇힌 준석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준석이 답한다. “쪽팔리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지금도 아리송하다. 친구를 왜 죽였느냐는 질문에 쪽팔려서 죽였다고 말하는 것인가. 쪽팔려서 자수를 했다는 말인가. 아님 왜 친구를 죽였냐고 물었는데 쪽팔려서 자수했다고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발 떨어져서 보면 우스꽝스러운 대화건만 <친구>의 이 석연치 않은 문답은 사나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들의 대화가 우습다고 생각했다면 800만명 넘는 관객이 호응하진 않았으리라. 사람들은 친구를 죽여야 했던 준석을 동정했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준석이나 동수나 알고보면 불쌍한 남자니까. 상택이 그랬듯 우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그들에게 돌을 던질 만큼 깨끗하지도 용감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것과 그래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친구>는 당위와 윤리에 속하는 의문을
[편집장이 독자에게] 아저씨들, 눈물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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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상대에게 부담없는 이성친구임을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고속도로변 “만남의 광장”만큼이나 부담없는 친구인 탓에, 다른 사랑으로 기뻐하고 아파하는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연인 사이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동안 고백은 자꾸 연기되고 아픔의 무게만 늘어난다. 영화 <무지개 여신>은 그런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이다.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알 수 없었던 친구의 아픔이다.
아오이(우에노 주리)에게 토모야(이치하라 하야토)는 야속한 이성친구다. 토모야는 아오이를 통해서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전하고 러브레터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아오이는 토모야를 향한 사랑을 에둘러 감추고 있다. 하지만 눈치없는 토모야는 언제나 그녀를 좋은 친구로만 여길 뿐이다. 대학 졸업 뒤 유학을 결심한 아오이는 내심 토모야가 잡아주길 기대하지만, 이때도 역시 토모야는 그녀를
아픔을 뒤늦게 쫓아가는 추억담 <무지개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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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손님>은 <여자, 정혜>로 데뷔하여 크게 호평을 얻은 바 있는 이윤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자아를 회복하는 여자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여자, 정혜>와 유사한 테마를 갖추고 있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더 이질적이며 다층적인 요소들이 개입하면서 진전된 방식으로 자유로워졌다.
<아주 특별한 손님>은 일본의 다이라 아즈코가 쓴 단편소설 <멋진 하루>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한효주)가 있다(그녀의 이름은 보경이지만, 우리가 그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영화의 끝에 가서다). 어떤 남자 둘이 다가와 그녀에게 “명은이”가 아니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 남자들을 강하게 뿌리치지 않는다. 급기야 남자들은 여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한 아저씨가 지금 죽어가는데 오래전 집을 나가 도시로 간 그의 딸이 당신과 너무 닮아 착각한 것이
<여자, 정혜>의 능동적 버전 <아주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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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아직도 일부 지역엔 게릴라가 남아 파시스트 독재자 프랑코 정부에 맞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어린 소녀 오필리아(이바나 바케로)는 만삭인 엄마와 함께 그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새아버지 비달 대위(세르기 로페즈)의 캠프에 도착한다. 엄격하고 냉혹한 비달에게 시달리던 오필리아는 어느 밤 요정의 인도를 받아 신비한 미로의 중심에 이르러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 판(더그 존스)을 만난다. 판은 오필리아가 지상에서 시들어버린 지하 세계 공주의 환생이고, 세개의 마법 열쇠를 손에 넣는다면,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날부터 오필리아는 밤이 되면 마법 열쇠를 얻기 위해 함정을 통과하는 모험을 거듭한다.
어릴 적부터 미로에 매혹되었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악마의 등뼈> 이후 다시 돌아간 스페인 내전에서 깊은 땅밑에 숨겨진 미로를 발견했다. 거대한 두꺼비와 눈동자없는 ‘창백한 남자’가 오필리아를 시험하는 그 미로는 위협적이면서도 코믹
어린 소녀의 전투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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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의 특별한 프로젝트 ‘시선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세번째 시선>이 막 개봉되는 시점에, 그 두 번째인 <다섯개의 시선>이 DVD로 출시됐다(초기 한정판에는 <여섯개의 시선>이 별도 제공된다 하니 연작을 보지 못한 사람은 잘하면 세편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박경희, 류승완, 정지우, 장진, 김동원이 연출한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배낭을 멘 소년> <고마운 사람> <종로, 겨울>은 차가운 시선과 마주하며 사는 다운증후군 소녀의 꿋꿋함을, 편견으로 똘똘 뭉친 남자의 못된 근성을, 탈북 소녀와 소년이 차가운 자유국가에서 겪는 비극을, 운동권 학생과 심문 수사관의 우화로 우회해본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을, 2003년의 어느 겨울밤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은 조선족 동포의 실화를 바라보는 다섯개의 올곧고 따스한 시선이다. 그 앞에서 우린 수치스러운 얼굴을
오늘을 사는 우리의 다섯 가지 모습, <다섯개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