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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공포와 맞닿아 있다. “중국도 전통적으로 ‘귀신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더라. 아무래도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빨려들어 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아름다움 앞에 두려워하고 위축되는 게 아닐까.” 말레이시아에서 온 호러 영화 <거울의 저주>는 피와 귀신, 환영보다도, 아름답게 단장한 여성들의 매력적인 미소로 공포를 환기하는 영화다. 현대와 과거를 사는 두 여성 사이에 얽힌 저주가 소재인 이 영화는 말레이시아 전통 의상과 가구, 곱게 단장한 여인들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진행된다. 그런 <거울의 저주>에서 미술은 영화의 스토리보다도 더 많은 정서를 전달해준다. 1930년대 부호의 집과 화려하게 묘사된 전통 혼례식 장면의 정교함은 정부 대출을 받아 만든 독립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자리나 압둘라 감독이 지향한 공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가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라니, 취향을 짐작할만하다.
동남아시아
부천과 사랑에 빠진 호러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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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무기 활은 예부터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다. 그중에서도 ‘부천활’은 최고로 꼽힌다. 전체 제작 과정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활 제작의 명가답게 ‘활 박물관’ 역시 부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활, 각궁의 자료와 제조과정, 그리고 유물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다. 각궁은 조선시대 당시 소와 양의 뿔로 장식한 활로서, 1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천을 대표하는 전통 문화재였다.
경기활의 일인자 김장환 선생을 기려 만든 부천 활 박물관은 활뿐만 아니라 활쏘기에 필요한 도구와 활에 대한 기록물 등 총 338점을 전시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실전에서 활용했던 일종의 로켓포 ‘신기전기화차’, 화살을 담고 보관했던 ‘전통’, 신호를 쏘는 화살인 ‘명적’, 임금의 명을 알리기 위해 사용된 ‘신전’ 등이 관객을 맞이한다.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물건들인 만큼 사연을 담지 않은 도구가 없다. 지금은 유리 전시장에 고이 진열돼 있지만, 이를
부천의 명물, 전통 활 보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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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양 대소동> Black Sheep
올리버 라이스/ 독일/ 2006년/ 95분/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베를린의 다섯 가지 한심한 군상의 이야기. 빈털터리 보리스는 고급호텔에서 섹시한 보그 모델 나디아와의 하룻밤에 성공하지만 거짓말이 탄로나면서 버림받는다. 가난이 원망스런 보리스의 선택은 자해공갈 보험사기극. 한편 베를린 시내 유람선의 관광안내원 샬롯은 부유한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친 오만한 동창을 만난다.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이들 부부 앞에 자존심을 지키려는 살롯의 애달픈 몸부림은 그녀의 알코올중독 동거남이 나타나면서 박살난다. 백수건달 브레슬린과 줄리안은 일하지 않고 돈을 벌려 갖은 궁리를 하고, 고스족 패션을 한 사탄숭배자 2인조는 베를린 시내를 휘젓고 다니며 자기들만의 제전을 준비한다. 터키인 이주민인 세 청년은 이야기에서 가장 한심한 청춘들. 머릿속에 든 거라곤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욕구 분출밖에 없는 이들은 발정난 강아지마냥 거리를 헤매지만 늘 실패한다.
이건 웃자고 만든 영화, <검은양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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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추키아트 사크위라쿨/ 타이/ 2006년/ 116분/ 부천 초이스: 장편
선택받은 당신에게 누군가가 게임을 제시한다. 13개의 임무를 모두 완수하면 상상도 못할 거액이 계좌에 들어온다. 한 단계씩 성공시킬 때마다 상금 액수는 조금씩 올라가지만, 임무는 갈수록 가혹해진다. 파멸을 감지하면서도 발을 뺄 수 없게 되는 건, 인간의 어리석은 탐욕 때문일까 게임의 잔인한 속성 때문일까. 악기회사의 세일즈맨인 푸칫은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소심한 직장인이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빚독촉에 쫓기던 어느 날 이상한 전화가 걸려와 게임을 제안한다. 수행할 임무들은 역겹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파리를 삼키고 지나가던 아이들을 울리는 정도였던 그의 임무는 인분을 먹고 우물의 시체를 건져올리는 수준에 이르고, 약간의 굴욕만 감내하면 될 줄 알았던 게임은 그를 지독한 폭력과 살인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런 푸칫의 몰락을 즐겁게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타이의 스릴러영화
타이의 스릴러영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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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4일 오후 1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심사위원 기자회견이 부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믹 개리스, 소노 시온을 제외한 9명의 심사위원은 한상준 집행위원장의 진행에 따라 심사위원으로서의 소감과 포부를 밝혔다. 장편영화 심사위원장을 맡은 정창화 감독은 “관객의 입장에서 좋은 작품”을, 단편영화 심사위원장인 쉐 페이 감독은 “창조성과 의욕이 있는 작품”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총 4개 국어로 진행됐고, ‘판타지 장르의 정의’부터 ‘한국영화의 위기’까지 폭넓은 주제의 문답이 이어졌다.
-모든 영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조가 변한다. 판타스틱 영화에서 이러한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기 델모트/ 중요한 문제다.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는 얼마 전 브뤼셀 판타지영화제로 이름을 바꿨다. 나는 개인적으로 판타지는 판타스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판타지는 SF, 고어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다. 유럽에선
9인의 심사위원, 한국영화를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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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The Code of a Duel
여명준/ 한국/ 2006년/ 84분/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영화 속의 한국은 사적복수가 허용되는 사회다. 만 20살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나 경관 1명과 공증인 1명이 있는 자리에서 원하는 사람과 결투를 벌일 수 있다. 주인공 영빈은 회사에서는 무능한 직원이지만, 결투의 세계에서는 백전백승의 숨은 고수다. 어느 날 친구 운광의 무술도장을 찾은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과 닮은 본국을 만난다. 본국은 결투에서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수련을 쌓는 고등학생. 어느 날 운광의 신분증을 훔쳐 결투를 신청한 본국은 결투장소에서 영빈을 만나게 된다.
<도시락>은 야만의 사회에서도 도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복수가 복수를 낳고, 그로 인해 친구가 적이 되지만 영화의 고수들은 그럼에도 칼의 섭리를 지키려 애쓴다. 죽음을 맞을지언정 후회하지 않고, 결투와 우정은 별개라는 쿨함도 있다. 연출과 연기, 무술감독을 맡
땀으로 흥건한 액션의 쾌감,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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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쉽> Black Sheep
조너선 킹/ 뉴질랜드/ 2006년/ 87분/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아마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사는 인간들만이 양을 소재로 공포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게다. 한국 대성그룹이 영화 투자에 참여한 <블랙 쉽>은 유전공학으로 인해 괴물로 변한 양떼들이 풀 대신 평원의 인간들을 열심히 뜯어먹는다는 이야기다. 양공포증을 앓고 있는 헨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농장을 형 앵거스에게 팔기위해 시골로 내려온다. 문제는 형 앵거스가 몇명의 미친 과학자들과 함께 양을 대상으로 한 유전공학 실험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쪼다 같은 극렬 환경운동가 커플이 가세해 돌연변이 양의 태아를 세상에 풀어놓고, 바야흐로 샌님 헨리의 양공포증은 진짜 악몽으로 변한다. 농장의 양들은 육식을 즐겨하는 괴물로 변해 사람들을 공격해서 내장부터 살코기까지 야금야금 뜯어먹고, 양들에게 물린 사람들 역시 거대한 반인반양의 몬스
저예산 악동영화의 간결한 스테레오타입, <블랙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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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철학적인 SF. 이 문장을 “가장 현학적인”으로 해석해도 좋고, “가장 사유적인”으로 해석해도 좋다. 올해 부천영화제의 특별전으로 묶여서 소개되는 여섯편의 작품은 50~60년대 누벨바그 거장들의 우주적인 사색이다. 현실 정치의 담론으로 들끓던 공화국 프랑스를 풍자하고 당대의 사회를 사색하기 위해서 SF만큼 쓸모있는 장르도 드물었을 것이다. 당대의 할리우드 SF영화들이 냉전과 핵의 공포를 초보적인 특수효과를 이용한 대중영화로 반영해낸 데 반해, 누벨바그 작가들은 쓸만한 아이디어와 프랑스인 특유의 배배꼬인 풍자를 곁들인 일종의 사색영화로서 SF 장르를 곱씹어냈다. 이는 60년대 뉴웨이브 SF 운동 이후로 현대의 수많은 SF 작가와 평론가들이 SF를 Science Fiction(과학소설)이 아니라 Speculative Fiction(사변소설)이라 일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다. 부천에서 소개되는 여섯편의 프랑스 SF 영화는, 그러므로 훌륭한 SF(Speculat
우주적인 사색의 세계와 조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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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자> The Butcher
김진원/ 한국/ 2007년/ 76분/ 금지구역
<도살자>를 본 관객은 배우들의 신변과 영화를 만든 데빌그루브픽쳐스가 도대체 어떤 일당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던 한 부부가 어느 도살장에 끌려온다. 이곳에는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가 있다. 그는 괴물의 희생양이 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카메라를 매달아놓고 그들의 사지를 절단하며 영화를 찍는다. <도살자>는 극중 피살자들의 머리에 4대, 도살장에 1대, 도살업자의 목에 1대씩 달려 있는 총 6대의 카메라로 난장의 살육을 담는다. 피와 배설물, 내장의 냄새들이 이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 밖으로 진동한다. 몸에 달린 카메라는 고통과 함께 요동치고 거친 사운드는 대사보다 비명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특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시점과 탈출하는 시점을 담을 때는 다급한 듯 하면서도 느긋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 하지만 말 그
작정한 고어영화, <도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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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에 감독의 <워킹 온 더 와일드 사이드>
한 지에 감독의 <워킹 온 더 와일드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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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의 대표 감독들이 100년 전의 천재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열개의 꿈을 해몽한다. 근대일본문학의 기념비적 작가의 기이한 10개의 꿈 이야기 <몽십야>는 그의 몽상과 불안증이 소용돌이치는 난해한 환상소설이다. 그로부터 100년 뒤, <들불>의 이치가와 곤 같은 원로감독부터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린다 린다 린다>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등이 그의 꿈의 편린들을 하나씩 맡아 <열흘 밤의 꿈>을 만들었다. 그중 ‘일곱 번째 밤’은 3D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에피소드. 메이지 일본이 배경인 다른 에피소드와 달리 ‘일곱 번째 밤’은 시공을 알수 없는 무한한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장엄한 판타지다. 특유의 몽환적인 그림체와 거대한 세계관, 그리고 아마노 요시타카라는 크레딧에서 벌써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아루스란 전기> <창룡전>, 오시이 마모루의 <천사의 알> 그리고 <파
매체가 변화해도 회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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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far, I have been impressed at how smoothly things seem to be going
this year. In particular, the ticket lines have been fairly short and
fast moving. What a contrast from the PiFan of a few years ago, when
you had to line up at Boksagol forever (it seemed), especially in the
first two or three days of the festival. If there have been any
troubles this year, I have been blissfully aware of them.
The big event of Friday, at least in my humble opinion, was the two
documentaries of Yves Montmay
Crounching Korean Cinema, Drunken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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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본다면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경우는 다르다. 제작부터 상영까지 변방에 있는 한국독립영화들의 새로운 흐름은 오히려 영화제에서 먼저 빛을 발한다. 제1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또한 한국독립영화의 성찬을 마련했다. 단, 영화제 성격에 맞게 매우 판타스틱한 독립영화들이다.
올해 부천에 입점한 독립영화들의 특징은 장르의 쾌감과 변주에 주목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이 인생의 허무를 깨닫거나 미래의 불안을 담아온 것에 비해 이들의 시도는 독립영화계 전체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금지구역 상영작 중 하나인 김진원 감독의 <도살자>는 말 그대로 ‘작정하고 만든’ 하드고어 영화다. 아마도 <도살자>를 본 관객은 배우들의 신변과 영화를 만든 ‘데빌그루브픽쳐스’가 도대체 어떤 일당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온 한 부부가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로부
한국영화의 성찬, 마음껏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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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스튜디오> Reverb
이탄 아루시/ 영국/ 2007년/ 88분/ 월드판타스틱 시네마
뮤지션들의 새 앨범 홍보시에 항상 터져나오는 ‘녹음실 괴담’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촉망받는 독립호러영화 감독 이탄 아루시의 신작 <공포의 스튜디오>는 녹음실 괴담에 대한 영국식 해석이다. 록 뮤지션으로 성공을 거두고 싶어하는 알렉스와 여성 보컬 매디는 메이저 음반사의 녹음실에 몰래 숨어들어 새로운 곡을 녹음하려 한다. 하지만 어두운 녹음실에는 무언가가 있다. 밤을 새며 작업에 열중하던 두 사람은 샘플로 뜬 노래에 “도와줘요!”라고 외치는 기괴한 목소리와 굉음이 녹음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매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성공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알렉스는 또다시 녹음실로 향하고, 샘플에 녹음된 목소리가 자살한 천재 음악가 그리핀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매디는 알렉스를 구하기 위해 녹음실로 달려간다. <공포의 스튜디오>의 전
녹음실 괴담에 대한 영국식 해석, <공포의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