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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욕구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되기도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 오만불손한 건축물을 짓는 인간에게 야훼가 내린 벌 때문에도 자주 언급되곤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야훼는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창세기 11장7절) 했고, 결국 바벨탑 건설은 무산됐다. 이때의 벌 때문에 애초 하나의 언어와 단어를 사용하던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 됐다는 성서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믿기 어렵지만, 이 ‘세계화’ 시대에도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사람들이 전면적으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상황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바벨>이 다루는 대상도 서로의 진의를 도무지 전달하지 못하는 이 세계 속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다. 지구의 4개 지역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소통의 위기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사막에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대 속 사람들의 ‘마음의 감옥’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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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가 1년에 2번 남보다 좋을 때가 있으니 설과 추석이다. 합본호를 만들고 남들 일할 때 쉬는 달콤한 1주일. 불공평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인쇄소, 우체국, 가판대 등도 설과 추석엔 쉬어야 하니 독자 여러분도 이해하리라. 이번 설 합본호를 만들면서 보니까 2주간 개봉작만 16편이 넘는다. 이미 극장에 걸려 설 연휴까지 이어질 영화들까지 합치면 30편 가까운 영화들이다. 2월 말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어서 이번엔 해외에서 호평받은 작품들도 많다. <바벨> <더 퀸> <드림걸즈> <리틀 칠드런> <아버지의 깃발> 등이 오스카 특수를 기대하는 작품들이다. 그런가 하면 <쓰리 타임즈>나 <눈에게 바라는 것>처럼 아시아에서 호평받은 영화들이 있고 <1번가의 기적> <복면달호> 등 한국 코미디들도 명절 대목을 노리고 있다. 풍성한 식탁이 차려진 것 같아 입에 침이 고이지만 걱정스런 점도 있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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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교, 유지태 주연의 대서사 드라마 <황진이>(제공/배급:시네마서비스, 제작:씨네2000, 씨즈엔터테인먼트)가 2월 10일, 크랭크업했다. 2006년 7월 27일, 크랭크인하여 일체의 외부 공개 없이 진행된 <황진이>는 부안 세트장에서의 촬영을 마지막으로 194일 동안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7월 27일 파주 세트장 촬영을 시작으로 <황진이>는 양수리 세트, 용인 민속촌, 담양 소쇄원, 남원 광한루, 순천 선암사, 남산 한옥마을, 양평 설매재를 비롯 철원, 부안, 안동 그리고 금강산 등 대한민국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마지막 촬영이 진행된 날, 스텝들은 <황진이>에 참여한 스텝 모두의 안부가 적힌 시나리오 북과 촬영 시 직접 사용됐던 슬레이트, 그리고 꽃다발을 배우들에게 전달했고, 배우들도 스탭들의 개인 사진에 일일이 싸인과 안부를 남기며 그간에 쌓인 우정과 촬영 종료의 아쉬움을 달랬다. 특히 1년여의 시간을 황진이로 살아온
<황진이> 7개월간의 대장정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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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요~!” 대찬 기합소리와 함께 쌍절곤을 능숙하게 휘두르는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의 쿵후사범 권오중의 뒤에는 든든한 사부가 있다. 6개월 동안 몸을 맞부딪치며 배우를 어엿한 관장으로 키워낸 인물은 박찬대씨. 대한우슈협회 국가대표 출신의 그는 세계우슈선수권대회 6관왕이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라는 화려한 전적을 지닌 ‘고수’다.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에 강렬한 무술 자세까지 연달아 선보인 그는 경쾌한 어조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김관장…>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무영검>에 척살조 역할로 출연하면서 영화쪽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김관장…>에서는 권오중씨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부탁받았다. 권오중씨가 원래 쿵후 3단이다. 기본이 되어 있으니까, 가르치는 것은 수월했다. 사실 무술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배우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어떤 것들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의 우슈 선생님, 박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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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식과 이문식이 <범죄의 재구성> 이후 3년 만에 다시 뭉쳐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성난펭귄>(제작 필름큐 엔터테인먼트 노비스 엔터테인먼트 / 제공 쇼박스㈜미디어플렉스)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의 촬영을 끝으로 3개월간의 촬영을 마쳤다.
마지막 촬영장면은 진짜 펭귄을 보러 동물원에 간 아빠(이문식)와 딸(김유정)의 행복한 한 때를 담았다. 촬영 중간중간 이문식과 유정이는 자전거도 타고, 회전 목마도 타는 등 실제 부녀지간인 것처럼 즐겁게 촬영에 임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아빠와 딸처럼 잘 지내자는 약속까지 하며 크랭크업 현장을 아쉬워했다.
영화 <성난펭귄>은 구반장(백윤식)의 비리문서가 놓여있는 마을금고를 은행강도 배기로(이문식)가 장악하자 꼬인 상황을 풀기 위해 구반장이 배기로에게 ‘어떤’ 거래를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두 남자의 뜨거운 하루를 그린 영화이다. 이들이 겪는 하룻동안의 사건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 <성난 펭귄>은 5월 개봉
백윤식, 이문식 주연 <성난 펭귄> 촬영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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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달러라는 헐리웃 사상 초유의 제작비로 돌아온 <스파이더맨 3>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본 예고편에는 더욱 강력해진 액션과 진일보한 CG,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선보인다. 1편의 고블린, 2편의 닥터 옥토퍼스에 이어 <스파이더맨 3>에는 샌드맨, 그린 고블린 쥬니어와 시리즈 중 가장 강한 악당으로 알려진 베놈까지 3명의 악당이 등장할 예정. 이번에 공개된 예고편을 통해 베놈을 제외한 새로운 악당들도 미리 만나 볼 수 있다.
1편과 2편에 이어 샘 레이미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스파이더맨 3>는 5월 4일 전세계 동시 개봉한다.
<스파이더맨 3>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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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뉴웨이브는 대략 세 단계를 거치며 발흥하고 몰락했다. 첫 번째,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젊은 영화인들이 새로운 중·단편영화를 상영하는 ‘프리시네마’를 프로그램하면서 기존 영화산업에 대항한다. 두 번째, 1958년 이후 프리시네마의 주역들이 장편영화 작업으로 옮겨오며 영국 뉴웨이브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세 번째, 모드족의 발랄함과 중산층의 성해방을 다룬 영화들이 인기를 얻자 영국 뉴웨이브는 일막을 내린다. 2월22일부터 3월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영국 프리시네마 특별전’은 위 두, 세 번째 단계의 대표작을 통해 영국 뉴웨이브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다. 연극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원작자와 연출자였던 존 오스본과 토니 리처드슨이 설립한 우드폴 영화사는 ‘성난 젊은이’와 ‘키친 싱크’ 영화의 본산으로 이번 프로그램의 대부분의 작품을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토요일 밤 일요일 아침> <꿀맛>
성난 젊은이들의 거친 숨소리를 듣다, 영국 프리시네마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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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능을 해부하면 검은 피가 난다. 그것이 욕망이다.” ‘반골과 외골수의 작가’ 김기영 감독의 회고전이 열린다. 그의 영화에는 거의 예외없이 왜곡된 성적 충동, 소유욕, 질투, 동반자살, 살인, 사도마조히즘 따위가 등장한다. 김기영은 이러한 모티브를 통해 인간의 본능을 해부했고, 동시에 중산층적 배경을 끌어들임으로써 그러한 비정상의 심리를 부르주아적 욕망과 연결시키고자 했다. 요컨대 그는 인간의 본성과 시대상황이라는 상이한 두 층위를 동시에 포착하려고 했다.
김기영의 영화에는 삼각관계에 놓인 세 남녀가 질투와 욕정으로 미쳐 날뛰다가 끝내는 그들 중 누군가가 살해되거나 자살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는 설정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김기영은 이 통속적인 삼각관계 안에 섹슈얼리티, 계급성, 근대성 등의 문제를 던져놓는다. 이러한 욕망의 삼각형은 두 번째 영화 <양산도>(1955)에서 이미 나타난다. <양산도>는 한양에서 돌아온 양반의 아들이 평민의 약혼녀를 욕망하
인간의 욕망을 해부한다, 김기영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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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베리 고디 주니어가 디트로이트에 작은 레코딩 회사를 열었을 때 그의 수중에는 800달러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800달러는 그의 가족, 더 정확히는 어머니와 누이들이 조금씩 모아준 사업자금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타운 레코드의 시작이었다.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수많은 레이블들이 존재했지만, 모타운은 유일하게 그 자체가 장르가 된 레이블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반의 흑인 음악들, 흔히 ‘모타운 사운드’라고 불리는 음악들은 공통된 어법이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공통된 감수성을 전달하는 음악들이고, 모타운 레코드 전성기의 사운드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타운, 그러니까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하다는 이유로 ‘모터타운’이라고 불리던 디트로이트의 애칭을 줄여 회사명으로 사용한 이 작은 회사는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흑인음악을 (백인들의) 뮤직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입시킨 회사였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미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했
[영화읽기] 흑인 음악에 대한 백인들의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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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서사극도 없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없다. 2월25일 LA 코닥극장에서 판가름날 79회 아카데미상은 그간 꽁꽁 닫아두었던 보수의 문을 반쯤 열었다. 작품상 후보작들은 미국 국경을 벗어나 글로벌 바람을 몰고 왔고, 주·조연상 부문에서는 영국 배우들과 흑인 배우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그밖에도 궁금한 것은 많다. 마틴 스코시즈는 오랜 기다림을 보상받을 것인가, 메릴 스트립은 세 번째 트로피를 가져갈 수 있을까 등등. 그 결과를 기다리기에 앞서, 올해 두드러지는 아카데미상 경향을 미리 짚어봤다.
1. 글로벌 바람이 아카데미에도 불까?
작품상 후보: <바벨> <디파티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미스 리틀 선샤인> <더 퀸>
아카데미가 비싼 서사극을 선호한다는 징크스는 이미 깨졌다. 후보작 리스트를 보라. 전쟁영화(<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장르영화(<디파티드>), 저예산 블랙코미디(<미스
하늘엔 영광, 땅에는 오스카 트로피, 79회 아카데미상 경향 미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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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을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늦가을. 하정우 등 <용서받지 못한 자>에 출연한 학교 선배들과 함께한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유난히 서열이 엄격한 연극영화과에서 네 학번 이상씩 차이가 나는 선배들 틈이었으니, 영화 속 소심한 승영 못지않은 조용함을 선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그의 과묵함이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후배의 주눅든 모습이 아니라 특유의 진지함이 발휘된 결과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무리의 틈에 조용히 섞여들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버리지 않는 자신감이, 그에게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남짓. 민병훈 감독의 신작 <포도나무를 베어라>에서 그는 여자친구를 버리고 신학생으로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부모의 병세, 여자친구의 죽음, 그리고 그 여자친구와 똑같은 외모를 지닌 수녀와의 만남 등으로 갈등하는 수현을 연기했다. 승영과 마찬가지로 수현 역시 주관이 뚜렷하고,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망설이고, 어떤 변화를 겪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며,
조용하지만 단단한 발걸음,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서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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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갉아먹는 벌레에 대하여
<충사>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 펴냄
<충사>(蟲師)의 벌레(蟲)는 보통의 벌레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생과 죽음의 사이에 존재하는 <충사>의 벌레들은 귀신과 유령을 포함하는 미스터리한 존재들이며,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퇴마사 장르의 새로운 진화라고 할까. 벌레들을 알아보고 부리고 퇴치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충사다. <충사>는 고단샤에서 발간하는 잡지 <애프터눈>에 연재 중인 우루시바라 유키의 작품으로, 스스로 벌레를 끌어들이는 운명 때문에 한 장소에 머무르지 못하는 충사 깅코의 여정을 따른다. 이야기의 결로만 머무르지 않고 헐겁고도 자유롭게 그어진 선에 의해 각각의 칸 속에 자리잡은 작가의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섬세하기 그지없다. <충사>는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후지TV>를 통해 방영됐고, 원작의 팬들에게 원작자의
영화가 된 책 [4] 스크린으로 간 만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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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 펴냄
“우리 모두가 누군가와 누군가의 촉매이며 세상은 다양한 화학반응으로 넘친다.”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는 재회에 대한 다짐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다. 쓰레기 산에서 만나 유년을 함께했던 사토시와 유지, 카린은 즐거운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그로부터 15년 뒤, 아쿠아숍을 경영하는 스물아홉살의 사토시 앞에 다짜고짜 아르바이트 자리와 숙식을 요구하는 전직 모델 출신의 여자가 나타나고, 그로 인해 그들 사이에 숨겨진 또 다른 인연들이 꼬리를 물며 등장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연애사진> 등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영원한 이별은 없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강력한 힘은 과거의 인연뿐만 아니라 현재의 인연에도 작용과 반작용을 일으킨다. <그때는 그에게…>
영화가 된 책 [3] 일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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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좀비 소설, 설명이 더 필요해?
<셀>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펴냄
<셀>은 1999년 교통사고를 당해 은퇴를 고려하던 스티븐 킹이 오랜만에 슥삭슥삭 써낸 좀비 소설이다. 주인공인 일러스트레이터 클레이 리델은 작품을 좀 팔아보고자 보스턴을 방문 중이다. 그런데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미쳐 날뛰며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광증의 원인은 사람들의 뇌를 완전히 포맷해버리는 정체불명의 전파. 결국 휴대폰(Cell Phone)을 소유하지 않은 고리타분한 자들만이 살아남고, 리델은 우연히 만난 일행과 함께 휴대폰 송신탑이 없는 지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리처드 매드슨(<나는 전설이다>)과 조지 로메로에게 바치는 헌정사로 시작된 책은 결국 전통적인 좀비 문학이나 영화에서 떨어져 장르적 진화를 거듭하는데, 두뇌가 포맷된 인간들이 공중부양이 가능한 신인류로 진화하는 대목에 이르면 키득키득 웃음이 날 지경이다. 책을 읽고 나면 “
영화가 된 책 [2] 영화로 만들어질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