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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놀라워라, 가면의 힘!
복면이라고 해야 할까, 마스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가면? 편의상 가면이라고 치자. 잠깐, 여기서 슈퍼히어로들의 가면은 제외하기로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변신을 거치니, 어찌 그들의 힘이 가면에서만 나올까. 도대체 망토 없이 박쥐 가면만 쓴 배트맨 봤나? 쫄쫄이 의상 빼고 거미인간 가면만 쓴 스파이더 맨은 또 얼마나 웃길까? 어쨌거나 가면은 초인적 영웅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평소엔 묻어가는 게 컨셉인 소심한 인간들마저 가면을 쓰고 나면 무식할 정도로 용기가 생기게 마련. 그러니 은행강도의 우스꽝스런 스타킹 코스프레가 아니라면, 영화 속 가면은 가면 이상의 구실을 하는 게 사실이다. 때마침 히트곡 <이차선 도로>를 발표한 트로트 제왕 ‘복면달호’군이 등장했으니, 가면의 힘을 어디까지 발휘하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5위 <스크림>의 일그러진 가면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하면, 위대한 화가의 노여움을
[Rank By Me] 소심한 주인공마저 바꾸어놓는 독특한 가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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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의 청년 록키
‘복서’ 록키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늙었다는 서글픈 차이점이 있을뿐. 하지만 ‘인간’ 록키의 처지는 많이 달라졌다. 1편에서 서른살의 뽀송뽀송했던(?) 청년 록키는 평생의 동반자 애드리안(탈리야 샤이어)을 만난다. 남자는 건들거리는 이탈리안 건달에, 여자는 수줍은 사감 선생?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림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그들의 첫 데이트다. 아무도 없는 스케이트장, 록키는 나른한 목소리로 주절대며 작업을 걸고 애드리안은 답답한 몇 차례 방어전 끝에 결국 구애를 받아들인다.
<록키 발보아>의 아버지 록키
6편에서 애드리안은 죽고 없다. 대신 므흣하게 장성한 아들, 록키 주니어(밀로 벤티미글리아)가 있다. 하지만 챔피언 아버지가 싫었던 아들은 아버지가 회사에 찾아오는 것도, 사람들이 자신을 ‘록키의 아들’이라 부르는 것도 질색한다. 아무래도 그는 아버지의 야성보다 어머니의 침착한 기질을 물려받은 것일까? 처음
[VS] 록키, 30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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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오지마 전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오지마 전투는 해병대의 역사에서도 가장 큰 전쟁이었지만 제대로 거론된 적이 없었다. 사진뿐이었다. 그러나 원작에 끌린 이유는 <아버지의 깃발>이 전쟁에 관한 책이 아니라 성조기를 세운 군인들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가족에 관한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궁금했었다. 내가 조사를 하면서 만난 참전용사들은 최전선에서 고난을 겪었지만 거의 침묵을 지켜왔다. 만일 누군가가 전쟁터에서 자신이 겪은 일에 관해 떠벌린다면 십중팔구 그는 후방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을 것이다. (웃음) 조 로젠탈이 찍은 사진은 이오지마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 4, 5일 뒤에 찍은 것이었는데, 그때라면 전투의 1/4이 채 진행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나는 진짜 전투가 궁금했다.
-제임스 브래들리의 원작 <아버지의 깃발>은 무척 방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시나리오로 옮겼는가.
=그 책은
전쟁이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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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달 동안 협상을 한 끝에 이오지마 방문 허가를 받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검은 모래로 덮인 해변에 앉아보았다. “해변에는 자그마한 일본군 분대와 미국인 비행사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해변에 앉아 있노라니 섬으로 상륙해오는 군대와 폭력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오지마, 한자 발음으로 유황도(硫黃島)는, 1945년 2월16일부터 한달 남짓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가 되었고 전후(戰後) 일본군 2만명이 묻힌 성지로 여겨지는 섬이었다. 비행기와 전함을 이용해 사전폭격을 퍼부었던 연합군은 상륙만 한다면 며칠 안에 그 섬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일본군은 거의 모든 병사가 전사하거나 옥쇄할 때까지 저항했고, 전투는 쿠리바야시 중장이 최후의 300명을 이끌고 옥쇄나 마찬가지인 돌격 작전을 감행한 3월26일에야 끝이 났다. 연합군까지 2만8천여명에 달하는 군인이 유황 냄새에 휩싸인 채 전사한 그 섬의 전투.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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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였던 1945년 일본은 조그만 화산섬 이오지마를 연합군한테 빼앗기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전투는 일본 본토 공략의 시작이 되었고, <AP통신>의 조 로젠탈은 여섯 군인이 이오지마 스리바치산에 성조기를 세우는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두편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이 이오지마 전투와 로젠탈의 사진을 출발선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깃발>의 미군들은 일본군이 숨어 총탄을 퍼붓는 이오지마 벼랑을 공포에 질려 바라보지만,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간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마실 물도 없이 옥쇄를 강요받는 일본군의 공포를 보여준다. 서로 떨어진 두 가지 이야기이면서, 하나로 더해야만 온전한 기억이 되는 영화들. 허문영 영화평론가가 아직 국내 개봉이 확실하지 않은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2월15일 개봉예정
마지막 카우보이, 위대한 전쟁영화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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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한계란 어떤 의미일까. 노력하지 않는 배우가 어디 있으랴마는 그저 ‘부지런한 배우’라고 칭찬하기에 하지원의 정복욕은 끝간 데 없이 넓고 또 깊다. <색즉시공>에서 에어로빅을 선보이고 <다모>를 위해 와이어 액션과 무술, 리듬체조를, <형사 Duelist>를 위해 선무도와 탱고를 배웠던 그녀는 <1번가의 기적>을 준비하며 복싱에까지 손을 뻗었다. 아니, 이번에는 익혔다기보다 체화했다고 설명하는 편이 옳았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선 가짜로 때린대요. 이쪽 카메라에서 잡으면 저쪽에선 날아가고. 윤제균 감독님은 그렇게 찍고 싶지 않다며 진짜 맞고 진짜 때리라고 하셨어요. 배우들이 실제로 맞붙은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걱정도 많이 했죠.” 시나리오가 좋았을뿐더러 윤제균 감독과의 협연에 이끌려 선뜻 결정하긴 했지만 ‘얼굴이 생명’인 여배우에게 이번 역할이 혹독하고 괴로우리란 건 처음부터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
주먹쥐고 일어서, <1번가의 기적>의 하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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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상황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리모컨이 있다면 어떨까. 볼륨을 낮추면 아내의 잔소리가 잦아들고 빨리감기를 하면 지겨운 업무도 단숨에 건너뛸 수 있는 만능 리모컨을 손에 넣는다면. <클릭>이 선보이는 진정한 매력덩어리는 그러나 리모컨이 아니라 한 사내다. <첫키스만 50번째>의 루시의 말처럼 ‘달걀 모양’의 머리통에 변변찮은 외모를 지닌 애덤 샌들러는 또 그만큼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샌들러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며 17살 때부터 보스턴 코미디 클럽의 무대에 자진해 올랐다. 그의 유머 감각이 본격적으로 무르익은 시기는 뉴욕대 재학 시절. 클럽과 대학 내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현재까지 감독과 각본가로 보조를 맞추고 있는 프랭크 코나치, 팀 헐리와도 조우했다. LA의 한 코미디 클럽에서 일하던 중 TV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캐스팅되고 이때의 인기에 힘입어 또다시 스크린에 도전하면서 샌들러의 출연료는 화
사랑스러워, 소심한 남자의 꿍꿍이,<클릭>의 애덤 샌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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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와 미조구치 겐지의 대표작 한편을 보겠다는 자에게 <동경이야기>와 <오하루의 일생>을 권해도 별 문제는 없다. 그러나 나루세 미키오의 경우엔 달라서 <부운>만 봤다가는 심각한 오해를 하기 십상이다. ‘비련의 여주인공’ 이미지가 결코 잊혀지지 않아서, 나루세를 미조구치와 비슷한 유의 여성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착각할 테니까 말이다. 나루세의 회고전에 가며 눈물을 각오했던 필자는 돌아올 때마다 머쓱한 기분을 감춰야 했다(눈물을 쏙 빼놓은 작품은 <방랑기>와 <흐트러진 구름> 두편뿐이었다). 여성영화를 포함한 그의 대표적인 드라마들은 일본 보통 사람들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보여준 작품들이다. 타자에게 익숙한 일본의 얼굴, 윤리를 잘 드러낸 오즈 드라마의 보통 사람들이 어딘가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면, 나루세의 인물들은 오즈 영화와 비슷한 구도 속에서도 전혀 다른 표정으로 등장한다(하라 세쓰코를 비교해보라). 가와바타 야스
[해외 타이틀] 일상을 반영하는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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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다카시는 <데루수 우잘라>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의 곁에서 20년 가까이 조감독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라면 구로사와가 대규모 사극에 열중할 때인데, 고이즈미는 웅장한 사극보다 <마다다요> 같은 드라마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구로사와의 유작 시나리오 <비 그치다>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구로사와의 영화에 함께 참여한 배우 데라오 아키라를 데리고 세편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오가와 요코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사고로 뇌를 다친 수학자와 그의 집에서 일하게 된 파출부 모자의 이야기다. 완전수, 무리수, 오일러 공식 같은 숫자 공부를 되새김질하는 게 괴롭겠지만, 가장 소중한 진실은 마음속에 있다는 한 남자의 가르침을 느끼게 되면 그만이다.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기억 속에서 한 여자와 숫자의 곁을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킨 남자의 존재 의미가 남다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DVD는 근래 연이어
숫자를 따라가면, 사랑에 관한 가르침이… <박사가 사랑한 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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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93>의 제작에 동의한 9·11 희생자 유가족 중 한명은 ‘왜 그렇게 빨리 영화를?’이라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화가 난다고 말한다. 9·11을 다룬 영화의 제작 시기는 유가족들의 의사에 따른다고 결정한 폴 그린그래스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러니까 ‘언제’가 아니라 ‘왜’였다. 질문에 답하기 위한 그의 선택은 2001년 9월11일에 UA93 여객기와 항공 관제국과 방공사령부에서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재연 혹은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플라이트 93>은 결론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보다 사건을 바라보는 데 주력한다. 결과는? 우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의식을 환기해냈다. 포스트 9·11 세계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첫 번째 사람들인 UA93의 탑승자들을 익숙한 주변인과 나 자신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경악과 이해력 부재로 인해 쉽게 공황에 빠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의 재연이 진실에 대한 무
정치적 입장이 결여된 9·11 재연의 문제, <플라이트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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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빛내기 위해 사진을 전시할 수 있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바위 ‘힌바위’를 제작하여 극장 로비에 설치했다. 설치작업을 하는 동안 영화를 기다리는 많은 관객을 볼 수 있었다. 상업적이고 폭력적인 영상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좋은 영화만 고집하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노고에 갈채를 보낸다. 가족과 영화를 볼라치면 주제를 통일하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곳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을 위해 언제까지라도 세계인이 부러워할 명소로 ‘바위’처럼 굳건하기를 기원한다. 나는 오늘 우리 딸들을 관객으로 보낼 것이다. 파이팅!”
[시네마테크 후원릴레이 52] 조형물 제작자 황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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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감독이 만원릴레이에 추천을 했으니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 (웃음) 그래서 언제 이렇게 좋은 일을 해보겠느냐고 고맙다고 그랬다. 생각해보니 이 캠페인은 만원 ‘릴레이’ 아닌가. 릴레이는 언젠가 결승점에 도착하게 마련이지만, 이 릴레이만은 결승점이 없이 계속 달렸으면 좋겠고, 다 같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다음 주자로는 조근식 감독을 추천하겠다.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선하게 생긴 사람이다. 그리고 <여름 이야기>에서 만나 친구하기로 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친구가 하는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웃음)”
[만원릴레이 73] 영화배우 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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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현대 경제학의 창시자로 기억된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를 유명하게 만든 책은 <국부론>보다 17년 먼저 나온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다. 그가 대학 시절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도덕철학자인 해치슨이다. 교수 생활도 해치슨의 후임으로 도덕철학 강의를 하면서부터이다. 효용을 최대화하는 것을 선(善)으로 보고 합리적 계산을 과학으로 생각하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가 ‘도덕감정’에 대한 이론을 남겼다는 것은 꽤나 인상적인 사실이다. 그는 이 책에서 도덕적 행위는 이해관계를 떠난 관찰자의 위치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타인의 행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그 처지를 공감하는 능력(sympathy)이 선행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타인에 대한 공감 중에서도 특히 고통에 공감하는 동고(同苦)의 능력을 도덕적 감정의 핵심으로 꼽았다. 말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도덕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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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다. 술잔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참을 망설이고 주저했다. 1년에 고향 가는 횟수는 많아야 한번, 있어도 3일 이상 머물지 않는 아들에게 잔소리 특강을 쏟는 아버지답지 않았다. ‘이게 바로 홈그라운드의 이점이군.’ 간만에 서울 와서 얼굴 봤는데 아버지 또한 괜히 싫은 소리 했다가 아들 기분 상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술잔이 몇 차례 돌고 나서야 아버지는 어렵사리 결혼 이야길 꺼냈다. 끊임없이 선보라며 처자들을 소개해왔던 어머니가 이젠 지쳐서인지도 모르겠다. 결혼문제만큼은 그동안 아무런 언급이 없던 아버지가 드디어 운을 뗀 걸 보면. 아버지의 간청은 간단했다. 제발 그냥 다른 집 자식들처럼 평범한 가장이 돼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외롭다고도 했고, 그래서 여생을 손자 재롱 보면서 지내고 싶다고도 했다.
전작(前酌)이 없었으면 흘려들었을지 모를 말이었다. 취기에 ‘당신의 인생을 사십시오’, 라고 충고하고 싶었고, 조금은 개겨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오픈칼럼] 부자유친